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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옥상 "블랙리스트 이후? 논공행상을 경계해야"

[블랙리스트 그 후를 묻다 ②] 민중미술가 임옥상 화백

(서울=뉴스1) 김아미 기자 | 2017-03-14 09:16 송고 | 2017-03-26 14:20 최종수정
민중미술가 임옥상 작가 인터뷰. 2017.1.19/뉴스1 © News1 유승관 기자
민중미술가 임옥상 작가 인터뷰. 2017.1.19/뉴스1 © News1 유승관 기자


대한민국 헌정 사상 처음으로 탄핵에 의한 대통령 파면 사태를 맞기까지 역사의 '급류'를 이끈 주요 계기 중 하나가 바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였다.
지난해 10월 도종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문화체육관광부 국정감사에서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폭로하면서 지원 배제를 목적으로 분류된 예술인 1만여 명의 명단이 대중에 공개됐다.

블랙리스트 예술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항거'했다. 1980년대 민중미술을 이끌었던 임옥상 화백도 그 중 한 사람이다.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촛불 집회 시민들과 함께 하는 각종 퍼포먼스를 펼치며 '블랙리스트 정권'의 퇴진을 외쳤다.

촛불 정국이 한창이던 지난 1월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임옥상 화백 작업실을 찾았다. '블랙리스트' 이후를 묻기 위함이었다. "명단에서 이름을 확인했느냐"는 질문에 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이미 아주 오래 전부터 '블랙리스트' 상위에 올라 있었다"며 "'최상위 블랙리스트 랭커(Ranker)' 자리를 뺏기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웃었다. 

☞[블랙리스트 그 후를 묻다] 시리즈 기사
도종환 "이제 블랙리스트는 부정돼야만 한다"
① 도종환 더불어민주당 의원

안도현 시인 "박근혜 정권하에서 절필 잘했다. 왜냐면…"
③ 안도현 우석대 교수

'反블랙리스트' 광화문 캠핑촌장 송경동 "시인은 혁명가"
④ 시인 송경동  

"무용계, 블랙리스트뿐만 아니라 비리 등 적폐 청산해야"
⑤ 현대무용가 정영두 두댄스시어터 대표

"'광화문 캠핑촌' 기록물로 남겨 학문적 연구해야 한다"
⑥ 이동연 문화연대 집행위원장 

민중미술가 임옥상 작가 인터뷰. 2017.1.19/뉴스1 © News1 유승관 기자
민중미술가 임옥상 작가 인터뷰. 2017.1.19/뉴스1 © News1 유승관 기자


◇"공무원들 그저 시켜서 한 일이라고?…변명은 일기장에"

그는 거리로 광장으로 쏟아져 나온 블랙리스트 예술인들이 '부역자 청산'을 외치며 저항하는 것을 '압력밥솥'에 비유했다. "압력이 컸기 때문에 분출도 클 수 밖에 없다"며 "임계점에 이르렀던 분노가 자연스럽게 터져나왔다"는 것이다.

"한국전쟁 이후 부역자들을 인민재판하듯 처단하려 했던 선례가 있었어요. 그런 역사가 되풀이 돼서는 안되겠죠. 다만 징치(懲治)는 어떠한 방식으로든 필요하다고 봐요. 물에 물 탄듯, 술에 술 탄 듯, 그렇게 살아남아 왔던 사람들을 이번에 또 놔두면 앞으로도 계속 그러한 행위를 반복할 테니까요."

블랙리스트 부역자가 될 수 밖에 없었던 공무원들도 억울한 측면이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억울할 짓을 왜 하느냐"고 반문했다. 상부의 지시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해명에 대해서도 "변명은 일기장에나 써야 할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공직자가 뭔가요. 국민을 위해 일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런데 권력의 하수인이 된 거예요. 책임의식도 없는 공무원들을 왜 국민 세금으로 월급을 줘야 합니까."

임 화백은 "블랙리스트는 실제로 몇 명이나 배제했느냐보다 그 자체로 심리적 압박을 주는 구조"라고 말했다. "몇 명이 배제당하는 '시범적 사례'가 제시되는 것만으로도 예술가들은 '자기검열'을 할 수 밖에 없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그는 그러한 효과를 노린 것이 "블랙리스트 정권의 '통치의 기술'이라고도 했다. 그러면서 "역사에 블랙리스트 같은 웃음거리가 남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예술가들이 더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 화백은 "예술가들이 왜 그렇게 피폐한 삶을 사는지를 봐야 한다"며 "제한된 예산을 특정 인물들이 독식해 왔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문화예술인 90% 이상이 연 100만원도 못 벌어요. 인간의 마지막 존엄성까지도 극한으로 내몰리는 삶을 살고 있죠. 사회적으로 그걸 들여다봐야 해요. 그런데 아무도 관심이 없죠."

그는 "작업실이 있고, 고정된 수입이 있는 건 아주 예외적인 일"이라며 "그런 예술가들을 정치적인 이유로 리스트를 만들어 배제까지 해 버리면 죽으라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특히 블랙리스트 같은 슬픈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후배 예술가들이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고도 조언했다.

"지난 10년 동안 예술가들은 '각개전투'를 벌였어요. 진영이 흩어져 힘을 발휘하지 못했죠. 자본주의와 권력이 이들을 성공적으로 개별화시킨 셈이에요. 이제 예술가들도 '커뮤니티 아트'를 만들어야 해요. 좁게는 내가 속한 공동체 속에서 예술인으로서 할 일을 스스로 찾아야 하고요. 예술도 삶 속으로 파고들어야 합니다."

민중미술가 임옥상 작가 인터뷰. 2017.1.19/뉴스1 © News1 유승관 기자
민중미술가 임옥상 작가 인터뷰. 2017.1.19/뉴스1 © News1 유승관 기자


◇"문화예술 정책 이젠 지원하되 간섭하지 말아야"

"정책을 연구하는 사람이 아니니 작가로서 말씀을 드린다면, 이제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 문화행정을 제대로 실현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원의 근거는 '공공성'에서 찾아야 하고요."

임옥상 화백은 "엄혹한 정부일수록 지원을 핑계로 문화예술을 권력 유지를 위한 도구로 부역하게 만든다"며 이같이 지적했다. 또 "공공성이 담보되는 일에 지원을 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드는 것이 시급하다"고도 했다.

"예술기금을 특정한 계층이나 부류, 특정 이데올로기를 강화하기 위해 쓸 것이 아니라,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 공공의 영역에 써야 합니다. 대다수의 국민 정서에 관련된 것 말이죠.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문화적 향유를 할 수 있는 '공공성' 높은 사업에 지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임 화백은 국립현대미술관 등 국·공립 미술관에 대한 기업의 지원 제도에 대해서도 일갈했다. 특히 그간 한진해운·대한항공이 지원하고 운영해왔던 '박스 프로젝트'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했다. 
    
"그 좋은 국·공립 미술관 공간을 지원을 핑계로 몇 달씩이나 독식하는건지 모르겠어요. 아무 간섭않고 지원만 한다고들 하는데, 개막식에 가면 꼭 기업 상무나 임원이 나와서 인사를 해요. 결국은 기업 홍보고 마케팅이고 권력 행사인거죠. 앞으로 이 부분에 대해서는 작가로서라도 꼭 제동을 걸어야겠다는 생각이에요."

그는 "대기업 몇몇이 미술관에 돈을 냈다고 독식하는 구조를 깨기 위해서라도 기업의 메세나 활동이 보편화해야 한다"며 "미술관에 대한 지원 역시 복수의 다양한 기업으로부터 각각 소액의 지원을 받아 기금을 조성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중미술가 임옥상 작가 인터뷰. 2017.1.19/뉴스1 © News1 유승관 기자
민중미술가 임옥상 작가 인터뷰. 2017.1.19/뉴스1 © News1 유승관 기자


◇"대통령 탄핵은 시작일 뿐…이제 논공행상을 경계할 때"
   
"저는 한번도 정치인의 캠프에 들어간 적도 없고, 지지를 표명한 적도 없어요. 지금도 여러 곳에서 제의가 들어오고 있지만 나서지 않고 있습니다."

임옥생 화백은 탄핵 직후 이어지는 대선 정국에서 유력 정당 후보 중심으로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이합집산'하는 것을 경계했다. 그는 "특정 인물들 중심의 폐해가 우려되는 상황에 나까지 일조할 수 없다"며 '제왕적인' 후보와 그를 둘러싼 세력들의 '권력화'를 경계했다.

"후보를 향해 강하게 대시하는 사람들이 후보를 둘러싸요. 일반인들은 그 후보 근처에도 못 가죠. 얼마나 천박한 일이에요. 찰떡같이 붙어서는…."

그는 "대선 후보를 옹립하는 초기 과정부터 함께 해야 '진골' 대접을 받지, 나중에 합류하면 '적자' 취급을 못 받는다"면서도 "그런 일에 끼고 싶지 않다"고도 했다. 특히 유력 대선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를 둘러싼 문화예술계 이른바 '친문 세력'들에 대한 우려를 내비쳤다.

"후보 그 자체로는 좋은 분이에요. 살아온 여정이 말해줘요. 그런데 어떻게 권력화되느냐. 그건 그 후보를 둘러싼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겁니다."

임 화백은 "후보를 위해서라도 옳은 말, 비판적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꼭 필요하다"고도 했다. "이해타산을 위해 달려드는 '하이에나' 같은 무리들, 협잡꾼들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치적 나눠갖기식 '논공행상'이 벌어지면 아무리 좋은 후보라도 다 희석되고 말아요. 다행히 촛불 민심이 어느 정도 '청소'를 해 주겠지만요. 제일 큰 문제는 '윤리의식'이라고 생각해요. 정치인은 물론, 기업가, 예술가 모두가 스스로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 합니다."


am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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