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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식의 시선] 질서있는 '최순실 게이트' 관리의 전제조건

(서울=뉴스1) | 2016-10-27 11:19 송고 | 2016-10-28 17:38 최종수정
© News1
참담하고 비통했을 것이다. 취임 후 3년 8개월 내내 나라 안위와 국민 행복을 걱정하느라 넓지 않은 어깨가 편한 날 없었고 심지어 전 우주가 나서서 도와주기를 간절히 원했는데, 자식도 가족도 빚진 데도 없는 자신은 전임 대통령의 비극적 전철을 절대 밟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했는데, 임기를 1년여 남기고 그녀의 일로 처연하게 대국민사과를 해야 했던 그 심정 말이다.    
하지만 정작 더욱 참담하고 비통했던 것은 국민들이다. 전후의 폐허에서 오늘의 번영에 이른 산업화와 민주화 기적을 자랑하며 선진국 문턱에 선 자부심으로 살았는데, 서구 언론들까지 ‘라스푸틴 같은 인물(Rasptin-like figure)’이 한국 대통령의 배후에서 국정을 농단해왔다며 비아냥대는 처지를 맞았으니 말이다. 라스푸틴이 누구인가. 제정 러시아 말기 로마노프 황실의 니콜라이 2세 황후의 총애를 업고 국정을 뒤흔들다가 왕조의 몰락은 물론 자신도 비참한 최후를 맞은 요승(妖僧) 아닌가. 권력을 사유화한 그 같은 인물이 100년 후 대한민국에 환생해 밀실 권력을 휘두르며 나라와 국민을 우롱했다고 하니 이런 망신도 없다.      

더욱 참담한 것은 최순실이라는 ‘비선 실세’가 인사 외교 등 국정 전반에 걸쳐 자행해온 갖가지 비리와 의혹을 넘어 사실상 대통령 박근혜를 통째로 ‘기획’해왔다는 사실이 드러나는데도, 당사자는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했던 순수한 마음’이 빚은 실수 정도로 해명하며 국민들에게 그 설명을 받아들이라고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실수도 언론에서 확인된 ‘연설이나 홍보 등의 분야’에 국한된 것이며 시기 역시 청와대 보좌진이 완비되기 전에 있었던 것이란다. 박 대통령은 측근 혹은 밀실권력 의혹이 나올 때마다 ‘난무하는 비방과 확인되지 않은 폭로성 발언’ 또는 ‘악성 괴담과 댓글’에 현혹된 국민들의 어리석음을 통탄해왔다. 사과문의 기조로 볼 때 이번에도 대통령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국민들은 어리석음을 더하게 될 형국이다.     

박 대통령은 섭섭할 것이다. 완고하고 고집스럽던 자신을 내려놓고 ‘진솔하게’ 사과까지 했는데 변명만 늘어놓았다는 둥, 대통령이 뭘 잘못했는지 또 뭘 해야 할지 모른다는 둥, 불난 곳에 기름을 부은 양 비난이 쏟아지고 있으니 말이다. “최씨가 전쟁하자고 하면 전쟁이 벌어질 수 있는 나라 꼴이 됐다(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며 자신을 허수아비 취급하는 말도 아플 것이다. 과거 어려울 때 도움을 받은 인연으로 최씨의 의견이나 생각을 들었을 뿐인데….    

하지만 무시당하고 아픈 것으로 치면 국민들이 더하다.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듯이, 설마설마 하면서 박근혜 정부의 파행적인 국정운영을 용인해오던 사이에 땀과 피로 힘들게 쌓아올린 국가시스템이 처참하게 무너져내렸으니 말이다.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이 정체불명의 재단에 1000억원 가까운 돈을 뜯기고도 ‘먼산만 바라보며 한숨을 쉬고’, 대통령의 ‘나쁜 사람, 아직도 있어요’ 라는 한마디에 공무원의 신분보장 규정이 무력화됐으며, 130년 역사의 여성교육 산실인 이화여대가 입시 및 학사비리의 오욕과 함께 자부심을 땅에 묻었고, 국가예산과 인사, 주요정책이 사전에 유출되고 사적 권력의 입맛에 따라 재단되는 동안에 국민들은 그저 유언비어와 괴담에 휘둘리지 말라는 요청만 받았다.    
무엇보다 뼈아픈 것은 안보 및 경제 복합위기를 맞아 국가적으로 중차대한 시기에 국가지도자의 리더십 공백상태를 맞게 된 것이다. 판도라 상자가 열린 후 박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은 10%대로 추락했다. 임기 후반기라고 해도 이런 수준의 지지도로는 국정동력을 갖기 어렵다. 나름대로 여러 쇄신책을 모색하며 국면반전 카드를 만지작거리겠지만 남은 임기는 기존의 검찰수사와 특검, 내각 및 청와대 비서진 교체 등등의 ‘최순실 정국’으로 내내 들끓을 것이다. 그것이 수습되면 곧바로 대선 국면을 맞게 되고 대통령의 입지는 더욱 좁아진다. 박대통령이 던진 개헌카드가 몰고올 후폭풍도 예상하기 어렵다. 당연히 이 국면을 잘못 관리하면 나라가 휘청거릴 수밖에 없다.      

좌우 진영 가릴 것 없이 탄식과 자성이 쏟아지고 온라인과 SNS엔 탄핵·하야 등 금기시되어온 거친 말들이 넘쳐난다. 지식인 그룹의 시국성명과 대학가·시민단체 움직임 등도 심상치 않다. 그러나 무질서한 분노는 역풍과 반동을 부른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더구나 아직 ‘최순실 게이트’의 전모는 드러나지 않았고 대통령과 최씨가 의혹을 부인하면 진실에 접근하는 것도 쉽지 않다. 여야 지도자들이 냉정하게 상황을 진단하고 정권보다 국가차원에서 ‘질서있게’ 위기를 관리해야 한다는 뜻이다. 선장이 리더십을 잃었다고 큰 그림없이 거국내각 등의 말을 두서 없이 내뱉으면 혼란만 커진다.

그래도 한 두개는 확실히 못박는 것이 좋겠다. 무엇보다 사적 권력의 발호를 조장하며 국민과의 약속을 무시 혹은 배신한 대통령의 진정한 사과, 어설픈 변명이 아니라 국민 눈높이에 맞춘 해명이 선행돼야 한다. 당사자가 문제를 정확히 진단해야 해법을 찾을 것 아닌가. 지도자라면 얽힌 실타래를 과감하게 끊는 결단력도 보여줘야 한다.

허수아비였거나 대통령의 눈을 가린 비서진은 당장 문책하는 게 옳다. 비선의 실상을 모르면서 “봉건시대에도 있을 수 없는 얘기가 회자되는 것이 개탄스럽다”며 국민을 비정상으로 만든 이원종 대통령 비서실장, 최순실 게이트의 도화선이 된 대기업 모금을 지휘했다는 증언이 나왔는데도 "나는 무관하다"며 발뺌으로 일관한 안종범 청와대 정책기획수석, 개헌카드의 함의도 모른 채 “대통령이 개헌을 주도해야 한다”고 헛소리한 김재원 정무수석, 최순실 문제를 차단하기는커녕 이토록 키우는데 결정적 책임을 진 우병우 민정수석과 문고리 3인방(이재만 정호성 안봉근) 등은 수사객관성 등 질서있는 관리및 수습을 위해서라도 조속히 신변을 정리하는 것이 모욕당한 국민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미르니 K스포츠니 차은택이니 팔선녀니 하며 최씨와 그 주변을 둘러싼 온갖 의혹이 불거지는데도 국정감사 증인채택을 전면 거부한 새누리당 지도부도 결코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국민에게 이토록 큰 치욕을 안겨놓고 여당이 아무런 책임이 없는 것처럼 뒤늦게 면피하겠다고 호들갑을 떠는 것은 국민을 개무시하는 행태다. 그래서 더욱 부끄럽다.  <주필>


just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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