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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청문회-녹취록①]첫날(1일)…정부의 미흡한 진상규명 등

(서울=뉴스1) 박동해 기자 | 2016-09-02 18:10 송고
편집자주 1~2일 진행된 4·16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의 제3차 청문회 첫날 발언의 주요 부분을 정리했다. 녹취록에서 언급된 직책은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직책이다.
지난 1일 오전 서울 마포구 동교동 연세대학교 김대중 도서관에서 열린 세월호 특별 조사위원회 제3차 청문회에서 세월호 유가족들이 청문회를 지켜보고 있다. 2016.9.1/뉴스1 © News1 박재만 인턴기자

◇4.16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제3차 청문회 첫째날 녹취록
장소 : 서울시 마포구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
일시 : 2016년 9월 1일 오전 9시30분 ~ 오후 6시50분

◆이석태 위원장 인사말

네 안녕하십니까.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윈회 위원장 이석태입니다. 지금부터 4.16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윈회 제3차 청문회 시작하겠다. 청문회 시작에 앞서 간단히 말씀드리겠다. 지난 두번의 청문회와 달리 세번째 청문회 열리는 김대중 도서관 지하국제회의장은 보시다시피 아주 협소하다. 그래서 방청석은 물론 기자석도 장시간 앉아있기 아마 힘들지 않을까 그렇게 염려된다. 그럼에도 특조위 사정상 형편상 바꾸지 못했음을 양해말씀드린다. 또여기 오신 분들 광화문 농성장에서에서 단식 중인 유가족분들계신 것인데 이렇게 불편한 곳 모시게 되서 송구스럽다.

더욱이 이번 청문회에서 저희는 마이크 몇개 외에는 제대로 된 방송 장비를 가지지 못했다. 청문이라고 함은 글자 그대로 충분한 설비를 통해 정확하게 듣고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긴요합니다. 그렇지만 저희는 정부로부터 아무런 예산의 뒷받침 받지 못해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이점 또한 양해 부탁드린다.

그러나 저희는 이런 물리적 조건의 불비가 세월호 참사 진실을 밝히는데 장애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모두가 진지하고 정숙한 자세로 청문을 통해 밝혀지는 증거와 사실 귀 기울일 때 진실은 보다 직접적으로 우리들 각자 마음에 와 닿을 것이라고 저는 믿는다.

아시다시피 지난 6월 30일 자로 세월호 참사의 진실규명 활동을 더이상 진행하지 말라고 했다. 조사자원들의 급여와 출장비 지급 등 최소한의 조사활동비 지급을 중단시켰고 재직 증명서 발급을 거부하는 등 조사관 신분을 위협해왔다. 또 이것에 앞서 특조위는 청문회 개최 장소로 보다 넓은 사학연금공단 대강당을 사용하기로 하고 대관료까지 지불했는데 돌연 취소당했다. 심지어 특조위 운영을 도와야 할 해수부는 거꾸로 이번 청문회가 특별법에 벗어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아무런 법적 근거 없는 것으로 우리는 이런 부당한 해석이 결국 오늘 출석하지 않은 증인들의 불출석을 유도하고 있다고 본다. 사실 그동안 진상 규명 매진해야 할 특조위 조사관들은 조사활동에 지장을 준 정부의 온갖 방해로 커다란 고통 받아왔다.

지금 이 자리 그동안 특조위가 감내해온 인적·물적인 장애를 굳이 말씀드리지는 않겠다. 다만 저희 세월호 특조위는 이 모든 제약에 굴복하지 않고 오로지 진실을 찾기 위한 여정을 계속해왔다는 것 강조하고 싶다.

그 노력의 결과물로 오늘 제3차 청문회가 양일간 열게 됐다. 이번 청문회 주제 간략히 말씀드리면 세월호 참사 당시 국가는 어떤 조치 취했는지 그 책임 다했는지 몇 개 분야로 나눠 살펴보고자 한다.

아울러 전원구조 오보 등 참사 당시 언론보도와 관련해서 사회의 공기인 언론이 그처럼 일탈한 이유가 무엇인지 또 최근에도 논란이 된 당시의 언론 통제 경위를 들여다볼 것이다.

다만 앞서 말씀드린 사정으로 주요 증인으로 채택된 전·현직 공무원 대다수는 오늘 출석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위원과 증인 직접 대면하는 기존의 청문 방식은 어려울지 모르겠다. 하지만 진실을 드러내는 방식 한 가지만 있는 것은 아니다. 특조위는 유가족과 국민 여러분의 성원에 힘입어 대신 보다 다양한 형식의 청문회 준비해왔다. 청문회에서 방청객 여러분들 여러 심문위원이 제시하는 다종다양한 청문회 방식 즉 동영상과 음성 녹음으로 그리고 PPT 등을 통해 마치 증인이 이 곳에와 답변하는 것처럼 공감할 것이라 믿는다. 거기서 공유되는 진실의 소중한 조각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마지막 주제는 인양문제이다. 온전한 선체인양은 미수습자 수습과 참사 원인을 밝히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 지금 현재도 120개가 넘는 천공을 포함 세월호에 많은 구멍 뚫리고 있다. 급기야 해수부는 인양 후 세월호를 절단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해수부 계획에 의하면 선체 상부 조타실부터 선미 끝 방향타에 이르는 배 운영계통 전부와 각종 배관 배선 완전히 다잘라 버린다는 것으로, 이는 선체 정밀조사를 영원히 불가능하게 만들 수 있다. 이번 청문회를 통해 이런 해수부 조치 용납 할수 없음이 밝혀 질 것이다. 이번 제3차 청문회는 지난 청문회 보다 훨씬 더 어렵게 준비해왔다. 힘든 환경속에서도 특조위 조사관들, 위원들 꿋꿋이 조사 진행해왔다. 이를 통해 조금이라도 더 드러난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실 무엇인지 이번 청문회를 통해서 함께 지켜봐 주실 것을 간곡히 부탁드린다. 감사합니다.

◆유경근 4.16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을 위한 피해자 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 모두진술

오늘 이석태 위원장께서 자세하게 지난 경과 말씀해주셨다. 그 부분 제가 반복하지 않아도 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하다. 오늘 자리가 매우 부족하다. 감사한 것은 1차 2차 청문회와 달리 TBS에서 생중계로 알려주신다고 하니 감사하지만 장소가 비좁고 시설 열악해 어려움이 있다. 방청 하러 오신 분들 가족, 시민 여러분들 장시간 방청 불편하실 것이다. 결정적으로 요청한 수많은 증인 중 일부만 참석할 것이라는 예상 때문에 마음도 불편하실 것이다. 그러나 불평하지 마십시오. 앉은 의자가 불편하다고 불평하지 마십시오. 이것이 지금 이 사회의 현실이다. 안전한 사회를 열망하는 모든 국민들의 뜻이 이처럼 철저히 방해받고 가로막히고 있는 현실이다.

바로 이런 현실에서 우리는 다시 시작해야 한다. 불평으로 이겨 낼 수 없다. 극복하기 위해서 현실을 이겨 내고 먼저 보낸 우리 아이들과 가족들 앞에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는 이 현실 극복하기 위해 마음을 모아야 할 것이다. 그런 뜻에서 어려운 현실에서 제3차 청문회 열어 주신 특조위 이석태 위원장을 비롯한 모든 상임 비상임위원분들 직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경의를 표한다. 특조위는 2014년 11월에 제정된 세월호참사진상규명특별법에 따라 만들어진 독립적 국가조사 기구. 특조위의 임무는 세월호 침몰 원인 밝히고 승객 구조하지 않은 이유 밝히고 그 책임 누구에게 있는지 밝혀 다시 이런 참사 일어나지 않는 안전한 사회 만들기 위한 근본적 대책을 수립하는 데 있다.

그러나 지난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철저하게 방해받아 왔고 정부 여당으로부터 조직적으로 집요한 방해를 받아 왔다. 이제는 당연히 특조위가 해야 할 선체 조사조차 하지 못할 상황에 이르렀다. 그러나 지금까지 수많은 방해에도 불구하고 특조위가 꿋꿋하게 자리하고 그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애써올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국민들의 힘 덕분이다.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알고 싶어 하는 그리고 안전한 사회 만들겠다는 시민들의 힘 때문에 여기까지 왔다. 이점 특별조사 위원회 모든 분들은 다시 한번 마음에 새겨 달라.

그래서 아무리 정부가 6월 말로, 9월 말로 특조위를 끝내기 위해 수많은 시도와 방해한다 할지라도 굴하지 말고 오직 저희 피해자들과 국민들 바라보며 끝까지 이 자리 지키고 조사 계속해 달라. 반드시 가족들과 국민들과 특조위 지킬 것이고 특조위를 통해 참사의 진실을 밝혀낼 것이다. 먼저 포기하는 일 없도록 부탁드린다.

한달 전 특조위는 광화문에서 단식 농석 시작했다. 처음 위원장 단식 시작하면서 하신 말 지금도 제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다. "나는 세월호 이준석이처럼 배와 승객을 버리고 가는 선장이 아니다", "나는 이 특조위를 끝까지 특조위라는 배를 지켜낼 것이다 그런 선장이 될 것이다" 말씀하신 것 마음속 깊이 담고 있다. 앞으로도 계속 끝까지 그 마음 변치 않고 직원들과 함께 그 마음 사수해주시길 바란다. 청문회 이틀 동안 같이 지켜보고 같이 청문하겠다.

이 청문회 통해서 지난 청문회 때 밝혀졌던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 청해진 지시했다는 사실, 그리고 이 정부 해경은 승객구조를 위한 어떠한 지시도 조치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 해경은 AIS 항적도 또는 TRS 교신 기록 등을 조작 편집한 채로 검찰에 제출했고 검찰은 그것 기반으로 수사 했었다는 점. 그리고 세월호와 국정원 간에 긴밀한 모종의 관계 있었다는 직·간접 적 증거들. 이외에도 수많은 사실들이 드러난 바 있다. 이 청문회에서도 그런 사실 확인해 주시고 또 다른 증언·증거 통해 참사 진실 국민들에게 낱낱이 밝혀 달라고 부탁드린다.

◆세월호 CCTV 관련 정부조치 부실 및 의혹 사항(1세션)

@류희인 특조위원->장진홍 해군 해난구조대장(증인 미참석으로 증언 내용을 통한 문답 진행)

-CCTV의혹 관련 확인하겠다. 여러분 알다시피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관련해서 선내 상화 확인할 수 잇는 영상 자료와 영상 기록 장치 DVR은 진상 규명있어 매우 중요하다. CCTV 저장장치 수거 제대로 이뤄 졌는지 수거 이후에 관리 등이 제대로 이뤄졌는지를 출석하신 증인 참고인 통해 확인하겠다.

세월호 선체 64개 CCTV있고 선체 내부 곳곳을 볼 수 있다. 그리고 CCTV화명 영상은 동시에 3층 안내 데스크 안에 설치 되어 있는 영상 저장장치 내에 두개 하드에 기록된다.

해경과 해군은 참사 후 2달이 지난 6월 22일에야 이 저장장치를 회수하는 작업을 실시한다. 비행기 블랙박스에 해당되는 선박 운행 기록 장치는 VDR이라고 하는데 선박 운행 관련된 주요정보 자동 저장돼 선박사고 원인 규명하는 중요한 단서가 나온다. 해경 주파수 공영 통신 TRS녹취록 보면 해경도 희생자 수습과 동시에 이 자료 확보라고 했다.

세월호에는 선박 블랙박스라는 VDR장치 설치돼 있지 않았다.  과거와 같으면 응당 세월호에 이 장치 설치 운영 되야 했지만 이명박 정부 규제 완화 따라서 선택 사항됐다. 어찌 됐든 VDR 운행 장치 없다면 참사당시 선체 내에 상황 파악할수 있는 DVR 장치를 확보해야 하는데 2달 지나서야 이 중요한 DVR장치 확보가 이뤄졌다.

이러한 일들이 국가기관에서 이뤄졌다는 조치다. 어떤 측면에서도 이해되지 않는다. 이 의문점 관련해 증인들을 이 자리 불러서 관련 사항 세밀히 확인해야겠지만 청문회 참석하지 않았다. 이 내용 진술 조서로 갈음할 수밖에 없겠다. 이점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장진홍 해난구조대장의 진술조서 내용을 대독하는 형식으로 청문회 진행하려고 한다. 증인은 수색과정에서 어떤 임무했나?
▶매일 오전 9~10경 해경 지휘 민간세력과 같이 회의를 통해 수색 구역 구분하고 해당 구역만큼 가용한 해군 세력 잠수 지시·감독했다.

-6월22일 장치 DVR 인양한 최초 경위는?
▶오후에 이춘재 국장(해양경찰청 경비안전국장)이 해군 측 잠수구역으로 와서 "선실 CCTV 수십개 있다. 그것을 저장하는 장치있을 것이다. 그 장치 중심으로 우선적으로 수색해 인양해 달라"고 요구했다

-매일 아침 회의에서 수색계획, 작업 구역 하달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이날 만은 오후에 이춘재 국장이 해군 작업 바지선에 와서 구두로 증인에게 DVR장치 수거를 요청했다. 장대장 역시 이 국장이 특정한 물건을 찾아달라고 요구 한 것은 유일했다고 기억하고 있다. 장 대장은 이춘재 국장 수색 요구 받고 어떤조치 취했나?
▶22시 잠수조 투입하고 안내데스크 인근에서 노트북을 인양했다

-노트북 가지고 수면으로 나왔나?
▶노트북을 가지고 인양 했는데 그게 DVR인줄 알고 인양했다.

-해경 측은 어떤 반응
▶해경 관계자들 잠수 동영상 함께 보고 있었고 해경 측 주변 세밀하게 수색해 달라는 재요청을 했다.

-이 국장 요청에 따라 심야 작업한 잠수팀은 장치 찾기 위해 두차례 작업했다. 제2조를 해군 잠수대는 잠수시켰나?
▶그렇다.

-두번째 잠수조가 DVR 찾게 되나?
▶그렇다.

@류희인->강병기(세월호 생존탑승자)

-종합적으로 말씀드리면 수거 작업 관련 이춘재 국장 등에게 DVR존재를 처음 인지한 시점 언제인지 참사후 2달 넘은 시점에 수거 경위 무엇인지 당일 누구에에 어떤 요청 받아서 해군에 수거 작업 요청했는지 그리고 SSU대장에서 우선 수색 요구하고 추가 작업 요구한 이유 무엇인지 사전 사후에 가족에게 알리지 안고 인양 추진 이유 의혹사항 확인되야 한다.

다음으로 CCTV 관련 의혹 사항이다. 세월호 선내 CCTV 작동시간과 영상 저장하는 영상기록 장치 파일 불일치 한다. DVR 데이터 확인해 보니 08시 30분 59초까지 시간 확인 참사가 진행되는 시간과 차이난다. 이것은 지난 청문회 통해 화면 시간과 기록 시간 간에 15분 20초 차이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영상 기록으로 기록되는 시간은 실제 시간보다 15분 20초 빠르다는 사실 검증한 바 있다.

복구한 DVR 데이터의 30분은 실제시간 08시46분 해당 한다. 위원회는 이이후에 초기에는 이게 영상으로 확인 못해 파일 데이터를 기술 도움을 받아서 추가 복원을 했다. 08시 32분에서 08시48분 영상 화면은 DVR에 일치하게 나타났다.

참고적으로 복구한 영상을 보면은 참사와 관련된 이상 징후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데 실제시간 48분까지 영상 기록 사실과 선내 이 당시 CCTV영상을 직접 목격했던 일부 생존자 진술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즉 DVR에 저장된 화면보다 훨씬 이후 시간에도 CCTV 화면 나가고 있었다. 이와 관련해서 일반 탑승객으로 탑승했던 강병기 증인에게 몇가지 진술듣겠다. 증인은 평서 세월호 자주 이용했나?
▶1년에 3~4번.

-당시 탑승 목적은?
▶제주 항만청 일하러.

-증인 최초 배가 기울때 어디에?
▶선실 쪽에 있다가 안내실로 갔다.

-화면CCTV보이는 지점?
▶네.

-그걸 볼려고 한 것은 아니고 이동했는데 CCTV를 봤다는 것? 그게 3층 안내실?
▶네.

-대략 시간적으로 언제?
▶9시 반에서 40분정도.

-안내스크 어디에 있었나?
▶바로 앞에 서 있었다.

-증인이 앞에서 모니터 봤다고 했는데 배가 기우는 다급한 상황에서 CCTV화면을 보게된 이유는?
▶저희 장인하고 갔다. 장인을 찾기 위해 CCTV를 보게 됐다.

-장인을 확인하려고 주시한것 장인을 찾았나? 하면에서.
▶안보였다.

-화면에서는 어떤 장면이 나왔나?
▶까맣게 나온게 몇개 있고 사람들이 움직이는게 몇명 보였다.

-까만 것, 꺼져있는 것은 몇개 정도 많았나?
▶숫자는 모르고 좀 많았다.

-그려면 거기 계시면서 CCCTV 화면 켜진것 마지막으로 본 것 언제인가?
▶9시30분에서 40분 정도?

-이자리에서 30분 정도?
▶네.

-진술서 보면 해경 헬기가 현장 도착할 때 쯤이다라는 진술했다. 그럼 9시27분 맞다. 그때까지 안내데스크 있었고 CCTV 화면 나오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그리고 증인이 세월호에서 구조 되는 시간이 9시50분으로 나온다. 그러면 구조될 때도 CCTV화면 봤나?
▶그것까지는 못봤다.

-9시 30분까지는 작동되고 있던 것?
▶네.

@류희인 특조위원->비공개 증인(세월호 여객영업부 직원)

-증인 배가 기울고 난뒤 CCTV 모니터 목격 사실있나?
▶네.

-목격 시점 배가 기울고 얼마나 시간 지난 시점? 보신 위치는?
▶정확한 시간 기억 못하겠지만 10분 정도에서 15분 정도 그리고 CCTV본 이유는 양 사무장과 사고 사실 연락 취하기 위해서, 양사무장 찾기 위해봤다.

-그러니까 앞서 08시48분 이후에도 CCTV 작동했다는 말씀?
▶네 .

-마지막 확인한 시점은 언제?
▶정확히 기억 안나지만 나오는 상황에서도 CCTV는 켜져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

-두분 모두 배가 기울고 한참동안은 CCTV가 분명이 켜져 있었고 작동되고 있었다는 사실 확인 그렇다면 복원 데이타에는 왜 자료 없는지 의문. 프로그램 개발자·영상 전문가 통해 의문 확인해 보려고 한다.

@류희인 특조위원->신현철(엔에스뷰대표)

-참고인은 프로그램 개발해 세월호에 제공한 회사 대표 맞나?
▶맞다.

-운영 시스템에 대해서 저장방식 중심으로 설명해 달라.
▶카메라는 보이는 움직임 있으면 저장하는 형태다. 저장은 하드에 저장되고 날짜 폴더가 있어 1분 단위로 저장된다. 1분에는 64개 체널 다 있다. 하드 용량 다차면 맨앞에 데이터 지워지고 덮이는 방식으로 저장된다.

-카메라 움직임 포착하면 기록되고 움직임 없으면 가만히 있나?
▶맞다

-배가 기우는 상황에서 카메라가 곳곳에 설치돼 있었다. 당연히 움직임 있었겟다. 정삭적이라면 그 화면 저장돼있어야?
▶그렇다.

-모니터 켜져 있지만 중간이나 그 화면을 전송하는 본체에 있는 DVR장치 꺼져 있어서 영상 저장 되지 않을 가능성있나?
▶모니터 켜져있으면 본체도 켜져있다.

-그럼 화면이 나왔다는 것은?
▶저장장치도 작동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앞선 증언과 참고인 설명 종합하면 모니처 화면 정상적이었고 정상적이었다면 화면은 DVR에 기록으로 데이터로 저장 되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실제는 그렇지 않았다. 48분에 끝나있었다. 어떤 가능성있나?
▶저장 정상적으로 했고 복구 시점에서 복구 못했을 가능성 있고 삭제 가능할 수도 있다. 삭제는 DVR 운영 중간에는 삭제하기 힘들다. 지워졌으면 복구가 안 됐거나 사후에 지워졌거나 했을 것이다.

-혹시 배가 갑자기 기울면서 DVR에 들어가는 파워가 빠지게 될 가능성은?
▶빠질 수 있다.

-DVR 작동되고 있어야 하고 자료 남아 있어야 하는 것이겠다. 해당 부분 복구 못 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했는데 그럼 복구의 기술적 문제를 확인해야 하는데 혹시 복구 못할 가능성하고 데이터를 의도적으로 누군가 삭제할 가능성은?
▶가능성은 있다 복구한 데이터가 동작하는 가정아니라 복구 하면서 하고난 다음 지워졌다면 데이터만 있어서 지워버리면 삭제 된다.

@류희인->황민구(법영상분석연구소 대표)

-참고인 연구소는 어떤 작업하나?
▶증거 영상 과학적 분석, 사건규명 역할을 하고 있다.

-위원회 의뢰 받아 데이터 감정 담당했다. 그 결과 혹시 인위적 편집 기록있었나?
▶남아있는 영상파일 자체에 대해서는 영상 자체 위변조 없었고 특이한 위변조 증거 없었다.

-앞서 증인들이 배가 기울고 한참 뒤에도 모니터 켜져 있었다고 했는데 참고인 분석 결과 DVR장치는 언제까지 작동했나?

▶동일한 DVR가지고 실험 강제 종료 하게 되면 TMP 파일 문구가 뜬다. 그게 32분 때에 TMP파일 나와서 32~33분 사이 꺼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DVR 로그 파일 분석하고  정확하게 어떻게 종료 됐는지 알 수 있나?
▶여러 경우의 수 두고 실험해 봤을 때는 강제 종료 가능성이 높다.

-누가 인위적으로 종료 시켰다는 것?
▶그럴 가능성은 열려 있다. 정전이 되더라도 똑같은 현상이 일어난다. 종합적으로 강제 종료에는 다 포함 된다.

-로그 삭제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말씀하신 강제 종료 방식으로 나오게 하기 위해서 뒤에 정상 종료 했더라도 로그파일 편집 통해서 강제 종료 방식으로 나타나게 할 수 있나?
▶수정하거나 지워버릴 수 있어서 그렇게 할 수 있다.

-로그파일 삭제는 사후에 추적 가능한가?
▶제 분야 아니라 알 수 없지만 기술 뛰어난 기술자가 강제로 지워서 복구 못하도록 만들면 복구 어려울 것이다.

◆세월호 철근 등 화물 과적이 복원성에 미친 영향(제2세션)

@장완익 특조위 비상임위원->비공개증인(청해진해운 제주지역본부장)

-증인은 1999년 청해진해운 입사한 후 2011년부터 제주지역 본부장 근무했다. 근무 중에 작성한 수첩 내용을 보면 "선박 높이가 오하마나보다 훨씬 높은 관계로 풍압 및 접안에 굉장한 문제 발생한다"고 적혀 있다.
▶세월호는 오하마나 보다 높다. 북서풍이 불면 맞바로 받아 풍압 및 접안 하는데 문제가 발생했다. 수첩에는 세월호가 처음 시험 운항한 사실 적은 것 같다.

-4월5일 수첩 내용. 여기 보시면 심한 기울기로 하차 및 승객 하선 불가능하다고 하는데?
▶접안했는데 9시30분에 배가 좌현으로 기울어져 하차, 하선 불가 해던 것은 배가 우측 좌측 있는데 양쪽 화물 내릴때 우측 먼저 화물 갑자기 빼서 그렇다. 균형 맞게 빼야 하는데 한쪽 먼저 배면 기울어 지기 때문에네 배가 너무 기울어서 이후 평행 조절해서 10시경에 하선 시켰다.

-평소 좌현 쪽으로 많이 기울었나?
▶화물 실을때 맞춰서 싣는데 하역 할때 좌현 기사들이 우측을 먼저 빼서 그렇다.

-12월 9일 메모 여기 보면 초속 풍속 15m 정도면 예인선 사용해도 출항 힘들다고 했는데, 어떤 상태?
▶제주항에는 겨울 되면 북서풍이 맞바로 받아서 풍속 15m 정도 되면 예인선 사용해서 이양한다. 그래서 출항할 때 15m 같으면 세월호는 풍압 면적 많아 예인석 한척 써도 힘들다. 겨울에는 세월호가 이안하고 접안하는데 힘들다고 적었다.

-이는 세월호만의 문제였나?
▶(풍속이) 15m~18m되면 다른 배도 예인선 사용한다. 15m 정도되면 어느 배라도 가능하다.

-여기 보시면 예인선 사용해도 출항하기 힘들다고?
▶3부두 자체가 북서풍 직각으로 돼있어 풍압을 받는다. 다른 부두에는 90각도로 받는 곳은 없다.

-다음 경위서는 누가 작성했나?
▶제가 했다.

-경위서 작성 배경은 ?
▶그날 풍속이 18m~21m 불어 배가 출항 하다가 예인선 출항하다 못해서 접안하고 2번 정도했다. 그런데 도저히 출항이 바람 잦아지면 출항하려고 2번 시도 했는데 출항 못함.

-승객들은 다 내렸죠? 돈은 환불?
▶지연 출항했다.

-2차 출한 보면 승객들 다 내렸다.
▶두번 시도 해도 안되서 포기하려고 했는데 화물 기사들하고 이걸 출항 못하면 피해 보상하라고 데모하고 해서 해경 요청해서 출항했다.

-증인 여기 경위서 2차 출항보면 데모도 했다고 하는데 선사 입장에서는 재출항 할수 밖에 없는 사정을 22시30분경 가까스로 출항 허가 받았다고 했다. 누가 해경과 협의 했나?
▶저하고 물류 팀장하고 운항 관리실에서 전부 다 출항을 대기하고 있었다.

-해경과 협의한 내용은?
▶해경과 협의한 것은 자동기사와 승객 항의해서 "한번만 다시 시도 해보자", "안되면 포기하겠다"는 것었다. 22시30분 바람 잦아들어서 출항했다.

-선박 출항 통제하거나 결항을 정하는 규칙아나?
▶풍랑 경보 때는 무조건 통제, 해경에서 위험하다고 통제하면 출항하지 못한다.

-증인 이렇게 출항 통제 하는 주체 누구인가? 청해진 해운이 가고 싶은면 가는 것 아닌가?
▶해경에서 통제하면, 운항관리실에서 통제하면 운행 못할 수 있다.

-그렇지만 앞서 해경과 협의를 통해 세월호 출항도 했다.
▶예 그것은 해경에서 이런 상태에서 한번 시도 해보자고 해서 승객들도 그렇고 항의해서 한번 더 바람 잦아지면 시도 해보자고한 것이다.

-아무리 날씨 좋지않고 위험한 상황이라도 협의만 잘되면 승객 요구든 이익을 위해서든 무리한 출항 결정 가능한 것 아닌가?
▶그런 것 아니고 협의 출항은 단 한번뿐 매주 협의하는 것은 아니다.

-증인이 4월 15일 출항 담당자 아니지만. 세월호 자동 화물 기사 손해 배상 등을 고려해 출항 할 수 없음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출항한 것으로 보나?
▶그것은 인천 화물 팀장 문제지 저는 모르겠다.

-그럼 제주에서 했든이 인천에서도 해경과 협의해서 출항한 것으로 보나?
▶인천 상황이라 모르겠다.

-2010년 청해진 물퓨팀 실적분석 자료에서 해군기지 관련 정보 입수되고 있어 2011년 1사분기에는 '강정 해군기지 방파제 철근 약 3000톤 운송', 2011년 3사분기 '강정해군기지 토목공사(철근)' 들어가 있어, 2011년 실적보면 2012년 매출 목표 해군기지 내용 들어가 있다. 증인은 이런 자료 쭉 봤나? 실적 자료들은 증인은 직접 보지 않아도 내용 알고 있나?
▶제주에서는 인천에서 해군기지 척근 들어 온것은 상세하게 몰랐다.

-제주지역도 제주 화물량이 늘어난 것을 인지 보고도 했나?
▶인천에서 내려오는 화물만 늘었다.

-인천에서 내려가지만 제주 해군기지로 의해 물량늘어난 것 파악해서 본사에 건의했죠?
▶화물 목록 보고 화물이 해군기지 때문에 건설 자재가 내려오겠다는 것 파악 했다.

-2012년 말 세월호 도입 결정?
▶본사에서 했다. 확실하게 모르겟다.

-아까 보셨던 입항 화물 추이 및 세월호 주요일지 보면 제주도에 자재유입 늘어나는 시기가 세월호 도입 시점과 맞물린다.
▶그것은 제가 잘 몰라. 선박 도입은 본사에서 결정한다. 제가 제주 본부장으로서 개입 안 한다.

@장완익->이상갑(한국해양대학교 교수)

-참고인 세월호 침몰관련 연구 책임 연구원 화물 적재 상태 확인한적 있죠?
▶네 CCTV 전부 분석했다.

-특조위와도 같이하고 연구원들도 같이 확인했다. 중량, 위치, 고박도 확인했죠?
▶CCTV확인하고 고박하는 인력 진술서도 다 읽었다.

-참고인 하고계신 용역 간단하게 해달라
▶제가지금 연구는 시뮬레이션인데 제가 쓰고 있는 기법은 유체구조연성해석기법이라고 해양 사고 시뮬레이션 운영한다.

세월호 직접 시뮬레이션 상의 바닷물에 실제 사이즈 세월호 만들고 정확하게 분포 시키고 모든 화물 정확히 실어서 실제와 똑같이 만든다는게 특징이다.

(PPT자료를 보면서) 여기 세월호의 모델 똑같이 만들었다. 모든 것을 각덱별로 특조위와 파악했던것 그대로 실었다. 이게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KRISO)가 발표한 것 그 다음에 해양안전심판원이 발표한 것은 비슷한데 자연 손실분과 화물도 조금 다르다. 맨 오른쪽 것이 제것인데 복원력이 0.475나왔다.

-이게 결국 특조위 결과 바탕으로 시뮬레이션 시행한 결과 사고 당시 적재 상태 선박 복원성 악영향 미쳤다. 결국 화물 무리한 적재, 부실한 적재가 침몰 원인의 하나다. 시뮬레이션 결과는 급선회 이후 복원력을 회복하지 못한 원인을 확인한 것이지 급선회 원인을 파악한 것은 아니다.

왜 급선회 했는지 이유는 모르고 있다. 대법원은 기계결함 가능성 포함한 원인을 파악해 봐야한다고 했다. 세월호 인양해서 왜 급선회 과정에서 기울어 졌는지 그자체 대해서 규명해야할 내용이라고 보여진다.

@권영빈 특조위 상임위원-> 이상갑

-KRISO 하고 교수님이 조사하신 것에서 화물량 차이가 2142톤하고 2215톤으로 73톤 차이다. 화물 톤 수는 73톤에 불과한데 GM값(복원력)은 0.475하고 0.595하고 큰데 시연 영상 보면 항로 괘적 차이 많이 나타난다. 실제로는 73톤 차이밖에 없는데 항간에서는 기존 조사 결과와 화물량 차이 별로 없다는 말 있는데 그런데 시뮬레이션 해본 결과 GM값 차이 많이난다. 화물 톤수 차이 보다는 뭔가 다른 적재 방식이라던가 여러가지 변수 많다는 것인가?

▶예를 들어 똑같은 화물 실어도 화물 무게가 무거운 것이 무게 중심 밑으로 내려오면 안전적이다. 무거운 것이 위로 가면 훨씬 GM이 작아진다. 어디에 실리냐가 결정적이다.

-GM 크다, 작다는 GM크면 복원력 좋고 작으면 복원력이 약하다는 것인가?
▶그렇다.

-기울었다 돌아오는 힘이 화물량 차이 보다는 무거운 것을 어느 위치에 싣느냐에 따라 차이가 있다는 게 KRISO 하고 특조위 화물량 조사 결과 차이는 총 톤수 보다는 각각의 화물 어디에 실렸느냐가 결적적이다. GM값 변화에 의해서 맞나?
▶네.

◆참사 당시 정부의 구조 지연 및 회피, 은폐 및 부실 조치(3세션)

@박종운 특조위 비상임위원-> 박승도(금호수중개발대표, 언딘 협력사)

-참사당시 정부 구조지연및 회피, 은폐 및 부실조치에 대해 에어포켓 및 공기주입등을 중심으로 살펴 보겠다. 먼저 2014년 당시 정부측에서 에어포켓 어떤 이야기 했고 입장 취했는지 영상을 통해 보겠다.

(동영상)

앞에 보시는 것 세월호 100분의 1로 축소한것 그런 큰배에 정말 작은 에어 콤프레셔로 돌깨는데 쓰는 장비 이용했다는것 어의가 없다. 공기 주입 문제 국정조사에서도 다뤄졌는데 어떤 문답 오고 갔는지 살펴 보겠다.

(동영상)

그당시 가족분들은 물론이고 많은 국민들이 실효성 있는 공기주입 생존자 있는 곳에 에어포켓 존재하고 거기에 공기 주입하면 살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 하지만  국정조사에서 밝혀졌듯이 유의미한 공기주의 있었느냐  실효성 잇는 공기주입인지 많은 논란 있다. 참고인은 당시 김천일 언딘 이사에게 콤프레셔 구해오라는 지시 받았나?
▶예

-진술따르면 '댄요180'은 6800톤급 세월호에 공기 주입하기에는 턱없이 작은 소형 콤프레셔죠?
▶네 그렇습니다만 더 큰 것도 구하는 중이었다.

-진술에 따르면 이 콤프레셔는 주로 도로나 터널에서 암석을 깨거나 구멍을 뚫을때 사용한다는데? 공업용 콤프레셔 맞나?
▶저희가 대량으로 공기 뽑을 수 있는것 저것 밖에 없다고 알고 있어 저것을 구입했다.

-소형 콤프레셔로 한것 맞다고 보고 호흡용으로 쓸수 없는 공업용 오일 쓴것 맞나?
▶콤프레셔 지식 없어서 오일도 공업용 있고 종류 여러가지 있는지 모르겠다.

-이게 그당시 사용했던 호스와 똑같은 굵기의 호스. 손가락 굵은것 아닌데 성인 남성 엄지 손가락 들어갈 정도 19mm. 이런 조그만 호스로 공기 주입한 것 이해 안간다. 일반인 입장에서 이해 안가는데 참고인은 어떤 지시 받고 이런 콤프레서 가져 왓나?
▶일단 배를 침수 안되겠금 공기 주입해야해서 구입해오라고 들었다. 일단 제가 목포에서 왔는데 목포는 대형 콤프레셔 없어 소형은 광주에서 수소문 해서 빌렸고, 대형은 광주에서도 빌릴데 몰랐다. 이후 대형은 광주에서 후송 중에 배가 침몰 되서 에어 넣는 것 포기했다.

@박종운-> 김천일(언딘 이사)
-민간 잠수사 세월호 도면 못봤다는데 줬나?
▶저 역시 받은 바 없다.

-본인도, 민간잠수사도 못봤던 것?
▶당연하다.

-잠수사들 도면없이 들어간 것?
▶누가 협조해 줄 사항 아니라서 사진 한장 가지고 했다. 세월호 청사진.

-증인 당시 수중 구조 회의 많이 참석하셨죠?
▶네

-증인 공기주입 지시 받은것 누구에게?
▶정확한 날짜 시간은 다시봐야 알겠지만 투입해서 긴박한 상황에서 해군하고 해경 관계자와 회의 진행 중에 저에게 지시한 분은 해군 김판교 제독이다. 회의 석상에서 제가 우리나라 함정들이 와있어서 해군 해경에 "저희가 민간 콤프레셔 없고 함정에서 대형 콤프레셔 있을것 아니냐"고 하니 "다 고정되서 이동할수 없으니 수배해서 에어 주입하라"고 했다. 콤프레서 큰게 온다고 해도 선적할 배가 없었다. 실을 수 있는 장소가 나오지 않아 급한 마음에 그래서 사이즈 그렇게 된 것이다.

@박종운-> 김윤상(언딘 대표)

-공기주입 지시 받았나?
▶진수식 행사 때문에 경남 조선소로 내려 가고 있어 4월 17일 저녁에야 현장 도착해서 회의 참석 못했다.

-김천일 이사에게 들은 것있나?
▶에어주입 이야기 듣고 사고난 곳이 맹골 수도 있데 3년 조력 발전관련 일해서 잘알아서 "수온 10~11도이고 자동차 싣는 선박에 에어포켓 없을 수도 있다고 크레인 선박으로 잡고 구조하는게 먼저"라고 이야기 했는데 일단 제 생각이 틀릴 수도 있으니까 일단 '우리나라에 대형 콤프레셔가 있는지 찾고 있다'고 해서 "잘해봐라" 정도 이야기 했다.

-증인 차라리 크레인선 붙들고 하는게 낫다고 했는데.
▶제 의견 맞다고 할지 모르니까.

-증인 유의미한 에어포켓 희박하다고 본것?
▶네 맞습니다.

-(PPT 화면을 보면서) 화면 검찰의 내사 결과다. "해경 이춘재 국장은 언딘에 공기주입 작업에 필요한 어떠한 비용이나 장비지원 없이 세월호 선체 도면조차 제공하지 않은 채 세월호 선내 공기 주입 작업을 할 것을 요구함" 이렇게 돼 있고 영상에서 보았든이 해경청장은 공기 주입 성공적으로 이뤄진것 처럼 발표했다.

@박종운-> 김천일
-해경이나 해군에서 비용지원 없었나?
▶현장 갔을 때 취재진 차량만 있었다. 따로 배를 지원 받지 못했다. 그때 함정을 한대 지원받았고 그 다음날 사장님에게 작업선이라도 있어야해서 보내달라고 해서 '수중기술 2호'을 받았다.

-유효한 의미의 공기 주입해야 하는데 저희가 보기에 허술하게 왜 이렇게까지 밖에 할 수 없었을까.
▶그당시 현장에서 다이버들 지시했는데 사고난 날짜가 물살이 가장 빠를 때 였다. 실린더 매고 작업해도 다 떠내려가는 상황이었다. 해군 함정이나 해경 함정 정박해서 일하기에는 무리라서 저희 소형 배로 할수 밖에 없었다. 큰배 정박하려면 물방향 바귀어서 앵카링을 네 군대 고박해서 에어주입해야한다. 또 큰 배가 세월호와 충돌할 수 있었다. 저도 최선의 콤프레셔 동원하려 했지만 선박 자체 공간이 그것 밖에 나오지 않아. 지시받는 대로 열심히 했다.

@박종운-> 김윤상
-언딘는 구난 목적으로 간 것이고 구난과 구조 다른 것이라고 했는데 구난과 구조는 어떻게 다른 것이죠?
▶선원이라든지 선원 제외한 나머지 화물이나 이런 것을 건지는 것이 구난이다.

-배나 화물을 건지는 것을 말하나?
▶네.

-절체 절명 순간 구난 계약 맺은 언딘이 구조 작업을 한 이유는?
▶저도 그게 의문인데 그쪽에서는 사고 다음날 저녁에 갔는데 만 하루 지났는데도 굉장히 어수선 했다. 컨트롤 타워는 없고 그쪽에서 해군은 해군대로 해경은 해경대로 각자 아이디어 내는 형편이었다.

-체계적으로 하는것 아니고 해경은 언딘에게 공기넣으라고 하고?
▶어떤 파트는 저희에게 다른 파트는 다른 회사에게 요구했다. 중구난방이었다.

@박종운-> 이상갑(한국해양대학교 교수)

-유의미한 에어포켓 있을 수 있었을까?
▶네 가능성 있다.

-관련해서 자세하게 설명해달라.
▶제가 언급할게 에어포켓 있는지 공기 주입 유효성 있는지. 에어포켓 배안의 공기 말하는데 배안에 공기 얼마나 전체 포함할수 잇는가 물이 얼마나 들어 올수 이는가 그걸 어떻게 층적할수 있는가. 배가 떠있으면 배수량이 나온다. 고걸 지금 제가 오전 중에 설명했던 기법을 통해 수행을 했다.(중략)

사진을 보면 객실마다 하부 환풍가 있어 몇시간 만에 전부 물이 찰 수가 있어 객실은 너머가고 지나가면 다 찰수있다. 객실에 물이 다 차는 것이 저는 에어포켓이 없다고 본다. 이것을 보면 이런 식으로 물이 차올라 모든 층마다 계산해서 확실하게 출입문 마다 계산 할 수 있다. (중략)

배가 뒤집어졌을때 노란색 부분이 에어포켓이다. 그 다음에 이렇게 되면 에어포켓이 가판 별로 있는 E데크라던지 엔진이라던지 물이 없고 저렇게 된다는 것은 결국 조그만배 같으면 사람들 이동해서 살아남을수 있지만 저렇게 큰배에서는 갈 수 없기때문에 에어포켓은 분명이 있었지만 희생자들이 사용할수 있는 에어포켓은 아니라고 생각한다.(중략)

결국은 공기를 넣어봐야 천장정도만 공기가 들어갈 정도였다. 결론적으로 객실에는 수밀이 되는 영역이 부재해서 저희가 바라는 정도의 에어포켓은 객실에는 없었다.

-저희가 주목한 것은 에어포켓 있었냐 유효한 공기 주입이 있었나도 있지만 정부가 해야하는 일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많은 국민들 궁금했던 것이 세월호 완전히 가라앉지 않도록 크레인으로 잡지 않았냐는 것이다. 저희 생각하기에 가능성 있다고 보는데. 세월호 선수들기할 때 사용한 크레인 2500톤이다. 세월호가 가라 앉기 전에 3600톤 짜리 2대 2000톤 1대 1000톤 1대의 크레인이 주변에 있었다. 그러나 이 크레인들은 대기만 하다가 돌아갔다. 당시 세월호가 가라앉지 않도록 붙잡아만 놓는것 가능했을 것이다. 그런 조치 취해 졌다면 이후 수색 작업 용의했을 것이다.

@이석태
김윤상 언딘 대표가 말을 좀하고 싶다고 해서 기회를 드리겠다.

@김윤상
박종운 위원 말씀하신 것처럼 저희들뿐만 아니고 얼마전 돌아가신 김관홍 잠수사도 그렇고. 저희들이 정부와 계약하고 온 것이 아니라 대가를 약속하고 부른 것 아니다. 잠수사들 부를 때 "나중에 실비정산한다는데 와서 도와주시만 국가적인 사태인데 제가 나중에 보상하겠습니다"하고 불렀다. 그분들 진짜 열심히 했거든요. 그래서 짧은 시간 293분 정도 수습했는데 다들 나몰라라한다. 해경에 가서 이야기하고 해수부에 가도 "미안하다 국회의원 소송에서 받아가라고 하네요"라고 하고 아까 보시다시피 저희 몸만가면 장비도 다 제공하겠다고 해서 다이버들 불렀는데 밥도 안줬다. 처음 2~3일은 생라면 먹어가면서 그렇게 했는데. 진짜(한숨) 지금 거기 아시는분 아시겠지만 저희 법정관리 들어가있다. 회사도 거의 망가지기 일보 직전. 김관홍 잠수사가 저에게 세번 정도 찾아왔다. 그래서 제가 "너혼자 싸워서 되겠냐"고 하니까 그 친구 "저 같은 또라이 한명도 있어야 하지 않냐" 하더라. 그렇게 하고 갔다. 그런 친구들 한둘이 아니었다.

이 친구도 7월10일 날 철수했는데 거의 쫓겨나다시피 철수를 했다. 지금은 다들 그 사람들 어떻게 했는지 인정 않하고 저희들 시체 장사, 악덕기업으로 돼있다. 이런 이야기 하는 것이 앞으로 똑같은 세월호 사고 날때 똑같이 안되려면 하나의 정부 있어서 콘트롤 타워 있어서 책임지고 민간 동원하고 전쟁 나면 예비군 동원하 듯이. 최소한 밥은 주고 군복 주고 총은 줘야 하지 않나? 지금 이런식으로 하면 지금 똑같은 사고 일어나도 2년전보다 나아지지 않을 것 않을 것이다. 그리고 제가 이야기 했듯이 현장에서 "에어포켓 없습니다", "크레인으로 잡아주면 안됩니까?" 이런이야기 해도 현장에서 안먹힘니다. 왜냐하면 현장에서 전문가들에게 맡기지 않는다. 높은 사람들, 해경청장에게도 그랬다. "본청가서 cctv보시고 현장에 전문가들 보내서 일할수 있게 해달라"고 했다. 그런데 저희 요구 반영안됐고 저희 이거하라면 이거하고 저희 권리가 없었다. 그런데 하고 나서 책임은 저희에게만 오고 저희는 말할 창구도 없었다.

◆ 참사당시 및 이후 정부 재난대응 지휘·보고체계(4세션)

@박종운-> 김장수(국가안보실장, 증인불출석으로 과거 발언으로 질의응답)

-증인 사고 당시 위기관리 위해 무엇을하고 있었나?
▶국가 위기관리 대응이다. 안보실은 안보.재난 국가핵심기반 분야 위기징후를 24시간 모미터링하고 있으며 법정부 차원의 국가위기 관리임무 수행체계 구축하기 위해 국가전쟁지도지침과 국가 위기관리기본지침 및 위기관리 표준 메뉴얼을 작성하고 있다.

@박종운-> 김기춘(대통령비서실장, 증인불출석으로 과거 발언으로 질의응답)

-당시 국가안보실에 누가 있나?
▶안보실장이 그 상활실에 계속 상주하면서 사진을 찍어가지고 보고를 해왔다.

-국가위기관리기본 지침은 살아있는 지침?
▶네.

-기본지침 8조 6항은 국가안보실이 재난 분야 위기에 관한 정보, 상황이 종합 및 관리 업무 수행한다고 되어 있다. 그럼 사고 당시 국가안보실 어떤 역할을 했나?
▶저는 관리가 지휘통제라는…국가 재난 및 안전 관리에 관한 법에 의하면 사회적 재난이나 자연 재난이 있으면 그 지역의 본부에서 지휘를 합니다.

-저는 2014년 국정조사 당시 컨트롤 타워 청와대 맞냐, 아니냐는 것 아니냐는 말아니라. 국가재난이라고 하는 위기 상황에서 각부처가 무능력하면 군대를 통원해서라고 위기 대응해서 국민안전과 생명 보호해야할 기능이 청와대에 있냐, 없냐고 묻는 것이다.
▶참여 정부 당시에도 법적으로는 재난 안전 관리 기본법에 의해서 중앙 대책 본부가 제도적으로는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맞다. 이명박 정부와 현정부에서도 청와대에서 재난 관리 해왔다. 2012년 위기관리실 생산 문서 보면 지하철 대형 복합 상가 등 관리 대책 보고 받았다. 세월호 참사 당시에도 김장수 장관 대통령에게 구체적인 자문도 했다. 따라서 국가 안보실은 국민의 생명 지켜야 하는 책임 있는 부서인 것이다.

@박종운-> 이정일(변호사, 증인불출석으로 과거 발언으로 질의응답)

-참고인 현재 어떤일 하고 있나?
▶현재 13년차 변호사. 민변에서 세월호 사건 TF팀장하고 있고 2016년 1월 특조위 진상규명 소위 자문 위원활동하고 있다.

-국가위기관리지침이야기 했는데 법적 지위는 어떻게 되나?
▶국가 위기관리 기본 지침은 두가지 측면에서 이야기 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대통령 훈령 포함한 각부 장관 훈령은 행정기관 구속하는 효력있어 일반 법령과 다르지 않다. 그래서 대통령훈령으로 있는 국가위기관리기본지침은 모든 행정기관 구속하는 효력이 있다.(중략)

기본적으로 우리 헌법은 대통령이 행정 각부의 수반으로서 최고 책임자로서 대통령 국무회의 의장으로써 행정 각부 조정 하는 권한을 부여받고 있다. 당연히 국가 위기 해당되는 재난 위기관리 발생시에 관련 정보 취합하고 관리 업무 적극적으로 하는 것이 헌법에 부합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국가위기관리기본 지침은 재난안전에관한기본법 충분히 반영했다.

-해양사고위기관리 메뉴얼 구속력은 얼마나?
▶기본지침에 관련해서 메뉴얼은 행정기관 구속하는 일반 법령과 공일한 효력을 가지기 때문에 위반하거나 따르지 않는 경우 기본적으로 공무원은 징계책임 지거나 형사 책임 근거가 될 수 있다.

-청와대는 컨트롤 타워가 청와대는 아니고 안행부라는데, 민변 보고서에는 청와대가 재난 컨트롤 타워라고 했는데 이유는?
▶국가 안보실이 컨트롤 타워 기능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은 3가지. 첫번째 헌법 규정, 두번째 재난 안전 기본법과 정부 조직법, 세번째 실제 상황에서 김장수 실장이 행한 조치를 봤을때 실질적인 컨트롤 타워로 봤다.

@박종운-> 김기춘

-그럼 위기 관리시스템 제대로 작동했는지 살펴보겠다. 김기춘 증인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이유 무엇인가?
▶정확한 상황을 피악해서 대통령께서 이럴 때 어떤 결단을 내려야 되는지를 보고하는 겁니다. 정책결정을 할수 있도록. 그래서 대통령께서 지시도 하셨고. 또 중대본에 가서 독려도 하셨다.

-세월호 참사 이례적인 사고라고 했는데?
▶배가 물에 빠지고 한시간 반 걸렸는데 이렇게 큰배는 이렇게 빨리 넘어갈 수가 없다. 5시간 정도 걸리는데.

-이렇게 빨리 넘어갈 일 없다? 세월호 빨리 기울고 있다는 내용 계속 전파되고 있었다. 첫 서면 보고에 5분만에 10도 길울어 현재 60도라는 것도 알고 있어. 왠만한 해경이라면 침몰할 것 예상하고 승객들 움직일 수 없다는 판단 할수 있었다. 그러나 청와와대는 해경 출신 행정관이 적극 정보 취합했음에도 조치 하지 않았다. 청와대 핫라인 참사당일 상황실에 99통의 전화를 한다. 상황실에 이렇게 전화하는 것은 청와대가 구조 방해한 것 같은데?
▶해경 상황실은 현장 수습 구조하는 본부하고는 떨어져 있다. 팽목항에서 구조하고 해경 상황실은 인천에 있다. 그러니까 상황실끼리 오고가고 하는 통화 때문에 구조 방해 받는 것은 아니다.

@박종운 특조위 비상임위원->황영태(해양경찰청 종합상황실장, 증인 참석하지 않아 진술내용 바탕으로 대역 신문)

-황영태 증인참사당시 업무는?
▶중앙구조본부 상황반에 편성됐고 상황실장으로서 상황 접수 후 내부보고 및 초동초지 대응했다. 상황보고서 결제, 외부기관 전파 상황처리 및 보고 업무를 담당하고 BH(청화대)전화 핫라인 전화 업무 담당했다.

-승객들 못 나오는 내용 확인했나?
▶확인했다.

-그 정보 정확히 보고해야 한 것 아닌가?
▶들어갔으면 좋았을 건인데 전화도 너무 많았고, 그 당시는 경황이 없어서 그렇게 생각을 못했던 것 같다.

-급격히 기울고 있는 세월호 정보 상황 담지 않았나.
▶네 그렇습니다.

-세월호 선체 상황 대신 구조인원 현황, 동원세력 현황만 담길 수밖에 없었던 원인은 무엇인가?
▶관계 기관에서 전화로 주로 묻는 것이 인명 구조 현황, 동원 세력 현황이었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솔직히 전화 안했으면 좋겠다. 너무 전화가 많이 와서 힘들었다. 이후에 외부기관에 대한 전화 보고와 관련한 업무방식이 바꿔야할 것 같다.

@박종운-> 김규현(국가안보실 제1차장, 증인 불출석으로 과거 발언으로 질의응답)

-안보실 현장상황 어떤 루트로 파악했나?
▶저희가 지난번 부산앞에서 유조선 사고가 났을 때도 해경정 ENG 카메라가 되어 있는 해경정이 있습니다. 배가 위성영상시스템이 있어 그 배가 가게 되면 바로 그냥 방송이 됩니다. 그러면 저희가 그것을 바로 수신할 수 있는 장치가 있어 아주 정확하게 알 수가 있다. 그런데 이번에 그런 일이 없었다. 현장 상황 알아야 치짐을 줄텐데….

-그래서 해경 본청 핫라인 요구 전화 10통이나 했는데 ENG 영상은 언제 왔나?
▶11시 10분에.

-함정은 어떤 것?
▶513호.

-그럼 그때부터 배상태 어떤지 현장 상황 확인했나?
▶그렇다.

-278호 함정에서 ENG 촬영 영상 전송 받았다고 하는데 청와대 동일 영상 받아본 것맞나?
▶맞습니다. 청와대 해수부 해군 국정원등 영상시스템 공유하고 있는 곳으로 자동 전송된다.

-국가 안보실은 영상을 통해 세월호 침몰 직후 배안 승객 못나오고 있다는 것 인지하고 있엇지만 어떤 지시도 내리지 않았다. 이 사실을 승객 위급 상황 인지 하면서 대응도 않고 흘러보낸 사실 은폐하기 위해 속인 것 아닌가?
▶제가 알기로 278호 영상은 송출 안된 것으로 알고 있다.

@박종운-> 김기춘

-국가안보실 상황실 제 3보고서 11시10분에 작성됐는데 그내용은?
▶안산 단원고 2학년 수학여행객 338명 학생 324명 교사 13명이라고 이렇게 안보실 제3보고서에 나와있습니다.

-영상 모니터 있는 상황실 증인, 대통령갔나?
▶가보지 않앗다 대통령도 가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나

-세월호가 국가재난으로 넘어간 시점은 오전 11시라고 본다. 그전에는 현장 구조 세력인 해경·해수부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11시 이후에는 청와대 위기대응 못한 책임져야 한다.
▶책임 피하거나 변명하기 위해서 온 것 아니라 대통령 책임을 크게 통감하고 국민에게 사과 저희들도 책임이 있다.

@박종운 특조위 비상임위원-> 김영근(참여정부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처 종합상황실장)

-참고인 참여정부 5년, 이명박 정부 초기까지 종합상황실장으로 근무했나?
▶맞다.

-우선 종합상황실 기능 역할 말씀해달라
▶ 지금은 종합상황실이 법적 기구 아니다. 하지만 그당시만해도 대통령령으로 종항상활실이 조직으로 나와 있었고 그 기능이 국가위기 상황 정보망의 구축 및 운영, 국가위기상황 모니터링 및 보고 전파, 긴급상황 발생시 초기 조치 수행, 상황관계관 회의 운영, 평시 국가지도 통신망 운용, 비상시 대통령의 지휘소 역할을 수행 이렇게 법에 지정돼있었다.

-상황 실장으로 근무하던 중에 위기 상황 발생한 적 있나?
▶국가 위기 상황이라는 기준이 문제. 그때 지금이나 국가 위기 상황은 정량적 평가 하기 힘들다. 그래서 국가 위가라는 부분 어떻게 정의하고 기준할 것인가하고 참여정부 숙고 많이 했다. 그래서 33개 국가 위기 유형 만들었다. 그런 것을 33개 분류했다. 그러다 보니 기준에 따라보면 2004년 태풍 매미, 2005년 양양 산불, 2007년 태안 유류 유출 사고, 2005년 부산 대규모 정전,2007년 웜바이러스에 의한 전산장애 굉장히 다수가 있었다.

-재난 사례 중심으로 청와대 위기관리 대처 어떻게 이뤄지는지?
▶종합 상황실 기능 법으로 정해져있었다. 재난 같은 경우 주관 부처가 있지만 주관부처와 핫라인 등을 통해 연락을 했다. 징후 발견되면 주관부서와 함께 경보 발표하고. 상황 발령 되면 상황을 보고및 전파체계 의해서 전파하는 역할도 했다. 상황 진행되면 기획팀에 상황 이관하고 나머지 기획팀에서 상황 관리했다. 준비 태세 갖추는 것이 상황실 역할이다.

-상황실에서 현장 구조 세력에게 사진 요구한 적 있나?
▶청와대 직접 하는 것 바람직하다고 보지 않는다. 사건 대책 본부 기능은 정책 대응이고 현장지휘소은 기술적 대응해야 한다. 기술적 대응하는 곳은 나름대로 보고 체계 구속될 수 밖에 없어 청와대가 현장하고 직접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영상·사진관련해서는 청와대 기본적으로 받을 수 있는것 구축돼있었다. 2005년 양양 산불 났을 때 대통령께서 직접 지휘를 하시기 위해 상황실 임석하신 적 있었다. 대통령께서 양양 낙산사에 불이 번져 낙산사 소실 소식을 듣고 저걸 어떻게 볼 수가 없냐는 말씀을 하셨다.

-시간 없는 관계로 이명박 정부로 이관 과정에서 상황실 유지 됐나?
▶2008년 정부 들어서면서 NSC 사무소 없어졌다. 일하던 공무원들 원복해야 되는 상황에서 그 당시 안보 수석이 상황을 보고 '이건 존치 필요성 있다고 보고할테니 상황실 유지하라'고 해서 상황 유지했다. 2008년 3월 5일 제가 대통령 모시고 보고 드리고 '안보 핵심기관 관할할 수 있는 시스템 있으니 이 사무실 유지 시켜야 한다'고 보고 드렸으나 대통령의 반응은 사실 실망스러웠다. 대통령은 '돈을 주어 만들어서 버리지는 못하지 않냐' 이런 생각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위기 정보 상황팀'라는 이름으로 3급을 팀장으로 하는 상황실이 유지됐다.

@박종운 -> 전진한(알권리연구소장)

-참고인 하시는 일은 무엇인가?
▶2002년부터 정보공개 기록관리, 정보관리 보안 업무 규정 공부하고 외부에 알려나가는 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대통령 관련 정보 비공개한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근거가 없는 발언이다. 의사 결정 과정이라고 비공개 답변서 보내 왔는데 세월호 참사 2년 지났고, 의사 결정 과정 끝난 것이다. 그 이후 비공개 할 수 없다. 공공기관들 자신들 기록 부족할 때 의사결정 과정이라고 비공개한다. 한편으로 대통령 지정 기록물이라고 비공개한다는 답변 보낸다.대통령 지정 기록물 만든 이유는 과거에 대통령들이 자신이 만든 기록 지시사항 메모를 관련 임기 끝나면 가져가거나 소각시키는 게 대부분이어서 김대중 정부 이전 대통령 정보 남아있지 않아 과거 중요한 의사결정과정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퇴임과 동시에 지정하는 것이다. 곧 다음 정부가 대통령이 선출 된 이후에 임기 중 생산된 기록 중에서 지정 기록물 지정하면 15~30년 비공개할 수 있는 권한 주는 것이다. 퇴임하는 것도 아니고 기록 생산하고 있는데 앞으로 지정할 것이기 때문에 비공개하겠다는것 납득할 수 없다. 저는 이 제도 이렇게 악용될지 몰랐다. 청와대는 다른 정보공개에도 비공개 남발하고 있다. 청와대 정보공개에서 예외 된다는 잘못된 인식에서 나온 결과라고 할 수 있겠다 .

-심각한 상황이다. 퇴임도 안했는데 지정할 것이라 안보여 주겠다는 것인가?
▶앞으로 참사 발생하거나 정보공개 청구하고 감정요청 할때 다 비공개 할수 있다. 오히려 어떤법 보다 위에서 모든 정보 비공개 할 수 있다. 그런 변형될 수 있는 법이다.

-대통령 조치 사항 관련 더 논의 할게 있다. 세월호 참사 당시 보고  및 지시사항 공개는 피해를 최소화 하는 동시에 책임 분명히 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본다. 청와대의 조속한 정보공개를 청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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