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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돈되는 시대"…빅데이터에 몸값 높아진 산업수학

[지능정보사회로 가자]<하-①>韓 산업수학 '걸음마'

(서울=뉴스1) 박희진 기자 | 2016-10-05 08:10 송고 | 2016-10-05 09:19 최종수정
(출처=이미지투데이) © News1
(출처=이미지투데이) © News1


위상수학. 수학이라는 말만 들어도 머리가 쭈뼛 서는데 이름부터 너무나 생소하다. 쉽게 말하면 위상수학은 '위치'와 '형상'에 관한 학문이다. 수학에서도 대표적인 '순수수학'으로 꼽히는 분야다.

'상아탑'에서 논리검증에만 쓰일 것 같은 순수수학 이론인 위상수학의 '대가'가 1억달러(약 1100억원) 투자를 유치한 실리콘밸리의 유망 스타트업 창업가로 변신했다. 다차원적인 데이터 분석기업 '아야스디'(AYASDI)는 이렇게 탄생했다. 수학이 산업과 만나 혁신이라는 '마법'을 만들어낸 사례기도 하다.

수학 고유의 논리력과 통찰력이 '빅데이터'라는 새로운 산업 트렌드와 맞물려 재조명받고 있다. 이전에는 없던 빅데이터 혁명은 수학을 상아탑을 넘어선 산업현장으로 불러들였다. 수학이 돈(비즈니스)이 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80년대부터 수학이 산업에 활용됐다. 하지만 한국은 산업수학이라는 말 자체도 생소한 실정이다.

◇산업수학…빅데이터 혁명에 '재조명'

산업수학은 수학적 이론과 분석방법을 활용해 문제를 해결하고 산업의 부가가치를 창출하자는 개념이다. 기존에 수학은 크게 순수수학, 응용수학으로 나뉜다. 산업수학은 응용수학과도 좀 다르다.

위상수학이라는 순수수학을 활용해 데이터를 분석하는 아야스디 사례에서처럼 수학이 문제해결을 위한 도구로 사용되고 새로운 산업의 부가가치를 만들어낸다.  

아야스디는 시티그룹, 미국 식품의약국(FDA), 미국 질병통제센터(CDC) 등 미국 주요 기업과 정부기관이 주요 고객이다. 생체 데이터가 비슷한 환자들 중, 누가 추가 암 검진이 필요하고 누구는 그렇지 않은지를 구별해낸다. 신용카드 사용패턴을 분석해 사기목적인지 아닌지도 판단한다.은행이 금융위기 상황에 얼마나 잘 대처할 수 있을지도 분석해준다.

사실 수학은 인류문명 발전과 궤를 같이했다. 고대 농경사회 활동, 도시건축부터 근대 천문학, 물리학, 현대의 컴퓨터, 양자역학의 중심에는 수학이 있다.

미국, 독일 등 선진국에서는 산업이 고도화되면서 1980년대부터 수학이 공학과 접목해 산업의 기술적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금융, 바이오, 교통, 제조업, 에너지 등 다양한 산업에 활용됐고 기업, 대학, 연구소간 협력이 활발해졌다. 자원탐사, 에너지효율, 엔지니어링 최적 설계, 도심 상권분석, 물류최적화, 세금징수, 버스노선 결정, 암발생 확률 예측, 감염병 확산속도 예측, 선거결과 예측, 금융 파생상품 설계, 전자상거래 보안솔루션 개발 등 활용유형도 무궁무진하다.

특히 2010년이후에는 빅데이터 혁명이 본격화되면서 수학의 활용 가능성이 극대화됐다.빅데이터를 분류해 패턴과 규칙성을 찾고 가치있는 '정보'로 생산하는데 수학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이때부터 수학이 지능정보산업의 핵심 기반기술로 급부상한 것이다.  

조진환 국가수리과학연구소 산업수학혁신센터장은 "빅데이터 등장으로 과거 70~80년대부터 사용된 응용수학의 개념도 완전히 달라졌다"며 "산업수학의 경계가 완전히 무너지면서 새 지평이 열렸다"고 말했다.  

© News1 최진모 디자이너
© News1 최진모 디자이너


◇세계 11위 韓수학…산업수학은 '초라'

산업수학은 빅데이터 혁명을 타고 재조명받고 있다. 인공지능(AI)도 1950년대부터 등장한 기술이지만 분석할 대상이 되는 막대한 양의 '빅데이터'와 분석을 처리할 수 있는 '컴퓨팅' 기술이 갖춰지면서 2010년대 이후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란 말이 있다. 쏟아지는 데이터가 있어도 유의미한 '정보'를 엮어낼 수 있어야 의미가 있다. 이때 데이터를 다루는 소프트웨어가 바로 빅데이터 기술이다. 산업수학은 빅데이터를 분류해 패턴 및 규칙성을 발견하고 가치있는 정보를 생산하는 데 일조하고 있는 것이다.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등 미국의 대표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의 핵심경쟁력도 바로 빅데이터에 있다.

하지만 한국의 수학 연구수준은 세계 11위권이지만 산업수학의 현주소는 초라하다. 경험도 없고 노력도 미진했다. 정부 차원에서 연간 수백억원을 수학기반 응용연구에 투자하고 미국 미네소타대, 독일 프라운호퍼, 영국 옥스포트대 등 수학전문 연구기관을 중심으로 산학협력 생태계가 활발하게 조성되고 있는 선진국과는 대조된다.

미국에서는 고급 수학두뇌들의 산업계 진출이 활발하다. 2012년 미국 수학박사의 15%가 고액연봉을 받고 기업에 취업했다. 국내는 기업 취업률이 1.8%에 불과하다. 한국은 선진국에 비해 순수과학 비중이 높다. 교수 등 국내 수학자 중 88%가 순수수학자다.

다행히 사정은 나아지고 있다. 정부가 지난해 7월부터 산업수학 점화프로그램을 시작, 대학과 기업의 가교역할에 나섰다. 올 4월에는 스타트업이 많은 경기도 판교에 '산업수학 혁신센터'도 들어섰다. 산업수학 전문가들이 많은 스타트업들의 창업현장에서 생길 수 있는 '난제'를 풀기위해 직접 해결사로 자처하고 나선 곳이다.

산업수학을 활용한 국내 스타트업도 등장했다. 에너지 빅데이터 기반의 스마트미터 인코어드가 대표적 예다. 집안 전체의 전기사용량을 측정해준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첫문을 열었지만 창업자는 한국인이다. LS산전에서 사장까지 지낸 최종웅 대표가 만들었다. 원활한 투자유치와 세계 시장공략을 위해 실리콘밸리행을 택했다. 인코어드에는 총 7명의 박사가 있다. 이중 4명이 수학박사다. 이효섭 박사는 "일은 힘들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고 세상에 없는 일을 하는 것이라 즐겁다"고 말했다.

순수수학에만 매진할 것 같은 학계에서도 변화가 일고 있다. 수학과 교수가 직접 만든 수학관련 스타트업도 등장했다. 수학관련 교구, 게임 등을 만든 ㈜감성수학레드(FeelMathRED)의 김종락 대표는 서강대 수학과 현직 교수다. '재미있는 수학'으로 수학교육을 바꿔보기 위한 사명감에 창업한 회사다.  

김 교수는 "지금까지 수학이 돈이 된다는 인식이 부족했고 학생들도 수학기피 현상이 강했지만 점차 수학전공 선호도가 높아지고 수학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도 개선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전체의 흐름을 압축하고 추상화하고 핵심을 간파하는 통찰력은 수학의 힘"이라며 "한국은 높은 교육열, 계산능력, 성실함을 갖추고 있어 수학적으로 무장된 비즈니스를 더욱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도 학문 중심의 순수수학이 주류를 이루는 국내 수학계 풍토를 산업수학 중심으로 키우겠다며 지난 4월 '산업수학 육성방안'을 발표했다.

국가수리과학연구소의 박형주 소장은 "국내 산업수학 생태계 육성을 위해 정부, 학계, 교육계가 모두 바뀌어야 한다"며 "교육현장에서는 수학이 가치있는 학문임을 일깨워주고 산업현장에서 수학을 활용해 혁신을 만드는 문화를 만들어 가야한다"고 밝혔다.


2bri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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