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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받고 재판'한 판사 구속…'유전무죄' 드러나 당황한 법원

대법원, 사과문 발표…양승태 원장 대국민사과 예정
"법원이 과거와 달라졌다 믿었는데"…법원내부 침통

(서울=뉴스1) 김수완 기자, 안대용 기자 | 2016-09-02 23:01 송고 | 2016-09-02 23:32 최종수정
최근 판사·검사·변호사등 법조비리가 연이어 터지는 가운데 1일 서울 서초구에서 바라본 법조타운의 모습이 보이고 있다. (오른쪽 부터 서울중앙지법, 서울중앙지검, 대검찰청, 대법원) 2016.9.1/뉴스1 © News1 황기선 기자
최근 판사·검사·변호사등 법조비리가 연이어 터지는 가운데 1일 서울 서초구에서 바라본 법조타운의 모습이 보이고 있다. (오른쪽 부터 서울중앙지법, 서울중앙지검, 대검찰청, 대법원) 2016.9.1/뉴스1 © News1 황기선 기자

현직 부장판사가 유력 기업인으로부터 억대 뒷돈을 받고 재판을 해준 혐의로 구속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세간에서 의혹 수준으로만 떠돌았던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실체가 드러나자 법원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인천지법 소속 김수천 부장판사(57·사법연수원 17기)가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 등 혐의로 검찰에 구속된 2일, 대법원은 곧바로 공식 입장을 통해 "누구보다도 높은 수준의 윤리의식과 도덕성을 갖추어야 할 법관이 구속에 이를 정도로 심각한 혐의를 받고 있는 점에 대해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면서 "비통한 심정으로 깊은 유감과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또 양승태 대법원장이 6일 전국 법원장 긴급회의를 열고 직접 대국민사과도 할 예정이다. 대법원장의 대국민사과는 이용훈 대법원장이 '법조 브로커 김홍수씨 사건'에 연루된 조관행 전 부장판사가 구속된 뒤 공식 사과한 이후 10년 만이다.

대법원이 이 같은 신속한 조치를 내린 데는 최근 법조 비리로 인한 국민들의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팽배한 데다 재판을 이용해 금품을 받은 김 부장판사의 혐의가 다른 범죄보다 중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된다.

김 부장판사가 받고 있는 혐의는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51·구속기소) 측으로부터 레이지로버 차량 등 1억7000만원대 뇌물을 받고 정 전 대표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재판을 해줬다는 혐의다. 이른바 '재판 청탁'을 받은 셈이다.

전·현직 부장판사가 뒷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징역 3년을 확정받은 최민호 전 판사(44·31기)의 경우 사채업자 최모씨(62)로부터 1억6864만원을 받았다는 혐의를 받았다. 또 정 전 대표 사건으로 최근 재판에 넘겨진 법관 출신 최유정 변호사(46·27기)는 재판 로비 명목의 부당 수임료 100억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은 법관으로 임용되기 전·후에 거액을 건네받았을 뿐 법복을 입은 상태에서 받지는 않았다. 또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재판과 관련해서 돈을 받은 것도 아니었다.

실제 김 부장판사가 돈을 받고 개입한 것으로 알려진 정 전 대표 관련 사건은 다양하다.

검찰에 따르면 우선 김 부장판사는 정 전 대표가 상습도박 사건으로 항소심 재판을 당시 항소심 재판부에 선처를 부탁해주겠다는 명목으로 금품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또 정 전 대표가 대표로 있던 회사인 네이처리퍼블릭에 피해를 입힌 업자들에 대한 재판을 직접 맡아 이들을 엄벌에 처하기도 했다. 김 부장판사는 네이처리퍼블릭 인기제품 '수딩젤'을 위조· 유통한 업자에 대한 재판의 재판장으로서 업자들에게 1심보다 높은 형량을 선고했고, 정 전 대표의 '엄벌 로비'가 통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서 '재판의 공정성'을 자신해왔던 법원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현직 부장판사가 단순히 뒷돈만 받은 게 아니라, 뒷돈을 받고 재판 방향까지 바꿔준 정황이 드러나면서 법원 재판에 대한 신뢰도가 바닥을 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이런 난처한 처지를 드러내듯 대법원은 김 부장판사가 구속되자마자 곧바로 사과문을 발표했다.

당초 '엄벌 로비' 의혹이 일었을 당시 적극적으로 김 부장판사 감싸기에 나섰던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법원은 의혹이 보도되자마자 곧바로 자료를 내고 "유사 사건과 비교해보면 김 부장판사가 비정상적으로 높은 형을 선고한 것은 아니다"며 검찰 수사에 우회적으로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오는 6일 전국 법원장 회의를 긴급하게 소집하고 직접 대국민사과를 하기로 했다. 매년 봄과 가을, 두 차례에 걸쳐 정기적으로 열리는 전국 법원장 회의를 제외하면 이번처럼 긴급하게 회의를 소집하는 일은 드물다.

회의에서 논의되는 안건은 '이번 사태의 근본적 원인을 규명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수립하기 위함'이다. 전국 각지의 법원장 전원이 이번 회의에 참석한다.

하지만 법원의 이 같은 발빠른 대처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건으로 인해 떨어진 법원에 대한 신뢰도가 회복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이날 김 부장판사 구속 소식을 들은 인천시민 문모씨(47)는 "법원이 과거와 달라졌다고 믿어 왔는데 판사가 금품수수 후 편파적 판결을 했다니 너무나 충격적이다, 부패의 최전선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 지역의 한 변호사는 "변호사로서 적어도 재판만은 법관의 직업적 양심에 따라 철저히 공정하게 진행될 것이라는 신뢰를 가지고 일해왔다"며 "이번 사건으로 그 신뢰는 무너졌지만 여전히 일부 판사의 일탈일 것이라 믿고 싶다"고 말했다.

김 부장판사의 혐의가 속속 드러나고 구속까지 되자 일선 판사들은 당혹감과 침통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서울 지역의 한 판사는 "최 전 판사에 이어 두번째인가 그런데, 처음엔 설마 그랬겠나 하다가도 이제는 침통한 분위기"라며 "법관이 뒷돈을 받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퍼지면 그건 정말 문제다, 법원과 판결에 대한 신뢰가 걱정되고 다들 자긍심을 가지고 일하는데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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