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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反블랙리스트' 광화문 캠핑촌장 송경동 "시인은 혁명가"

[블랙리스트 그 후를 묻다 ④] 시인 송경동

(서울=뉴스1) 권영미 기자 | 2017-03-26 12:42 송고 | 2017-03-26 14:20 최종수정
광화문 캠핑촌장 송경동 시인© News1 유승관 기자
광화문 캠핑촌장 송경동 시인© News1 유승관 기자


헌정사상 최초로 대통령 파면을 끌어낸 지난 촛불집회는 시민들이 광장에서 만들어낸 '예술품'이었다. 그런데 이 촛불집회의 거점이자 마중물이 있었다. 바로 텐트를 등에 지고 예술가, 노동자, 사회운동가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어 만든 '광화문 예술인 캠핑촌'이다.

캠핑촌은 끈질기게 광장을 지키며 다양한 문화행사와 공연, 토론과 전시를 만들어냈다. 캠핑촌 덕에 광화문은 '해방구'가 되어 시민들은 마음 놓고 광장을 즐겼고 '직접 민주주의'의 한 형태라고 할 촛불집회를 이어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캠핑촌을 이끈 것은 '행동하는 시인' 송경동 시인(50)이었다. 

최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만난 송경동 시인은 그간의 일을 '혁명'이라고 부르며 "사회적 정의와 진실이 주권자들의 직접 민주주의 행동으로 되찾아진 역사적 경험"이라며 "특히 그 과정에서 캠핑촌이 헌신적으로 광장을 열고 지킬 수 있어서 기뻤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송 시인은 기어들어 가고 기어 나와야 하는 자신의 작은 텐트를 보여주며 그간의 고생을 털어놓았다. '박근혜 탄핵'이라는 1차 목표를 완수했기에 홀가분한 표정을 지은 그는 "이제 시작일 뿐이고 노동자의 고통을 먹고 사는 1%도 안 되는 재벌 구조에 대한 해체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블랙리스트 그 후를 묻다] 시리즈 기사

도종환 "이제 블랙리스트는 부정돼야만 한다"
① 도종환 더불어민주당 의원

임옥상 "블랙리스트 이후? 논공행상을 경계해야"
② 민중미술가 임옥상 화백

안도현 시인 "박근혜 정권하에서 절필 잘했다. 왜냐면…"
③ 안도현 우석대 교수

"무용계, 블랙리스트뿐만 아니라 비리 등 적폐 청산해야"
⑤ 현대무용가 정영두 두댄스시어터 대표

"'광화문 캠핑촌' 기록물로 남겨 학문적 연구해야 한다"
⑥ 이동연 문화연대 집행위원장 

◇"예술가·노동자들이 텐트 치고 150일 가까이 버틴 이유…"

광화문 캠핑촌 예술인들은 언론과 국회가 '박근혜 정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폭로한 후인 지난해 11월4일 첫 노숙농성을 시작했다. ‘블랙리스트’의 존재가 드러난 이날 예술인 7749명은 ‘우리 모두가 블랙리스트 예술가다. 박근혜 퇴진 문화예술인 시국선언’을 발표하고 이 가운데 예술인 등 60여 명이 처음 텐트촌을 열었다.

이들은 촛불집회의 소식을 전하는 ‘광장신문’을 발행했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풍자하는 각종 그림과 조각, 설치물 등을 만들어 촛불 시민들을 위로했다. 하지만 전기도, 물도, 화장실도 없는 데다가 겨울 동장군이 유난히 매서웠던 지난 겨울을 버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송 시인은 "처음에는 텐트 하나 치고 잤다. 그러다 너무 추워 위에 방수천을 댔는데 자다 보면 공기가 안 통해 밤에 몇 번이나 호흡곤란을 겪었다"며 "건강이 안 좋아졌나 했는데 산소부족이었다"면서 웃었다.

텐트에는 아침이 되면 안팎의 온도 차 때문에 천장에서 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릴 지경이었다. 송경동 시인은 견디다 못해 입주 70일차에 나무로 틀을 세우고 스티로폼을 대 찬 공기를 한차례 차단했다. 상황이 조금 나아졌지만 그 후에도 아침마다 화장지로 텐트의 물기를 한참 닦아야 했다. 가장 난처했던 것은 새벽에 소변을 보고 싶어서 24시간 문을 연 커피숍을 찾아가야 했던 일이지만 그래도 광장은 그에게 해방감을 느끼게 했다.

"크고 작게 쳐진 텐트 하나하나가 '베이스 캠프'였어요. 문화연대, 민예총(한국 민족예술인 총연합), 어린이책 작가들, 사진가, 한국작가회의, 여성영화인, 전국 풍물인 등 블랙리스트에 올라있는 작가들이 모여들었죠."

이어 예술가뿐 아니라 노동자, 사회운동가들도 광장을 찾아왔다. 기륭전자, 콜텍, 쌍용차, 유성기업 등 노동자들, 현대자 비정규직 현대차 노동자 등 노조와 노동자도 입주했고 자주평화통일실천연대, 박근혜시민체포단 등 시민사회단체들도 진을 쳤다.

이들은 지난 20일 해단식을 했고 23일에는 대청소로 광장에서 완전히 철수했다. 캠핑촌 입주자들을 대표해 송경동 시인은 "촛불시위혁명이 자본의 시대를 넘어서 좀 더 평등하고 평화로운 사회로 이전해나가는 꿈을 꾸는 시작점이 되기 바란다"고 소회를 밝혔다.

광화문 캠핑촌장 송경동 시인의 텐트 © News1 유승관 기자
광화문 캠핑촌장 송경동 시인의 텐트 © News1 유승관 기자


광화문 캠핑촌장 송경동 시인의 텐트 안.© News1 유승관 기자
광화문 캠핑촌장 송경동 시인의 텐트 안.© News1 유승관 기자

◇고3 아들에게 "꼭 박근혜를 끌어내릴게. 이번만 봐줘…"

송경동 시인은 광화문을 지키는 넉달 보름 동안 집에는 일주일도 채 들어가지 못했다. 고3인 아들의 대입시험과 졸업식 등이 있어서였다. 가장 부모들이 곁에서 도와줘야 할 시기였지만 그는 아들에게 "정말 미안한데 박근혜 꼭 끌어내리고 올게. 이번만 봐줘" 하고 집을 나왔다.

캠핑촌이 차려진 초반에는 식사도 제대로 못했다. 사흘 내리 김치도 없이 컵라면만 먹기도 했다. "경찰이 텐트도 못 치게 하고 물품 반입도 막아 싸워야 했거든요. 캠핑촌 투쟁 방향을 세우기 위한 회의도 끝없이 이어져 사흘간 캠핑촌에서 나가지 못한 적이 있어요. 그때 내내 컵라면을 김치도 없이 먹었는데 김치가 그렇게 먹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급한 일이 마무리되고 나서 편의점에 가 캔맥주와 김치 볶은 거 하나, 그냥 꼬마 김치 하나를 사서 먹었어요. 정말 맛있었어요."

송 시인은 "캠핑촌에 들어온 후 늘 새벽 1~2시에 잠들었다"면서 "텐트촌은 광장에 있다 보니 거의 매일 촛불문화제를 했다. 주말에는 아쉬워서 집에 못 들어가는 시민들이 많아 가실 때까지 촌을 열고 있었다"면서 "체력이 고갈되어버렸는데 탄핵이 안 되었으면 어찌할 뻔 했나 싶다"고 했다. 

지난해 11월1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문화예술인들이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며 텐트시위를 하고 있다. 2016.11.11/뉴스1 © News1 김명섭 기자
지난해 11월1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문화예술인들이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며 텐트시위를 하고 있다. 2016.11.11/뉴스1 © News1 김명섭 기자


◇"나는 시를 쓰는 게 아니라 살고 있다"

송경동 시인은 1967년 전남 보성 벌교에서 태어나 지하철 공사장 노동자로 일하던 20대 후반 '구로노동자문학회'를 찾아가 문학 공부를 시작했다. 그 후 잡지 '내일을 여는 작가’와 ‘실천문학’에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꿀잠'(삶이보이는창)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창비)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창비) 등을 펴내며 문학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광화문 캠핑촌에 들어온 후로는 추모식에서 낭송한 추도시 세 편 밖에 시를 쓰지 못했다. 그런데도 시인은 "나는 시를 쓰는 게 아니라 살고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살아가는 게 시를 써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시를 쓰는 마음이 다른 게 아닙니다. 상품 생산자처럼 '내 이름으로 된 시를 몇 편 가져야지' 하는 게 아니라 '삶, 사회, 역사가 무엇인가'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한다' 이런 게 시를 쓰는 마음인 것 같아요. 시는 조화롭고 아름다운 것을 좋아해요. 그런 의미에서 아름다운 현장을 만들어내고 경험하는 시인의 삶을 살아서 행복합니다."

송경동 시인에 따르면 좋은 시인은 혁명가다. 시 자체가 이곳에 없는 어떤 것, 여기가 아닌 다른 곳을 꿈꾸는 것이기 때문이다.

시인은 "우리가 존경하는 위대한 시인들은 다 혁명가였다"면서 "혁명은 구시대와 관습 이런 것을 넘어서서 새로운 사회로 진입하는 것이며 시는 그런 고정화된 관습이나 권위로부터 탈출을 꿈꾸는 것, 아직 오지 않은 새로운 사람들의 공동체 삶을 꿈꾸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수많은 좋은 시인들은 자기가 시로 꿈꾸는 세상이나 공동체를 자기 몸으로 살아보기 위해 삶도 혁명적으로 살았다"고 설명했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예술가와 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 20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박근혜 퇴진 광화문캠핑촌 해단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들은 지난해 11월4일 '박근혜 퇴진'을 촉구하며 광화문광장 이순신 동상 앞에 텐트를 치고 농성에 들어갔다. 2017.3.20/뉴스1 © News1 구윤성 기자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예술가와 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 20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박근혜 퇴진 광화문캠핑촌 해단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들은 지난해 11월4일 '박근혜 퇴진'을 촉구하며 광화문광장 이순신 동상 앞에 텐트를 치고 농성에 들어갔다. 2017.3.20/뉴스1 © News1 구윤성 기자


◇"박근혜 탄핵 후 무엇이 바뀌었나 생각하면 쓸쓸하기도…"

쉼 없이 달려왔고 박근혜 탄핵이라는 결과를 얻었지만 시인은 "그 후 무엇이 바뀌었나를 생각하면 다소 쓸쓸하기도 하다"고 말했다. 또 "1차 과제는 달성한 것 같고 이것도 작지는 않은 일"이라면서도 "나처럼 쓸쓸하거나 역사적 시공간에서 소외된 듯한 느낌을 갖는 사람도, 화나는 이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제일 쓸쓸한 거는 '우리 스스로가 얼마나 변했나' 예요. 박근혜와 그 공범자들이 벌인 차별과 배제, 폭력이 더는 용인되지 않으려면 우리 안의 차별의식, 권력의식, 역사적 패배감 이런 것을 우리도 조금씩 버려가고 있어야 하는데 사람들은 쉽게, 많이 안변해요."

송 시인은 "사실 박 정권은 블랙리스트 아니어도 물러나게 했을 정권"이라며 "이미 '헬조선'이라는 말이 있다. 평범한 이들은 살아갈 수 없는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우리나라는 자살공화국이 된지 오래됐고 노동자들은 고통받고 있는데 이런 것들이 실제로 변했나"고 했다. 

"어떤 대리 정권이 세워진다고 해서 우리에게 이것을 그냥 주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그는 "즉자적인 분노를 넘어서서 구조 자체를 바꾸고 억눌려 있던 나 스스로가 해방되고 다시 태어나는 과정을 거쳐 갔으면 좋겠다. 아직 과제가 많이 남았다"고 강조했다.


ungaung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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