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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60년]②떠나려는 터키, 잡을까 놓을까

터키, 흔들리는 EU 버리고 개헌에 사활
유럽-터키 갈등 '뉴노멀'…주고받는 관계로 변해야

(서울=뉴스1) 김윤정 기자 | 2017-03-25 08:05 송고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왼쪽)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 AFP=뉴스1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왼쪽)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 AFP=뉴스1

"십자가와 초승달의 전쟁이 시작됐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지난 16일 유럽사법재판소(ECJ)가 공공장소에서 스카프 착용을 금지하는 것은 합법이라고 판결한 것을 두고 이같이 말했다. 이슬람을 상징하는 초승달로 '세속주의 공화국' 대신 '이슬람 국가'로서의 터키를 여지없이 드러내며 유럽과 대립각을 세운 것이다.

터키는 한때 친(親) EU였다. 1987년에 EU 가입 의사를 밝혔고 유럽의 일원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구애했다. 유럽의 콧대는 높았다. EU 가입 관련 논의는 2005년이 돼서야 시작됐으며 인권 문제 등 EU가 요구하는 사항이 충족되지 않아 번번이 교착 상태에 빠졌다.

그러나 이젠 입장이 달라졌다. 브렉시트, 극우열풍 등으로 위기를 겪고 있는 유럽엔 터키의 힘이 아쉬운 상황이고, 터키엔 흔들리는 유럽이 그리 매력적이지 않다. 유럽은 떠나려는 터키를 잡아야 할까 보내야 할까. 환갑을 맞은 EU에 또 다른 큰 고민이 생겼다.

◇에르도안, '술탄의 나라' 초석될 개헌에 사활
터키에 초승달이 떠오르기 건 에르도안이 집권하고 나서다. 1차대전 후 터키 공화국을 세운 '터키의 아버지' 무스타파 케말 장군은 엄격한 세속주의를 내걸었다. 정교 분리, 히잡 착용 금지 등이 모두 케말의 유산이었다.

그러나 인구의 95%가 이슬람 신자인 상황에서 이같은 분위기는 반발을 낳았다. 그 틈새를 파고든 게 집권여당 정의개발당(AKP)과 에르도안 대통령이었다. 에르도안은 2003~2014년 총리를 지내고 2014년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케말 이후 가장 강력한 정치인으로 자리잡았다.

오는 4월 개헌 국민투표는 21세기 술탄을 꿈꾸는 에르도안의 첫 걸음이다. 현행 의원내각제에서 대통령중심제로 바꿔 철권통치의 강력한 기반을 만든다는 게 핵심이다. 개헌안이 통과되면 에르도안은 2029년까지 집권이 가능하다.

그러나 국민투표 통과 여부가 미지수다. 여론조사 결과 터키 내부에선 반대 여론이 다소 높은 상황. 안정적 과반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선 재외국민의 찬성표가 필요하다. 유럽 각지에서 터키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헌 집회를 열며 '민폐'를 끼치는 이유다.

11일(현지시간) 네덜란드의 터키 교민들이 로테르담의 터키 영사관 밖에서 격렬한 시위를 벌이고 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외교장관의 입국금지 조치를 '나치 잔재'라고 비난했다. © AFP=뉴스1
11일(현지시간) 네덜란드의 터키 교민들이 로테르담의 터키 영사관 밖에서 격렬한 시위를 벌이고 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외교장관의 입국금지 조치를 '나치 잔재'라고 비난했다. © AFP=뉴스1

◇흔들리는 EU, 계산 끝난 터키

"유럽과의 관계를 A부터 Z까지 모두 다 재검토하겠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23일 EU가입 문제까지 꺼내들었다. 개헌 국민투표 이후 난민 입국 문제를 포함해 EU와의 정치적, 행정적 관계를 전면 재검토하겠다는 것. EU를 버리고 개헌을 얻는 게 더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터키가 EU와 거리를 두려는 건 내부 결속을 위해서다. 터키의 '이슬람', 유럽의 '기독교'를 강조할수록 터키의 이슬람 교도들은 뭉칠 수밖에 없다. 터키 칼럼니스트 센지즈 칸다르는 "현재 터키의 외교 정책은 모두 내정 즉, 에르도안의 국민투표와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EU의 힘이 약해진 것도 한 몫 한다. 2010년 EU에 재정위기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후부터 터키의 EU 가입 열망은 서서히 식었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공공연하게 EU 가입 포기 국민투표를 언급한 것은 이같은 여론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EU 가입을 포기하면 인권, 언론 자유 등을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에르도안에 유리하다. 또 최근들어 러시아와의 관계가 급속도로 가까워지면서 러시아와 손을 잡으면 오히려 미국과 EU를 압박할 수 있다는 점도 계산에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개헌 국민투표를 한달여 앞둔 20일(현지시간) 터키 이스탄불 쉴레이마니예 모스크 앞에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의 포스터가 걸려 있다. © AFP=뉴스1
개헌 국민투표를 한달여 앞둔 20일(현지시간) 터키 이스탄불 쉴레이마니예 모스크 앞에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의 포스터가 걸려 있다. © AFP=뉴스1

◇유럽, 새로운 방법 모색해야

유럽에게 터키는 여러모로 가치가 높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원국이어서 러시아의 서진(西進)을 막을 수 있는 최후의 보루다. 유럽으로 쏟아지는 난민을 어느 정도 줄여주는 역할도 한다. 에르도안의 막말에도 유럽이 벙어리 냉가슴 앓듯 하는 이유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터키를 기다리겠다는 입장이다. 내정 문제 때문에 유럽에 막말을 날리는 것이지 본심은 다르다고 보는 것이다. 22일 취임한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도 에르도안을 비판하면서 "화해를 위한 메시지는 환영"이라고 여지를 뒀다. 

그러나 떠나려는 터키를 붙잡을 필요가 없다는 목소리가 힘을 받고 있다. 터키가 이슬람 국가로 방향을 튼 만큼 유럽과 공통점도 없을 뿐더러 믿을 만한 동맹국이 될 수 없다는 점이 근거다. 터키의 잇따른 막말에 터키에 대한 유럽내 여론도 악화된 상태다.

터키의 분위기가 이전과 달라진 게 분명한 만큼 이를 받아들이고 새롭게 관계를 정립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워싱턴포스트(WP)는 "더이상 터키는 유럽의 일원이 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며 "서로가 힘을 겨루고 뒤통수를 칠 수 있는 상황이 '뉴노멀'(새로운 일상)로 자리잡았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주고받는'(give-and-take)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브렉시트 이후 EU가 자신감을 잃었는데, 터키의 EU 가입에 연연하며 자유와 인권을 강조하고 내정간섭할 게 아니라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주고 받으면 된다는 것이다. 난민 협정을 맺는 대신 터키와의 교역량을 늘리는 등의 방식이 그 예다.

더 궁극적인 해결책은 터키의 민주주의를 바로세우는 것이라고 WP는 내다봤다. 터키가 계속 지금처럼 행동한다면 민족주의 바람이 유럽에까지 미쳐 극우 세력을 자극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아직 늦지 않았다. 유럽에겐 에르도안을 막을 수 있는 경제적 여유와 정치적 영향력이 충분하다"고 덧붙였다.


yjy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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