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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눈] 최순실 청문회… 이 보다 지독한 광경은 없었다

(서울=뉴스1) 윤진희 기자 | 2016-12-27 15:56 송고 | 2016-12-27 16:02 최종수정
© News1
2016년 12월 국회는 마침내 국회특별조사 청문회를 열수 있었다. 그리고 대통령 탄핵소추와 맞물려 시작된 청문회에 대한 국민적 기대는 적지 않았다.
민주주의가 이론대로 작동하지 않는 현실 속에서 국민들은 국회의 청문회라도 작동하기를 바라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었다. 그리고 중계방송을 지켜봤지만 제대로 되고 있다는 생각을 한 사람은 없었다.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세상을 쥐락펴락했던 김기춘씨는 끝끝내 모르쇠로 일관했다. 민정수석으로 검찰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범죄 의혹을 받고 있는 우병우씨는 국민들의 비난에 아랑곳 않는 모습으로 다시 한 번 국민들을 분노케 했다. 최순실은 국민 앞에 모습을 드러내 이실직고 하는 것을 끝끝내 거부했다. 이들의 패턴은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 이들이 유사하거나 혹은 동일하기 때문에 이런 패턴이 나온 것이 아니다.

국정농단의 주역들이 이렇게나 법 앞에 당당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법 자체가 지니고 있는 흠결 때문이다. 이들은 법이 무력화되는 지점을 매우 잘 알고 있는 자들이다.

김씨와 우씨는 청문회에 출석해 맥 빠진 목소리로 대답하며 청문위원들의 얼굴들만 흘끗거렸다. 국회의 청문회가 이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신선한 출구가 될 것이라는 기대는 애초부터 하지 않았다. 하지만 청문회를 지켜보는 국민들은 청문위원들의 통찰력은 없고 상상력만 난무한 객쩍은 질문에 말을 잃었다.
국민을 억압하는 민주주의를 바로 잡는 청문회가 되기를 바랐더니 국조특위 위원이 억압의 민주주의에 동참하고 있었다는 의혹이 떠올랐다. 국민이 대표로 뽑은 국회의원들이 흉한 얼굴로 변해버린 이 땅의 민주주의를 올바른 방향으로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사실만 자명해졌다.

청문회 파행의 근본 원인을 되짚어 보면 이는 근본적으로 국회의원들의 역량 부족에서 기인한 현상이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국회의원들이 국정조사법을 만들던 그 순간부터 스텝이 꼬이기 시작해 결국 김기춘에게 우병우에게 최순실에게 농락당하는 상황까지 떠밀려 온 셈이다.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들이 행정부의 잘못이 있으면 국민 앞에 소상히 밝혀 책임을 묻겠다는 취지로 만든 ‘국정감사·조사법(이하 국감국조법)’은 최순실을 비롯한 국정농단의 주역들을 지켜주는 단단한 보호막으로 작동했다.

1988년에 만들어진 국감국조법은 “국민대표기관인 국회가 국정감사 및 조사의 기능을 효율적으로 수행하도록 하기 위해 절차 기타 필요한 사항을 규정”한 법률이다. 이후 3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총 12차례 개정됐지만 국가를 혼란 속에 빠트린 ‘최순실’을 국민 앞에 세우기에는 힘에 부쳤다.

변호인 외의 그 누구와도 접견이 금지된 최순실은 독방에 앉아 국조국감법이 ‘강제구인’ 조항을 두지 않았다는 사실을 7시 뉴스를 통해 알게 된 후 마음이 가라앉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두려움도 걱정도 사라진 채 국감국조법이 어쩐지 든든하다는 느낌을 즐겼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법이 모든 상황을 예정할 수는 없다. 그런 법은 존재할 수도 없고 존재해서도 안된다. 하지만 적어도 무언가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절차’를 정하는 법을 만들 때에는 현실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가능한 많은 상황들을 상정해 보는 노력을 기울여야 마땅하다.

국회의 국정조사에 증인이 출석을 거부하는 것을 예정하는 것을 법을 만든 국회의원들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단 말인가. 물론 청문회가 얻은 것 없이 막을 내린 이유가 법의 잘못때문인지 사람의 잘못 때문인지를 가려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추악한 얼굴로 변해버린 ‘법치주의’를 올바른 방향으로 되돌릴 절박한 필요성에 대한 인식만은 꼭 필요한 시점이다.

법의 흠결이 발견됐다면 발 빠르게 법을 고쳐 나가고, 예상치 못했던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면 미래를 대비하는 대비책을 마련하는 노력을 기울여야한다. 강제구인이 안돼 청문회의 원활한 진행이 안된다는 걸 깨닫는 순간 ‘국회’ 본연의 임무를 다하기 위해 ‘원포인트’ 개정을 하든 급한대로 특별법이라도 만들어 썼어야 한다.

실체진실을 밝히고 이를 국민 앞에 소상히 밝히는 노력에 ‘정파’가 걸림돌이 된다면 그들은 이미 국민의 대표로서의 자격이 없다.

참담한 한국사회를 잘 살아내고 있는 국민들이다. 국민들은 시쳇말로 볼꼴 못볼꼴 다 보고 혀를 끌끌 차고 있다. 요즘은 앞으로의 권력의 향배에 눈이 먼 소수의 정치인들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즐거운 시대가 아니다.

국회가 입법의 흠결을 바로 잡으려는 노력을 제 때 하지 않고 권력만 좇으면 우리 국민들은 앞으로도 여러 번 수 차례 이 지독한 광경을 다시 마주해야만 한다.

정직한 사람들이 살맛나는 새로운 사회를 위해서라도 지금 국회에 자리하고 있는 존경하는 의원들께서 본연의 책무인 ‘입법’에 만전을 기하시기를 바란다. [법조전문기자·법학박사]


jurist@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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