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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후] '화재' 알리다 목숨 잃었는데…집값 걱정하는 주민들

일부 아파트 주민들 "집값 떨어진다 사진 찍지 마라"
추모 감사 쪽지, 언론 보도 이후 모조리 떼

(서울=뉴스1) 정재민 기자 | 2017-03-25 07:00 송고
© News1 방은영 디자이너
© News1 방은영 디자이너
지난 18일 오전 9시4분, 서울 노원구의 한 아파트가 검은 연기에 휩싸였다. 이 아파트 기계실에서 불이 나 순식간에 인근 아파트 단지까지 연기가 번졌기 때문이다.

이 아파트 경비원 양명승씨(60)는 화재로 인한 정전으로 엘리베이터가 운행되지 않자 마음이 다급해졌다. 엘리베이터 속에는 주민 7명이 타고 있었다.
그는 주민들을 대피시켜야 한다는 생각에 15층짜리 아파트를 연신 오르내리며 "대피하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렇게 쉼 없이 계단을 오르내리던 양씨는 호흡곤란으로 9층에서 쓰러진 채 발견됐다. 평소 심장질환이 있던 양씨는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끝내 목숨을 잃었다.

이 사실을 안 아파트 주민들은 1층 경비실에 감사 쪽지를 붙이고 헌화를 했다.

'우리 동을 위해 항상 신경 써 주신 것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고 위급한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해 임무를 다 한 것도 지켜보았습니다. 부디 편하고 좋은 곳에 가시기를…', '아저씨는 우리 동의 영웅이세요, 몇 년이 지나도 아저씨를 꼭 기억할게요'
주민 김모씨(62)는 양씨에 대해 "항상 주민들을 배려해주셨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며 "안타까운 일을 당해 마음이 무겁다. 잊지 않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양씨가 숨진 지 이틀이 지난 20일 오전 아파트를 방문했을 때 주민들의 감사 쪽지와 꽃은 깨끗이 치워져 있었다.

이유가 궁금해 주민들을 찾았지만 일부 주민들은 "언론에 노출되면 아파트 집값이 떨어질 게 염려된다"며 인터뷰를 거절했다.

이 아파트를 찍기 위해 몰린 취재진을 보며 급기야 언성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관리소장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A씨는 "왜 아파트를 찍는 거냐"며 취재진에게 거세게 항의했다. A씨는 "이렇게 아파트가 나가면 아파트 집값이 떨어질 게 뻔한데 책임 질 거냐"고 소리쳤다.

인터뷰를 응해주는 주민에게도 "인터뷰를 하지 말라, 아파트 집값 떨어진다"고 만류했다.

다른 경비원들도 사전에 교육을 받은 것처럼 모두 '나는 잘 모른다'며 침묵으로 일관했다.

한 경비원은 "우리가 무슨 힘이 있다고…괜히 말을 잘못하다 피해가 돌아올 수도 있다"고 숨죽여 말했다.

관리소장 A씨는 결국 취재진에게 "어서 다 나가라"며 내몰았다. 주민들도 가세하기 시작했다.

"불이 났을 당시 사람마다 다 보는 눈이 다르고 기억이 다른 데 뭘 자꾸 물어보냐", "사람이 죽었으면 장례식장으로 가야지 여길 왜 오냐", "우리는 인터뷰해 줄 생각이 없다"

경비원 양명승씨가 왜 목숨을 잃었는지 일부 주민들은 잊은 듯 했다. 이 아파트 단지에서 근무하는 다른 경비원들의 뒷모습이 왠지 슬퍼 보였다.

20일 화재가 난 아파트에서는 배관 작업이 지속되고 있었다./뉴스1 © News1
20일 화재가 난 아파트에서는 배관 작업이 지속되고 있었다./뉴스1 © News1



ddakb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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