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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잃은 설움에 남녀 없었다…온가족이 독립운동"

어머니·언니까지 3대 독립운동 한 오희옥 지사
독립유공자 중 여성 2%…행적 입증자료 부족해

(서울=뉴스1) 양은하 기자 | 2016-08-15 07:00 송고
지난해 8월12일 서울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열린 광복 70주년 특별기획전 '독립을 향한 여성영웅들의 행진' 개막식에서 여성독립운동가 오희옥 지사가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 News1 오대일 기자

"여자도 남자처럼 최전방에서 총 들고 망 봤어요. 독립운동 하는데 남자, 여자가 따로 없습니다. 온가족이 다 하는 거죠."

지난해 개봉해 인기를 끈 영화 '암살'의 주인공 안옥윤으로 여성독립운동가에 대한 관심이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당시 여성들의 독립운동은 알려진 것보다 더 적극적이고 활달했다는 증언도 곳곳에서 나온다. 하지만 여전히 여성독립운동가들의 활약상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올해 3월 기준 훈·포상을 받은 독립유공자는 1만4329명이다. 이 중 여성은 272명(1.9%)에 그친다. 보훈처에서 발굴한 (독립운동 활동기록이 있는) 전체 여성 독립운동가는 2000여명에 이르지만 포상은 10%에 불과하다. 행적을 확인할 입증 자료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나라없는 설움에 온 가족이 일심동체"

오희옥 지사(90)는 현재 생존한 여성독립유공자 4명 중 한명이다. 1939년 14세 때 중국 유주에서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에 입대해 일본군의 정보수집과 일본군 내 한국인 사병 탈출에 기여한 공을 인정받아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았다. 민영주 지사(93), 박기은 지사(91·미국 체류), 유순희 지사(90)는 모두 고령으로 병석에 있다.  
오 지사는 12일 뉴스1과의 통화에서 "그때는 나라가 없기 때문에 온 가족이 일심동체가 되어 독립운동을 했다"고 말했다. 실제 오 지사 집안은 3대가 독립운동을 했다. 할아버지인 오인수 의병장과 아버지 오광선 독립군 장군뿐 아니라 어머니 정현숙 지사와 언니 오희영 지사도 독립운동을 했다. 

"어머니는 키가 크고 쌀 한 가마니를 짊어질 정도로 건장했어요. 아무것도 없는 만주에서 나무를 자르고 논밭을 만들어 하루 열두가마씩 독립군 밥을 지어 뒷바라지했습니다. 언니도 중3때 한국광복군에 가입해 최전방인 광복군 제3지대에서 활동했어요. "

오 지사는 가족과 당시 집 2층에 살고 있던 독립운동 청년들의 영향을 받아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그는 "중국과 한국 청년들이 합세해 극장을 얻어 반일 연극, 무용, 노래를 하고 표를 팔아 번 돈으로 군자금을 마련했다. 길거리에서 종이로 마이크를 만들어 일본인들이 저지른 악행을 선전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여성들도 남성 못지않게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고 전했다. 오 지사는 "조순옥, 오광심, 지복영처럼 최전방에서 군사훈련을 받고 총을 차고 망을 보는 여성도 있고 군자금을 모으거나 선전전을 한 여성도 많았다"며 "중국사람이 '망국노'라고 놀려 말도 못하고 숨거나 도망다니면서 나라 없는 설움을 받으니 모두가 같은 마음"이라고 강조했다.

제 71주년 광복절을 사흘 앞둔 12일 서울 종로구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앞에서 시민들이 태극기 바람개비 앞을 지나가고 있다. 2016.8.12/뉴스1 © News1 황기선 기자
제 71주년 광복절을 사흘 앞둔 12일 서울 종로구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앞에서 시민들이 태극기 바람개비 앞을 지나가고 있다. 2016.8.12/뉴스1 © News1 황기선 기자

◇혈서쓰고 폭탄투척해도…행적 입증할 자료 부족

하지만 여성독립운동가들이 유공자로 인정받기는 쉽지 않다. 입증 자료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독립유공자가 되기 위해서는 독립운동단체명부, 기관지, 판결문, 제소자 신분 카드, 활동 당시 신문기사, 사진 등 원전 자료를 통해 적극적인 독립운동 공적을 입증할 수 있어야 하는데 남성중심 사회구조 탓에 당시 여성의 활동에 대해서는 기록 자체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희선 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장은 "여성 독립운동가들은 군자금을 마련하거나 무기를 옮기고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항일투쟁에 참여했지만 이런 활동은 기록에 없다"며 "여성독립운동가는 유관순밖에 모른다고 할 정도로 역사 자체가 묻혀있다"고 설명했다.

1920년 8월 평남도청에 폭탄을 던지는 등 항일무장투쟁에 나섰던 안경신 의사(1888~?)는 비교적 알려진 인물이지만 사실 그에 대한 기록은 많지 않다. 당시 33세였던 안경신은 임신한 상태에서 폭탄 투척에 나섰고 체포돼 옥고를 치렀는데 이후 어디서 어떻게 생을 마쳤는지 행적이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오 지사의 어머니도 독립운동 기록이 없어 수훈을 받지 못하다가 고인이 된 이후인 1995년에서야 대만에서 관련 자료가 발견돼 유공자로 인정됐다. 오 지사는 "생전에 어머니가 '훈장 하나 못 받는다'는 말을 하곤 했다"고 전했다. 

독립유공자 자격 기준이 당시 시대 상황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다. 예를 들어 독립운동 활동을 원전 자료를 통해 증명할 수 있다고 해도 최소 6개월 이상 일제에 항거해 독립운동을 하거나 3개월 이상 옥고를 치러야 유공자 자격이 주어지는데 당시 여성들은 이 기준을 충족하기가 쉽지 않다.

심옥주 한국여성독립운동연구소 소장은 "당시 분위기상 여성이 3개월 이상 옥고를 한다는 것은 충격적인 일"이라며 "일본도 죄질이 아주 무겁지 않은 이상 여성은 풀어주었고, 부모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데려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래서 서대문 형무소 여수감자 수형 카드에 이름이 있는 여성독립운동가 중 서훈을 받은 이는 많지 않다. 이들의 평균 수감일은 1개월 정도라고 한다.

현행 중·고교 한국사 교과서에 등장하는 항일투쟁 여성이 유관순 열사뿐인 상황에서 심 소장은 사회가 여성독립운동가들의 진취적인 행적에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여성독립유공자 272명의 활동을 보면 임시정부, 광복군, 학생운동, 국내항일운동, 3·1운동, 만주·미주 방면 등 모든 독립운동계열에 포함돼 있다"며 "이들을 추적하는 것은 한국 여성의 역사를 올곧게 세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letit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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