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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박사 서민교수의 북리뷰] 그 공처가가 사는 법

박균호의 '독서만담'을 읽고

(서울=뉴스1) 서민 | 2017-02-26 08:03 송고 | 2017-02-26 08:53 최종수정
편집자주 기생충 박사로 유명한 서민 단국대 교수가 북칼럼니스트 박균호씨의 책 '독서만담'을 읽은 감상문을 보내왔다. 박균호씨는 산골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근엄한 선생이지만 책에 대해서라면 만담꾼이 되어버린다. 서민 교수는 '세상에서 제일 무섭지만 가장 사랑하는 아내'와의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저자와의 '서글픈' 공감대를 글에 담았다.
서민 교수(북바이북 제공)© News1
서민 교수(북바이북 제공)© News1


'독서만담'(북바이북)은 저자 박균호가 책을 빙자해 자기 얘기를 하는 에세이집이다. 에세이 하면 저자가 하는 얘기를 들으며 삶에 대해 성찰하는 장르로 생각하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웃느라 성찰은 저 멀리 도망간다. 이 책의 부제는 ‘책에 미친 한 남자의 요절복통 일상이야기’인데, ‘요절복통’이란 단어가 전혀 아깝지 않다.
세상에서 누가 제일 무섭냐고 물으면 난 당연히 ‘아내’라고 말한다. 요 며칠 아내는 삐쳐 있다. 내가 누군가를 돕는 것에 불만을 가져서다. 그 누군가가 3년 후 출소할 재소자라는 게 아내의 불만인지라 우리는 그것 때문에 많이 싸운다. 이번엔 “마님한테 피해만 안 가면 되잖아요”라고 매몰찬 말을 한 게 심기를 건드린 모양이다. 한 번 이러면 꽤 오래 가는데, 아내가 이러니 내가 요즘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다. 이런 내가 저자에게 특히 공감한 것은 저자 또한 굉장한 공처가이기 때문이다. 매사 아내의 눈치를 보고, 좋아하는 담배도 아내 때문에 거의 피우지도 못한다. 반갑게도 저자도 나처럼 아내와 가끔씩 냉전기를 갖는다.

“차마 밝힐 수 없는 유치한 이유로 아내와 이틀째 말을 나누지 않고 있다.”(156쪽)
“아내와 말다툼을 제법 심하게 했다. 말을 안 나눈 지 사흘째 되는 날이다.”(219쪽)
“아내와 냉전 중인데 마침 주말이고 해서 늦잠을 잤다.”(245쪽)
“아내가 설거지를 하지 않았다고 타박을 한다. (…중략)필리버스터를 시작하기로 했다.”(263-264쪽)

공처가와 부부싸움은 어울리지 않지만, 공처가도 가끔은 꿈틀한다. 빌미를 제공해 야단맞는 거야 어쩔 수 없지만, 가끔은 잘못한 게 없는데도 야단을 맞을 때가 있으니까. 그럴 때면 왠지 무시당한다는 느낌이 든다. “내가 뭘 잘못했느냐?”고 대들어보지만, 아내는 절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억울함은 더 커지고, 이런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건 토라지는 것밖에 없다. 그런데 내가 토라졌다는 것을 어떻게 아내에게 알릴까? 집에서 밥을 안 먹는 것이다.

내 경우를 얘기하자면 어제 저녁은 혼자 나가서 김치찌개를 사 먹었고, 오늘 아침은 어젯밤 아내가 먹다 둔, 냄비에 눌어붙은 수제비를 몰래 먹는 것으로 해결했다. 저녁은 외부 강연을 다녀오는 길에, 시간이 좀 이른데도 휴게소에 억지로 들러 라면에 만두를 시켜 먹었다. 며칠 그랬더니 집밥이 그립지만 어쩌겠는가? 집에서 밥을 먹으면 지는 건데. 저자 역시 나와 비슷한 길을 간다. 근데 나보다 훨씬 처절해서, 웃다가도 마음 한구석이 아련해진다.
© News1 최진모 디자이너
© News1 최진모 디자이너

“아내와 냉전 중인데 마침 주말이고 해서 늦잠을 잤다. 오전 10시쯤 일어났더니 주방에서 모녀가 정답게 식사를 나누는 소리가 들려왔다. …호통을 치고 밥도 뺏어 먹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배고픔을 잊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잠이다. 치오르는 분노를 참고 다시 잠을 청했다. 의외로 다시 잠이 쏟아졌다.”(245쪽)

자고 일어나 보니 모녀는 이미 외출을 했다. 식탁에 먹을 게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걸 먹으면 지는 거니 그럴 수 없다. 티가 안 나는 음식을 찾다가 베란다에 방치 중인 비타500을 본다. 그는 두 병을 원샷한 뒤 이렇게 말한다.

“비타500이 이렇게 맛난 음료였다니 놀라울 뿐이다.”(247쪽)

직장에 가는 날이면 밖에서 해결할 수 있지만, 주말처럼 부부가 꼼짝없이 같이 있어야 할 때는 그게 어렵다. 나가서 먹는 걸 들키면 치사하게 혼자 먹는다는 괘씸죄가 추가되니까. 저자가 비타500을 먹은 건 그런 이유다. 심지어 다음과 같은 일도 감수해야 한다.

“배는 점점 고파와서 간밤에 먹다 남긴 빵부스러기를 주섬주섬 챙겨 먹었다.”(166쪽)

저자의 아내가 내 아내보다 관대한 점은 가끔이나마 외출을 한다는 점이다. 저자는 그때를 놓치지 않는다. 아내가 외출한 틈을 노려 몰래 외식을 하는 것이다. 주로 이용하는 곳은 김밥왕국, 그런데 중년 남성이 혼자 그런 곳에 가면 이상하게 볼까봐 옷도 매번 바꿔 입고 가기도 하고, 가끔은 다른 식당에 가기도 한다.

© News1 최진모 디자이너
© News1 최진모 디자이너

“도보 5분 거리의 중국집에 기운이 없어 차를 몰고 갔다. …볶음밥을 시켜 국물 한 방울, 단무지 한 조각까지 모두 먹어치운 다음…서재로 돌아왔다.”(247쪽)

여기서 중요한 건 배불리 먹어도 먹은 티를 내면 안 된다는 점이다. 그래야 아내가 식음을 전폐한 가장에게 잘못했다고 비니까. 그래서 저자는 아내가 돌아오기 전에 잽싸게 서재로 들어가 배고픈 척을 한다.

대부분은 저자가 패배하지만, 가끔 이길 때가 있다. 예를 들어 저자의 아내가 농성장소였던 서재 문을 열고 저녁 식사를 하라고 말한다든지, 저자가 좋아하는 소고기를 냄새를 풍기며 굽거나, 기타 저자가 좋아할 만한 음식을 장만함으로써 화해를 청할 때다. 그러다 보니 배가 부른데도 밥을 또 먹는 일도 생긴다. 그래도 티 안내고 끝까지 먹는 건 그래야 아내의 화해 요청을 받아들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왜 남편이 먼저 화해 요청을 안 하는 건가요?’ 토라진 원인을 제공한 쪽이 아내인데 화해 요청을 남편이 하는 것도 이상하지만, 방법이 없다는 것도 이유가 된다.

“내가 아내에게 참 부러운 것이 있는데 아내는 나와의 화해의 표시로 내밀 ‘요리’라는 카드가 있는 반면에 나는 그런 게 없다.”(163쪽)

동의한다. 내가 집 근처 요리학원에 주말마다 다녔던 것도 그런 이유였다. 식사를 차린 후 아내에게 화해를 청하는 남편, 멋지지 않은가? 실제로 그렇게 한 결과는 그리 좋지 않았다. 아내는 숟가락을 놓으며 말했다. “이걸 어떻게 먹냐?” 참고 먹어주면 언젠가는 나도 맛있는 식사를 차릴 수 있겠지만, 아내에겐 인내심이 없었던 것이다. 물론 그 식사는 나도 도저히 먹을 수 없어 버리긴 했지만 말이다. 요리 말고 다른 건 없을까?

“아내에게 해주는 마사지가 남편이 가진 최고의 무기가 아닐까?”(163쪽)

© News1 최진모 디자이너
© News1 최진모 디자이너

그러면서 저자는 김이경의 '셀프&커플 5분 마사지'란 책을 추천한다.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며 주문하려는 찰나, 우리 집에 얼마 전 리스로 들여온 마사지 의자가 있다는 게 생각났다. 저자 역시 추천만 했을 뿐 직접 마사지를 하진 않은 모양이니, 다음 책을 낼 때 마사지 말고 다른 방법이 뭐가 있는지 가르쳐주면 좋겠다. 물론 그 방법이 들어 있지 않더라도 난 저자의 다음 책을 읽어볼 것이다. 저자만큼 유쾌한 책을 쓰는 작가는 그리 많지 않으니 말이다. 

◇서민이 말하는 서민은…
학교 다닐 때 못생겼다는 소리를 들으며 자란 탓에 기생충을 만났을 때도 그리 놀라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오히려 기생충이 심성이 착할 뿐 아니라 영리하기까지 하다는 점에 매료돼 평생 기생충과 더불어 살아가기로 결심했지요. 지금은 단국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으며 글과 강연 그리고 방송을 통해 기생충을 사랑하자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서민의 기생충 콘서트' '서민의 기생충 열전' '소년소녀, 과학하라!' '서민적 글쓰기' 등이 있습니다.

© News1



ungaung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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