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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현장 '그놈 흔적' 찾아라"…과학수사 베테랑 모였다

서울경찰청 '과학수사 경진대회' 현장…실제 사건 방불

(서울=뉴스1) 이후민 기자 | 2016-10-25 05:40 송고
서울지방경찰청 광역 과학수사 4팀이 24일 오후 종로구 내자동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현장실습장에서 열린 과학수사 경진대회에서 현장감식을 하고 있다. 2016.10.25/뉴스1 © News1 박정호 기자
서울지방경찰청 광역 과학수사 4팀이 24일 오후 종로구 내자동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현장실습장에서 열린 과학수사 경진대회에서 현장감식을 하고 있다. 2016.10.25/뉴스1 © News1 박정호 기자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내자동에서 30대 여성이 숨진 채 발견됐다.
방 한칸, 거실, 부엌, 화장실로 구성된 작은 집 내부에는 곳곳에 혈흔이 묻었고, 피해자는 현관 앞에 엎드려 쓰러진 채 발견됐다. 피해자는 목 뒷쪽을 날카로운 흉기로 찔린 듯 보이고, 현관 앞 신발장 위에는 피 묻은 칼이 놓여있다.

부엌에서는 몸싸움이 벌어진 듯 식탁에 놓였던 의자와 과일 등이 바닥에 어지럽게 흩어져 있다. 바깥에서 집안에 침입하기 위해 현관 잠금장치를 훼손한 흔적은 없다. 출입문 안쪽 손잡이에도 피가 묻었다.

실제 살인사건 현장을 방불케 하는 이곳은 서울지방경찰청 지하에 마련된 '과학수사 현장실습장'이다. 서울청은 이곳에서 이날 '과학수사 경진대회'를 개최했다.

'과학수사 경진대회'는 서울 시내 31개 경찰서를 10개 권역으로 나눠 운영 중인 각 광역과학수사팀을 대상으로 이들의 수사 기량을 겨루고 동시에 훈련의 기회로 삼기 위해 열렸다. 이날 '내자동 30대 여성 살인사건' 현장에는 서울 성북·종암·동대문 지역을 담당하는 광역4팀이 나섰다.
현장실습장은 실제 주거 환경과 유사한 공간의 한쪽 벽면을 유리로 만들어 실습하는 모습을 참관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서울청의 10개 광역팀에서 내로라하는 베테랑 요원 등 10명과 서울청 과학수사전문관 등 총 11명으로 구성된 평가단이 이들의 현장감식 활동 전 과정을 지켜봤다.

이번 경진대회의 평가위원장을 맡은 유영수 과학수사전문관은 "실제 사건현장에서 감식 활동은 7~8시간씩 걸리지만 대회인 만큼 시간을 대폭 줄였다"며 "리더가 상황을 판단하고 감식활동을 전개하는 능력과 조원들의 팀워크 등을 평가에 우선시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장에 도착한 과학수사팀원 5명은 현장 훼손을 막기 위해 전신을 덮는 하얀 가드와 발싸개, 장갑, 모자, 마스크로 무장했다. 감식을 위한 조명, 핀셋, 가위, 지문채취용 붓 등 개인 장비가 담긴 작업용 조끼도 입었다.

증거물 정리, 현장 스케치, 비디오 촬영, 사진 촬영 등 각자 역할을 맡은 요원들은 리더 김연수 경사의 지시에 따라 감식을 벌였다. 리더는 이날 현장을 관찰하고 어떤 방식으로 현장을 감식하면 좋을지 계획을 수립한다. 이후 현장을 보존하면서 돌아다니기 위한 '통행판'이 놓여졌다.

이들은 사체의 직장 온도를 측정해 이를 토대로 피해자의 사망시간을 추정했다. 또 지문이나 족적 등을 확인할 수 있는 특수 조명 손전등 등을 이용해 현장에 남겨진 족적과 지문, 머리카락 등 증거물을 수집해 나갔다. 바닥에 족적으로 의심되는 흔적이 확인되면 방 안의 불을 모두 끄고 족적을 확인하기 위한 조명 장비로 바닥을 비춘다. 흙먼지 등이 묻어 희미하게 드러난 발자국을 젤라틴판으로 찍어냈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 과학수사 4팀이 24일 오후 종로구 내자동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현장실습장에서 열린 과학수사 경진대회에서 현장감식을 하고 있다. 2016.10.25/뉴스1 © News1 박정호 기자
서울지방경찰청 광역 과학수사 4팀이 24일 오후 종로구 내자동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현장실습장에서 열린 과학수사 경진대회에서 현장감식을 하고 있다. 2016.10.25/뉴스1 © News1 박정호 기자


안방 옷장에서 발견된 혈흔, 피해자가 입은 블라우스 단추 모양과 다른 떨어진 단추, 범행에 쓰인 것으로 보이는 전체 길이 22㎝의 칼에 일일이 번호표를 매겨 사진으로 찍어둔다. 현장에서 수집된 증거들은 별도의 증거물 봉투에 담아 보관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감식을 의뢰할 증거들이다.

부엌 식탁 위에서 발견된 컵과 우유팩, 음료수 병 등은 기타 오염물이 묻어 훼손되지 않도록 조심스레 집어 증거물을 담기 위해 별도로 준비한 칸이 나뉜 사각형의 플라스틱 통에 담자 평가위원들 사이에서 탄성이 나왔다.

"야, 이건 아이디어네."

경진대회에 참여한 각 팀은 평소 직접 사용하던 과학수사 장비들을 가지고 감식에 임한다. 4팀이 '비장의 카드'로 증거물을 담기 위한 플라스틱 통을 가져온 것이다. 평가위원들은 "증거물을 봉투에 담으면 물건이 흔들리기도 하는데 저런 통에 옮겨담으면 보관하고 이동하기가 용이할 것"이라고 칭찬했다. 평가표를 작성하는 평가위원들의 손이 바빠졌다.

"피해자 오른손 밑 채취하겠습니다."

리더는 증거수집이 이뤄질 때마다 이를 입으로 소리내 말했다. 이는 비디오에 담겼는데, 최근 현장감식 활동에서 사진과 동영상 촬영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고 한다. "범죄 혐의를 입증하는 과정에서 현장감식에서 얻은 증거가 현장에서 적법한 절차에 의해 채취한 증거물이라는 것을 입증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안동현 서울청 과학수사계장이 설명했다.

이같은 중요성을 반영하듯 현장 주변에 있던 다른 과학수사 관련 관계자들은 이날 행사를 취재하러 온 사진기자에게 평소 사진을 어떻게 찍는지, 스트로보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어떤 모드로 사진을 찍는지 등을 세세하게 묻기도 했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 과학수사 4팀이 24일 오후 종로구 내자동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현장실습장에서 열린 과학수사 경진대회에서 현장감식을 하고 있다. 2016.10.25/뉴스1 © News1 박정호 기자
서울지방경찰청 광역 과학수사 4팀이 24일 오후 종로구 내자동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현장실습장에서 열린 과학수사 경진대회에서 현장감식을 하고 있다. 2016.10.25/뉴스1 © News1 박정호 기자

피해자의 손바닥에 남겨진 미세 흔적을 채취하기 위해 테이프를 이용해 떼어낸 뒤 슬라이드 글라스에 옮겨붙였다. 양 손가락의 손톱은 잘라 각기 다른 봉투에 보관한다. 여성 피해자이기 때문에 성폭력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옷을 벗겨 신체 주요 부위의 흔적들도 점검했다.

벗긴 옷들은 다시 한번 모든 불빛을 끄고 특수 손전등으로 비추어 옷에 묻은 미세 증거를 찾기 위해 확인하고 사진으로 찍어 남겼다.

시간이 흐를 수록 리더인 김 경사의 뒷목에 굵은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혔다. 비록 마네킹으로 만들어진 시신이고 가상의 사건 현장이지만 현장에서 보이는 모든 증거를 수집하고 기록하고 보관하는 모습은 보는 이마저 손에 땀을 쥐게 만들었다.

현장감식을 마치고 나서려던 찰나 유리창 벽에도 튄 핏자국이 발견됐다. 문제를 낸 주최측에서도 미처 예상하지 못한 혈흔이었다. 이 역시 놓치지 않고 사진으로 찍어 남겨두었다. 유리창 너머로 지켜보던 한 평가위원이 "새 혈흔을 발견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바닥에서부터 높이를 재지 않은 것이 아쉽다"고 조용히 말했다.

1시간을 조금 넘겨 진행된 현장감식이 끝나자 요원들은 더 바빠졌다. 3층 과학수사계 사무실로 이동한 요원들은 남은 제한시간 동안 수집해 온 유리컵, 종이컵 등에 남겨진 지문을 현출해내기 위한 약품 처리에 돌입했다. 유리나 종이, 스티로폼 등 지문이 나올 수 있는 검체물의 특성은 매우 많고 다양하기 때문에 각 특성에 맞는 약품을 이용해 지문을 찾아낸다.

또 어떤 약품을 처리하느냐에 따라 현출되는 속도도 다르고, 약품에 따라서는 지문 현출을 위해 한번 처리하고 나서는 아예 증거의 표면이 손상되는 경우도 있어 지문을 찾아내기 위한 약품 사용 역시 정해진 순서에 따라 신중하게 실시한다.

요원 3명이 실험실에서 각종 장비로 지문을 채취하는 동안 리더와 다른 요원 1명은 컴퓨터를 붙잡았다. 현장감식 결과를 담당 형사에게 설명하기 위한 '재구성 보고서'와 발표자료를 작성하는 것이다. 물론 이 자료 작성과 발표까지 주어진 시간 내에 완료해야 한다.

같은 시간 동안 요원들이 채취해 온 족적과 지문을 통해 신원 조회에 들어갔다. 경찰청의 지문자동검색시스템(AFIS)과 족윤적 시스템(FTIS)을 이용하자 금새 용의자의 신원이 좁혀졌다.

4팀은 주어진 시간을 1분 남기고 아슬아슬하게 발표까지 끝마치는 데에 성공했다. 리더인 김 경사가 "서울청의 안모 계장이 용의자로 추정됐다"고 결론을 내리자 웃음이 터져나왔다. 발표 이후 평가위원들은 모두 박수를 치고 악수를 건네며 이날 경진대회를 마무리지었다.

경진대회는 이날 오전과 오후 모의 현장감식을 벌인 두 팀을 포함해 28일까지 총 10개 광역과학수사팀의 대표 선수 5명씩이 매일 3시간씩 현장감식을 진행하는 방식으로 치러질 예정이다. 경진대회 우승 팀에게는 특별 승급과 서울청장 표창이, 2·3위에게는 서울청장 표창이 주어진다. 지난해 처음으로 열린 대회에서는 서울 도봉구의 광역과학수사 10팀이 가장 우수한 성적을 거뒀다.

이미 국내 경찰의 과학수사 기법은 이미 해외에 전수할 정도로 앞서 나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경찰은 이처럼 반복된 훈련 등을 통해 모든 상황에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준비해나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안동현 과학수사계장은 "사건은 현장마다 그 특성이 매우 다르기 때문에 평소 훈련이 없으면 현장감식을 나가서 굉장히 당황하는 경우가 생긴다"며 "경진대회는 현장 훼손을 줄이고 효율적으로 시간을 활용할 수 있도록 평소 숙달을 위한 종합 훈련의 개념으로 마련됐다"고 말했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 과학수사 4팀이 24일 오후 종로구 내자동 서울지방경찰청에서 열린 과학수사 경진대회에서 현장감식 후 지문을 추출하고 있다. 2016.10.25/뉴스1 © News1 박정호 기자
서울지방경찰청 광역 과학수사 4팀이 24일 오후 종로구 내자동 서울지방경찰청에서 열린 과학수사 경진대회에서 현장감식 후 지문을 추출하고 있다. 2016.10.25/뉴스1 © News1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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