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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법 첫날…"무조건 더치페이"·구내식당 '북적'

여의도 일대는 '란파라치'에 벌벌…시민들은 환영
구내식당마다 자리 모자라 한동안 기다리기도

(서울=뉴스1) 사건팀 | 2016-09-28 15:12 송고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시행 첫날인 28일 점심시간에 정부세종청사 구내식당은 몰려든  공무원들로 붐비고 있는 반면, 청사 주변 일식 식당(오른쪽)은 손님이 끊겨 썰렁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뉴스1 © News1 장수영 기자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시행 첫날인 28일 점심시간에 정부세종청사 구내식당은 몰려든  공무원들로 붐비고 있는 반면, 청사 주변 일식 식당(오른쪽)은 손님이 끊겨 썰렁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뉴스1 © News1 장수영 기자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시행에 들어간첫날인 28일, 사무실 등이 밀집한 서울 광화문과 여의도 일대 식당가 곳곳에서는 적은 가격이라도 나눠 내려는 모습이 두드러졌다. 평소 접대예약으로 붐비던 고급음식점 대부분은 손님의 발길이 뚝 끊기는 등 변화의 움직임이 감지됐다.
국정감사가 한창 진행 중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일대 식당가는 김영란법 시행 첫날부터 몸을 사렸다.

이날 점심시간에 맞춰 찾아간 한 일식집 대표는 "법 취지만 공감한다"면서 "그 외에는 모두 허점투성이며 외식업계를 죽이는 법"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 식당은 취재하지 말아달라. 우리 식당에 란파란치들이 와서 어떤 손님이 걸려 행여나 소문이라도 나면 지금보다 더 큰 타격이 있을 것"이라며 "어떠한 언급도 할 수 없다"고 말을 아꼈다.

국회 인근에서 대구탕집을 운영하는 허모씨(58·여)는 "오늘 저녁에 예약한 팀이 한 팀 있었는데 김영란법 시행을 뒤늦게 알았는지 아침에 급히 취소했다"며 "헌재에서 합헌 결정이 난 7월말부터 매출이 20% 이상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광진구청과 서울동부지방법원, 동부지방검찰청 등이 모여있는 구의동의 한 중식당 사장은 "점심 정식메뉴와 저녁 메뉴가 각각 3만원, 3만5000원이었는데 점심 메뉴에 한해 가격 조정을 고려하고 있다"며 "법 시행 영향인지 이번주는 예약이 특히 줄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29일 행사를 개최하는 한 공공기관에서는 출입기자들에게 점심식사를 제공하려다 그만뒀다. 직무연관성이 인정되면 3만원 이하 음식 접대도 규제 대상이기 때문이다.

해당 기관에 출입하는 한 기자는 "김영란법의 '3·5·10' 규정은 사교 등 의례적인 관계에 적용되고 업무와 관련이 있으면 1원도 받아서는 안 된다"며 "국민원익위원회의 유권해석을 꼼꼼히 살펴보며 조심, 또 조심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영란법 시행에 대비해 인근 식당가보다 가격이 저렴한 구내식당이나 밥집 등으로 발길이 이어지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서울의 한 구청 구내식당은 식사를 하러 온 직원들로 붐볐고, 일부는 남은 자리가 없어 식판을 들고 식당을 헤매기도 했다.

청소를 하던 한 직원은 "원래 평일에도 사람이 많지만 오늘은 금요일 수준으로 사람이 많은 것 같다"며 "식사를 하려면 요령껏 자리부터 맡는 게 좋다"고 귀띔했다.

서울시청 부근도 백반이나 김밥, 국밥 등 상대적으로 저렴한 음식을 파는 식당을 중심로 손님이 북적였다.

1만원 이하의 저렴한 메뉴를 제공하는 백반집 사장 이모씨(48)는 "손님 수도 그렇고 평소 점심시간과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면서도 "적은 금액인데도 더치페이(각자내기)하는 사람들이 있긴 있더라"고 밝혔다.

회사원 전모씨(30)는 "요즘 거래처와 식사를 하더라도 되도록 점심으로 잡는 분위기"라며 "1인당 3만원을 넘지 않더라도 혹시 모르니 더치페이를 하는 게 낫다고 본다"고 밝혔다.

시청 인근 고깃집 사장은 "점심메뉴는 3만원이 넘는 게 없는데도 손님이 줄었다"면서 "문제는 저녁장사다. 평소에도 저녁 예약이 줄어들고 있었지만 오늘은 한 두건에 불과하다"고 걱정했다.

비교적 값비싼 메뉴인 한우와 양고기 등을 판매하는 종로구의 한 고깃집 사장도 울상이었다. 사장 변모씨는 "점심엔 테이블 10개 중 3개 정도만 손님이 찼고, 저녁 예약도 1건 뿐"이라고 토로했다. 이 식당의 주 메뉴는 1인분에 2만4000원에서 3만9000원 선이다.

한편 김영란법의 영향보다는 이어진 불경기로 영업이 어려운 점이 더 문제라는 업주도 있었다.

1인당 9000원인 백반 메뉴부터 3만5000원짜리 정식까지 다양한 한정식 메뉴를 파는 한정식 식당 업주 이모씨는 "10년간 장사했지만 최근 손님이 가장 적다"며 "비단 오늘만 그런 게 아니라 2~3년간 불경기 때문인지 장사를 계속하기 힘든 수준으로 손님이 줄고 있다"고 토로했다.

◇"각자내기 문화 정착하는 계기 될 것"

여의도 일대에서 만난 직장인들은 앞으로 더욱 '더치페이'를 활성화하는 등 조심하려고 한다는 다짐을 들려주었다.

점심을 먹기 위해 동료들과 나선 국회 공무원 박모씨(31)는 "김영란법이 시행됐는데 전부터 언론에 많이 보도돼 주의하자는 분위기가 주변에 강하다"며 "평소처럼 동료들끼리 각자 계산할 예정이다. 하위직 공무원은 법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박씨는 "친구들도 모두 취직해서 일하고 있는데 밥값은 각자 계산하자는 분위기가 강하다"며 "만일 누군가에게 얻어먹는 일이 생긴다면 3만원 미만인지 꼭 확인하겠다는 우스개소리도 한다"고 말했다.

팀 직원들과 함께 점심식사를 하러 나온 최모씨(38)는 김영란법 적용 대상이 아니더라도 각자 계산하는 문화가 확산될 것 같다고 말했다.

최씨는 "후배들과 밥을 먹으면 자주는 아니더라도 가끔 내가 계산하곤 했는데 법에 저촉되든 안 되든 그런 일은 이제 없을 것 같다"며 "후배들한테 미움받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영란법으로 사회가 더욱 투명하고 건강해진다는 측면에서 취지는 좋게 생각한다"면서도 "피해를 볼 분야가 있다는 것은 안타깝다"고 말했다.

법 시행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시민들도 많았다. 잘못된 접대문화를 개선하고 더치페이를 정착하자는 법 취지가 사람간의 만남조차 가로막는 것처럼 알려지는 것은 잘못이라고 말한다.

서울의 한 구청 홍보 관계자는 "김영란법이 시행됐지만 오늘도 점심에 기자들과 식사 약속이 있다"며 "고급음식이 아니라면 한 끼 식사하는 정도는 법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광화문 근처에서 만난 회사원 박모씨(38)는 "3만원 미만으로 접대하라는 게 아니라 식사할 때 각자 돈을 내라는 게 법의 취지인데, '영란정식' 등 3만원 미만 메뉴가 나오는 걸 보면 씁쓸하다"고 말했다.

이어 "김영란법 때문에 사람을 못 만난다는 것도 어불성설"이라며 "더치페이하면 3만원이든 5만원이든 못먹을 이유가 없다. 김영란법이 만연한 접대문화를 개선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한 2년차 일간지 기자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김영란법 통과에 큰 불편함을 느끼지 못한다"면서 "밥 한 끼 먹는데 3만원 이상 메뉴를 먹는 일은 기자에게도 흔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hm3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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