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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기획] "매일 구둣발 소리에 잠 깨요"…저소득청년 일상-上

"월 50만원으로 생활하며 일·학업 병행"
"라면 사먹을 돈도 없을땐 서글퍼서 울먹"

(서울=뉴스1) 전성무 기자, 전민 기자, 이원준 기자 | 2017-01-07 11:00 송고
편집자주 2017년 정유년(丁酉年) 새해가 밝았다. 하지만 청년들은 새해를 맞을 여유도, 엄두도 나지 않는다. 나이는 먹어가는 데 취업문은 점점 더 좁아지고 미래는 끝이 없는 터널처럼 앞이 보이지 않는다. 서울시에서는 각종 청년정책이 신상품 선보이듯 쏟아지는데 수혜자는 까다로운 조건을 통과한 극소수에 불과하다. <뉴스1>은 정유년 새해를 맞아 세상과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서울 청년들의 현실을 2회에 걸쳐 진단해 본다.
3일 오후 서울 노량진의 한 공무원 고시학원에서 취업준비생들이 공부를 하고 있다. 2017.1.3/뉴스1 © News1
3일 오후 서울 노량진의 한 공무원 고시학원에서 취업준비생들이 공부를 하고 있다. 2017.1.3/뉴스1 © News1

서울의 한 명문대학교에 재학 중인 박재훈씨(27·가명)의 하루 일과는 오전 학교 강의→오후 근로장학생 근무→로스쿨 준비의 무한 반복이다.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아 집으로부터 지원을 전혀 받을 수 없어 일과 학업을 병행하고 있다. 자취도 사치다. 박씨는 경제적 부담 때문에 현재 한 기업체에서 운영하는 학사에서 생활한다.

수익은 근로장학생과 서대문구청 멘토링 아르바이트로 번 월 45만~50만원이 전부다. 한 달 생활비와 취업준비자금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매달 통신비 5만원에 교통비 7만원 이상, 공과금 3만원 등 총 15만원 이상이 고정으로 빠져나간다. 로스쿨 준비를 위한 교재비와 수강료를 더하면 적자 나기 일쑤라 박씨는 요즘 고민이 깊다. 

박씨는 "고정지출로 거의 채워지다 보니 나를 위한 소비는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몸이 불편하신 어머니가 걱정되지만 집에 내려갈 차비도 없다"고 말했다 .

이성훈씨(26·가명)는 지방의 한 국립대학교를 졸업하고 노량진 고시촌에서 공무원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매일 오전 7시에 일어나 낮 12시까지 전날 학원에서 배운 것을 복습한다. 점심은 편의점, 고시식당에서 주로 해결한다.

이씨의 부모님은 충북 음성에서 70대 고령에도 불구하고 농사를 짓고 있다. 이씨는 매달 부모님 몫으로 나오는 기초생활수급비 80만원과 노령 연금을 정부에서 받고 있다. 부모님께 대부분을 드려 이씨는 월 50만원이 채 안 되는 돈으로 생활하고 있다. 이마저도 주거비 28만원과 식비, 학원비로 쓰면 매번 적자다. 이씨는 현재 부모님의 생활비 대출과 학자금 대출로 2000만원의 빚이 있다.

이씨는 "비록 노량진이 물가가 싼 편이지만 생활비가 부족해 삼각김밥이나 라면으로 점심을 해결하는 경우가 많은데 가끔 라면도 못 사먹을 때는 서글프고 울컥한다"며 "생활비가 턱없이 모자라 아르바이트를 구하고 싶지만 노량진 근처에서 자리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고 했다.

취업준비생인 대학생 정우성씨(27·가명)는 2014년 군대에서 전역한 뒤로 부모님 지원을 받지 못한 채 4년 째 홀로 서울에서 살고 있다. 정씨는 대학 1, 2학년 때까진 자취방 보증금과 월세를 지원받고 용돈만 아르바이트로 벌었지만, 부모님이 직장에서 퇴직하면서 가족들 모두 허리띠를 졸라매야 했다. 정씨는 학비와 월세까지 직접 자기 손으로 벌어 내고 있다. 계산해 봤더니 1년에 1000만원이 훌쩍 넘는다.

홀로서기를 위해선 월세, 식대처럼 매달 고정적으로 지출되는 비용부터 줄여야 했다. 현재 정씨는 동대문구 제기동의 한 원룸 건물 가장 꼭대기인 6층에서 3년째 거주 중이다. 보증금 300만원에 월세 35만원으로 다른 층 원룸 임차비보다 3분의 1 정도 저렴하다.

정씨는 현재 자신이 다니는 대학교 도서관에서 근로장학생으로 일하며 생활비와 월세를 벌고 있다. 정씨는 지난 학기 수업을 2개만 듣고 나머지 시간에는 도서관에서 책을 대출·반납하는 일을 했다. 일주일에 이틀은 대학생 과외수업도 하고 있다. 이렇게 일하며 정씨가 손에 쥐는 돈은 한 달에 120만원이다.

정씨는 "한 달 생활비로 최소한 30만원이 필요하고 여기에 주거비·통신비·교통비까지 빠져나가고 나면 저축하기 빠듯하다"며 "식비를 아끼기 위해 주로 학생식당에서 2500~3500원에 끼니를 때운다"고 전했다.

서울 동작구 노량진 컵밥거리에서 수험생들이 컵밥으로 끼니를 때우고 있다. /뉴스1 © News1
서울 동작구 노량진 컵밥거리에서 수험생들이 컵밥으로 끼니를 때우고 있다. /뉴스1 © News1

7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남기철씨(28·가명)는 성북구 월곡동에 허름한 다세대주택 반지하층에 살고 있다. 외관 벽돌은 색이 바래고 금이 길게 가 있는, 못해도 30년은 족히 된 건물이다. 남씨는 매일 아침 창문 밖에서 들려오는 구둣발 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깬다. 집안 벽지 곳곳엔 곰팡이 자국이 스며들어 있고 정체불명 벌레들은 밤낮 가릴 것 없이 방바닥을 기어 다닌다. 그래도 이곳은 남씨에겐 소중한 공간이다. 서울에서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25만원으로 구할 수 있는 원룸은 이곳 말곤 찾기 어렵다.

2년 전까지만 해도 남씨는 부모님으로부터 한 달에 80만원씩 주거비와 생활비를 지원받으며 공부하는 5급 행정고시생이었다. 돈 문제로 걱정 없이 오로지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됐다. 학교 도서관과 10분 거리 풀옵션 자취방에 살았다. 삶에 균열이 생긴 건 지난해 초 아버지 건강이 급격히 나빠지면서부터다. 지병인 폐렴이 악화하면서 수술을 받고 꽤 오랜 기간 입원했다.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아버지가 쓰러지자 남씨의 고시 생활까지 흔들리게 됐다.

남씨는 "지난해 10월 행정고시 2차 시험에 낙방한 뒤 더이상 부모님 지원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며 "우선 한달에 50만원 가까이 들어가는 원룸부터 정리하고 다른 곳으로 이사해야 했다"고 말했다.

행정고시를 포기한 남씨는 지금은 7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며 한 달 50만원으로 서울 생활을 이어나가는 중이다.

남씨는 "교통비를 조금이라도 아끼기 위해 30분 거리 도서관까지 매일 걸어 다닌다"면서 "고시 준비하느라고 체중이 많이 늘었는데, 걷다 보니 운동도 되고 살도 빠지니 오히려 괜찮다"고 말했다.

서울시복지재단이 서울에 거주하는 중위소득 80% 이하 만 18~34세 청년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6년 가계건전성 및 소비실태 분석'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응답자 10명 중 7명은 반지하층에 살고 식비가 소득의 5분의 1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저소득 청년 중 절반이 넘는 51%(190명)가 적자가구였고 소비와 소득이 동일한 가구는 25%(93명), 흑자가구는 24%(89명)에 불과했다.


lenn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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