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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뇨 환자에 꿀 팔아라" 영업맨 뽑는 은행들

카카오·K뱅크 역습에 성과주의 강화
점점 커지는 실적 압박에 맘고생도 늘어

(서울=뉴스1) 정연주 기자 | 2017-01-11 14:34 송고

© News1 최진모 디자이너
© News1 최진모 디자이너

# KB국민은행 신입 행원 채용에 지원한 A씨는 아침 일찍 면접을 위해 천안연수원에 도착했다. 고대하던 세일즈 면접에서 A씨에게 주어진 미션은 '러시아로 유학 가는 사람에게 선풍기 팔기', 다른 조원 주제는 '카페인에 치명적인 사람에게 커피 팔기'였다.
#B씨는 우리은행 신입 행원 면접에서 금융상품을 팔았다. 미리 상품에 대한 정보를 외우고 고객 역할을 하는 면접관을 응대했다. 그때 울리는 전화벨. 받아 보니 다른 고객 역할을 맡은 면접관이 다짜고짜 급한데 계좌 비밀번호를 모르겠다며 소리를 지른다. 앞에 있는 고객도 빨리 처리해달라 성화다. B씨는 자기도 모르게 전화를 끊고 말았다.

B씨는 세일즈 압박 면접에 요령 있게 대처하지 못했고, 결국 우리은행 전형에서 탈락했다. 그는 경제 전공에 학점도 좋아 필기까지는 자신 있지만 면접에서 꼭 고배를 마신다. 요즘 은행원의 필수 자격이라는 영업력에서 뒤처진 탓이다.

은행원들이 점잖게 넥타이를 매고 숫자만 보는 시대는 이미 오래전에 끝났다. 은행권 채용 준비생들은 창업과 판매 관련 경험을 중점적으로 쌓는다. 저금리로 전통적인 은행업이 무너지면서 IT 등 다른 업계의 역습으로 은행의 생존이 위협받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 중구 우리은행 가계대출상담 창구.  2016.8.25/뉴스1 © News1 안은나 기자
서울 중구 우리은행 가계대출상담 창구.  2016.8.25/뉴스1 © News1 안은나 기자

위기는 연말마다 거세지는 희망퇴직 바람에서 짐작해볼 수 있다. 30~40대의 비교적 젊은 은행원들 사이에서도 퇴직 붐이 일어나는 씁쓸한 진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작년에만 3000여 명의 은행원이 업계를 떠났다. 
올해는 카카오뱅크와 K뱅크 등 신흥세력의 등장으로 고객 확보 경쟁은 더욱 치열해진다. 지난해 은행 실적을 끌어올렸던 대출도 금융당국의 규제로 예전만 못할 가능성이 높다. 내부적으로는 성과연봉제가 일괄 도입돼 직원 간 경쟁이 거세질 전망이다. 

채용 면접에서도 이런 은행의 고민이 잘 묻어났다. 각 은행은 필기 주제로 빅데이터 활용법, 가계부채 등을 제시했다. IBK기업은행의 하반기 행원 모집 필기 주제는 4차 산업혁명, 비트코인 등이었다. 기업은행 최종면접을 본 C씨는 "한 임원이 인공지능(AI)을 대체할 은행원의 역할이 무엇이냐고 질문했다"고 전했다.

업계 1위인 신한은행의 조용병 행장도 신년사에서 "기존 은행권과의 끊임없는 경쟁은 물론 K뱅크 등 새로운 경쟁자의 출현으로 시장의 판도가 크게 바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은행들은 작년 연말 인사에서 연공서열 관행을 내려놓고,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성과주의' 포부를 밝혔다. KEB하나은행은 하나멤버스 주역이자 IT 업무에서 성과를 낸 만 50세 전무를 부행장으로 발탁했다. 부행장 평균 나이보다 5살가량 적다. 신한은행은 상무에서 부행장으로 두 계단을 뛰어넘는 초고속 승진 인사를 단행했다.

이런 분위기는 기존 직원들에게도 그대로 전해진다. 시중은행 2년 차 직원은 "하루에 청약 목표치를 못 채우면 집에도 못 간다"며 "불가능한 실적 압박에 결국 내 주머니 지출도 많아져 월급이 많은 수준인지도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jy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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