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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에 인권조례가 없는 이유를 들여다보니…

특정 종교 단체 “부결시 낙선운동 벌일 것” 시의회 압박 정황
시민사회단체 “반인권도시 만들기에 시의회가 앞장” 비난

(인천=뉴스1) 주영민 기자 | 2016-09-12 17:45 송고
인천시의회 본회의 모습.© News1

인천시의회가 상임위원회를 통과한 ‘인권보장 및 증진’에 관한 조례를 본회의에서 부결하면서 외압설에 휘말렸다.
조례안 가결을 반대한 특정 종교 단체들이 시의회를 압박하면서 부결됐다는 시의원들의 증언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인천시의회는 지난 9일 234회 임시회 마지막 본회의 표결과정에서 이 조례안을 부결했다. 재석의원 30명 중 조례안 제정에 찬성한 의원은 11명이었던 반면 반대한 의원은 15명이었다. 4명은 기권했다.

인권 조례안은 보편적인 인권사항을 정의하고 있다. 2012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인권 기본 조례 표준안’을 마련, 전국 지방자치단체에 관련 조례 제정을 권고하면서 입법이 추진됐다. 2013년 경상북도가 처음 제정한 이후 현재는 인천을 제외한 16개 광역자치단체가 모두 운용하고 있다.

인천시의회의 경우 올해 1월 더불어민주당 이용범(계양3) 시의원 등 6명이 발의했다.
인천은 인천국제공항이 있어 이슬람문화권 국민들을 비롯한 외국인의 이용이 많아 이들에 대한 내용도 포함된 인권 조례안을 제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었다.

특히 내전으로 인천공항에 온 뒤 난민 입국을 요청했지만 거절돼 송환대기실에서 수개월간 체류한 시리아 난민 문제 등이 국제적인 관심을 받으면서 조례안 제정의 필요성에 힘을 더했다.

하지만 특정 종교 단체들이 반발하자 성소수자·국제인권과 관련된 문구들을 삭제하는 등 2차례의 수정작업을 거쳤다.

종교 단체들이 수정을 요구한 건 인권을 정의한 2조 1항 ‘인권이란 헌법 및 법률에서 보장하거나 대한민국이 가입·비준한 국제인권조약 및 국제관습법에서 인정하는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 및 자유와 권리를 말한다’는 문구였다.

이들 단체들은 이 문구에서 ‘법률’과 ‘국제인권조약 및 국제관습법이 보장하는 가치’라는 문구를 빼주길 요구했고 시의회는 이를 받아 들였다.

결국 조례안은 2조1항은 ‘인권이란 헌법이 보장하는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 및 자유와 권리를 말한다’로 수정됐다.

수장작업을 마친 인천의 인권 조례안은 상임위원회를 통과하면서 조례 재정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됐지만 표결 전날 이들 종교 단체들이 ‘인권 조례안 제정 자체를 찬성할 수 없다’며 입장을 번복하면서 사태가 급변했다.

이들은 인천시의회 의원들을 개별적으로 찾아가 “조례안이 가결되면 조례 통과에 찬성했던 시의원들에 대해 다음 선거에서 낙선운동을 펼치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표결 당일에도 이들 종교단체들은 100여명의 관계자들을 시의회 본회의장 입구들을 에워쌌으며, 이 가운데 30명이 방청석을 가득 채워 표결을 지켜봤다.

이용범 의원이 “조례 제정을 반대하는 단체 등의 입장을 반영해 내용을 수정한 뒤 상임위 심사를 통과한 안건”이라며 조례 제정 필요성을 강조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오히려 조례안을 공동발의한 새누리당 한 시의원이 나서 “이번 조례안 통과는 동성애 등을 허용한다는 것으로 인식될 수 있다는 논란이 빚어지고 있다”며 “조례로 인해 다양한 사회문제가 야기될 수 있다는 우려가 큰 만큼 조례안 통과를 반대한다”고 맞받아치는 광경도 벌어졌다.

결과가 부결로 나오자 조례안을 찬성한 일부 시의원들은 시의회가 종교단체에 휘둘린 모양새가 됐다며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조례안을 찬성한 한 시의원은 “이번 조례안을 상정할 때도 일부 종교단체의 거센 반발 때문에 보편적인 인권사항이 빠졌다”며 “인권조례안 부결은 시의원들이 본회의 전날 특정 단체들로부터 낙선운동 등을 불사하겠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 몸을 사린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실제 조례안 부결 이후 본회의장 방청석에서 참관하고 있던 종교단체 관계자들은 회의장을 썰물처럼 빠져나갔으며, 각 시의원들에게 “의원들을 위해 기도 많이 하겠다”는 내용의 문자를 보내기도 했다.

박원일 인천평화복지연대 사무국장은 “이번 인권 조례안 부결사태는 성소수자, 외국인뿐만 아니라 노동자, 자영업자. 학생, 공직자 등 우리 주위의 모든 사회구성원들과 관련 인권 문제마저 외면한 반인권적 처사”라며 “반인권도시 인천을 만드는 데 시의회가 앞장선 격”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조례안을 대표 발의한 이용범 의원 등은 이전 조례안의 문제점을 수정·보완해 다시 발의할 방침이다.


ymj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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