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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수능시험장의 도시락 소녀와 최순실의 딸

(서울=뉴스1) 김일창 기자 | 2016-11-19 13:34 송고
© News1
#1. 많이 긴장했을 것이다. 처음도 아니고 두 번째 보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이라 심리적 압박이 더 컸을 것이다. 한 번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12년의 노력에 버금가는 1년의 노력을 보상받기 위해 작은거 하나하나까지 챙겼을 것이다.
하지만 등잔 밑이 어두웠다. 긴장감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을 휘감고 있는 상황에서 차마 어머니가 새벽같이 일어나 싸주신 도시락이 문제가 될 거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편안한 마음으로 준비한 것들을 마음껏 발휘하자'

17일 오전 수능시험장인 부산 남산고 정문을 들어서며, 교실에 들어가 책상에 앉으며 A양은 수십 번 이 말을 마음속으로 되뇌었을 것이다.

1교시 언어영역이 시작됐고 A양이 문제 풀이에 집중하는 순간 '대형사고'가 발생했다. 어머니가 싸준 도시락 가방에서 휴대전화 벨소리가 울린 것이다. 앞이 캄캄했고, 그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A양은 부정행위자로 간주돼 수능 시험장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학생이 됐다.
#2. '긴장'이라는 단어를 알긴 알았을까. 알았다면 그 추상적인 단어의 느낌이나 거기에서 오는 온갖 신체변화 등을 겪어 봤을까. 아, 승마대회에서 자기 차례가 오면 느꼈을까. '선수'였다는 것을 잠깐 잊었었다. 그래도 이런 생각이 드는 건 피할 수 없다.

'에이, 좀 못해도 내 뒤에는 어머니(최순실)가 있는데 뭐'

이런 주문을 되뇌다 보면 '긴장'이라는 단어를 느낄 새가 없지 않았을까. 긴장을 몰랐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이야기의 주인공을 굳이 설명하지는 않겠다.

교육부는 18일 최씨의 딸 정모씨(20)의 입학·학사관리 특혜의혹과 관련한 특별사안감사 결과를 발표하고 이화여대에 그의 입학을 취소하도록 요구했다.

언론을 통해 흘러나왔던 정씨와 관련된 의혹들은 감사 결과, 대부분 사실로 확인됐다.

#3.  비슷한 연령대에 '긴장' 그 이상의 뜻을 알아버린 한 학생과 그 이하도 알지 못할 것 같은 한 학생이 있다.

하나를 알면 열을 안다고 했던가. '긴장'을 알았던 A양은 자신의 상황을 원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같은 교실에서 시험을 본 친구들에게 미안해하며 순순히 교실을 빠져나갔다.

긴장을 몰랐던 학생은 사과고 뭐고 아무것도 모르는 눈치다. 의혹이 일파만파 커지자 자신의 SNS에 '이상한' 글을 올리며 "능력없으면니네부몰원망해"(페이스북 원글)라고 한다.

하지만 정부는 정씨의 온갖 의혹을 언론이 보도하고 나서야 감사에 나섰다. 그 의혹들은 단순한 의혹이 아니었으며 '휴대전화 벨소리'같은 증거가 뒷받침됐던 것들이었다.

이러한 정황에도 정부는 의혹이 제기되고 한참 뒤에 감사에 나섰으며, 그동안 이화여대 측은 특혜는 없었다고 변명으로 일관했다. 최순실의 딸에 대한 박근혜 정부의 '특급의전'은 말썽을 부려도 그대로 유지되는 모양새다.

감독관에게 'A양의 진위를 묻고 조치를 했으면 어땠을까' 하고 말하는 게 아니다. 정해놓은 규칙을 엄격히 적용했던 감독관과 그 규칙을 지켰던 A양, 그리고 그 교실에 있던 학생들이 현재의 우리라는 것이다.

경찰대를 목표했다는 A양, 실수였더라도 자신이 저지른 일에 책임을 지는 그는 이미 어른이다. 그가 남긴 사과문에서 한 문장을 그대로 옮겨 적는다.

'저랑 같은 시험실에서 (시험) 치신 분들께 정말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한창 집중해야할 국어 시간에ㅜㅠㅠ'


ick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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