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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현, 여당대표 최초로 단식 투쟁…정치인 단식 잔혹史

권위주의 시절엔 '저항' 산물…단식투쟁 성격도 변해
한나라당 野 시절 최병렬, '노무현 측근 특검' 단식

(서울=뉴스1) 김영신 기자 | 2016-09-26 16:47 송고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 당 대표실에서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의 해임건의안 의결에 항의하며 단식 농성을 벌이고 있다. 이 대표는 이날 의원총회에서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 당 대표실에서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의 해임건의안 의결에 항의하며 단식 농성을 벌이고 있다. 이 대표는 이날 의원총회에서 "정세균 의장이 국회의장직을 사퇴할 때까지 무기한 단식농성을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2016.9.26/뉴스1 © News1 송원영 기자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26일 야당의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결의안 단독 처리에 반발, 정세균 국회의장의 사퇴를 촉구하며 무기한 단식에 돌입했다. 집권여당 대표가 단식투쟁을 벌이는 것은 헌정 사상 첫 사례로 알려진다. 
당내에서 초·재선 그룹을 중심으로 단식투쟁론이 제기됐는데, 이 대표가 이날 의총에서 자신이 총대를 메겠다고 나섰다는 후문이다. 당대표가 직접 나서야 투쟁의 결기를 높이고 여론을 한층 환기시킬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듯하다.

이 대표의 단식에 대해 시작부터 전망은 엇갈린다. 야권을 중심으로 집권여당의 책무를 저버린 쇼에 불과하는 혹평이 제기된다. 반면 수(數)로 밀어붙이는 거대 야당의 정치적 공세 실상을 단식을 통해 폭로하면서 지지층을 결집시키고 주도권을 잡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이 대표는 단식 기한을 "정 의장이 사퇴할 때까지"라고 밝혔으나 역대 선례를 보면 최대 20일 안팎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높다.

거슬러 올라가면 정치인의 단식은 권위주의 시대 민주화 운동의 상징과도 같은 방식이었다.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83년 신군부가 자신의 정치활동을 금지시키고 가택 감금을 한 것에 저항해 23일 간 단식 투쟁을 했다.
김 전 대통령의 단식이 일주일을 넘어가며 민주화 바람이 거세지자 전두환 정권은 김 전 대통령을 강제로 병원에 입원시켰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은 병원에서도 단식을 이어갔다.

김 전 대통령은 단식 투쟁 끝에 가택연금 해제라는 결과를 얻었고, 이 단식은 1987년 직선제 개헌으로까지 이어지는 데까지 기여했다.

 야당 지도자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이 1983년 5월 18일 부터 6월 9일까지 민주화 5개항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단식 농성중일 때 모습. 김덕룡 전 장관 등 민주화 투쟁 동지들이 곁을 지키고 있다. (김영삼 대통령 기록관)  © News1 
 야당 지도자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이 1983년 5월 18일 부터 6월 9일까지 민주화 5개항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단식 농성중일 때 모습. 김덕룡 전 장관 등 민주화 투쟁 동지들이 곁을 지키고 있다. (김영삼 대통령 기록관)  © News1 

김 전 대통령이 정권을 잡고 1995년 전두환 전 대통령이 내란죄로 구속되자 단식의 공·수가 바뀌었다. 전 전 대통령은 95년 옥중에서 내란죄 구속에 대한 항의 표시로 20여일 간 단식했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 역시 단식 투쟁으로 우리 역사를 바꾸는 데 일조했다. 김 전 대통령은 평민당 총재였던 1990년 여권이 추진하는 내각제 반대, 지방자치제 실시를 내걸고 13일 간 단식 농성을 했다. 이를 기폭제로 이후 지방자치제가 도입됐다.

단식은 이렇게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 야당 지도자들이 주로 여당과 정권에 저항하는 강력한 투쟁수단이었다. 지지층의 투쟁의지를 고취시키면서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키는 극단적인 방법이었던 것이다.

민주화가 이뤄지면서 정치인의 단식은 정권의 정책에 대한 반대 투쟁으로 그 성격이 바뀌었다.

대표적으로 2007년 당시 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원과 천정배 의원, 민주노동당 문성현 대표 등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반대하는 단식 투쟁을 벌였다.

문성현 대표는 26일, 천정배 의원은 25일 간 단식 투쟁을 이어가면서 과거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의 단식 기록을 갱신했다.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은 야당시절이었던 2003년 당시 최병렬 대표가 반(反)노무현 정부 성격의 단식 투쟁을 했었다. 최 대표는 2003년 11월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비리에 대한 특별검사제(특검) 도입을 촉구하며 17일 간 곡기를 끊었다.

이때 김영삼 전 대통령이 최 전 대표를 찾아와 "굶으면 죽는다"는 말을 남긴 일화가 유명하다. 최 전 대표의 단식은 그가 단식 중 곰국을 먹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더욱 이슈몰이를 했다. 보도에 나온 곰국은 실제로는 쌀뜨물인 것으로 확인되는 해프닝도 있었다.

한나라당 소속으로 처음 단식 농성을 벌인 사람은 박종웅 전 의원으로 알려져 있다. 박 전 의원은 2001년 '언론탄압 중단'을 요구하며 20일 간 단식을 했다.

한나라당 시절인 2005년 전재희 의원이 행정도시법 국회 통과에 반대하며 13일 간, 2007년에는 이회장 전 총재의 비서실장 출신인 권철현 전 주일대사가 이 전 총재의 대선 출마 포기를 촉구하며 8일간 단식농성을 벌였다.

한나라당 내 소장파였던 정태근 전 의원은 2011년 한미 FTA 비준동의안을 자당이 단독으로 처리하려 하자, 이에 반기를 들고 여야 합의를 촉구하며 열흘 간 단식했다. 정 전 의원은 단식농성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한나라당을 탈당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새정치민주연합 시절인 2014년 8월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 농성을 하고 있다. © News1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새정치민주연합 시절인 2014년 8월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 농성을 하고 있다. © News1 

야당으로 건너가보면,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2014년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26일 간 단식 투쟁을 했다.

문 전 대표는 새정치민주연합 평의원이었던 당시 광화문 광장에서 '유민 아빠'라 불리는 김영오씨의 곁을 지키며 동조 단식을 했다. 

문 전 대표의 단식에는 사회 갈등을 조장하고 단식을 자신의 정치적 몸집 불리기 수단으로 이용한다는 비난과 유가족의 고통을 함께 나눈다는 긍정적 평가가 공존했었다.

이밖에 더민주 소속 이재명 성남시장은 올해 6월 박근혜정부가 지방정부를 말살하려 한다며 11일 간 단식 투쟁을 했고,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올해 7월 홍준표 경남지사 사퇴를 촉구하는 인사들의 단식 행렬에 하루동안 동참했다.

정치인 최장 단식기록은 현애자 전 의원이 보유했다. 민주노동당 소속이었던 현 전 의원은 2007년 제주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해 27일간 단식투쟁을 벌였다.

이렇게 선례에서 보듯 단식은 반대 정파나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는 극단적 방법으로 이용돼 왔다. 주로 지지층을 겨냥한 정치적 행위의 성격이 크다.

이런 맥락에서 이정현 대표가 새누리당과 전신정당을 통틀어 '대야투쟁' 방법으로 단식을 선택한 것은 '여소야대' 처지를 그대로 드러낸다.

최병렬 전 대표가 노무현 전 대통령 측근비리 특검 촉구 단식을 할 때 한나라당은 야당이었고, 여당이 된 이후 한나라당 내의 단식 역시 야당에 대한 투쟁은 아니었다.

20대 국회가 여소야대로 재편되며 여야는 모두 '협치'를 다짐했다. 그러나 20대 국회 출범 이후부터 여야는 무한 대치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집권여당의 국회 보이콧에 이어 여당 대표의 단식투쟁까지 등장하면서 여야 협치는 여전히 요원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eriwh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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