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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원 셰프의 탐식 수필] 낯선 시간의 식사, 산세바스티안의 핀초스 거리

이국적 식탁 위에 오른 보편적 삶의 이야기

(서울=뉴스1 ) 김수경 에디터 | 2017-05-19 09:26 송고
편집자주 정상원 셰프의 세계 여러 나라 미식 골목 탐방기를 연재한다. 정상원 셰프는 프랑스 가정식 레스토랑 '르꼬숑'의 오너 셰프다.
스페인 북부 바스크 지역의 도시 산세바스티안. 미식의 도시로 유명한 이곳 핀초스 거리는 해가 진 뒤에야 식객들이 몰려들기 시작한다.  © News1
스페인 북부 바스크 지역의 도시 산세바스티안. 미식의 도시로 유명한 이곳 핀초스 거리는 해가 진 뒤에야 식객들이 몰려들기 시작한다.  © News1

삼시 세 끼를 시간에 맞추어 제때 밥을 먹는 일은 여간 행복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식탁을 준비하는 부류의 사람들은 제때 밥을 챙겨 먹기란 언감생심일 뿐만 아니라 삼시 세 끼는커녕, 이들의 식사 시간은 보통 오후 3시쯤 먹는 식사 한 끼가 전부다. 

요리사의 맛집은 그 시간에 문을 연 집이라고 했던가! 밥시간이 일하는 시간인 사람들의 하루는 이른 시간부터 무척 분주하다.  특히, 새벽의 시장통, 백열등 밑의 아우성이 가시면 주방에는 가장 분주한 시간이 찾아온다. 
 
캐서롤 냄비(casserole) 안의 스톡(stock)이 끓는 소리. 도마를 치는 식칼들의 메타포, 먼지를 털어내고 접시를 준비하는 달그락거리는 소리. 그 난장이 지나가고 손님들이 가득 들어차는 오더 타임은 차라리 조용한 안식이다. 
  
테이블 위에 냅킨이 놓이고 마지막으로 물주전자에 식수가 채워지면 모든 준비가  끝난다. © News1
테이블 위에 냅킨이 놓이고 마지막으로 물주전자에 식수가 채워지면 모든 준비가  끝난다. © News1

◇ 낯선 식사 시간을 가진 스페인

 
아침, 점심, 저녁 이 세 단어는 우리에게 시간을 구획하는 단어라기보다 식사 시간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어디에서나 보편적일 것 같은 이 식사 시간에 대한 인식이 반대편 도시 스페인 이베리아 반도에서는 통용되지 않는다.
 
세나(Cena) 시간의 핀쵸스바. 열시가 되어서야 스페인의 저녁식사(Cena)가 시작된다. <br />늦은 식사가 끝나면 바로 잠자리에 든다. © News1
세나(Cena) 시간의 핀쵸스바. 열시가 되어서야 스페인의 저녁식사(Cena)가 시작된다. 
늦은 식사가 끝나면 바로 잠자리에 든다. © News1

스페인에서의 식사시간은 오전 7시쯤 출근길 카페에서 아침(Desayuna)을 즐기는 사람들로 시작된다. 그리고, 오묘하게도 아침과 점심 사이에 우리의 ‘아점’(Almurzo) 비슷한 식사시간을 갖는다. 차이가 있다면, 우리는 아침과 점심을 합쳐 간소히 ‘아점’을 즐기는 반면 이들은 아침도 먹고 점심도 먹고 그 사이에 아점도 먹는다. 
 
스페인에서 점심(Comida)은 오후 3시에 시작된다. 한국에서의 일상대로 점심시간에 식당을 찾다간 낭패를 보게 된다. 그리고 또 두어 시간 뒤 간식(Merienda)으로 타파스, 크로켓, 토르티야 같은 것들을 먹는다. 

저녁(Cena)는 밤 10시가 되어서야 시작되는데, 샹그리아와 와인으로 하여금 중추신경을 좀 더 먹을 수 있도록 허락하게 한다.

가장 대표적인 타파스 굴라스(Gulas)와 뽈뽀(Pulpo). 굴라스는 대구를 저며 만든다. © News1
가장 대표적인 타파스 굴라스(Gulas)와 뽈뽀(Pulpo). 굴라스는 대구를 저며 만든다. © News1

◇ 작은 접시 위에 놓이는 간단한 음식 타파스

 
바스크 지역에서는 작은 접시에 담은 타파스를 ‘핀초스’라고 부른다.
 
스페인은 각 지방마다 색이 강하고 언어도 다르다. 같은 재료의 음식도 지역에 따라 맛이 다르다. 

우리와 기후가 비슷한 카탈루냐(바르셀로나), 바스크(산세바스티안) 지역은 한국인 입맛에 제격인 반면, 세비 아나와 그라나다의 음식은 한국인에게는 다소 기름지고 짜게 느껴지는 경향이 있다. 
 
핀초스(타파스)는 주로 맥주나 샹그리아와 함께 먹는다. 과실로 담은 시원한 샹그리아 한 잔은 낯선 장소, 낯선 시간에 놓인 이방인을 부드럽게 녹이고 놓인 시간 속으로 부담 없이 들어갈 수 있게 도와준다.
 
(왼쪽부터)토르티야. 계란을 감자와 함께 두껍게 부쳐낸다. 남미의 토르티야와 같은 단어의 음식이지만 차이가 크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언제든 먹는 타파스다. 선지 순대와 이베리코 하몽. 우리나라의 순대와 맛이 비슷하다. © News1
(왼쪽부터)토르티야. 계란을 감자와 함께 두껍게 부쳐낸다. 남미의 토르티야와 같은 단어의 음식이지만 차이가 크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언제든 먹는 타파스다. 선지 순대와 이베리코 하몽. 우리나라의 순대와 맛이 비슷하다. © News1
산세바스티안의 핀초스 골목. 늦은 시간부터 시작된 식사는 그만큼 짙은 기억으로 남는다. © News1
산세바스티안의 핀초스 골목. 늦은 시간부터 시작된 식사는 그만큼 짙은 기억으로 남는다. © News1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마들렌은 상대적 시간을 경험하는 열쇠가 된다. 
 
마들렌 향기에 과거의 기억과 현재가 뒤엉키고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식사 시간은 현실의 쉼표이자 일상의 지점인 동시에 식사했던 기억을 찾아내는 열쇠로 기록된다.
 
우리의 뇌는 과거의 기억을 찾아내는데 있어 마치 도서관의 분류 코드처럼 음식에 대한 기억을 이용하고 있다. 그만큼 먹는 일에 가장 많은 감각을 사용하거니와 당시 함께 시간을 나눈 사람 장소, 그 속의 이야기 등 가장 중요한 순간들은 음식으로 분류되고 우리 기억 속에 저장된다. 
 
즉, 식사란 먹을 때는 생활이고 먹고 난 뒤에는 그리움이 되는 살아가는 순간에 대한 확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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