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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도가자' 문화재 지정 안한다…7년 논란끝에 불발(종합)

(서울=뉴스1) 김아미 기자 | 2017-04-13 15:06 송고 | 2017-04-13 18:26 최종수정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현존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보다 138년이나 앞선 금속활자인 '증도가자' 진품 60여 개가 확인됐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학계 등에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진은 경북대 남권희 교수가 진품으로 제시한 금속활자 '증도가자'. © News1


7년간 진위 논란을 이어 온 고려금속활자 101점(일명 '증도가자')의 문화재 지정이 최종 불발됐다.

문화재청(청장 나선화)은 증도가자의 국가지정문화재 지정조사를 마치고 그동안의 분석결과, 공개검증 등을 토대로 문화재위원회가 검토한 결과를 발표하기 위해 13일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개최한 언론브리핑에서 "증도가자에 대한 국가지정문화재 지정이 부결됐다"고 공식 발표했다. 

증도가자는 고려시대인 1232년 이전 개성에서 간행된 고려 불교서적 '남명천화상송증도가'(南明泉和尙頌證道歌·보물 제758호)를 인쇄하는데 사용됐다는 주장이 제기된 금속활자를 말한다. 이번에 문화재로 지정됐다면 증도가자는 1377년 간행된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제요철'보다도 최소 138년은 앞서는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가 되는 터라 문화계 이목이 집중돼 왔다.

문화재청은 △증도가자로 지정 신청된 활자는 서체비교, 주조 및 조판 등 과학적 조사 결과 '증도가'를 인쇄한 활자로 보기 어려운 점 △방사성탄소연대측정을 비롯한 과학적 분석에 의하면 고려 시대에 제작된 금속활자일 가능성이 있으나, 출처와 소장경위가 불분명하고 금속활자와 관련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청동수반·초두와의 비교 조사가 불가능하다는 점 등을 이유로 고려금속활자로 판단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리고 문화재 지정을 부결했다.

◇문화재청, 증도가자 문화재 지정 부결 왜?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는 "신청 활자의 표면층, 부식생성물 및 내부 금속의 주성분, 미량 성분을 분석한 결과 청동유물에서 나타나는 데이터와 다르지 않았으며, 활자의 내부구조 및 표면조사에서도 특이점은 발견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기존 한국지질자원연구원 등 3개 기관에서 실시했던 신청 활자에서 채취한 먹의 방사성탄소연대측정은 적정하게 진행된 것으로 인정되며, 그 시대는 상한 11세기 초, 하한 13세기 초, 중간값 12세기 초로 나타났다"면서도 다만 "신청 활자의 출토 당시 고고학적 증거에 대한 의문이 있고, 그 이후 보존환경의 신뢰성이 검증되지 않았기 때문에 먹의 연대측정 결과로 활자의 연대를 측정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문화재 지정이 부결된 증도가자 활자. 사진 맨 위부터 밝을 명(홈형), 전나무 종(네다리형), 원할 원(홈날개형). (문화재청 제공) © News1


위원회는 서체를 분석한 결과 "신청 활자와 신청 활자로 찍었다는 주자본을 번각한 증도가 서책의 글자와의 유사도 분석에서 글자의 모양, 각도, 획의 굵기 등에서 대조 집단인 임진자 활자 복각본에 비해 평균 유사도는 낮고, 유사도 편차의 범위가 큰 것으로 확인됐으며 일관된 경향성도 찾아보기 어려웠다"고 했다.

또 주조 재현 실험 결과에서는 "활자 제작과정에서 제거해야 하는 목형을 빼내기 어려운 활자가 존재하는 것으로 보아 밀랍주조방법으로 만들어졌다고 판단된다"며 "글자면과 바탕면을 분할한 목형을 만들어 활자를 주조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조판 실험 결과 신청 활자 중 홈형 활자의 경우 "세로 평균치보다 그 크기가 작은 활자가 1자 이상 포함된 경우에는 조판이 가능했으나, 평균 크기 또는 최대 크기의 활자는 조판이 불가능했다"고 밝혔고, 홈날개형 활자의 경우에는 "가장 작은 크기의 활자로는 조판이 가능했으나, 평균 크기 또는 최대 크기의 활자로는 조판이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홈형과 홈날개형 혼합 조판에서는 1행 15자로 돼 있는 증도가 서책과 달리 1행에 14자만이 들어갔으며 증도가 서책에 비해 좌우 열이 균일하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증도가자 문화재지정 신청 그 후 7년

증도가자 7년 논란은 2011년 10월 김종춘 다보성미술관 대표(한국고미술협회장)의 부인 이정애 씨가 101점의 증도가자 활자에 대한 국가지정문화재 지정 신청을 문화재청에 제출하면서 시작됐다. 2010년 김종춘 대표와 남권희 경북대학교 문헌정보학과 교수가 증도가자의 실물을 공개한 후 이듬해인 2011년 10월 국가문화재지정 신청이 이뤄졌다.

이정애 씨가 밝힌 증도가자 취득경위서에 따르면 일제 강점기 일본으로 유출돼 1995년 3~4월 오사카 노브로라는 고미술품 상인이 소장하다가 이를 대구에 거주하는 광덕사 고미술품상 김환재씨(2007년 사망)가 구입했다.

이어 대구 지역 종합병원 내과 의사인 김병구 박사가 고서적을 구입하면서 활자까지 같이 매입했고, 전문가에게 의뢰한 결과 고려시대 금속활자로 판명됐다. 이후 2010년 서울에 거주하는 이준영 씨를 거쳐 현 소유자인 이 씨에게 넘어오게 됐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이 씨는 애초 문화재 지정 신청서에 '1232년 이전에 개성에서 주조된 고려시대 금속활자로서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유출되어 오사카 노부로라는 고미술 상인이 소장한 것'이라고 제출했으나 추가 출처 및 연혁 소명자료에서 오사카 노브로가 아닌 구키야 마코토로 정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증도가자의 출처와 입수 경위 등을 놓고 수년간 진위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남명천화상송증도가가 금속활자본은 전해지지 않고 1239년에 이를 목판에 새겨서 찍어낸 복각본만 전해져왔기 때문에 진위는 미궁에 빠졌다.

◇결국 문화재 지정 불발…7년 논란 종지부

그간 문화재청은 문화재위원회를 중심으로 국립문화재연구소,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관련분야 전문가와 학자들과 함께 탄소연대측정, 성분분석, 서체분석 등 과학적 분석을 수행했다.

그러나 진위를 둘러싸고 찬반 논란은 수년간 거듭됐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측은 "지정 신청한 활자체가 남명천화상송증도가 복각본의 서체와 유사성이 떨어진다"는 분석을 내놨고, 국립문화재연구소 측은 "재료나 산지 등을 봤을 때 인위적으로 간섭을 해서 가짜로 꾸민 것 같은 흔적은 발견하지 못했다. 일부러 만들어 낸 것은 아닌 것 같다"는 결론을 발표하기도 했다. 

문화재위원회 심의 결과 발표에 앞서 12일 남권희 교수 측은 언론에 공식 보도자료를 내고 "증도가자는 한국과 일본의 공신력 있는 연구기관이 수행한 탄소연대측정 결과 고려시대 주도된 것으로 증명됐다"며 "증도가자와 남명천화상송증도가의 서체 분석 결과 유사도가 대부분 90% 이상으로 밝혀졌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증도가자 위조 가능성은 김종춘 회장에게 적개심을 품은 고미술계 일부 집단의 음모"라며 "인류 문화사 교과서를 바꿀 만한 우리 조상의 위대한 문화유산을 바르게 평가해야 한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2015년 6월 문화재청은 문화재위원회 논의를 거쳐 같은 해 6월 '고려금속활자 지정조사단'을 구성해 최근까지 조사를 진행해 왔다. 지난해 말 조사과정과 결과를 일반에 공개하고 약 4개월간의 전문가 의견 수렴을 거쳐 13일 문화재위원회 심의 최종 결과를 발표했다.

문화재청 지정조사단에는 흥선 직지사 주지(동산분과 문화재위원)를 단장으로, 배현숙 계명대 명예교수, 정제규 문화재청 상근전문위원, 흥선 직지사 주지(동산분과 문화재위원), 곽노봉 동방문화대 교수(동산분과 문화재위원), 선광민 한국원자력연구원 책임연구원, 김명진 네오시스코리아 방사선기술연구소장, 김권구 계명대 교수(매장분과 문화재위원), 강형태 쎄크 계측실장(전 한국문화재보존과학회장), 정광용 한국전통문화대 교수(건축분과 전문위원), 최창옥 동아대 교수, 최응천 동국대 교수(동산분과 문화재위원), 이재정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이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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