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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계, 블랙리스트뿐만 아니라 비리 등 적폐 청산해야"

[블랙리스트 그 후를 묻다 ⑤] 현대무용가 정영두 두댄스시어터 대표
"바람직한 무용생태계를 위한 무용인희망연대 '오롯'에 동참하겠다"

(서울=뉴스1) 박정환 기자 | 2017-03-26 12:43 송고 | 2017-03-26 14:21 최종수정
정영두 두댄스시어터 대표© News1
정영두 두댄스시어터 대표© News1


"우리의 몸이 자유롭다고 우리의 생각마저 자유로울까요. 마치 감옥에 갇힌 것처럼 우리의 생각이 고정된 가치관에 여전히 갇힌 것은 아닐까요. 자유로운 신체를 얻으려는 노력만큼이나 자유로운 생각을 얻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안무가인 정영두 두댄스시어터 대표(43)는 최근 서울 대학로 서울문화재단 대학로연습실에서 열린 무용인희망연대 '오롯' 창립토론회에서 기자와 만나 그동안 자신이 예술가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공공지원을 배제하는 이른바 '블랙리스트'에 꾸준히 저항했던 건 이유에 대해 "생각의 자유를 얻기 위해서였다"며 이같이 말했다.

정영두 안무가는 "블랙리스트에 오른 예술가가 국공립예술 지원에서 배제된 것과 내가 누리는 자유는 절대 무관하지 않다"며 "무용계와 무용인들이 예술검열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인식하는 자각이 필요하다"고 했다.

아울러 "(저항이) 고통스러워도 온 힘을 다해 잘못된 것을 고치려고 노력할 때 비로소 우리는 신체와 사상의 자유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며 "무용인들은 '블랙리스트'라는 제도적 검열뿐만 아니라 입시 비리, 학력 위조, 지원금 횡령, 티켓 강매 등 무용계의 기존 폐해에도 맞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블랙리스트 그 후를 묻다] 시리즈 기사
도종환 "이제 블랙리스트는 부정돼야만 한다"
① 도종환 더불어민주당 의원

임옥상 "블랙리스트 이후? 논공행상을 경계해야"
② 민중미술가 임옥상 화백

안도현 시인 "박근혜 정권하에서 절필 잘했다. 왜냐면…"
③ 안도현 우석대 교수

'反블랙리스트' 광화문 캠핑촌장 송경동 "시인은 혁명가"
④ 시인 송경동  

"'광화문 캠핑촌' 기록물로 남겨 학문적 연구해야 한다"
⑥ 이동연 문화연대 집행위원장 

◇ 국립국악원 검열사태에 맞서 저항의 불을 댕기다

정영두 안무가는 한국 현대무용을 대표하는 젊은 안무가이자 블랙리스트 사태에서 예술의 공공성과 표현의 자유를 위해 앞장섰던 예술가이기도 하다. 그는 2004년 제5회 일본 요코하마 국제댄스컬렉션에서 안무작 '내려오지 않기'로 대상을 받으며 '무용계의 총아'로 떠올랐다. 한국 무용계에서 무용수가 아닌 '안무가'로서 해외무대에서 인정을 받은 드문 사례여서다.

그는 이후 '텅 빈 흰 몸'(2006) '기도'(2008) '먼저 생각하는 자-프로메테우스의 불'(2012) '푸가'(2015) 등의 사회적 의식과 개인의 감정이 절묘하게 균형 이룬 작품을 발표하며 일본과 프랑스 등에서 입지를 넓혀가고 있다.

스타급 무용인의 경우 작품 발표에 집중하다 보면 사회 문제에 소홀하기 쉬운데 정 안무가는 예외였다. 그는 2015년 10월말 국립국악원이 연극 '개구리'에서 박정희·근혜 전 대통령을 풍자했다고 논란이 된 박근형 연출가가 참여할 예정이던 앙상블 시나위의 공연 '소월산천'을 사전에 검열했다는 의혹을 공론화하며 1인 시위를 시작했다.

또, 그는 해를 넘겨 2016년 10월29일부터 11월6일까지 영국 런던 한국문화원 앞에서도 1인 시위를 벌였다. 용호성 한국문화원장이 과거 국립국악원 기획운영단장 재임 시절에 벌어진 사전검열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라고 촉구하기 위함이었다.

정영두 현대무용 안무가 1인 시위장면 © News1
정영두 현대무용 안무가 1인 시위장면 © News1

◇ 블랙리스트와 촛불집회 통해 무용계 '표현의 자유' 자각

정 안무가는 블랙리스트 이후를 전망하기 기에 앞서 이번 촛불집회 과정에서 무용인들의 행동을 회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무용인들은 블랙리스트를 반대하고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하기 위해 서명운동, 1인시위, 무용프로그램 '몸, 외치다'와 광장 퍼포먼스 등을 펼쳤다.

그는 "김윤진 안무가가 주도해 무용인 250명이 블랙리스트를 반대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서명운동에 참여했다"며 "박성혜, 김서령, 김윤규 등 무용인 30여 명이 2016년 11월3일부터 올해 3월9일까지 19주 동안 매주 목요일마다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무용인 1인 시위를 벌였다"고 했다. 이어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까지 1인 시위를 이어간 것은 무용계가 유일하다"고 덧붙였다.

정 안무가는 거리로 광장으로 쏟아져 나온 무용인들이 '블랙리스트 진상규명'을 외치며 저항하는 것을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에 비유했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때 전두환 전 대통령을 지지한다는 성명을 냈던 무용계가 이번 촛불집회에서 권력에 맞서며 표현의 자유를 요구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지난 2월27~3월2일 블랙텐트에서 무용주간 행사를 벌였다. 김혜연, 그룹 14피트(feet), 오후의 예술공방, 프로젝트 그룹 정오의 1인, 두 댄스 씨어터, 최지연, 보결 댄스 라이프 무용단, 한국민족춤협의회가 광장 시민들과 만났다. 침묵의 긴 터널을 지나, 광장은 마침내 둥글게 춤을 추었다."
광장극장 블랙텐트 무용 프로그램 '몸,외치다!' 중 지난 2월28일 프로젝트그룹 '정오의 1인'의 '유랑-이름 없음의 이름' 공연 장면 ©옥상훈
광장극장 블랙텐트 무용 프로그램 '몸,외치다!' 중 지난 2월28일 프로젝트그룹 '정오의 1인'의 '유랑-이름 없음의 이름' 공연 장면 ©옥상훈

◇ 블랙리스트 등 제도적 검열 반대뿐만 아니라 무용계 적폐 청산

정 안무가는 "청와대를 중심으로 국가기관이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예술가를 검열했다는 것이 특검 조사에서 밝혀졌다"며 "앞으로 블랙리스트에 대한 철저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이와 함께 촛불집회를 겪은 무용계가 몸의 자유만큼이나 생각의 자유가 중요하다는 것을 자각한 만큼 일상화된 적폐를 청산하는 시도가 이어져야 한다고 했다.

그는 무용을 시작할 때부터 비리와 마주쳐야 한다며 입시 비리, 학력 위조, 지원금 횡령, 티켓 강매 등 고쳐야 할 문제가 무용계에 많다"며 "한 초등학생이 무용학원에서 무용을 배우는 데 드는 비용은 상상을 초월한다"고 했다.

"무용을 시작한 지 몇 개월 되지도 않은 학생에게 실력이 향상된다는 이유로 필요 이상의 공연과 콩쿠르에 참가할 것을 권하고 거기에 작품비, 레슨비, 의상비 등을 요구한다. 중고등학생이라면 입시 작품비, 콩쿨 작품비가 더해져 수년 사이에 몇백만원에서 부터 많게는 몇천만원이 들어간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또 "기량 전수나 실력 향상은 핑계에 불과하다. 학력 위조, 임용 비리, 입시 비리, 지원금 횡령, 티켓 강매 등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일들이 무용계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정 안무가는 무용계 내부의 부당한 문제에 맞서는 것이 블랙리스트에 분노하기보다 어렵다고 했다. "박근혜·김기춘·조윤선 등 전화번호도 모르는 사람에게 분노하기는 쉽지만 무용계 내부에서 이어지는 적폐를 해결하려면 우리들의 스승, 선배, 동료와 바로 마주쳐야 합니다."

"무용계 내부에서 부당한 요구를 받고 불합리한 현장을 목격해도 이에 쉽게 저항하지 못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부당함에 저항했을 때 당한 억압과 폭력의 기억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용계의 여러 비리와 폐단을 지적한 사람들이 보호받기는 커녕 결국, 무용계를 스스로 떠나거나 무용을 그만두는 결과를 지켜봐야 했습니다."

그는 "무용인이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말하지 않는 '자기검열' 상황"이라고 진단하면서도 "촛불집회에 참여한 경험이 새로운 변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어쩌면 무용인들 옳고 그름의 문제를 판단하는 감각 자체가 거세된 상태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부당한 요구와 대가로 전수되는 무용, 책임과 반성 없이 침묵과 회피로 창작되는 공연에 진정한 의미에 자유가 있을 리 만무합니다. 비리가 횡행하고, 이에 가담하지 않은 자들마저 자기 검열로 침묵하는 상황인 거죠."

그는 블랙리스트 반대 1인시위와 촛불집회 등에 참여한 무용인을 중심으로 무용 생태계를 건강하게 바꾸려는 노력이 이뤄지는 데 주목했다. 바로 바람직한 예술생태계를 위한 생각과 실천을 공유하고자 지난 18일에 결성된 무용인희망연대 '오롯'이다.

"무용인희망연대 '오롯'은 박성혜 무용평론가를 비롯해 김윤진 안무가, 김서령 무용기획자를 중심으로 무용계 내부의 적폐를 청산하고자 만든 모임입니다. 오롯은 무용 생태계가 건강해지도록 잘못된 문제를 살펴보고 목소리를 낼 겁니다. 모자람이 없이 온전하다는 '오롯'의 뜻처럼 무용계가 발전하려면 더 많은 무용인의 연대가 필요합니다."

무용인희망연대 '오롯' 창립 토론회 '춤, 상생을 꿈꾸다' 2017.03.18. © News1
무용인희망연대 '오롯' 창립 토론회 '춤, 상생을 꿈꾸다' 2017.03.18. ©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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