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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슈틸리케 읽기, 자신도 자식도 꾸짖은 고단수 소통법

(서울=뉴스1) 임성일 기자 | 2016-09-26 15:42 송고
울리 슈틸리케 축구대표팀 감독이 26일 서울 종로구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B조 3~4차전에 나설 축구대표팀 엔트리를 발표한 후 취재진의 질문을 경청하고 있다. 2016.9.26/뉴스1 © News1 이동원 기자
울리 슈틸리케 축구대표팀 감독이 26일 서울 종로구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B조 3~4차전에 나설 축구대표팀 엔트리를 발표한 후 취재진의 질문을 경청하고 있다. 2016.9.26/뉴스1 © News1 이동원 기자

2014년 가을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사령탑에 부임한 후 지난 2년 동안 내내 달콤한 시간을 보냈던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처음으로 맛보는 시련의 시간을 극복하기 위해 꺼내든 카드는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외부의 조언을 수용하는 열린 자세였다.
언뜻 의기소침 웅크린 것으로 보이지만 어쩌면 이게 정공법이다. 빠르게 반성했고 동시에 자신의 자식(선수)들을 꾸짖으면서 새로운 출발을 다짐했다. 다시 힘을 합쳐 전진하자면서, 팬들을 향해 먼저 손을 내밀었다. 굉장한 용기다.

오는 10월6일 카타르(수원월드컵경기장), 11일 이란(테헤란 아자디스타디움)과의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3, 4차전을 준비하는 한국 축구대표팀의 슈틸리케 감독이 26일 축구회관에서 '23명'의 소집명단을 발표했다.

지난 9월 중국, 시리아와의 1, 2차전은 20명으로만 꾸려졌다. 당시 슈틸리케 감독은 몇 가지 이유를 들면서 굳이 23명을 부를 필요가 없다는 뜻을 밝혔는데 1승1무라는 좋지 않았던 결과와 맞물려 그때의 결정은 적잖은 질타를 받았다. 때문에 카타르와 이란으로 이어지는 10월 2연전은 퍽이나 부담스러운 조건이었다.

'숫자'부터 궁금했다. 다시 20명을 호출할 수도 있었던 일이다. 하지만 슈틸리케 감독은 23명을 뽑았고, 그중 K리거 8명을 불러들이면서 해외파와의 비율도 달리 만들었다. 명단을 공개한 슈틸리케 감독은 "솔직히 고백하겠다. (9월 2연전)그때 내가 3가지 실수를 범했다"고 스스로를 향해 채찍을 들었다.
그는 ▲시리아전 후 좋지 않은 잔디 상태를 언급해 핑계를 찾는듯한 인상을 줬던 것 ▲경기 후반부 선수들 체력이 떨어졌을 때 황의조를 투입할 타이밍을 놓쳤던 것 ▲그리고 무엇보다 23명을 뽑을 수 있었음에도 20명만 선발해 불필요한 논란을 자초했던 것이 잘못이었다고 인정했다. 흔치 않은 그림이었다.

슈틸리케 감독이 던진 자성의 목소리는, 사실 여러 루트를 통해 언론과 팬들이 꼬집은 지적사항과 궤를 같이한다. 중동 특유의 떡잔디와 시리아의 매너 없는 '침대축구'를 말하기에는 한국의 경기력 자체가 좋지 않았고, 시리아전을 위해 중국전 후 급히 불러들인 황의조를 출전시키지 않았던 것은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이었다는 질타가 있었다.

특히 최종예선이라는 전쟁을 치르는 감독이 선수와 선수의 소속팀 사정을 배려해 부르지 않았던 슈틸리케 감독의 우유부단한 결정은 제법 파장을 일으켰다. 요컨대 그 지적을 다 수용한 사과였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심지어 "지난달에 곽태휘를 부르지 않았던 것도 내 실수다. FC서울에 막 입단했던 때라 몸을 만들라고 배려한 것인데, 돌이켜보면 이것도 잘못됐다. 곽태휘처럼 노련한 선수가 중국전이나 시리아전에 있었다면 중심을 잡아줬을 것이다. 선수단 내부의 규율이라는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다. 경기에 뛰든 안 뛰든 불렀어야했다"는 고백도 전했다. 잘 쓰이지 않던 '규율'이라는 단어는 팀의 에이스 손흥민을 언급하면서 나온 것이다.

슈틸리케 감독은 최근 토트넘에서 좋은 활약을 보이고 있는 손흥민에 대한 평가를 묻는 질문에 "경기력은 충분히 좋다. 하지만 선수에 대한 평가는 경기외적인 면도 포함되어야하는 것"이라면서 "그의 불손한 태도가 바뀌지 않는다면 곤란하다. 지도자는 팀을 생각해야한다"는 의미심장한 발언을 덧붙였다. 중국전에서 종료 직전 교체아웃될 때 불만을 품고 물병을 크게 걷어찼던 것을 염두에 둔 발언이었다. 
1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1차전 대한민국과 중국의 경기 후반 축구대표팀 손흥민이 교체되자 슈틸리케 감독에게 서운함을 표시하고 있다. 2016.9.1/뉴스1 © News1 민경석 기자
1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1차전 대한민국과 중국의 경기 후반 축구대표팀 손흥민이 교체되자 슈틸리케 감독에게 서운함을 표시하고 있다. 2016.9.1/뉴스1 © News1 민경석 기자

슈틸리케 감독은 "손흥민 뿐만 아니라 기성용도 최근 스완지에서 감독과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고 몇 개월 전에는 이청용도 그랬다"면서 "이런 사건들이 자꾸 나오면 자신들에게도 나쁘지만 한국 축구의 위상에도 도움될 게 없다. 경기장 안에서나 밖에서나 어울리는 행동을 해야 할 것"이라며 쓴 소리를 덧붙였다. 그저 사람 좋은 이미지였던 슈틸리케의 과거를 생각하면 분명 이례적인 발언이었다.

비딱하게 접근할 수도 있는 일이다. 최근의 좋지 않은 분위기와 경기력을 선수 탓으로 돌리려한다고 바라볼 수도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곱씹으면 달리 읽힌다. 뒤숭숭한 분위기를 빨리 다잡기 위해 슈틸리케 감독이 먼저 회초리를 든 모양새다. 이를테면, "철없는 자식 내가 잘 타이르겠으니 너그럽게 지켜봐달라"는 부모의 행동 같은 그림이었다. 손흥민을 향한 비난이 확장되는 것을 막기 위해 사전에 손 쓴 노림수로 읽힌다.  

부임 후 처음으로 위기 앞에 선 슈틸리케 감독은 이럴 때일수록 똘똘 뭉치는 단합의 힘이 필요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단합의 대상은 비단 선수들만이 아니다. 팬들이나 언론도 슈틸리케호의 승선원이었다.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대립각을 세운 채 소신과 철학을 그대로 가져갈 수도 있었던 상황이다. 하지만 문을 열어놓고 "좋은 비판은 받아들이겠다"면서 부족했던 점을 인정했다. 선수들에게도 지금은 경기력으로 말해야한다고 암묵적 메시지를 줬다. 보다 생산적인 일에 에너지를 쏟겠다는 고단수 소통법이다.


lastun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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