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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은 혁명·사형 상관없어"…경찰관 총격범 성병대의 말말말

"부패친일경찰 한 놈이라도 더 죽이고 가야"
재판서 울다가 웃다가…결국 '무기징역'

(서울=뉴스1) 정재민 기자 | 2017-04-29 07:00 송고
# "앞으로 나는 2~3일 안에 경찰과 충돌하는 일이 있을 것이다. 부패친일경찰 한 놈이라도 더 죽이고 가는 게 내 목적이다."
# "이 사건은 혁명이다. 혁명이 시작된다. 국민 여러분 혁명입니다."

# "형량을 낮출 수 있는 정신감정 받지 않겠다. 경찰이 죽은 건 내가 쏜 총이 아니라 함께 충돌한 다른 경찰의 총 때문이다."
지난해 10월19일 강북구 오패산터널 인근에서 용의자와 경찰관 사이에 총격전이 벌어진 현장 이 보존되고 있다./뉴스1 © News1 황기선 기자
지난해 10월19일 강북구 오패산터널 인근에서 용의자와 경찰관 사이에 총격전이 벌어진 현장 이 보존되고 있다./뉴스1 © News1 황기선 기자

지난해 10월19일 오후 6시20분쯤, 서울 강북구 번동의 오패산터널 앞에서 잇따라 총성이 울렸다. 경찰서에서 채 100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60대 한 명이 머리에 피를 흘리고 쓰러졌고 70대 행인이 길을 가다가 배에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 1명도 그의 총에 맞고 숨졌다. 불과 10여분 만에 일어난, 이른바 '오패산 경찰관 총격사건'으로 피의자 성병대씨(47)는 27일 끝내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오패산 터널 인근에서 사제총기를 난사해 경찰관을 숨지게 한 성병대가 지난해 10월26일 오전 서울 강북구의 한 미용실 앞에서 흉기 모형을 들고 현장검증을 하고 있다./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오패산 터널 인근에서 사제총기를 난사해 경찰관을 숨지게 한 성병대가 지난해 10월26일 오전 서울 강북구의 한 미용실 앞에서 흉기 모형을 들고 현장검증을 하고 있다./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경찰이 날 죽이려 한다" …어디서나 당당한 태도


성씨는 범죄에 앞서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경찰 살인을 예고했다. 그는 "결과적으로 나는 경찰 총에 사살되든가 생포되더라도 평생 감옥 또는 정신병원에 감금돼 그곳에서 죽게 될 것"이라며 "결과가 나에게 불행인 줄 알지만 지금의 내 상황에서 이것이 최선"이라고 밝혔다.
경찰에 붙잡힌 후에도 성씨는 공개석상에 등장할 때마다 경찰에 대한 적개심을 강하게 드러냈다.

지난해 10월21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심사)에 나서면서 그는 범행동기에 대해 "생활고로 억류돼 이사를 가게 됐는데 그 집에 가게 되면 가스폭발사고로 암살될 수 있다"라며 "(죽은 경찰이) 주사제 치료 과정에서 독살됐을 가능성이 있다"라고 주장했다.

구속된 이후 성씨는 현장검증에서 "이 사건은 혁명이다. 혁명이 시작된다"라고 끊임없이 외쳤다. 그러면서 "이 사건은 경찰 때문에 발생했다. 경찰은 저를 정신병자로 보고 있다"라며 경찰에 대한 적개심을 끊임없이 내비쳤다.

성씨는 경찰수사에서 정신병력 등과 관련해 스스로 약물처방 등을 거부했고 이어진 검찰 수사과정에서도 심리상태 등에 대한 검사에는 전부 동의하지 않았다.

공판준비기일에서 성씨는 "정신감정을 받지 않겠다. 결과는 피해망상일 뿐"이라면서 "형량을 덜 받는 것을 원치 않는다. 사형을 집행해도 상관없다"고 말했다.

성씨는 "순수하고 양심적으로 감정결과를 내면 되는데 (정신감정을 하는 사람들이) 청탁을 받고 피해망상으로 결과를 낸다"며 "그런 것을 왜 받아야 하나. 이것은 불법행위"라고 반문했다. 또 "형량엔 관심이 없다"며 "왜 멀쩡한 사람을 정신병자로 몰려고 하느냐"고 반문했다.
오패산 총격 사건 피의자 성병대./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오패산 총격 사건 피의자 성병대./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경찰을 숨지게 한 건 내가 아닌 경찰. 증인신문도 내가 할 것"


재판에 넘겨진 성씨는 끊임없이 자신의 총에 맞아 끝내 사망한 고(故) 김창호 경감(54)에 대한 살인 혐의와 관련해 "경찰을 숨지게 한 건 내가 아닌 경찰"이라고 항변했다.

그는 국민참여재판을 요구하며 "증인신문을 피고(성씨 본인)가 주도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말했다. 재판부는 성씨의 요청을 받아들여 실제 지난 25일부터 3일간 이어진 국민참여재판에서 성씨는 직접 자신이 증인신문을 진행했다.

성씨는 "세월호참사와 부산 위안부소녀상 설치 과정 중 문제, 백남기 농민 타살 등이 왜 일어났다고 생각하냐"라고 배심원에게 물으며 "경찰 등 공직사회를 친일파가 장악하고 필요에 의해서 사건을 조작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배심원들에게 "(나를 가리켜) '피해망상'이라고 주장하지만 나는 (경찰로부터) 탄압받을 충분한 이유가 있다"라며 "나라로부터 상을 받는 게 아니라 암살대상이 됐다"라고 말했다.

국민참여재판 마지막 날 검찰은 "성씨는 경찰을 살해하는 극악의 범죄를 저질렀고 그 수법 역시 장기간 계획적인 준비 끝에 이뤄진 것으로 이에 상응하는 법이 가해져야 피해자와 유가족의 마음을 달랠 수 있을 것"이라며 성씨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그럼에도 성씨는 억울함을 호소했다. 성씨 측은 "쟁점은 성씨가 경찰관을 살해하기 위해 총을 쏜 것인지 그리고 경찰이 과연 성씨가 쏜 총에 맞아 사망한 것인지다"라면서 "국과수 감정서 등과, 당시 현장 동영상, 목격자 증언 등을 봤을 때 확신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성씨는 최종변론에서 "목격자들의 증언 등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것"이라며 "있지도 않은 가공한 사실을 만들어 진술한 것이다. 이는 명백한 증거에 의한 합리적 의심"이라면서 경찰관 살인 혐의를 시종일관 부인했다.

그는 국민참여재판 마지막 날 숨진 김 경감과 그 유가족에 대해 말하면서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성실한 분이 돌아가셔서 안타깝다. 재판 끝까지만 살아있자는 식으로 내가 버티는 것"이라고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그밖에는 시종일관 사건 당시를 설명하며 웃었다. 그는 "왜 자꾸 나를 가리켜 피해망상이라 하는지 모르겠다"고 소리 내 웃기도 했다. 

그의 당당한 태도와 숱한 주장, 혐의를 부인하는 변명에도 9명의 배심원과 재판부는 성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목격자 증언과 진술, 사체 검안서, 현장검증 보고서, 국과수 감정서 등 모두 종합해 볼 때 살해의 고의를 가지고 피해 경찰에게 총을 발사해 사망케 했다"라고 판단했다.

성씨는 무기징역 선고를 받는 동안 고개를 숙이고 두 손을 모은 자세로 서있다가 선고를 받자 배심원들을 향해 "심리적인 부담이 있었나"라고 반문하기도 했지만 거기까지였다. 그는 곧 법원 관계자들에 의해 퇴정하고 지난 8개월의 말들도 끝이 났다.


ddakb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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