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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사육장서 구출된 날, 도사견 베어는 눈물을 흘렸다

[식용개, 지옥을 벗어나다] ② 작은 생명들에 비친 새 삶의 빛
HSI, 9일 오전 9마리 첫 구조…미국행 비행기 타기 위해 공항으로

(서울=뉴스1) 이병욱 기자, 천선휴 기자, 이찬우 기자 | 2017-01-13 09:00 송고 | 2017-01-13 14:47 최종수정
편집자주 강원 원주시 도심을 조금 벗어난 외곽의 한 야산엔 수백 마리의 식용개를 키우는 사육농장이 있다. 그 자리에서 11년간 개 사육장을 운영한 농장주는 하던 일을 접고 새 출발을 하겠다며 지난해 한 국제동물보호단체에 개들을 모두 구조해달라고 요청했다. <뉴스1>은 휴메인소사이어티인터내셔널(HSI)과 동행취재를 통해서 개 사육장의 적나라한 현실과 함께 보신탕집 식탁에 오를 뻔한 개 200여 마리를 구조하는 과정, 그리고 그 개들이 태평양을 건너 새 가족을 만나기까지의 이야기를 총 4회에 걸쳐 소개한다.
'식용견 사육장'에서 종견으로 이용되던 도사견 베어는 이동장 안에 들어간 후 눈물을 흘렸다. © News1
'식용견 사육장'에서 종견으로 이용되던 도사견 베어는 이동장 안에 들어간 후 눈물을 흘렸다. © News1

9일 오전 7시30분. 미국, 캐나다, 영국 등에서 한국으로 날아온 10여 명의 휴메인소사이어티인터내셔널(Humane Society International·HSI) 관계자들이 강원 원주시의 한 '식용개 사육장'에 모였다. 개 구조를 위해 이날 서울에서 이른 새벽에 출발한 그들은 사육장에 도착하자마자 아홉 마리가 늦지 않게 공항에 도착할 수 있도록 분주히 움직였다.
구조를 지휘하는 아담 파라스칸돌라 HSI 동물보호·재난 구조팀 이사는 이날 구조할 개들의 이름을 확인하며 직접 하나하나 건강상태를 확인했다. 아담 이사는 전날에도 개들의 상태를 보고 갔지만 밤새 컨디션이 안 좋아진 경우 비행기를 못 탈 수도 있기에 마지막 점검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오늘은 베어(Bear), 루(Roo), 루터(Luther), 크리스(Chris), 에코(Echo), 캣(Kat), 페이스(Faith), 레오(Leo), 줄리엣(Juliet)을 구조할 것"이라며 "에코의 경우 원래 다른 날에 구조하기로 돼 있었지만 어제부터 밥을 먹지 않아 먼저 보내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아담 파라스칸돌라 HSI 동물보호·재난 구조팀 이사와 김나라 HSI 캠페인 매니저가 줄리엣과 레오의 구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News1
아담 파라스칸돌라 HSI 동물보호·재난 구조팀 이사와 김나라 HSI 캠페인 매니저가 줄리엣과 레오의 구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News1

구조 명단에 이름을 올린 개 중 다섯 마리는 도사견, 네 마리는 진도 믹스견이었다. 베어와 루, 루터, 크리스, 에코는 몸집이 큰 도사견이라는 이유로 지난 2년간 이곳에서 종견으로 이용됐다.

캣과 페이스는 이제 태어난 지 4개월 된 진도 믹스견 형제다. 몸집이 크지 않아 한 이동장에 함께 실려 비행기에 탈 예정이다.

줄리엣과 레오는 모자지간이다. 두 살짜리 진도 믹스견 줄리엣이 몇 달 전 낳은 수컷이 바로 레오다. 어미와 새끼는 한날한시에 '지옥'을 벗어날 수 있었다.
보신탕집에 팔려갈 뻔한 개들에게 이름이 붙여진 건 몇 주 전이다. 아담 이사가 사육장을 둘러본 뒤 가장 먼저 개들에게 이름을 붙여줬다. 204마리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며 베어, 루, 루터 등의 이름을 지었다. 평생 이름 없이 살다 끔찍한 최후를 맞이해야 하는 반려견들에게 주는 첫 선물인 셈이다. 김나라 HSI 캠페인 매니저는 "아담은 항상 구조현장에 도착하면 먼저 개들에게 이름을 지어준다"면서 "희한하게도 그 많은 개들의 이름을 잊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사람을 무척이나 잘 따르는 에코는 구조팀이 사육장을 돌아다니는 동안 두 발로 서서 상황을 지켜봤다. © News1
사람을 무척이나 잘 따르는 에코는 구조팀이 사육장을 돌아다니는 동안 두 발로 서서 상황을 지켜봤다. © News1

이날 가장 먼저 사육장을 벗어난 개는 세 살짜리 도사견 베어였다. 베어는 배설물과 흙이 뒤엉킨 사육장 한복판에 두꺼운 쇠사슬 목줄에 묶여 홀로 생활했다. 농장주 A씨는 "산속이다 보니 고라니 같은 동물이 내려오곤 하는데 얘(베어)가 다른 애들보다 사납고 경계심이 심해 집을 지키라고 밖에 내놨다"고 했다.

A씨의 말대로 베어는 유난히 경계심이 심했다. 쇠 목줄이 끊어지진 않을까 우려될 정도로 사람들에게 무섭게 달려들었다. 사육장에서 나고 자라 주인 말고는 사람 구경을 해본 적이 없는 탓이었다. 하지만 그런 베어도 자신에게 밥을 주던 A씨 앞에선 순한 개가 됐다.  

204마리 중 가장 먼저 구조된 식용견 베어. 베어는 사람을 매우 경계했다. © News1
204마리 중 가장 먼저 구조된 식용견 베어. 베어는 사람을 매우 경계했다. © News1

HSI는 베어를 가장 먼저 구조해야 베어의 스트레스도 덜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렇게 베어는 지옥을 벗어나는 첫 주자가 됐다. 

베어의 구조는 아담 이사와 크리스 쉰들러 HSI 동물보호·재난 구조팀원이 맡았다. 베어를 구조하는 동안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해 취재진과 다른 HSI 직원의 사육장 출입이 제한됐다. 아담과 크리스는 성인 남성 두 명이 들어도 힘겨울 정도로 묵직한 대형 이동장을 들고 사육장 내부에 들어간 지 5분 만에 베어와 함께 나왔다. 베어는 이동장 안에서 미동도 없이 불안한 눈빛으로 바깥을 살폈다. 그리고 이내 눈물을 흘렸다.

위풍당당했던 베어는 이동장에 들어간 뒤 눈물을 흘렸다. © News1
위풍당당했던 베어는 이동장에 들어간 뒤 눈물을 흘렸다. © News1

베어가 이동장에 들어가 인천공항으로 향할 트럭에 태워진 후 나머지 여덟 마리는 일사천리로 구조됐다. 사람들이 지나다닐 때마다 두 다리로 서서 상황을 지켜보던 에코와 모자지간인 줄리엣과 레오, 아직 새끼 티를 벗지 않은 캣과 페이스까지. 오전 9시30분 아홉 마리의 식용견들은 이동장에 실린 채 인천공항으로 떠날 채비를 마쳤다. 

개들이 구조되는 과정을 옆에서 말없이 지켜보던 농장주는 착잡해 보였다. 그는 '개들이 이제 곧 미국으로 떠나는데 기분이 어떠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마치 딸을 시집보내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먹고 살 길이 없어 30년 넘게 이 일을 해왔지만 업자에게 넘길 때마다 늘 섭섭한 맘이 들었다"면서 "내가 직접 밥도 주고 돌보다 보니 정이 많이 든 게 사실"이라고 했다. 

식용견 204마리는 농장주의 결단으로 구조될 수 있었다. 그동안 '이 일을 그만해야겠다'고 늘 생각했다는 그는 지난해 7월 직접 HSI에 연락을 취해 "우리 개들을 구조해 달라"고 요청했다. 

HSI 측은 A씨를 돕기로 결정하고 204마리에게 새 삶을 찾아주기 위한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그리고 드디어 2017년 1월9일 식용견들에게 죽음 대신 생명을 선물하는 작업이 시작됐다.

 한 도사견이 구조되고 있는 다른 개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 News1 
 한 도사견이 구조되고 있는 다른 개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 News1 

아담 이사와 함께 식용견 아홉 마리를 직접 구조한 크리스는 이날을 소중한 생명들에게 기적을 선물한 날이라고 했다. 그는 "언제 팔려가 죽을지 모를 운명에 처해 있던 개들이 아니었나"라면서 "이들이 구조돼 다른 반려견들처럼 살아간다는 건 정말 놀라운 일"이라고 말했다.

트럭에 실린 아홉 마리는 샌프란시스코행 유나이티드항공 892편을 타기 위해 오전 10시30분 사육장을 떠났다. HSI는 남은 195마리를 3주에 걸쳐 구조할 예정이다. 



▶[식용개, 지옥을 벗어나다] ① 죽음의 그림자 드리운 개농장


ssunh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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