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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헌절기획①]대한민국 68년 헌정사는 '헌법유린'의 역사

(서울=뉴스1) 윤진희 기자 | 2016-07-15 06:00 송고 | 2016-07-15 15:35 최종수정
편집자주 17일이면 대한민국 헌법이 제정된 지 68주년이 된다. 1948년 5·10 총선거 결과로 탄생한 제헌국회가 헌법안을 통과시키고 국회의장이 이를 공포해 '국가 최고법'을 제정한 지 벌써 68년이 흘렀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개헌론이 분출하고 있는 가운데 맞이한 제헌절을 정리했다.
1948년 7월 17일 제정 된 대한민국 헌법 원전(헌법재판소  제공)
1948년 7월 17일 제정 된 대한민국 헌법 원전(헌법재판소  제공)

◇ 옛 일본제국 헌법, 독일 바이마르 헌법 똑 닮은 대한민국 헌법


제헌 이후 대한민국 헌정사는 파란만장했다. 지금까지 총 9번의 헌법 개정이 있었으며, 그 가운데 6번의 개헌은 집권자의 독재나 장기집권을 위한 것이었다. 이승만 전 대통령과 박정희 전 대통령이 각각 장기집권을 위해 3번씩 총 6 차례 개헌했다. 
우리나라는 1945년 해방된 후 3년간 미군정의 통치를 받았다. 1948년 5·10 총선거를 통해 제헌의회가 구성됐고, 국회가 가장 먼저 할 일은 당연히 국가최고법인 '헌법'을 만드는 일이었다.

외국의 경우 헌법을 제정하기 위해 짧게는 수년 길게는 수십년의 논의를 거치지만 우리 헌법은 50일만에 제정됐다. 우리헌법은 옛 일본제국 헌법과 독일의 바이마르 헌법을 그대로 본떴다. 사실 독일 바이마르 헌법을 베낀 일본헌법을 다시 베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 하지만 '정부형태'만은 일왕이 존재하는 옛 일본제국 헌법과 다르게 미국식 '대통령제'를 채택했다.

제헌국회의 헌법기초위원들도 처음에는 국회를 하원과 상원 등으로 나누는 양원제로 구성하고, 정부형태는 의원내각제로 하는 헌법초안을 만들었다. 하지만 미국 유학 등 미국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평가받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주장으로 미국식 대통령책임제로 정부형태를 바꾸고, 국회는 단원제로 수정한 헌법안을 통과시켰다.

당시 초기 헌법안이 본회의에 상정되자 다양한 수정안이 나왔지만 1948년 8월 15일까지 국내외에 독립을 선포해야 할 필요성 때문에 제헌국회는 시간에 쫓겼다. 국가임을 선포하기 위해서는 근본규범인 ‘헌법’이 필수적이기 때문이었다. 결국 충분한 논의를 거치지 못한 채 이승만 전 대통령의 주장대로 헌법이 제정됐다. 이후 헌법은 현재까지 총 9차례의 개정을 거쳤다.
◇ 대한민국 헌정사는 '헌법 유린'의 역사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대통령은 재임 시절 헌법을 두 번 개정했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부산으로 피난을 내려간 상태에서 개헌을 단행했다. 1952년 7월 7일 1차 개헌은 이른바 ‘발췌개헌’으로 불린다. 정부 측 개헌안과 국회 개헌안 가운데 일부조항을 골라서 개헌했기 때문이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1차개헌을 통해 국회에서 간접선거로 선출하던 대통령제를 5년 단임 직선제로 개헌한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1차 개헌을 통해 1952년 8월 5일 대통령에 재선된다. 결국 1차 개헌도 집권자의 대통령직 유지를 위한 것으로 평가된다.

2차 개헌 역시 이승만 전 대통령이 주도했다. 그 유명한 ‘사사오입’ 개헌으로 당시 헌법의 대통령 3선 금지 조항을 폐지하기 위한 개헌이었다. 2차 개헌은 1954년 11월 29일 4사5입(반올림)이론을 빌려 이뤄졌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4사5입 개헌을 통해 3선 대통령이 된다. 그럼에도 욕심을 버리지 않고 4선에 도전해 3·15 부정선거를 저질렀지만 결국 4·19 혁명으로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게 된다.

1960년 6월 15일 3차 개헌은 4·19 혁명 이후인 만큼 비교적 민주적인 절차를 거쳐 개정이 이뤄졌다. 독재를 예방하기 위해 대통령제를 버리고 의원내각제를 채택했다. 5개월 뒤에 4차 개헌이 있지만 3차 개헌 헌법을 일부 수정하는 수준에서 그쳤다.

1961년 박정희의 주도로 육군사관학교 8기생 출신 군인들이 정변을 일으켜 정권을 장악하는 5·16 군사쿠데타가 일어나고 헌법은 다시 한번 독재자의 권력유지의 도구로 이용된다. 1962년 이뤄진 5차 개헌은 헌법을 거의 다시 쓰는 수준이었다. 의원내각제를 폐지하고 대통령제를 부활시켜 국민직선으로 뽑게 하고 재선이 가능하도록 헌법을 고쳤다. 양원제를 폐지하고 국회를 단원제로 돌려놓았다.

1969년 10월 21일의 6차 개헌은 군사정변으로 집권해 대통령 재선까지 마친 박정희 전 대통령이 3선을 위해 단행한 개헌이다. 5차 개헌으로 대통령의 4년 중임제 즉 8년간의 대통령 재직만을 허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임기가 거의 다 되어가는 박정희 전 대통령은 다시 헌법에 손을 댔다. 이승만 전 대통령과 같이 3선 개선을 시도했고 결국 성공해 장기 집권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72년 10월 17일 국가긴급권을 발동해 국회를 해산하고 비상계엄을 선포한 뒤 7차 개헌을 시도한다. 통일을 대비한다는 명목이었다. 이 헌법이 바로 ‘유신헌법’이다. 전문개정을 해 기본 골격만 남겨둔 채 헌법 전반을 새로 썼기 때문에 사실상 새 헌법을 제정한 셈이다. 유신헌법은 기본권 제한을 쉽게 하고, 국회의 회기 단축과 권한 약화, 대통령의 법관 임명권, 새마을 사업 등을 주요 골자로 한다. 대통령을 간접선거하도록 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영구집권을 꾀한 것으로 평가 받는다.  

8차 개정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암살된 1979년의 10.26사태가 일어난 후 이뤄졌다. 유신헌법을 통한 영구집권을 막기 위해 대통령을 단 한번만 할 수 있도록 ‘대통령 단임제’를 다시 도입했다.

장기집권을 용이하게 하는 '대통령 간선제'를 계속 유지하려 했으나 1986년 6.10 항쟁에 굴복해 철회하고 1987년 10월 29일 ‘대통령 직선제’로 개헌한다. 87년 개헌이 9차 개헌이며 87년 헌법이 현재 우리가 국가최고규범으로 삼고 있는 현행헌법이다.

87년 개헌 이후 30년이 흘렀다. 세기가 바뀌었지만 국민 삶의 근본이자 국가를 운영하는 ‘규칙’이 되는 헌법은 30년째 그대로다. 그나마 30년 동안 헌법이 집권자의 장기집권이나 독재를 위해 개헌되는 일이 없었다는 사실만은 다행스럽다. 그럼에도 우리 헌법의 역사는 '회환과 오욕'의 역사였다. [법조전문기자·법학박사]


jurist@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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