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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정 놓아 '성추행' 외교관 잡은 칠레…국내서도 가능할까

칠레 주재 외교관, 함정 취재에 미성년 성추행 '들통'
함정수사 불법인 한국서 재판…증거 인정 못 받을 수도

(서울=뉴스1) 양은하 기자 | 2016-12-24 07:00 송고
© News1 이은주 디자이너
© News1 이은주 디자이너

칠레 주재 한국 외교관이 현지 미성년자를 성추행해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다. 칠레 지상파의 '함정 취재'로 외교관의 추행이 낱낱이 방영되면서 분노는 한층 더 크다. 
하지만 한국이었다면 수사기관이라 해도 이같은 방식으로 가해자의 범행을 들추지는 못했을 것이다. 미성년자 성추행 관련 제보를 받았더라도 신분을 숨기거나 위장한 여성을 잠재적 성추행범에 접근시켜 범행을 유도하는 '함정수사'는 불법이기 때문이다. 

◇남용 우려에 함정수사 불법…마약범죄 제한적 허용 
 
이번 사건은 지난 18일(현지시간) 칠레 지상파 '카날13'의 한 시사고발 프로그램을 통해 알려졌다. 지난 9월 외교관 A씨가 14살 안팎의 현지 여학생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다 성추행했다는 제보를 받은 '카날13'은 미성년자로 분장한 20세 배우를 의도적으로 A씨에게 접근시켜 범행 장면을 포착했다. 한마디로 함정을 판 것이다.

칠레, 미국 등 일부 국가에선 수사기관도 이같은 함정수사기법을 활용해 범죄자를 잡는다. 주로 범행이 은밀하고 조직적으로 행해져 일반적인 수사 방법으로는 범죄자를 적발하기 힘든 마약범죄나 조직범죄 수사에 활용된다. 은밀하게 이뤄진다는 점에서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자 적발에도 쓰인다. 

함정수사에도 제한은 있다. 범행 의도가 없는 사람에게 수사기관이 계략을 써서 범행을 유도, 범죄자를 검거하는 함정수사(범의 유발형)는 대체로 불법이다. 범행 의사를 가진 이에게 범행 기회를 주며 접근하는 '기회제공형' 함정수사는 허용된다. 예를 들어 마약 판매상에게 손님인 척 가장한 수사는 합법이지만 마약을 구매할 생각이 없는 이를 유도해 사게 하는 것은 불법이다.
한국에서 함정수사는 기본적으로 불법이다. 현행법상 함정수사를 허용하는 법률 규정이 없다. 다만 법원에서 기회제공형에 한해 제한적으로 함정수사를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허용범위가 좁고 기준이 엄격해 마약범죄 수사 위주로 활용되고 있다.

이원상 조선대학교 법학과 교수는 "이미 발생한 범죄를 수사하면서 국민을 지키는 것이 수사기관의 역할인데 함정수사는 국민을 범죄자로 만든다"며 "신뢰원칙에 어긋나기도 하고 수사기관의 권한 남용 우려도 있어 함정수사를 제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시사고발 프로그램인 '엔 수 프로피아 트람파''(En Su Propia Trampa, 자신의 덫에 빠지다) 홈페이지 캡처.© News1
시사고발 프로그램인 '엔 수 프로피아 트람파''(En Su Propia Trampa, 자신의 덫에 빠지다) 홈페이지 캡처.© News1

◇아동·청소년 성매매 '함정수사'는 강화 추세인데…

사실 한국도 함정수사를 확대하자는 일부 요구가 계속 있었다. 특히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의 경우 그 목소리가 높다. 최근에는 랜덤 채팅앱을 통해 십대 청소년들이 성매매에 연루되거나 범죄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아 사이버 함정수사를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미국의 경우 사이버상에서 행해지는 아동·청소년 성매매나 아동 포르노 매매를 적발하는 데 함정수사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경찰이 '조건 만남'이 이뤄지는 온라인 채팅 사이트에 미성년자인 척 잠입해 적발이 가능한 단계까지 잠재적 범죄자를 유도해 체포하기도 한다.

한국은 아동·청소년 성매매의 61%가 인터넷 채팅을 통해 '조건 만남'의 형태로 이뤄진다는 통계가 있어도 단속에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수사기관이 함정수사 권한을 갖고 있지도 않지만, 아동을 유인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규정도 없다"며 "인터넷에서 아동· 청소년 성매매가 만연한 이유"라고 꼬집었다.

실제 범행이 발생하기 전 범죄자를 적발하는 온라인 함정수사 특성상 아동·청소년의 성을 사는 행위나 팔도록 권유하는 행위가 미수에 그쳐도 미수범을 처벌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함정수사 허용범위가 좁은 한국 법정에 서는 성추행 외교관은 어떤 처벌을 받게 될까. 전문가들은 적어도 방송국의 함정취재로 드러난 범행에 대해선 여러 문제 제기가 나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외교관이 얼굴까지 공개한 방송국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할 수도 있고, 방송자료가 법정에서 증거능력을 인정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아동 성범죄, 아동 포르노, 인신매매 등 유엔에서 반인륜적 범죄로 규정한 범죄에 한해서는 세계적으로 함정수사를 인정하는 추세"라며 "우리도 의견표명과 대처능력이 성인에 비해 떨어지고, 은밀하게 범죄가 행해지는 미성년자 대상 범죄에 한해서만이라도 함정수사를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letit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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