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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일의 맥] 실수를 잘 해야 축구를 잘 할 수 있다

(서울=뉴스1) 임성일 기자 | 2016-07-27 12:53 송고
슈틸리케 감독은 한국 선수들이 지나치게 실수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지적했다. © News1
슈틸리케 감독은 한국 선수들이 지나치게 실수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지적했다. © News1

축구는 부정확한 스포츠다. 둥글고 큰 공을 손이 아닌 발로 차는 것이 주된 행위니 아무래도 그럴 수밖에 없다. 공을 직접 손으로 잡고 던지거나 손에 쥔 도구로 공을 부리는 종목들보다는 실수가 많이 나온다. 그런 실수를 인정하는 게 축구고 그런 실수를 노리기도 하는 게 축구다.
아무리 발등에 공을 정확히 얹혀 강하게 슈팅을 시도해도 골키퍼 정면으로 향하면 막힌다. 하지만 빗맞아 예상치 못한 방향과 속도로 데굴데굴 굴러가거나 의도치 않게 엉덩이 맞고 골이 되는 경우도 있다. 

요컨대 축구에서 실수란 비일비재한 일이다. 실수를 줄여나가려는 노력은 필요하지만 실수가 두려워 소극적인 플레이를 펼치는 것은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다. 과감하고 다양한 시도에서 창의적 플레이가 나오는 법인데 실수가 두려우니 했던 것, 무난한 것, 안전한 것만 반복한다. 한국 축구가 그렇다. 한국 축구가 그렇다고 파란 눈의 이방인이 지적하고 있다.

슈틸리케 감독이 26일 오후 경희대학교 평화의 전당에서 열린 대한축구협회 강연시리즈 제10차 '태극마크, 그 이름을 빛내다' 행사에 참석했다. 그는 이제 막 축구를 시작하는 어린 선수들과 그들이 잘 자라기를 원하는 학부모, 지도자들을 위해 속 깊은 조언을 전했다. 그중 가장 인상 깊은 대목은 '실수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충고였다.

슈틸리케 감독은 "지금껏 대표팀 안팎에서 한국 선수들을 만나면서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실수를 너무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마음에 큰 짐을 안고 경기를 한다"면서 "'내가 과연 잘할 수 있을까', '내가 골을 넣을 수 있을까'라는 부담을 가지고 경기장에 들어가서는 좋은 플레이를 펼치기가 상당히 힘들다"고 꼬집었다.
아쉬운 것은 지금으로부터 1년 반 전, 슈틸리케 감독이 한국대표팀 사령탑으로 막 부임했을 때도 비슷한 지적을 했다는 점이다.

2015년 대한축구협회 시무식에서의 일이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은 "얼마 전 슈틸리케 감독과 대화를 나누다 부끄러웠던 적이 있었다. 그는 포메이션이나 체력, 기술 등 전술적인 측면이나 선수들의 경기력을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선수들이 실수를 두려워하고 수동적이라는 정신적 문제를 가장 큰 약점으로 꼽았다"고 전했다.

슈틸리케 감독이 만나는 선수는 대부분 대표급이다. 대한민국에서 축구를 가장 잘하는 이들이라는 뜻이다. 그들조차 실수에 대한 두려움, 잘 못하는 것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면 다른 선수들은 말할 것도 없다. 그렇게 자라서 그렇다. 실수를 하거나 공을 빼앗기면 만회하려 달려들기 전에 고개를 숙이거나 벤치를 먼저 바라보는 것이 우리네 풍토다.

지도자를 포함한 가르쳐주는 이들의 문제가 크다. 각급 국가 대표팀의 멘탈 코치로 잘 알려진 윤영길 한국체육대학교 교수는 "실수를 어떤 눈으로 바라봐야하는가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화두를 던졌다. 이어 "실수로 끝난 그 행동이 아이에게는 위대한 도전이었을 수 있다. 결과는 실패지만 도전 자체는 아주 큰 성공이었다. 실수에 유연한 태도를 가져야한다"고 짚었다. 중요한 대목이다.
창의성을 기르기 위해서는 실수에 대한 두려움 없이 시도하고 도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지도자들의 몫이 중요하다. © News1
창의성을 기르기 위해서는 실수에 대한 두려움 없이 시도하고 도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지도자들의 몫이 중요하다. © News1

이제는 일반 축구팬들도 한국 축구의 큰 약점은 '창의성의 결여'라고 지적하고 있다. 눈에 보이는 뻔한 패턴으로는 좋은 결과를 얻기 힘들다는 것을 다 공감하고 있다. 유럽의 강호들도 밀집 수비를 펼치고 압박이 전방에서부터 펼쳐지는 현대축구의 흐름에서 '창의적 플레이'와 '창의적 플레이어'는 반드시 필요한 무기가 되고 있다. 있으면 좋은 수준이 아니라 꼭 있어야한다.

아무도 생각지 못했던 패스 한방과 컨트롤 한번과 드리블 하나가 벽처럼 서 있던 수비수들을 추풍낙엽으로 만들 수 있다. 전제 조건은 시도다. 일단 해야 성공이든 실패든 답이 나오는데, 지금 우리 선수들은 시도조차 하지 않고 있다. 실수가 두려운 까닭이다.

지금으로부터 12년 전, 19세였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유로 2004를 통해 처음으로 메이저대회를 경험하게 된다. 당시 포르투갈 대표팀은 루이스 피구, 후이 코스타, 누누 고메스 등 황금세대들과 그들의 뒤를 받쳐줄 데코, 마니쉐, 코스팅야, 카르발류 등 화려한 스쿼드를 자랑했다. 그때 호날두는 풋내기자 새내기였다.

그러나 막내 호날두는 선배들 사이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미래의 난사왕' 기질을 뽐냈다. 공을 잡으면 드리블을 쳤고 열렸다 싶으면 슈팅을 때렸다. 지금도 시도가 많은 만큼 실수도 많은데 덜 여물었던 그때는 더더욱 그랬다. 하지만 호날두는 두려움 없이 시도를 이어갔다. 그렇게 12년을 뻔뻔하게 자란 호날두는 결국 유로 2016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호날두까지 갈 것도 없다. 밖에서 축구를 즐기면서 자란 손흥민이나 이승우의 플레이가 거침없다는 것은 이제 많은 이들이 주목하는 점이다. 윤영길 박사는 "남의 자식 바라보듯이 지도하라"는 곱씹을 메시지를 전했다. 마음껏 해볼 수 있는 판을 깔아주는 것은 어른들의 몫이다. 신나고 재밌어야할 일이 두렵고 무서워지면 답 없다.

걱정 말고 해보라고 웃으면서 말해놓고 결과가 다르면 으르렁이다. 틀 속에서 키워놓고 왜 창의적이지 않냐 다그치면 답답하다. 실수를 잘 해야 축구를 잘 할 수 있다. 당연히, 축구에만 해당되는 일은 아니다.


lastun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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