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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너무 좋은 직장 찾지 말라"…서울대 40년 선배의 메시지

'소록도 의사' 김인권 원장 "보람 있는 삶 선택하길"
29일 서울대 70회 학위수여식서 후배들의 감동 사

(서울=뉴스1) 박정환 기자 | 2016-08-30 13:39 송고 | 2016-08-30 14:20 최종수정
29일 열린 서울대 제70회 학위수여식에서 김인권 애양병원 명예원장이 축사를 하고 있다. (서울대 제공) © News1

"너무 좋은 직장을 찾지 마시기 바랍니다."

29일 오전 10시30분쯤 서울대 관악캠퍼스 체육관. 제70회 학위수여식이 열리는 가운데 머리에 하얀 서리가 내려앉은 한 선배가 축사자로 연단에 섰다. 1975년에 서울대 의과대학을 졸업한 김인권 애양병원 명예원장(65)이었다.
좋은 직장을 찾지 말라는 김 원장의 뜻밖의 축사에 졸업생들이 앉은 자리 곳곳에서 재미있다는 듯 웃음이 터져나왔다.  

후배들의 반응을 보던 김 원장은 그 이유를 차근차근 이어갔다.

그는 "누구나 생각하는 좋은 직장은 경쟁이 치열하고 상하 수직관계가 확실하게 정해져 있어 여러분들의 존재감을 나타내기가 무척 어렵다"고 말했다.

또 "조금의 실수도 포용하지 않고 서로 상대방의 단점을 부각하여 여러분들이 여간 강심장이 아니면 그 사회에서 무사히 살아남기 어렵다"며 "살아남는다고 하여도 여러분의 감성은 아주 무뎌지고 말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김 원장은 중국 춘추시대 초나라 장왕 때 재상 손숙오와 아들의 일화를 들었다. 그는 "장왕은 손숙오를 매우 아꼈지만 그가 결국 죽어 아들에게 높은 벼슬과 좋은 땅을 주고자 했다"며 "하지만 아들은 아버지의 유언을 따라 욕심을 버리고 토질이 좋지 않은 땅을 얻어 경쟁 없이 오랫동안 그 땅을 차지할 수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김 원장의 이러한 축사는 본인의 졸업 후 경험을 그대로 녹여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의과대학을 졸업한 그는 1977년 한센병환자들이 모여있는 소록도병원으로 내려갔다. 당시 전문의 시험자격을 얻으려면 의료환경이 열악한 곳에서 6개월 간 근무를 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문의 시험자격을 얻고 나서도 그는 소록도 병원에 아예 터를 잡았다. 군복무로 인정되는 공중보건의 근무도 소록도병원에서 했다. 이후 서울대병원이 제의한 교수직을 뿌리치고 1983년 전남 여수에 있는 한센병 전문병원 애양병원 정형외과 과장으로 부임했다. 

앞길이 창창한 서울대 의대 졸업생이 왜 지방의 작은 병원으로 갔는지에 대한 질문에 김 원장은 "얼마든지 사람을 구할 수 있는 곳보다 저를 꼭 필요로 하는 곳에서 버림받고 소외당한 환자들을 치료하고 싶었다"고 답하곤 했다. 

김 원장은 애양병원에서 눈코뜰새 없이 일했다. 하루 평균 300여 명의 환자를 돌보고 많을 땐 하루 20건의 수술을 집도했다. 작고 오래된 병원인 애양병원은 김 원장의 노력으로 한센병에서 소아마비, 소아마비에서 인공관절 전문병원으로 시대적 상황에 맞게 탈바꿈했고, 명성 있는 병원으로 자리잡았다. 

김 원장은 국내 정형외과 전문의 가운데 고관절 1인자로 꼽힌다. 애양병원 원장으로 있으면서 지난 3월 퇴임할 때까지 약 4만 건의 수술을 했다.

그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고령의 환자들을 위해 저렴한 가격으로 시술해주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지역주민과 전국의 많은 환자들은 그가 퇴임했지만 계속해서 병원에서 남아 진료와 수술을 해 줄 것을 요청했고, 김 원장은 결국 명예원장으로 추대돼 진료를 계속 맡게 됐다. 

그는 축사에서 "아무런 지연과 혈연, 의사들과의 학연도 없었지만 그곳에서의 일이 마음에 들고 큰 보람이 있었다"며 "큰 동요 없이 34년간을 봉직하게 된 제일 큰 힘은 이 선택을 내 자신이 했고  선택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자부심이었다"라고 회상했다.  

29일 오전 10시30분쯤 서울대 관악캠퍼스 체육관에서 제70회 학위수여식이 열렸다. 이날 학위수여식에는 학사 851명, 석사 1000명, 박사 577명 등 총 2428명이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제공) © News1

김 원장은 또 "여러분들이 어떤 직장에 들어갔다고 한다면 무조건 열심히 일하기 바란다"며 "즐겁게 일하고 여러분들이 있음으로 해서 주위가 즐거워지고 활력이 넘치게 되기를 바란다"고 덕담을 했다.

이어 "여러분들이 속한 사회나 조직에서 언제나 인정받고 잘 나가리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때로는 잘 안풀리고 실망하고 좌절하게 될지 모른다"며 "하지만 여러분은 다 독특한 능력이 있다.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서 찾을 수 없는 유일한 능력이라는 것을 알 때 여러분은 자긍심을 가질 수 있다"고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면서 "제일 중요한 것은 여러분들의 마음이 이끄는 대로 결정하는 것"이라며 "그래야 결정에 후회가 없고 설령 후회가 된다고 하더라도 원망하는 마음이 없다"라고 강조했다. 

김 원장은 끝으로 "인생의 긴 여정에서 보면 이제 인생의 첫걸음을 내 딛는 순간이기도 하다. 먼 훗날 인생을 마무리를 하게 될 때, 이 순간이 여러분의 행로에 후회가 없는 선택이 됐다고 자부할 수 있는 선택이 되기를 바란다"고 축사를 마무리했다.

40년 선배의 이날 축사는 사회 진출을 앞둔 후배들에게 잔잔한 여운과 감동을 남겼다.

학위를 받은 정모씨(26 자유전공학부)는 "졸업식에서조차 취업걱정을 해야 하는 슬픈 현 상황에서 사회초년생으로서 귀감이 될 조언이라 감사하고 새겨들어야겠다고 느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서울대 관계자는 김 원장을 축사자로 초청한 배경에 "평생을 한센병환자 치료에 헌신해 오며 진정한 봉사를 실천해 왔기에 학위수여식 축사자로 적합하다고 판단했다"라고 밝혔다. 


k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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