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본문 바로가기 회사정보 바로가기

'인쇄물'로 전락한 국정교과서…사실상 사망선고

44억 혈세 들여 고작 참고서, 자습서로 전락
"교육부가 학내 갈등 조장" 비판도

(서울=뉴스1) 권형진 기자, 김재현 기자 | 2017-02-20 16:15 송고
20일 오전 전국에서 유일하게 국정 역사교과서 연구학교를 신청한 경북 경산시 문명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국정 역사교과서 연구학교 철회를 요구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학교측은 예비 고3학년들에게 21일까지 자율학습에 참여하지 않아도 된다는 문자를 발송했다.2017.2.20/뉴스1 © News1 정지훈 기자
20일 오전 전국에서 유일하게 국정 역사교과서 연구학교를 신청한 경북 경산시 문명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국정 역사교과서 연구학교 철회를 요구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학교측은 예비 고3학년들에게 21일까지 자율학습에 참여하지 않아도 된다는 문자를 발송했다.2017.2.20/뉴스1 © News1 정지훈 기자
국정 역사교과서 연구학교가 경북 문명고 한 곳에 그치자 교육부가 보조교재나 교수·학습자료 등으로 무상 배포하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국정교과서는 사실상 '참고서'나 수업시간에 교사가 나눠주는 '프린트' 수준으로 전락했다. 이마저 교사 재량에 달려 사실상 국정교과서는 실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20일 교육부에 따르면, 다음달부터 한국사 시간에 국정교과서를 주교재로 사용하는 학교는 전국에서 경북 문명고가 유일하다. 문명고 재학생과 학부모, 졸업생이 강력 반발하고 있지만 학교 측은 강행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연구학교'는 올해부터 중·고교 역사(한국사) 교과를 국정교과서 하나로 가르치려던 정책이 실패하자 교육부가 커내든 카드였다. 내년 국·검정 혼용체제를 앞두고 국정교과서 보급률을 높이려는 전략이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대통령 탄핵 정국'으로 사실상 사망선고를 받은 국정교과서의 생명을 이어나가려는 뜻도 있었다.

연구학교가 문명고 한 곳으로 최종 결정됐다는 것은 이마저도 실패했다는 뜻이다. 485개 교육·시민단체로 구성된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는 "국민에게 탄핵 받은 국정교과서의 생명을 잠깐이라도 연장하려고 갖은 수를 짜냈지만 사망선고를 받았다"고 평가했다.

교육부가 이날 밝힌 것처럼 일선 학교에서 보조교재나 교수·학습 참고자료 등으로 활용한다 하더라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전망이다.
보조교재는 쉽게 말해 참고서, 자습서 같은 것을 말한다. 교수·학습 참고자료는 교사가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참고자료로 나눠주는 인쇄물이 대표적이다. 44억원의 예산을 쏟아부어 만든 국정교과서가 잘해야 참고서나 프린트물 수준의 지위와 역할을 갖게 됐다는 뜻인 셈이다.

교육부는 이밖에 학교 도서관에 비치하거나 학급에서 읽기 자료로 활용하는 방안, 역사동아리나 방과후학교 수업에서 활용하는 방안 등을 국정교과서 활용 방안으로 제시했다.

김태우 전국역사교사모임 회장은 "교과서로서의 지위와 역할은 사실상 무너졌기 때문에 그동안 정부가 국정교과서에 들인 시간과 노력은 결국 실패했다"며 "보조교재 배포는 44억원의 혈세만 낭비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더구나 실제 수업에서 보조교재나 교수·학습 참고자료로 활용하는 것은 교사 재량에 달렸다. 학교에서 국정교과서를 보조교재로 채택하고 학생들에게 배포할 순 있지만 수업에서 가르치고 안 가르치고는 전적으로 교사가 결정한다. 

김 회장은 "보조교재 사용은 교사의 선택권"이라며 "역사교사들은 국정교과서 내용 자체가 부실하다고 보기 때문에 현장에서 사용하기 어려울 것이다. 보조교재로 배포해도 학교현장에서 실질적 영향력은 없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사실상 사망선고를 받은 국정교과서의 생명을 이어가려다 보니 교육부가 학교 현장에서 갈등상황을 조장한다는 지적도 있다.

교육부 역사교육정상화추진단 관계자는 이날 "국정교과서 활용방법에 따라 학교운영위원회를 거쳐야 할 필요도 있다"며 "모든 학생에게 보조교재로 활용할 때는 학교운영위원회를 거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연구학교 신청 과정에서 보듯 국정교과서를 사용하려는 학교 측과 반대하는 교사·학생 사이에 갈등이 재연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초중등교육법에 따르면 방과후학교 운영계획도 학운위의 심의나 자문을 거쳐야 하는 사항 중 하나다.

김 회장은 "학교장과 이를 추종하는 세력이 국정교과서를 보조교재나 참고자료로 사용하라고 교사를 압박하게 되면 학내 갈등이 생길 수 있다"고 전망했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한 야당 보좌관은 "교육부에서 결론내려야 할 문제를 자꾸 학교현장에 내려보내 갈등 거리를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jinny@

이런 일&저런 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