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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풀 수 없는 비밀은 없다

[NYT터닝포인트] 프라이버시의 미래

(서울=뉴스1) 김혜지 기자 | 2017-01-01 14:41 송고
편집자주 '사실 앞에 겸손한 정통 민영 뉴스통신' 뉴스1이 뉴욕타임스와 함께 펴내는 '뉴욕타임스 터닝포인트 2017'이 발간됐다. '터닝포인트'는 세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각 분야별 전환점마다 콕 짚어 독자 스스로 미래를 판단하고 차분히 대비토록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지침서이다. 올해의 주제는 '혼돈과 격변의 시대'이며 부제는 '기로엔 선 자유민주주의와 세계화'이다.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이른바 브렉시트와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 그리고 국내적으로는 대통령 탄핵소추안 국회 통과 등으로 다사다난했던 2016년 한 해를 마무리하며 새해를 조망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한 시위대가 미국 연방수사국(FBI)의 애플 '아이폰' 잠금 해제에 항의하는 시위를 전개하면서 뉴욕 애플스토어 인근에서 화면에 '접근 금지'라고 적힌 아이폰을 들고 있다. © AFP=뉴스1
한 시위대가 미국 연방수사국(FBI)의 애플 '아이폰' 잠금 해제에 항의하는 시위를 전개하면서 뉴욕 애플스토어 인근에서 화면에 '접근 금지'라고 적힌 아이폰을 들고 있다. © AFP=뉴스1

터닝포인트: 미국 애플, 샌버나디노 테러에 연계된 ‘아이폰’의 잠금을 풀고자하는 미국 연방수사국(FBI)에 저항하다.


나는 프라이버시, 역사, 암호화 등의 개념에 한꺼번에 제대로 이해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이해해야 한다는 생각은 계속되고 있지만 말이다. 이러한 개념들은 각각 정보, 공적인 것, 사적인 것 등과 모두 연관돼 있다. 뿐만 아니라 사회, 특히 디지털화 사회의 여러 모습들을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이 3가지 개념들을 한꺼번에 설명하려 할 때면 경험상 이것들이 한데 어우러졌을 때 나타나는 문제점들을 거론할 수밖에 없다.

프라이버시의 개념을 생각하면 혼란스럽다. 프라이버시란 정도는 달라도 누구든 자신의 내밀한 정보가 타인에 공개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라는 나의 단순한 지식이 무색해지기 때문이다. 나 자신은 프라이버시를 원한다. 다른 사람들도 프라이버시를 원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프라이버시를 원하는 주체가 국가, 기업, 또는 법인들이 되면 내 머릿속은 또 뒤엉키고 만다.

국가나 기업이 그 자체로는 프라이버시를 원하면서도 정작 나에게는 프라이버시의 많은 부분을 포기하길 바라는 때가 많다는 점이 문제다.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국가가 시민들 몰래 비밀을 유지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비밀 국가’ 개념이 민주주의와 상충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국가가 지닌 비밀 때문에 시민과 유권자가 정부의 행동을 명확하게 들여다볼 수 없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최근 우리 사회의 수많은 음모론들이 탄생한다.

이들 음모론의 대부분은 우리가 보유한 프라이버시가 실제보다 훨씬 작다고 가정하는 내용이다. 비밀 국가 옹호자들은 종종 ‘만약 숨길 것이 하나도 없고 정부를 믿는다면 무엇이 두려운가?’라고 묻는다. 급조한 투명성을 칭송하며 우리를 안심시키려 하는 것이다. 물론 누구든 이 질문에 대해 ‘숨길 것이 하나도 없다면 비밀을 틀어쥔 국가의 전방위적인 감시 말고는 사실상 우리가 가진 것이 무엇인가?’라고 되물을 수는 있다.

이처럼 프라이버시와 관련한 가장 간단한 생각만 해도 혼란스럽다. 개인의 프라이버시와 국가의 프라이버시는 동등한가? 이들은 개념상 서로 충돌하는가? 국가는 시민들이 비밀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편이 더 이득인가? 우리는 시민들의 비밀을 탐하는 국가가 국민들을 고문하고 이들이 알고 있는 바를 누설하도록 부추긴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다. 우리는 이를 역사적으로 체득하고 있으며 아직까지도 이것이 진실이라고 믿고 있다. 비록 우리가 이에 실제 영향을 받았는지 여부는 우리 각자가 우연히 태어나고 거주하게 된 장소가 어디냐에 따라 크게 좌우되지만 말이다.

사실 나는 프라이버시보다는 역사와 관련된 생각이 더 많아 머리가 더 복잡하다. 나는 역사를 형성하는 능력, 즉 비상한 인공적 기억의 묶음을 통해 세대를 초월할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이 인류의 가장 주목할 만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러한 능력을 지닌 다른 생명체들을 조우해 본 적이 없다. 인류가 오랜 역사 속에서 그러한 사실을 망각한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렇다면 미국 연방수사국(FBI)과 다른 기관들은 테러범의 ‘아이폰’ 잠금을 풀 수 있게 허용돼야 하는가?

만약 이러한 권한이 주어진다면 FBI는 누구의 아이폰이든 열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FBI가 감히 해제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문서를 암호화할 수 있어야 할까? 하지만 그런 일이 나에게 허용된다면 테러범들에게도 마땅히 허용돼야 할 것이다. (이는 내가 아주 빈번하게 서용하는 논리이기는 하지만, 테러를 이러한 논쟁의 궁극적인 지렛대로 용납한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단기적인 관점인 한 사람의 일생에서 본다면 많은 사람들은 프라이버시를 옹호하고 반대로 투명한 공개에는 반대할 것이다. 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인 역사에서 본다면 누구라도 비밀이 말소된 투명성을 원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가 사학자로서 과거의 비밀, 요컨대 망자의 비밀을 마주하게 되면 지극히 거침이 없어지는 것이다. 그때 우리는 그들의 시대에서는 알기 불가능했을 은밀한 비밀도 알게 된다. 빙하에 묻힌 원시인이나 역청에 둘둘 말린 고대의 이집트 여사제를 상상해보면 된다. 원시인의 프라이버시를 지켜주거나 이집트 여사제의 문신을 복원하기 위해 필요한 역청 아래의 스캔을 허용하지 않음으로써 그들의 비밀을 외면하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암호화’란 개념이 등장해 헝클어진 내 혼란을 매듭짓는다. 물론 내게 암호화란 개념을 이해할 수 있는 수학적 사고가 부족하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하지만 오늘날의 가장 정교한 암호화 기술조차 미래에는 간단하게 무력해지기 마련일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에서 가장 철저하게 베일에 싸인 개인이나 국가기관의 비밀도 언젠가는 훤히 밝혀질 것으로 믿는다. 우리의 후손들이 무엇을 보게 될 것인지는 상관없다.

이 같은 생각을 가진 채 우리를 되돌아보면, 선조들은 아마도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품고 있는 것과는 다른 인식으로 우리를 알게 될 것이다. 마치 우리가 빅토리아 시대의 선조들을 당시 그들의 자신에 대한 인식과는 다르게 보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후손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평가하면서 우리들이 느끼는 것과 다르게 현재를 재해석할 것이다. 후손들이 바라보는 과거란 바로 그런 것이다. 이때 후손들은 미래에서나 접근 가능한 정보, 더욱 풍부한 투명성, 더 적은 비밀을 기반으로 우리에 대한 평가를 내린다.

만약 시간을 거듭해가며 투명해지고 있는 우리의 역사가 인류의 특성을 규정하는 것이라면 인류는 완벽하게 지켜지는 비밀들 때문에 더욱 빈곤해지는 셈이다.

영구적으로 풀리지 않는 암호란 이 같은 사실에 반한다.

그래도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나만의 특별한 비밀을 가지고 싶어 한다. 이 같은 갈망은 기억을 담을 수 있는 안전한 성채를 짓고 싶어 하는 욕구를 가진 한 종(種)으로서, 우리 안에 어쩔 수 없이 내재한 일부일 것이다.

(윌리엄 깁슨은 소설가이자 수필가다. 그의 저서는 <더 퍼리퍼럴>과 <0의 역사>, <뉴로맨서> 등이 있다.)

소설가 윌리엄 깁슨. © News1
소설가 윌리엄 깁슨. © News1



icef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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