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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무명 불펜투수 출신 고형욱, 넥센 단장 되기까지

중고교 코치, 감독, 스카우트 거쳐 단장 선임

(서울=뉴스1) 이재상 기자 | 2017-01-23 06:30 송고
넥센 히어로즈의 신임 고형욱 단장. © News1
넥센 히어로즈의 신임 고형욱 단장. © News1

"전 존재감이 없었죠."

1998년 7월21일 일간지 스포츠면에는 '무명의 고형욱, 데뷔 5년차 첫 선발 등판에 삼성 상대로 깜짝 승'이란 기사가 실렸다. 당시 27세였던 쌍방울 레이더스의 좌완 고형욱은 전날(20일) 군산에서 열린 삼성과의 경기에 선발 등판, 6이닝 3피안타 1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됐다.

1994년 데뷔 후 잠깐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고형욱은 이후 원포인트 불펜투수로 1999년까지 활약한 뒤 프로 무대를 떠났다.

데뷔 첫 승을 거둔 뒤 무려 18년 6개월(6759일)이 지난 2017년 1월16일 넥센 히어로즈는 깜짝 소식을 알렸다. 넥센 스카우트 파트를 담당했던 고형욱 스카우트 팀장을 신임 단장으로 선임한 것. 대부분 팬들의 반응은 "고형욱이 누구지?"가 주였다.

고형욱 넥센 단장(46)은 최근 '선수 출신 단장'으로 뉴스에 이름을 올렸다. 선수 시절 최고의 활약을 펼쳤던 박종훈 한화 단장, 송구홍 LG 단장 등과 커리어 자체는 비교하기 힘들지만 그는 당당하게 신흥 강호 넥센 히어로즈의 단장으로 뽑혔다.

20일 고척스카이돔에서 만난 고형욱 단장은 "선수 출신 단장이라는 말을 들으면 민망하다"고 웃은 뒤 "야구계 선배님들이 단장으로 계시기 때문에 많이 배워야 할 것 같다. 10개 구단 단장 중 가장 젊은데 그 장점을 살려 많이 뛰겠다"고 말했다.

▲ 원포인트 불펜 투수서 아마추어 지도자, 단장이 되기까지

고형욱 단장은 프로 시절을 돌아보며 "난 성공하지 못한 선수였다. 그렇기 때문에 은퇴 이후 더 많이 준비하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으로 따지면 원포인트 투수였다. 첫 승을 올렸던 삼성전도 소위 말하는 '긁히는 날'이었다. 선수로선 존재감이 거의 없었다"고 웃었다.

고 단장은 광주 진흥고, 인하대를 졸업하고 쌍방울에서 짧은 선수 생활을 마친 뒤 아마추어 무대에서 지도자로 변신했다. 모교였던 광주진흥중과 고교 야구부 코치를 맡아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고, 서울중앙고와 홍익대, 송원대 코치 등을 역임했다. 고형욱 단장은 "아마 초등학생 빼고는 모두 지도해봤던 것 같다. 당시의 경험이 훗날 스카우트가 된 뒤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2009년 히어로즈 야구단 스카우트로 변신한 그는 한현희(2012년), 조상우(2013년), 김하성(2014년) 등 현재 팀의 미래로 꼽히는 선수들을 데려오며 인정을 받았다. 구단 수뇌부로부터 신임을 받게 된 그는 마침내 지난 16일 넥센 히어로즈 단장에 선임됐다. 힘든 과정을 거쳐 바닥부터 천천히 올라와 야구인이라면 한번쯤은 꿈꾸는 자리까지 오르게 된 것이다.

고형욱 단장은 "현재에 최선을 다하면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고, 막연하게 상상했던 일들이 현실이 됐다"며 "가문의 영광이라고 해야 하나(웃음). 어머니께서 소식을 들으시고 우셨다"고 했다.
22일 오후 서울 양재동 더케이호텔에서 열린 '2017 KBO 신인 드래프트 행사'에서 고형욱 단장(왼쪽. 당시 스카우트팀장)이 넥센 히어로즈에 1차 지명된 이정후(휘문고)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16.8.22/뉴스1 © News1 최현규 기자
22일 오후 서울 양재동 더케이호텔에서 열린 '2017 KBO 신인 드래프트 행사'에서 고형욱 단장(왼쪽. 당시 스카우트팀장)이 넥센 히어로즈에 1차 지명된 이정후(휘문고)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16.8.22/뉴스1 © News1 최현규 기자

▲ '미다스의 손'…밴헤켄과 한현희, 조상우, 김하성까지

넥센이 고 단장을 선임한 이유는 구단의 육성시스템을 잘 이해하고 있고, 가능성 있는 유망주를 발굴해 팀의 주축 선수로 성장시켰다는 점 등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다.

그는 '미다스의 손'이란 지적에 손사래를 쳤다. 고 단장은 "그 동안 뽑았던 선수가 80~100명은 되는데 그 중 성공한 선수보다 실패한 선수가 훨씬 많았다. '왜 실패했을까'를 항상 생각한다. 단장이 됐지만 그 점은 계속 고민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 단장과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 현재 팀의 에이스 역할을 해준 앤디 밴헤켄(38·미국)이다. 밴헤켄은 2012시즌을 앞두고 고 단장이 김치현 국제전력팀장과 함께 외국으로 건너가 데려온 선수다.

고형욱 단장은 "밴헤켄은 개인적으로 처음 해외서 뽑았던 선수라 애착이 간다"면서 "처음 한국에 왔는데 시범경기 때 134㎞를 던지더라. 왜 저런 선수를 데려왔냐고 욕 정말 많이 먹었다(웃음). 분명 내 눈으로 144㎞를 뿌리는 것을 보고 데려왔는데 미치겠더라. 다행히 날이 따뜻해지면서 구속이 올라왔고 지금까지 우리 팀에서 뛰고 있다"고 설명했다.

밴헤켄은 2014년 20승(6패)을 올리며 골든글러브를 받았고, 지난해 일본 세이부로 갔다가 후반기에 다시 돌아와서도 7승3패의 성적을 냈다. 그는 5시즌 동안 넥센에서 65승(35패)을 올렸다.

고형욱 단장은 현재 재활 중인 한현희와 조상우에 대해서도 굳은 믿음을 보여줬다. 그는 "작년 1년을 쉬었지만 올해 건강하게 돌아와 줄 것으로 믿는다.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는 보고를 들었다"고 했다.

고 단장은 애정 가득한 표정으로 "(조)상우 녀석이 살을 좀 빼야 할 텐데, 워낙 먹성이 좋아서…"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둘 모두 1군 애리조나 캠프에서 빠지고 2군 대만캠프 등에 합류할 예정이다.
넥센 히어로즈의  고형욱 신임 단장. (넥센 히어로즈 제공). © News1

▲ "넥센 만의 시스템을 믿는다"

고형욱 단장은 '과연 올해 넥센이 성공할 수 있을까?'라는 주변의 평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넥센은 2017시즌을 앞두고 대표이사, 단장, 감독 등이 모두 바뀌었다.

고 단장은 "부담보다는 잘 될 것이라는 믿음이 더 크다"고 자신감을 나타낸 뒤 "우리 팀은 오랫동안 시스템이 잘 꾸려져 있다. 크게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조상우, 한현희, 김택형, 하영민 등 부상자들이 돌아온다면 더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고형욱 단장은 "평가는 지금 당장이 아니라 2~3년이 지나면 나올 것이다. 그때까지 기다려 줬으면 좋겠다. 우리 팀은 분명 좋은 선수와 코칭스태프, 감독이 있기 때문에 믿는다"고 했다.

고형욱 단장은 장정석 감독과 선수들 한명 한명의 이름을 거론하며 구체적인 설명을 덧붙였다. 고 단장은 "장 감독의 경우 누구보다 선수들의 면면을 잘 알고 있다. 마무리캠프 때 대화를 많이 했는데 멘탈도 강하고, 소통을 중시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리더십이 있기 때문에 잘해줄 것"이라고 했다.

이어 "강정호(피츠버그 파이어리츠)가 나간 뒤 모두 우리 팀의 전력 약화를 예상했지만 김하성이 잘 메워줬다. 우연이 아니라 그만큼 충분한 계획과 준비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여기에 박정음, 임병욱, 고종욱 등 포텐이 아직 터지지 않은 선수들도 계속 올라오는 단계다. 이번에 뽑은 이정후나 김혜성 등도 기대가 된다. 2017년보다 내년, 그 이후에 더 좋은 멤버가 구축될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팀의 비전과 계획을 확실하게 밝힌 고 단장은 자신감에 가득 찬 눈빛이었다.

그는 "유능한 단장은 선수와 감독이 만들어 준다고 굳게 믿고 있다"고 강조한 뒤 "목표가 하나 있다면 항상 우승권이 될 수 있는 전력을 꾸리는 것이다. 구단, 프런트, 선수, 더 나아가 팬들까지 합심할 수 있는 그런 팀, 꾸준하게 우승권 전력을 유지할 수 있는 팀이 될 수 있도록 돕겠다"고 말했다.


alexe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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