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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한에 위태로운 이웃들①] 추위도 일거리도 '꽁꽁'…구로 인력시장

최순실 게이트 후 일거리 더 줄어
노동자들 "요즘 같이 힘든 건 처음"

(서울=뉴스1) 한재준 기자 | 2017-01-11 13:00 송고 | 2017-01-11 14:56 최종수정
11일 오전 4시40분쯤 남구로역 인력시장에 노동자들이 모여 있다. © News1
11일 오전 4시40분쯤 남구로역 인력시장에 노동자들이 모여 있다. © News1

"어휴 너무 춥네 추워"

고요했던 서울 남구로역 사거리에 두꺼운 옷차림을 한 사람들이 한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한파가 몰아친 11일 오전 3시30분, 하나 있는 편의점도 텅 비어있던 남구로역 사거리가 한 시간쯤 지나자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서울 최대 인력시장인 남구로역 사거리에는 일거리를 찾으려는 일용직 노동자들이 보리차를 마시며 삼삼오오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노동자들은 추운 날씨를 견디기 위해 방한 바지에 얼굴을 덮는 목도리까지 착용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일용직 노동자 정모씨(43)는 "일이 없다"고 투덜거리며 찬바람을 맞고 있었다. 정씨는 고등학교 졸업 후 인테리어 시공일을 20년간 해왔다.

그는 "날도 춥고 경제도 안 좋아지면서 일이 뜸하다"며 "요즘은 일주일에 2~3일 정도밖에 일을 못 한다"고 말했다.

정씨는 "최순실 게이트 이후로 일이 더 줄어들었다"며 "예전에는 끝물에라도 봉고차 타고 일을 갔는데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 할 때가 더 많다"고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추운 날씨에 남구로역 인력시장 분위기도 얼어붙고 있었다. 자신을 '잡부'라고 칭한 50대 남성은 "10년 동안 여기에서 일하며 먹고 살았는데 요즘같이 힘든 적은 처음이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동료에게 커피를 건네던 60대 노동자는 "일이 없어도 어떡하겠나? 나와서 돌아다녀 봐야지"라며 "건축현장 막일이라도 있으면 가야 한다"고 말했다.

노동자들 사이를 걸어 다니며 기능공을 물색하던 김원철 한성인력사무소 부장(53)은 "겨울이라 가뜩이나 일도 없는데 경제도 안 좋아지면서 일거리가 더 없다"며 "나와 있는 사람들이 많으니 우리는 인력을 구하기 쉽지만 일하는 사람들은 정말 힘들 것이다"고 걱정했다.

남구로역 인력시장은 교차로 신호등을 기준으로 남, 북으로 나뉜다. 신호등 남쪽 길목에는 한국인 기능공들이 서 있고 북쪽 길목은 대부분 중국인이나 조선족들이 진을 치고 있다.

남쪽 길목은 기능공들이 대부분이라 값싼 중국 인력에 밀리지 않지만 기술이 없는 노동자들에게 중국인의 존재는 치명적이다.

11일 오전 4시40분쯤 남구로역 인력시장에 중국인 노동자들이 일거리를 얻으려고 기다리고 있다. © News1
11일 오전 4시40분쯤 남구로역 인력시장에 중국인 노동자들이 일거리를 얻으려고 기다리고 있다. © News1

북쪽 길목은 중국 길거리라고 말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중국인들과 조선족 교포들로 가득 차 있었다. 한국말을 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20년간 막일을 해왔다는 이모씨(60)는 중국인들 사이에서 조용히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그의 입에서 처음 나온 말은 "먹고살기 힘들다"였다.

이씨는 "중국인들이 적은 일당으로 일감을 싹쓸이해 가니까 우리는 일거리가 줄어들었다"며 "중국인 대부분이 여행 비자로 와서 불법으로 일하는데 단속은 제대로 안 하는 것 같다"고 말을 흐렸다.

그는 "여기 있는 한국 사람들 대부분이 서로 얘기만 하다가 집에 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며 "일해도 중간에 차비다 소개비다 해서 떼가니까 수중에 떨어지는 돈은 얼마 안 된다"고 푸념했다.

오전 5시20분쯤 도로를 꽉 채웠던 인력 수송 차량이 사람들을 싣고 어디론가 하나 둘씩 떠나기 시작했다. 도로는 한산해졌지만 길가에는 여전히 일거리를 구하는 노동자들로 가득했다.

삼성인력사무소 직원이 나와 "마지막입니다 자재정리 일 나가실 분"이라고 말하자 커피를 마시던 노동자들은 "당연히 가야죠"라며 차에 올라탔다.

오전 6시가 되자 사람들로 가득했던 남구로역 교차로는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갔다. 중국인들이 모여 있던 교차로 북쪽 길가도 어느새 조용해졌다.

일거리를 얻지 못하고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김모씨(58)는 "알잖아요 시국이 이러니까 공사도 잘 안 하려고 합니다"라며 "조금 더 기다려보려고 했는데 춥기도 하고 오늘은 들어가야겠다"고 말했다.

많게는 1000명까지 사람들이 모여드는 남구로역 인력시장에서 현장으로 일하러 나가는 사람은 20% 내외다. 대부분 일거리를 얻지 못하고 또 내일을 기약해야 한다.

머리가 아플 정도로 매서운 바람이 부는 가운데 남구로역 인력시장도 꽁꽁 얼어붙고 있었다.


hanant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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