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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원은 지금 포화상태…"4평방에 10여명 새우잠, 세면전쟁"

벌집같은 빽빽한 공간에…난동사건 벌어질까 우려
안양소년원 정원초과비율, 전국 소년원 중 1위

(서울=뉴스1) 정수영 기자 | 2016-10-24 15:07 송고 | 2016-10-24 17:05 최종수정

법무부 소년과에 따르면 "소년원 생활실 설립 시 1인당 기준면적은 약 6~7㎡(2평)." 현재 안양소년원 큰 방 1개실 면적은 28.7㎡. 4명 정도 지내는 게 적당하나 현재 10여 명이 생활한다. © News1 방은영 디자이너

#1. 안서영양(21·가명)은 오늘이 '그날'이다. 저녁 샤워시간, 예민 지수가 치솟았다. 15분 안에 머리 감고, 세수하고, 몸을 씻어야 한다. 30명이 한꺼번에 들어가 동시에 샤워기 수도꼭지를 튼다. 물이 튀고 몸이 서로 부딪친다. 짜증이 솟구치지만 꾹 참는다. 생리대 봉투를 뜯는다. 부끄럽진 않지만 마음 한구석은 찝찝하다. '나만 그런 걸까? '그날'인 다른 친구들은 아무렇지 않을까?' 서영 양은 칸막이 없는 샤워실이 전쟁터 같다는 생각을 한다. 

#2. 화들짝 놀라 깼다. 옆 친구가 잠결에 허미경양(19·가명) 배에 '타격'을 가했다.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른다. 안 그래도 따닥따닥 붙은 매트. 한쪽에선 '기습 공격', 다른 한쪽선 머리 주뼛 서는 이 가는 소리로 압박해온다. 열대야에 잠버릇 수난까지 겪으니 오늘 밤도 잠자기는 글렀나 보다. '언제쯤 매트와 매트 사이에 여백이 생길까.' 취침시간만 되면 숨이 턱턱 막힌다. 지독히도 무더웠던 올여름, 미경 양에게 취침시간은 곤욕이었다. 
    
◇안양소년원 정원초과비율, 전국 소년원 중 1위      

안양소년원(정심여자정보산업학교)이 과밀화로 몸살을 앓고 있는 가운데 학생들의 불편함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최근 법무부가 국회에 제출한 '소년원별 수용원 현황 자료'를 보면, 안양소년원은 전국 10개 소년원 가운데 정원 대비 초과비율이 가장 높은 곳(191%)으로 꼽혔다.


자료 = 법무부 소년과. © News1 방은영 디자이너


수용정원은 80명이나 올해 6월 일일평균 기준, 실제 학생 수는 153명을 기록했다. 정원에 비해 수용 인원수가 약 2배 가까이 많아 학생 인권침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안양소년원은 왜 이렇듯 심한 과밀화 현상을 겪게 된 걸까.     

먼저 과거에 비해 비행 청소년들을 소년원으로 보내는 경우가 늘고 있는 것이 원인으로 꼽힌다. 김현수 한국외국어대학교 법학연구소 상임연구원은 "최근 가정법원 소년부에서 비행 청소년에 대해 보호처분 9호, 10호 즉 소년원에 보내는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늘고 있다"며 "6개월이든 2년이든 일단 소년원에 넣고 보호하자는 생각이 판사들 사이에 팽배해 있는 게 큰 원인"이라고 했다.     

여자소년원 부족을 안양소년원 과밀화의 주요 원인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이승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전국에 여자소년원이 안양소년원과 청주소년원 딱 2군데뿐이다"면서 "입소 인원은 증가하고 그중 보호처분 10호를 받은 여학생은 안양소년원에서만 수용하기 때문에 과밀화가 심각한 것"이라고 말했다. 

◇'제2의 부산소년원 난동사건' 우려 ↑
 
과밀화로 인해 안양소년원에선 어떤 잠재적인 문제들이 도사리고 있을까. 우선 학생들 간 잦은 충돌을 피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승현 연구위원은 "충동·폭력성향이 강한 청소년기인 데다 소년원 학생들 중엔 분노 조절이 어려운 아이들이 상당수"라며 "한 곳에 다수가 밀접해 있으면 충돌이 발생할 수밖에 없고 큰 싸움으로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안서영 양은 3년 전 안양소년원 처음 들어왔을 땐 한 방에 5~6명이 생활했지만, 지난 5월 재입소한 뒤엔 9~10명과 방을 함께 쓰고 있다. "사람이 늘어나니 툭하면 싸움이 생긴다"고 했다. 

'소통 부족'도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문제로 꼽힌다. 소년원은 교정기관이라기보다 교육기관. 황계연 안양소년원 원장은 "우리 학생들 대부분이 마음 아픈 아이들이기 때문에 담임선생님과 대화시간을 정기적으로 마련하는 등 '교사와의 소통'을 매우 중요시한다"고 말했다.

지난 10일 오후, 멘토들이 열어준 행사가 진행돼 전교생이 운동장에 모였다. © News1 맹선호 기자  
지난 10일 오후, 멘토들이 열어준 행사가 진행돼 전교생이 운동장에 모였다. © News1 맹선호 기자  

하지만 과밀화 때문에 사제 간 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안양소년원의 한 학생은 "고민이 생기거나 진로 상담을 하고 싶을 때 선생님을 찾아가지만 학생이 많아 아무 얘기도 못할 때가 많아요. 제일 아쉬운 부분이에요"라고 털어놨다.     

김현수 상임연구원은 "학생들이 선생님과 속내를 자주 나눠야 각 학생에 맞는 적절한 교육과 조치가 이뤄질 수 있다"며 "대화시간이 부족하면 소년원의 목적은 단순한 '가둠'밖에 안 된다. 충분한 상담이 이뤄지지 못하면 학생들 안에 갈등·불만이 쌓여 재범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집단 난동이 일어날 수 있다는 진단도 있다. 천종호 부산가정법원 부장판사는 "2013년 5월에 발생한 부산소년원 집단난동 사건은 과밀화에서 비롯됐다"며 "안양소년원에서도 학생들의 탈출 시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과밀화가 해소되지 않으면 '집단 이탈'이라는 시한폭탄이 언제 터질지 모른다는 얘기다.     

◇안양소년원 과밀화 해소 '발등의 불'    

인원초과로 학생들이 겪고 있는 고충이 격화될 뿐 아니라 향후 일어날 수 있는 문제도 속속 제기되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안양소년원 과밀화 해소가 '발등의 불'이라는 데 입을 모은다. 어떤 해결책이 있을까.    

오영근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교 교수는 해소 방안으로 '사회내처우를 활성화할 것'을 제안했다. "비행 청소년들을 소년원에 보내는 시설내 처우보다 사회 속에서 보호관찰관의 지도·감독을 받으며 생활토록 하는 게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여자)소년원 확충엔 시간이 걸리고 비용도 많이 들기 때문에 과밀화 해결에 별 도움이 안 된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소년원 시설 확충이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현수 상임연구원은 "안양소년원 시설 확충은 정말 시급하다"면서 "어느 정도 편리함을 줄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학생들이 소년원에서 보낸 시간을 '고통'으로 기억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일본엔 남자소년원 43개, 여자소년원 9개가 있다. 일본 법무성 교정국 '소년통계연보'에 따르면, 2015년 연말 기준 여자소년원 총 수용인원은 212명. 9개 소년원에 가장 적게는 4명, 가장 많게는 47명이 고루 수용됐다. 안성훈 연구위원은 "일본 여자소년원에선 과밀화가 발생할 수 없는 환경이다"고 말했다.  

천종호 부장판사는 "교정시설은 정원의 70%만 수용해야 교정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한다"며 "우리나라는 여자소년원이 지금보다 최소 2개소는 더 있어야 과밀화가 어느 정도 해소되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안양소년원 교정에 세워져 있는 기념비석. 안성훈 연구위원은
안양소년원 교정에 세워져 있는 기념비석. 안성훈 연구위원은 "수용자 신분이라 해도 헌법에서 명시하는 기본권은 침해당할 수 없다"고 했다. 

◇안양소년원 과밀화 해소의 열쇠는?    

전문가들은 그러나 안양소년원 과밀화 해소가 쉽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우선 예산 결정권을 쥐고 있는 정부에서 소년원 복지 향상을 위한 '투자'에 관심이 적다는 지적이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관계자는 "정부 부처 관계자들을 보면 주목 받을 수 있는 성인 강력범죄 대책에 중점을 두지, 소년원 청소년 처우개선 대책에는 관심이 매우 부족하다"며 "정부는 관심이 적은 소년사법 분야에 예산 편성을 제대로 하지 않는 상황이다"고 했다. 실제로 법무부 소년과에 따르면 "아직 예산확보가 안 돼 안양소년원 시설 개선을 추진하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무엇보다 뿌리 깊은 사회적 인식이 과밀화 해결에 걸림돌이 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승현 연구위원은 "아직까지 우리 사회는 범죄 청소년에 대해 굉장히 폐쇄적인 사고를 갖고 있다"며 "소년원 아이들이 죄 지은 대가로 인권침해 당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인식이 깊다"고 꼬집었다.    

이와 관련, 안성훈 연구위원은 "수용자 신분이라 해도 헌법에서 명시하는 기본권은 침해당할 수 없다"면서 "과밀수용을 해선 안 된다는 원리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는 헌법적 정신에서 나온다"고 했다.     

결국 안양소년원 과밀화 해소의 열쇠는 크게 두 가지. 정부의 정책 개선과 더불어 우리 안에 뿌리내린 시선의 변화다. 현장 전문가들이 강조하듯, '가해자이자 피해자'인 소년원 학생들도 '우리의 미래'라는 인식이 시급히 싹 터야 할 시점이다.  

    
※안양소년원은…
 
청주소년원(미평여자학교)과 더불어 국내 유일한 여자소년원으로, 가정법원서 9호 또는 10호 보호처분 받은 만13~21세 여학생들을 수용하고 있다. 보호처분 9호의 경우 소년원서 6개월 이내, 10호는 2년 이내 머물며 교육을 받는다.


jsy@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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