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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법 3일', 사회적 변화 시작됐다

약속 취소하고 채용일정도 변화…관련 앱 봇물
전문가 "지금 청소년 사회 주축돼야 평가가능"

(서울=뉴스1) 김일창 기자, 김태헌 기자 | 2016-10-01 07:00 송고
김영란법 시행 둘째 날인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혜화동 혜화초등학교 보안관실 앞에 놓인 학부모 물품 보관함이 눈길을 끌고 있다. 2016.9.29/뉴스1 © News1 임세영 기자
김영란법 시행 둘째 날인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혜화동 혜화초등학교 보안관실 앞에 놓인 학부모 물품 보관함이 눈길을 끌고 있다. 2016.9.29/뉴스1 © News1 임세영 기자
일명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지난 28일 이후 첫 주말을 맞았다. 국민권익위원회에는 문의전화가 폭주했다. 규제대상인 공무원 등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식사약속을 잡지 않는 등 다들 조심스러운 분위기가 곳곳에서 감지됐다.
입법예고 4년1개월 만에 청렴사회로 가는 거대실험을 시작한 대한민국, 시행 이후의 분주한 움직임을 담았다.

◇규제대상 있지만 사실상 모든 국민…조심 또 조심

법 시행 이후 가장 달라진 점은 식사약속을 잡지 않겠다는 사람이 늘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법시행 첫날, 전국의 고급식당가는 점심과 저녁 할 것 없이 한산한 모습이었다.

반면 육개장이나 순대국밥 등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의 식당들은 평소처럼 손님들로 가득했다. 그러나 이들 식당에서도 본인이 먹은 것은 각자 계산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국정감사로 몸살을 앓고 있는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인근 고급음식점은 조용했다. 한 빌딩 지하 식당가에 입점한 고급일식집 대표 A씨는 "법 시행 첫날 저녁 룸 16곳 중에 2곳 만 손님이 찼다"며 "평소 열 곳은 찼는데 완전히 반대되는 상황이다"고 말했다.

이곳은 법 시행 첫날과 둘째 날, 셋째 날에도 예약손님이 비슷한 수준이었다. A씨는 "규제대상이 아닌 사람들도 값이 나가는 음식을 멀리하는 분위기가 분명히 있는 것 같다"며 "대안을 마련해야 하는데 인건비와 임대료 등을 고려하면 그러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고 토로했다.

같은층에 입주한 순대국밥집은 상황이 달랐지만 여러 명의 손님들이 각자내기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회사원 김모씨(36)는 "동료와 함께 야근 전 저녁을 먹으러 왔다"며 "식사 값이 7000원인데 김영란법 생각이 나서 그런지 각자 계산했다"고 밝혔다.

이러한 분위기는 헬스장 회원 수 증가와 대리기사 요청 건수 감소 등으로도 나타났다. 김종용 사단법인 전국대리기사협회장은 "아직 구체적인 통계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김영란법 시행 이후 대리기사 요청 건수가 급감했다"고 밝혔다.

서울 종로구의 한 대형 헬스장 관계자도 "김영란법 때문이라고 특정하긴 어렵지만 최근 신규 가입문의를 하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고 밝혔다. 영등포구의 한 요가학원 관계자는 "아직 회원수가 증가하지는 않았다"면서도 "김영란법 시행으로 저녁이 있는 삶을 보내려는 사람들이 회원 등록을 많이 해줬으면 좋겠다"고 바랬다.

공직사회 분위기는 헌법재판소의 합헌 결정 이후 꾸준한 대비로 내성이 생긴 모습이었다. 식사나 선물 등은 쳐다보지 않겠다는 공무원들이 많았다.

29년차 중학교 교사 윤모씨(54·여)는 "교사끼리 서로 평가하는 교원평가제가 있어 교사들끼리 식사하는 자리마저 부담스럽다"며 "오해의 소지를 애초부터 차단하기 위해 누구와도 식사약속을 잡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동료 교사들 만나는 것도 부담스러운 상황에서 학부모를 만나는 것은 상상도 하기 어렵다"며 "되도록 전화로 상담을 할 예정이다"고 밝혔다.

수도권에서 근무하는 한 경찰관은 "지인 중 변호사나 판검사가 많아 식사자리를 자주 했는데 공무원과 법조인이라는 신분 때문에 만나기 꺼려지는 게 사실"이라며 "당분간 만나더라도 가벼운 식사를 하거나 커피를 마실 생각이다"고 말했다.

규제대상인 기자들도 조심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언론사에 다니는 정모씨(42)는 마흔 넘어 어렵게 태어난 첫 딸의 돌을 앞두고 아쉬움이 크지만 깨끗한 사회를 위해서 조금 희생한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돌잔치는 김영란법이 정한 경조사에 해당하지 않아서 5만원 이내의 선물만 가능하지만 돌잔치 행사장 대여료와 식사비용을 감안하면 사실상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다.

정씨는 "내가 찾아 축하해 준 돌잔치를 생각하면 속이 좀 쓰리긴 하지만 앞으로 지인들의 돌잔치도 같다고 생각하니 괴념치 않는다"며 "다만 이제 돌잔치는 지인들을 부르기보다는 가까운 가족들끼리만 축하하는 식으로 바뀔 것 같다"고 내다봤다.

기자 이모씨(29·여)는 "기자도 규제대상이 되면서 회식이 확실히 줄어들 것 같다"며 "저녁시간이 어느 정도 보장될 것으로 보여 개인약속을 많이 잡고 있어 그동안 못 봤던 사람들을 평일에도 만날 예정이다"고 말했다.

김영란법은 기업의 채용일정도 바꿨다. NS홈쇼핑은 정부 시책에 부응하기 위해 하반기 신입사원 채용 일정을 변경했다. 회사는 애초 올해 11월 입사를 예정으로 하반기 신입사원 공채를 진행하려 했으나 내부논의를 거쳐 2017년 1월 입사로 계획을 변경했다.

이같은 이유는 내년 2월 졸업예정인 지원자들이 조기에 취업할 경우 학점 인정 등을 받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김영란법에 따르면 학칙에서 인정하지 않는 경우 취업으로 인한 결석으로 발생할 수 있는 불이익을 무마하고자 해당 교수에게 사정하는 것은 부정청탁으로 간주될 수 있다.

애플리케이션 관련 업체는 '김영란법'과 관련된 앱을 잇달아 선보이고 있다. 시행 전날 출시된 '영란이 앱'은 법에 저촉되는지 등을 확인할 수 있고, 관련 자료도 찾아볼 수 있어 벌써 인기가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시중 은행들도 '각자내기' 기능이 담긴 앱을 내 놓으며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해당 앱을 받으면 한 사람이 계산한 뒤 인원수만큼 나눈 금액을 메신저로 송금 요청해 돈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보안카드 입력 등이 없어도 돈을 보낼 수 있도록 간편화에 초점을 뒀다.

식음료업계도 앱에 '거절하기' 기능을 추가하는 등 김영란법 영향에 대응 중이다. 스타벅스코리아는 법 시행날 모바일 앱에 'e-기프트 거절하기' 기능을 도입했다. SPC그룹도 '해피포인트' 앱에 해당 기능 도입을 앞두고 있다.

한 사회학자는 이같은 분위기를 섣불리 긍정적으로 판단하기를 거부했다. 그는 "현재 분위기는 첫 케이스로 걸리지 않도록 몸을 사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사회 전체에 김영란법이 제대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적어도 지금의 청소년들이 사회 주축이 되는 약 15년은 지나야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고 지적했다.


ick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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