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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세상이 변할수록 노인들은 갈 곳이 없어요”

전국 모범노인 선정된 강경화씨(80)…소외 노인 위해 반평생 봉사

(제주=뉴스1) 안서연 기자 | 2016-09-29 15:39 송고 | 2016-09-29 15:44 최종수정
제20회 노인의 날을 앞두고 전국 모범 노인으로 선정돼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상하게 된 강경화 대한노인회 제주도연합회 회장 강경화씨(80)가 29일 노인회 사무실에서 환하게 웃으며 이야기를 하고 있다. 2016.09.29/뉴스1 © News1 안서연 기자
제20회 노인의 날을 앞두고 전국 모범 노인으로 선정돼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상하게 된 강경화 대한노인회 제주도연합회 회장 강경화씨(80)가 29일 노인회 사무실에서 환하게 웃으며 이야기를 하고 있다. 2016.09.29/뉴스1 © News1 안서연 기자

“세상이 변할수록 노인들은 점점 갈 곳이 없어져요.”
제20회 노인의 날(10월 2일)을 앞두고 29일 만난 대한노인회 제주도연합회 회장 강경화씨(80)는 요즘 어르신들의 고민을 전하며 혀를 내둘렀다.

6·25전쟁에 참전했다 사회로 나온 강씨의 눈에 띤 건 서울역 인근에서 구걸을 하고 있는 노인들이었다. 당시 30대였던 강씨가 노인 복지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다.

“호주머니에 늘 10원짜리 지폐를 스무장 남짓 갖고 다녔어요. 역에서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 노인들을 발견할 때마다 한 장씩 건넸는데, 젊은 내게 꾸벅 고개를 숙이는 노인들을 보면서 성공하면 꼭 노인 복지에 힘써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경기도에서 여행사업을 하다 제주에 내려 와서는 철강사업에 뛰어들었고, 다행히 사업은 번창해 40대에 들어섰을 무렵에는 어느 정도 여유가 생겼다.
그때부터 수익의 3분의 2를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결심한 강씨는 무작정 제주시 건입동에 있는 동사무소를 찾아가 쌀 10포대를 건네며 독거노인들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돕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지만 누구를 어떻게 도와야 하는지 잘 몰랐던 강씨는 제주시 노인복지회관을 찾기도 했다.

점심을 먹으러 노인들이 회관을 찾는다는 사실을 알고는 쌀을 건넸으며, 수돗물을 식수로 먹는 모습이 안타까워 회관 내에 정수기도 설치했다.

호의가 호의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으면서 아니꼬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들도 있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단순히 물질적으로만 돕는 게 아니라 노인 복지를 제대로 실현하기 위해서는 대한노인회 제주시지회장이라는 자리가 필요했다.

선거를 통해 당당히 제주시지회장을 맡게 된 강씨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도내 모든 경로당에 간식비가 지원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당시 제주도는 예산이 많이 든다며 지원을 머뭇거렸지만 강씨는 끈질기게 설득했다.

“4·3사건으로 남편을 잃은 미망인들과 6·25전쟁에 참전했다 불구가 된 이들에게 간식비를 지원해주는 게 그렇게 어렵냐고 따졌죠. 두 달이 넘게 줄다리기를 한 끝에 결국 지급이 됐어요.”

노인들이 찾고 싶은 경로당이 될 수 있도록 애쓴 강씨는 노인 복지에 힘쓴 공을 인정받아 2014년 제주도연합회장으로 취임하게 됐다.

어깨가 더 무거워진 강씨는 경로당의 활성화를 위해 도내 420개 경로당에 지역실정에 맞는 프로그램을 보급해 건전한 여가를 즐길 수 있도록 했으며, 연합회 부설 노인대학원 수준을 높여 평생학습을 독려했다.

또 노인취업센터를 활성화해 형편이 어려운 노인들이 도내 사업체에 취업할 수 있도록 했으며, 무릎 관절 수술을 지원하기 위해 사비 500만원을 선뜻 내놓기도 했다.

직접 경로당을 돌아다니며 소통하는 강씨는 요즘 노인들의 가장 큰 고민으로 노인들이 갈 곳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는 점을 꼽았다.

“옛날에는 동네의 큰 나무에 정자가 있어서 학교를 마친 아이들도 들렀다 가고 밭에 나가던 청년들도 앉아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했는데 요새는 그런 장소가 사라져서 다들 안타까워하고 있어요.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점점 줄어드는 것 같아요.”

정자가 있던 자리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노인들은 그저 노인들끼리만 어울리는 식으로 변해가는 세상을 향해 강씨는 큰 한숨을 내쉬었다.

요즘 강씨는 노인 사회 전반에 만연한 소외감을 해소하기 위해 경로당에서 노인역량강화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부양 받는 노인에서 사회를 책임지는 노인이 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자는 것이다.

제주지역 노인 복지를 위해 두 팔을 걷어 부치고 뛰고 있는 강씨는 노인의 날을 앞두고 전국 모범 노인으로 선정돼 오는 30일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상하게 됐다.

강씨는 수상소감을 묻는 질문에 “내 인생의 절반을 노인 복지에 할애했는데 이제 남은 인생 동안에도 더 열심히 하라는 당부라고 생각한다”며 “돈이 아니라 사람이 재산이라면서 봉사활동을 격려해준 집사람에게 참 고맙다”고 말했다.

한편 제20회 노인의 날 기념 국민훈장은 이번 행사의 최고 훈격 시상으로 △모범노인 △노인복지 기여자 △모범노인단체 및 노인복지기여 단체 등 각 분야에서 1명씩 총 3명에게만 수여된다.


asy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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