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본문 바로가기 회사정보 바로가기

"휴가요? 깁스하고도 일해요"…11년차 택배기사의 '여름'

300개 배송·야간근무…택배사-영업소, 처우엔 '딴소리'
휴가철 물량 절반 '뚝'…"택배사 결심하면 휴가 가능"

(서울=뉴스1) 양종곤 기자 | 2016-08-12 07:20 송고 | 2016-08-12 09:08 최종수정
A씨는 9살, 6살 두 아이를 둔 아버지다.
A씨는 9살, 6살 두 아이를 둔 아버지다. "아이들과 같이 놀아줄 수 없는 상황이 미안하다"고 털어놓는다.   © News1

최근 직장인들의 대화주제는 '여름휴가 물어보기'다. 한낮 폭염과 열대야가 기승을 부리면서 '이제 휴가도 없다' '휴가만 바라보고 일한다'는 푸념이 직장인 사이에서 이어진다. 

11년차 택배기사 A씨(36)에게 여름휴가는 '다른 나라 얘기'다. 그가 들려주는 택배기사의 여름은 사투였다. 

◇"누가 아픈 몸 이끌고 일하고 싶겠어요"

12일 기자와 배송업무 탓에 만나지 못하고 전화통화를 한 A씨는 2006년 B택배회사에 취직한 후 지금까지 서울 영등포지역에서 배송을 맡고 있다.  

10년 동안 한 번이라도 회사가 정한 여름휴가를 다녀온 적 있느냐는 질문에 A씨는 "아니요"라고 웃는다. A씨는 "일요일만 쉬고 임시공휴일, 선거일에도 쉬지 못했다"며 "추석과 같은 명절기간에는 일요일까지 일해야 한다"고 말했다. 

택배기사가 쉬지 못하는 이유는 업무 특성 때문이다. A씨가 하루에 나르는 물량은 200~300개다. A씨의 지인은 400개도 나르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A씨의 일과를 보면 오전 7시쯤 택배터미널로 출근해 트럭에 짐을 옮겨 싣는 상차작업을 한다. 이 작업이 마무리되면 오후 1시쯤부터 배송업무를 시작한다. 배송을 마치고 익일 물량을 터미널로 가져오는 집하작업이 늦어지는 날이면 오후 10시가 넘어 퇴근하는 경우도 있다.

택배기사의 수익은 물량에 비례한다. 건당 평균 700원대 수수료를 받는다. 휴대전화요금, 유류비, 밥값은 본인의 몫이다. 이 비용을 빼면 한 달에 300만원가량 수익이 난다.

이 때문에 하루라도 더 벌어야겠다는 생각 때문에 휴가를 반납한 것인가라고 묻자 A씨는 또다시 "아니다"라고 말했다. A씨는 "몸이 아프면 하루 일해 더 버는 게 중요하지 않다"라며 "다음날, 앞일을 생각해야 한다. 누가 아픈 몸을 이끌고 일하고 싶은가"라며 반문했다.

A씨는 물품을 나르다가 왼발을 접질려서 깁스를 한 적이 있다고 한다. 일명 '반깁스'를 하고 절뚝거리면서 일터로 나갔다. 전신을 쓰는 일이다 보니 목깁스를 한 적도 있다. 그때도 쉬지 않았다고 한다. 

왜 쉬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A씨는 "쉬고 싶어도 쉴 수 없는 상황"이라며 "회사는 일을 시킬 때는 '근로자'로 대하고 휴가나 병가를 낼 때는 '당신들은 개인사업자'라고 말을 바꾼다"고 말했다. 

A씨의 설명대로 택배기사는 개인사업자다. 일반적으로 택배회사는 택배영업소(대리점)와 계약을 맺고 영업소가 다시 계약을 맺는 형태로 사업을 영위한다. 택배기사까지 이 3개 주체가 지입계약에 묶여 있다.

이 구조 탓에 여름휴가와 같은 택배기사의 처우에 대해 택배회사와 택배영업소는 딴소리를 한다는 지적이다.

A씨는 "영업소가 B택배회사와 지입관계를 맺었는데 정작 관리감독은 B택배회사가 하고 있다"며 "우리들의 처우는 영업소장의 책임인데 실질적으로 회사가 관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처우 문제에 대해 영업소에 문제제기를 하면 영업소는 택배회사 핑계를, 택배회사에 요청하면 영업소로 책임을 전가한다는 얘기다. 결국 영업소와 택배회사가 '한 몸'이 되어 택배기사를 관리한다는 것.

이같은 주장이 사실이라면 B택배회사는 하도급법 위반 소지가 있다. 하도급거래란 기업이 제품이나 서비스를 직접 생산하지 않고 다른 기업을 통해 공급받는 거래다. 쉽게 말해 자동차 대기업이 부품업체로부터 부품을 받아 차를 완성시키는 것이다. 

현행 법은 A씨가 근무하는 영업소처럼 하도급거래 당사자가 B택배회사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도록 보호 규정을 마련했다.

A씨의 주장에 대해 택배회사들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택배기사는 영업소와 계약관계로 묶여 있기 때문에 우리가 나설 수 있는 부분이 거의 없다"고 전했다. B택배회사도 "여름휴가건은 영업소 선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하고 있다"고 말했다.

◇휴가 없이 '추석배송대란' 다가온다

택배기사는 여름휴가를 정말 갈 수 없을까. '택배회사의 결심'에 달렸다. 2014년 7월말 KGB택배는 택배기사 하계휴가를 결정했다. 그해 8월14일 접수한 물품을 18일에 배달하기로 고객사(고객, 회사 등)에 사전 협의를 구했다. 

이처럼 택배회사의 여름휴가가 가능한 이유는 7~8월 택배물량 특성때문이다. 통상적으로 7월말부터 8월초에는 물량이 평소 대비 절반 수준까지 준다. 여름휴가를 떠나는 고객사가 많기 때문이다. 부패가 빨리 일어나는 '생물' 배송도 감소하면서 1~2일가량 배송을 지연할 수 있다는 것.

A씨는 "일반적으로 토요일 물품에는 휴일인 일요일을 고려해 식품이 거의 없다"며 "회사가 금요일 고객사에 식품배송이 불가하다고 알리면 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렇게 된다면 이번주의 경우 13일과 14일을 쉴 수 있게 된다"며 "최근 물량 추이를 보면 13~14일 휴가를 가도 16일 배송에 대한 택배기사의 부담이 크지 않다"고 강조했다.

택배기사들 사이에서는 벌써부터 내달 추석근무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택배회사는 매년 추석 연휴를 앞두고 한달 전부터 비상영업 체제에 돌입한다. 추석 기간에는 평소보다 물량이 30% 넘게 증가한다. 업계에서 이 시기를 '배송대란'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A씨는 9세, 6세 두 아이를 둔 아버지다. "아이들과 함께 놀아줄 수 없는 상황이 늘 미안하다"고 털어놓는다. 어쩌다 토요일 물량이 크게 줄면 동료 택배기사에게 도움을 청하고 주말여행을 다녀온 게 이 가족의 10년 여름휴가 전부였다.


ggm11@

이런 일&저런 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