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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해운 '침몰 위기' 몰린 4가지 결정적 이유

팔 자산 없고 선박금융 많아 채무조정 쉽지 않아
그룹-채권단 소통 부재, 정부 '강경론' 고수

(서울=뉴스1) 오상헌 기자 | 2016-08-29 11:49 송고 | 2016-08-29 14:49 최종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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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1위, 세계 7위 선사인 한진해운은 왜 침몰 직전에 몰린 걸까. 한진해운의 운명을 가를 채권단 결정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오는 30일 채권은행들이 지원 포기를 결정하면 한진해운은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 항로로 들어선다. 컨테이너 정기선사의 사업구조상 법정관리는 '회생'이 아닌 '청산'일 가능성이 크다.
연초까지만 해도 한진해운은 현대상선보다 생존 가능성이 높았다. 작년 말 현대상선을 '흡수합병'한다는 '빅딜 설'까지 나돌았지만 이를 거부한 건 한진그룹이었다. 합병 효과가 크지 않은 데다 현대상선의 부실이 심하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던 것이 불과 반년 사이 상황이 정반대로 바뀌었다. 

해운·금융업계에선 한진해운이 벼랑 끝에 몰린 배경으로 네 가지를 꼽는다. △장기 해운업 불황과 대주주 손바뀜 과정에서의 '자산 고갈' △채무재조정이 어려운 '복잡한 빚 구조' △금융당국·채권단과의 '소통 부재' △대우조선해양 학습효과에 따른 '정부의 강경론' 등이다.

◇1.2조짜리 현대증권 같은 '히든카드'가 없다

글로벌 해운업 활황이 정점을 찍고 내리막길을 걸은 2009년 이후 한진해운이 이행한 자구안은 모두 3조7000억원 규모다. 벌크 전용선 사업부과 국내외 터미널 등 돈 되는 자산을 모두 팔아 한진해운 스스로 2조5000억원을 마련했다. 조양호 회장이 최은영 유수홀딩스 회장(전 한진해운 회장)으로부터 경영권을 넘겨받은 2014년 이후 한진그룹도 1조2000억원을 투입했다. 현대그룹이 같은 기간 현대상선을 살리기 위해 마련한 4조원의 자구안과 맞먹는다.
그런데도 두 회사의 운명이 갈린 건 결정적 순간의 자구안 '한 방'의 차이였다. 현대상선은 지난 4월 현대증권을 KB금융그룹에 1조2500억원을 받고 팔았다. 지난 2월 조건부 자율협약 돌입 후 사경을 헤매던 시점이었다. 채권단 신규자금 지원 없이 자산 매각으로 자체 유동성을 확보한 것이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한진해운은 최 전 회장 시절 이미 돈 되는 자산을 다 팔아 당장 현금화할 수 있는 자산이 없었다"며 "채권단 신규자금 지원에 기댈 수밖에 없는 형편"이라고 했다.

◇협상 성공 사례 전무한 선박금융 '빚의 절반' 이상 

복잡하고 풀기 어려운 '부채 구조'도 한몫했다. 해운사 빚은 배를 지을 때 빌리는 '선박금융'과 금융회사 여신 및 회사채 등으로 주로 구성된다. 여기에 배를 빌릴 때 내는 '용선료'가 운영자금의 상당 비중을 차지한다.

한진해운은 현대상선보다 덩치가 커 갚아야 할 선박금융(3조2000억원)이 현대상선(1조8000억원)보다 훨씬 많다. 전체 부채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60%에 달한다. 선박금융을 건들지 않고는 생존이 어려운 구조다. 한진해운이 현대상선과 달리 부족자금 충당 방안으로 최대 5000억원의 선박금융 상환유예를 추진한 까닭이다.

문제는 세계적으로 선박금융 만기를 연장한 전례가 없다는 점이다. 현대상선은 선박금융 협상을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금융권 관계자는 "'국익'이란 공감대가 있는 국내 금융사보다 해외 금융사 선박금융 비중이 훨씬 크다"며 "끝까지 버티던 한진해운 해외 선박금융회사들이 최근 상환유예에 합의한 건 법정관리로 가면 돈을 떼일 수 있다는 '경제논리' 때문"이라고 했다.
© News1 방은영 디자이너

◇적극적인 '읍소' 전략 부족 "소통 부재에 오해 쌓여"


한진그룹과 금융당국·채권단 사이의 '불통'도 상황을 어렵게 만든 요인으로 지적된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한진그룹과 채권단 사이에 '핫라인'이 부재한 것이 아니냐는 말이 심심찮게 나돌았다. 작년 말 '빅딜 설' 당시 한진그룹이 정부의 비공식적 제안 사실을 외부에 알린 게 기화가 됐다.   

지난 4월 조건부 자율협약 신청 당시엔 한진그룹이 채권단과 조율 없이 일방적으로 결정했다는 뒷말이 나왔다. 자율협약 종료 시한(9월4일)이 임박하면서부터는 한진그룹이 '읍소'라도 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조언도 이어졌다. 부족자금을 스스로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당국과 채권단을 적극적으로 설득하는 모습을 보였어야 한다는 것이다.

해운업계 고위 관계자는 "현대그룹은 현정은 회장이 금융당국 수장을 찾는 등 적극적인 소통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안다"며 "한진그룹은 최고위 경영진 차원에서 채권단을 설득하는 노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얘기가 있었다"고 했다.

◇대우조선·현대상선 '학습효과' 정부 강경론 고수

해운업계에선 정부와 채권단이 유독 한진해운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는 불만도 많다. 대규모 지원에 나선 대우조선해양 등 조선사와 한진해운에 다른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우조선 검찰 수사 등으로 후폭풍을 우려한 정부와 채권단이 해운업 지원에는 소극적이란 게 해운업계의 시각이다.

한국선주협회는 "채권단이 조선업계 부실에 따른 문책의 여파로 해운업계 지원불가 입장을 접지 않고 있다"며 "조선업에는 10조원이 넘는 막대한 유동성을 공급했지만 해운산업 위기극복을 위한 지원은 없었다"고 했다.

반면 채권단은 자구 노력으로 경영 정상화 기회를 잡은 현대상선과 같은 원칙을 고수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산은이 대주주인 대우조선과 민간기업 소유의 해운사는 성격이 다르다고도 강조한다. 해운업계에선 파국을 피하기 위해 법정관리 대신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합병'을 추진해야 한다는 절충안을 내놓고 있다.


bborir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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