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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영정 품고 마라톤 뛴 20대…무슨 사연이길래

"힘들어 포기하고 싶었지만 영정 속 아버지 보며 완주"
동네 벗어난 적 없는 아버지 위해 850㎞ 전국 여행도

(서울=뉴스1) 박동해 기자 | 2017-03-19 18:21 송고 | 2017-03-19 21:36 최종수정
19일 오후 돌아가신 아버지의 영정사진과 함께 마라톤 대회를 마친 신경하씨(24)© News1
19일 오후 돌아가신 아버지의 영정사진과 함께 마라톤 대회를 마친 신경하씨(24)© News1

19일 오전 9시, 이날 열린 서울국제마라톤 20㎞ 지점에 긴장한 모습의 20대 청년 한명이 서 있었다. 여타의 참가자들과 다르게 이 청년 옆에는 휠체어 1대가 있었고 그 위에는 중년 남성의 영정 사진이 담긴 액자가 노란색 테이프로 고정돼 있었다.

화장실만 8번을 다녀올 정도로 긴장한 모습으로 앞선 릴레이 주자를 기다리고 있는 청년은 2달 전 병으로 숨을 거둔 아버지와 '병이 나으면 꼭 마라톤에 함께 나가자'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경기에 참가한 신경하씨(24)였다. 

"돌아가시기 한달 전부터 계속 병원 무균실에만 계셨는데 이렇게 함께 뛰게 돼서 아버지가 참 기뻐하실 것 같아요."
경하씨는 긴장된 모습에서도 휠체어 위에 놓인 아버지의 영정사진을 바라보며 평소 같은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경하씨는 처음에 42.195㎞ 마라톤 풀코스를 다 뛰려 했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입원하던 중 회복을 도우려고 직접 골수이식 수술을 받았던 경하씨의 몸은 정상이 아니었다. 휠체어를 밀며 허리를 숙인 채 달려야 하는 것도 고역이었다. 의사는 '죽을 수도 있다'고 말렸다. 그 때문에 주위에서는 모두 경하씨의 출전 자체를 막았다.

그러던 중 경하씨는 '릴레이' 마라톤을 뛰기로 결정했다. 군에서 인연을 맺은 친구가 앞서 20㎞를 대신해 뛰어주고 나머지 22.195㎞를 경하씨가 뛰는 것이었다. 마라톤 풀코스 절반이긴 했지만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이 역시 가족들의 반대에 부딪혔지만 경하씨는 포기할 수 없었다. 두달 전 세상을 떠난 아버지와의 마지막 약속을 저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휠체어를 끌고 출전한 전례가 없다'며 거부하던 대회 주최 측에서도 경하씨의 끈질긴 설득에 결국 두손을 들었다.

10시15분쯤 출발지점에서 달려온 친구가 20㎞ 지점에 도착했다. 목 빠지게 친구의 도착을 기다리던 경하씨는 친구와 포옹을 나눈 뒤 아버지와의 레이스를 시작했다. 친동생과 친구들의 환호를 받으며 출발하는 그의 티셔츠 뒤편에는 생전에 아버지의 모습이 담긴 가족사진이 인쇄돼 있었다.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 약속지키기 위해 나선 마라톤

경하씨의 아버지 신철근씨는 누구보다 성실하고 가족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남편이자 아버지였다. 건설현장에서 시공 일을 하던 철근씨는 매일 새벽 5시면 일터로 나섰다. 생계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휴일에도 쉬어 본 적이 없었다.

돈을 아끼려고 점심도 거르기 일쑤였다. 병으로 쓰러지기 며칠 전 안색이 안 좋다며 치료를 받아보라던 주위의 걱정에도 병원비 걱정에 병원 문턱을 넘지 않았던 철근씨였다. 철근씨의 노력 덕분에 가족들은 지난 2015년 장마철이면 물이 새던 지하방에서 번듯한 아파트로 이사도 할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 철근씨가 지난해 11월3일 출근을 준비하다 갑자기 쓰러졌다. '재생불량성 빈혈'이었다. 의사는 '골수이식을 하면 나을 수 있다'고 했고 확률이 제일 높았던 아들 경하씨가 직접 아버지에게 자신의 골수를 내어줬다.

수술은 잘 됐고 회복기에 접어들 무렵 경하씨는 아버지와 '병이 다 나으면 마라톤에 함께 나가자'고 약속했다. 그런데 퇴원을 1주일 앞둔 지난 1월12일 갑자기 '패혈증'이 찾아왔고 그날 철근씨는 아무런 유언도 남기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갑작스러운 가장의 죽음에 가족 중 누구도 철근씨의 임종을 지킬 수 없었다. 경하씨의 어머니가 본 남편의 마지막 모습은 몸에 마비가 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가족들을 바라보면서 서럽게 눈물을 흘리던 모습이었다. 

오로지 가족들만을 위해 살아온 철근씨였기 때문에 그를 잃은 가족들의 상실감은 말로 설명할 수 없을만큼 컸다. 심지어 경하씨의 어머니는 아버지가 치료 받았던 병원에서 삶을 저버리려고 시도하기도 했다.

아버지의 빈자리로 인해 가족들의 모든 것이 무너져 버릴 뻔 했지만 경하씨의 가족들은 다시 힘을 내기로 했다. 경하씨는 가족들에게 "아빠 몫까지 더 열심히 살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가족들과 다시 새로운 삶을 약속하면서 생각난 것이 아버지와의 마지막 약속이었다. 

◇"중간중간 포기하고 싶었지만 고개 숙이면 아버지 모습이 있어"

평소 달리기라면 자신 있었던 경하씨였지만 마지막 골인 지점을 앞두고 40㎞ 지점을 넘어서자 정말 힘들어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을 만큼 힘들다'는 생각만 머릿속에 맴돌았다고 했다.

하지만 힘들어 고개를 숙이면 휠체어 위에 있는 아버지의 영정 사진이 자신을 올려다봤다. '아버지라면 포기했을까'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어떤 일에서도 절대 포기를 모르는 아버지를 떠올렸다.

주위의 다른 참가자들의 응원도 경하씨에게 힘이 됐다. 힘들어질 때마다 주변 참가자들이 휠체어에 붙어있는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며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신철근 화이팅, 신경하 화이팅" 경하씨는 마지막 힘을 짜냈다.

결국 경하씨는 출발 시간으로부터 2시간30여분이 지난 낮 12시30분쯤 결승점을 통과했다. 허리와 다리가 끊어질 듯 아파왔다. 하지만 경하씨는 힘들다는 생각보다는 '감사함'과 '성취감'이 먼저 느껴진다고 말했다.

앞으로 경하씨는 아버지와의 여행을 더 할 예정이다. 경하씨는 오는 4월10일부터 다니던 직장을 잠시 쉬고 아버지의 영정사진을 휠체어에 얹고 여행에 나서기로 한 것이다. 용인을 시작해 공주, 옥천, 안양, 그리고 아버지의 고향인 강원 영월을 들려 다시 부천으로 돌아오는 850㎞의 여정이다. 

이 여행을 생각해 낸 건 "일 때문에 그동안 살아오던 부천 일대를 거의 벗어난 적 없는 아버지에게 세상을 구경시켜 주고 싶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경하씨는 이 일정이 아버지와의 즐거운 '데이트'가 될 것 같다고 환하게 웃어보였다.

경하씨와 함께 마라톤을 완주한 영정 사진 속 철근씨도 자랑스러운 눈빛으로 아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듯 했다.
신철근씨 생전 단란했던 가족사진© News1
신철근씨 생전 단란했던 가족사진© News1



potg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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