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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화가 김호석 "노무현 전 대통령, 사연있는 그림 원했다"

인도 국립현대미술관서 한국작가 첫 대규모 개인전 개최
성철·법정스님 진영으로 유명…노 전 대통령과 일화 눈길

(서울=뉴스1) 김아미 기자 | 2017-05-15 19:10 송고
기억은 기억한다, 143X143cm.한지에 수묵 담채, 2017 © News1
기억은 기억한다, 143X143cm.한지에 수묵 담채, 2017 © News1
"한국의 전통 수묵화가 사색과 명상을 좋아하는 인도 사람들의 정서와 맞닿아 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오는 20일부터 6월25일까지 인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를 여는 한국화가 김호석이 전시에서 앞서 15일 서울 광화문 한 식당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같이 말했다.

김 작가는 "주인도한국문화원과 한국대사관, 그리고 인도 국립현대미술관과 함께 2년 여전부터 전시를 추진해 이번에 성사됐다"며 "인도의 큐레이터들이 제 작품 속 여백에 철학적 담론을 부여하며 깜짝 놀랄 정도로 작품을 잘 읽어냈다"고 설명했다.

성철스님, 법정스님 등 한국 대선사들의 진영을 비롯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초상을 그려 유명한 중견 한국화가 김호석이 한국 작가 최초로 인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대규모 초대전을 갖는다.
이 미술관에서 해외 생존작가가 개인전을 여는 건 독일 출신의 레베카 호른 이후 김호석 작가가 두번째다. 전시는 1979년부터 2015년까지 작가의 37년 화업 가운데 미술관 측에서 선별한 53점과 신작 30점 등으로 꾸려진다. 

9년의 시간, 141X141cm, 한지에 수묵 담채, 2017
9년의 시간, 141X141cm, 한지에 수묵 담채, 2017


김호석은 전통 한국화(수묵화)의 명맥을 잇는 몇 안 되는 중견 작가로 꼽힌다. 전통 수묵화의 맥락을 현대적으로 계승하고 재해석해 온 그는 1999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로 선정되기도 했다.

작가는 신작들에 대해 "지난 4년간 '생각'을 버리고 '마음'을 다스리며 그린 것들"이라고 소개했다. 그동안은 인물을 중심으로 그렸다면, 최근에는 벌, 닭, 생선, 애벌레 등 우리 주변의 '미물'들을 주인공으로 했다. 그는 "소소하고 보잘것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라도 그 의미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그의 신작들은 예전보다 더욱 시(詩)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그만큼 각 장면마다 함축적인 이야기들이 깃들어 있다. 예를 들어 앙상한 가시를 드러낸 생선의 모습을 담은 신작 '기억은 기억한다'는 경기도 여주 작업실에서 가축, 곤충을 직접 키우며 그림의 소재를 발견하는 작가가 죽은 생선의 모습을 보고 얻은 교훈을 녹여냈다.

"집 근처 도둑 고양이가 연못에서 참붕어를 잡아가곤 했어요. 붕어는 또 얼마나 발악을 하던지 눈과 입이 튀어나오다 못해 '소멸'해 버리죠. 어느날 고양이가 안 보여서 찾아보니 뒷마당 어딘가에 죽어 있더군요. 그리고 그 옆에 참붕어 한마리가 앙상한 가시를 드러낸 채 죽어 있는데, 가시 끝에 핏물이 고여 응고돼 있는 겁니다."

작가는 "참붕어 가시가 고양이 목에 걸려 죽은 것 같다"면서 "남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들은 결국 스스로 해를 입게 된다는 사실을 고양이와 물고기가 말해주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남에게 해를 끼치면서도 스스로 그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이 사회가 '긍정화'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 싶어 이런 그림을 그리게 됐다"고 덧붙였다.

그런가 하면 쇠스랑(괭이 모양의 농기구 일종)에 동백꽃잎들이 꽂혀 있는 그림 '9년의 시간'은 이 사회의 이른바 지식인들을 향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그는 "농사를 짓기 전 땅을 갈아엎고 고랑을 파는데 땅 밑에 묻혀 있던 동백꽃잎들이 쇠스랑 끝에 꽂혀 나오더라"며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 '먹물'로 거짓을 만들어낸다 하더라도 '진실'은 결코 속일 수 없다는 걸 말해주는 장면"이라고 말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초상. © News1
노무현 전 대통령의 초상. © News1


전라북도 정읍의 유서깊은 한학자 집안 출신인 김호석 작가는 서당 훈장이었던 조부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붓, 먹, 종이 등을 가까이하며 그림의 재료를 '자급자족'하고 화가로서 필요한 소양을 단련했다. 그의 조부는 대동천자문(1948)을 지은 한학자 염재(念齋) 김균(1888-1978), 고조부는 항일지사 춘우정(春雨亭) 김영상(1836-1910)이다.

1957년생인 그는 중학교 시절이던 1970년대부터 직접 쥐를 잡아 만든 쥐수염붓(서수필)과, 전통기법으로 만들어 놓은 한지들을 현재까지도 작업에 쓰고 있다고 한다.

김 화백은 노무현 전 대통령 퇴임 1년 전 그의 진영을 그리던 일화를 소개하면서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을 이상적으로 보이게 하는 그림보다 사연이 있는 듯한 그림을 원했다"며 "젊은 시절 데이트를 하다 헛발을 디뎌 넘어졌을 때 생긴 상처가 눈썹 위에 있는데 그것을 찾아내 그린 그림을 노 전 대통령이 선택했다"고 말했다. 그 그림은 현재 봉화마을 노무현 생가에 보관돼 있다.

김 화백은 또 노 전 대통령의 모습을 온통 여백으로 표현한 '법'이라는 제목의 초상화에 대해 "대통령이라는 권력이 사라진 후의 텅 빈 모습을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법' 또는 '얼굴없는 초상'이라는 제목이 붙은 노무현 전 대통령 초상. © News1
'법' 또는 '얼굴없는 초상'이라는 제목이 붙은 노무현 전 대통령 초상. ©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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