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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식의 시선] 원로도 많고 리더도 많은데 리더십은 왜 없나

(서울=뉴스1) | 2016-12-01 11:08 송고 | 2016-12-01 18:15 최종수정
© News1
진퇴 문제를 국회 결정에 맡기겠다고 밝힌 박근혜 대통령의 3차 담화가 야당 주장대로 ‘국회의 탄핵을 모면하기 위한 꼼수나 술책’이었다면 그 의도는 하루만에 무산됐다. 탄핵소추안 의결의 키를 쥔 새누리당 비박계가 구체적 퇴진 일정을 비워둔 채 국회로 공을 넘긴 박 대통령의 진정성을 의심하며 탄핵대오 이탈설을 강력부인한 데다, 야권 역시 복선과 함정을 깐 제안이라면 공을 되차버린 까닭이다.      
비박계가 몇가지 여지는 남겼다. 첫째는 박 대통령이 ‘내년 4월 말’ 등으로 퇴진 시한을 못박고 퇴진 때까지 국회추천 총리에 전권을 이양하겠다는 뜻을 명확히 해달라는 것이고 둘째는 대통령의 입장(대통령직 임기단축)과 기준(안정된 정권 이양)에 따라 여야가 정기국회 폐회일(9일) 직전까지 협상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 담화의 어휘나 맥락을 뜯어볼 때 비박계 요청이 수용될 가능성은 거의 없고, 개헌과 대선 셈법을 피할 수 없는 여야의 복잡한 협상에서 결론이 뚝딱 나오기도 힘든다. 청와대나 여권, 또는 야권에서 모종의 정치적 결단이 나오지 않는 한 탄핵은 피할 수 없는 길이라는 얘기다.     

보름 전 이 코너에서 헌법을 유린하고도 잘못을 인정 않는 대통령에 대해 메아리 없는 퇴진 목소리만 높일 뿐 헌법적 수단인 탄핵소추를 망설이는 야권의 ‘무질서한 공세’를 꼬집은 적 있다(☞ 이유식의 시선 ‘촛불과 계산기…퇴진-탄핵 두트랙이 답이다). 야권이 계산기를 두드리며 탄핵 과정과 이후의 불확실성과 후폭풍을 걱정하면 할수록 청와대에게 반격의 기회만 제공하게 되니, 청와대를 압박하기 위해서라도 탄핵카드를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는 논지였다. 어쨌든 야권은 이후 퇴진-탄핵 병행 전략을 공식화했고 촛불민심에 놀란 여당 비주류까지 이 대열에 합류한 결과, 탄핵 표결을 흔들어보려는 대통령의 3차담화가 나오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여전히 시국 수습을 위한 최선의 정답은 대통령의 ‘질서있는 퇴진’이다. 탄핵도 질서있는 퇴진의 출발점이라는 시각도 있으나 그것은 최후의 수단일 뿐 목표나 답이 될 수 없다. 이 점에서 대통령의 담화에 쏟아낸 야권의 반응은 박 대통령의 얕은 속셈이나 안이한 현실인식 이상으로 실망스럽다.      

지난 주말 광화문을 덮은 150만 촛불민심의 뜻이 박 대통령의 즉각 퇴진과 조기 대선에 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그러나 정치권과 국회는 광장을 민심을 그대로 배설하는 곳이 아니다. 정치권은 이 민의를 제도와 룰 안에서 녹여내고 이끌어갈 책임이 있다. 야권 리더들이 긴급히 모여 대통령의 제안을 세밀히 따져보고 어떤 복선과 책략이 담겼는지, 무엇이 부족한지를 살펴 역제의로 문제를 정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야가 모인 국회에서 어떤 결정도 내릴 수 없음을 알고 국회 분열 목적으로 퉁쳤다"는 식의 반응은 정치권의 자학과 눈치질, 무능과 무책임을 강조할 뿐이다.     
아마도 대통령 3차 담화에 대한 차가운 민심을 의식했을 것이다. 검찰이 피의자로 입건한 자신의 혐의를 ‘국가를 위한 공적인 사업’으로 강변하고 18년 정치인생을 ‘사욕과 사심 없는 헌신’으로 치장했으며 허물이 있다면 주변관리를 잘못한 것일 뿐이라니, 그럼 국민들이 바보인가. 취임 후 지금까지 듣보잡 같은 파행적 인사와 정책을 일삼고, 냉전논리로 남북관계를 파탄냈으며, 민주적 의사결정과 소통 요구를 일축한 독선적 국정운영으로 국민들에게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안겨줬는지, 또 그 모든 문제의 배후에 최순실 일당 등 비선 실세와 정·관·재계 충성파들이 있었다는 것이 드러난 이후 국민들이 앓고 있는 이른바 ‘순실증’의 정도가 얼마나 심각한지에 대한 성찰이나 사과도 전혀 없다.     

그래서 민심이 들끓는 것은 이해가 된다. 그렇다고 야권이 외교 안보 경제 등 모든 분야에서 지혜로운 리더십이 요구되는 중차대한 시기에 줄곧 촛불의 눈치를 보며 무임승차만 즐기는 것은 보기에 딱하다. 탄핵은 정직하고 강력한 수단이지만 그만큼 불확실성이나 후유증이 크다. 언제든 뺄 수 있는 칼이지만 섣불리 빼면 자신을 벨지도 모른다. 지금은 대통령을 퇴진시키는 가장 실효적인 방안을 강구해야 하고 필요하면 적과의 동침도 불사해야 한다. 책임있는 정치지도자라면 '지금 여기서' 여야 가릴 것 없이 각 당과 계파의 리더들과 머리를 맞대고 정국혼란과 공백을 최소화하는 시국수습 로드맵을 마련해 국민들에게 제시해야 한다. 친박세력 등의 거부로 만장일치가 어려우면 표결로 결정하면 된다.      

그 답은 문재인 안철수 등이 주장해온 ‘질서있는 퇴진’에 이미 나와 있다. 박 대통령이 퇴진을 언급한 시점에 그들이 돌연 자신들의 말을 뒤집고 선명성 경쟁하듯 탄핵의 전도사로 나선 배경은 일단 제쳐두는 게 좋겠다. 핵심은 각 당의 대선 후보 선출 등 정치일정을 감안해 박 대통령의 퇴진 시한을 이르면 내년 2월 혹은 늦어도 4월로 명확히 하고, 국회가 추천한 과도내각 총리에게 국정 전권을 위임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이 정도 안이라면 정치권이 최단 시일내에 합의를 못이룰 이유도 없다. 친박은 변수가 아니다. 이 과정에서 개헌과 박 대통령 특검조사 및 예우문제 등이 불거질 수 있으나 폭발성이 큰 이슈는 덮어두는 정치력도 필요하다.      

박 대통령이 3차 담화에 자신의 책임을 국회에 떠넘기려는 의도를 담았다면 적어도 한 가지는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리더 자격이 없는 박 대통령은 리더십을 남용한 반면, 정치권에 자칭타칭 넘쳐나는 원로와 리더에게서 이 시대를 이끌어갈 혜안과 리더십은 찾아보기 어렵다는 탄식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이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리더는 많지만 리더십은 보이지 않는다”고 꼬집은 뜻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우리 근대사에서 제일 힘든 시기가 다가오는 데도) 대통령 물러나라고 소리만 칠 뿐 나라를 어떻게 이끌어가겠다는 비전이나 플랜을 제시하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오로지 정파적 이익, 내년 대선의 유불리만 따지고 있다.”

국민의 뜻을 읽고 설득하는 용기와 책임, 목표와 수단을 헤아리는 지혜와 의지만 있으면 일주일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대안적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한 채 여당의 처분에만 목매는 야권의 처지가 하도 옹색하게 느껴져서 하는 말이다.<주필>


just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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