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본문 바로가기 회사정보 바로가기

[마을버스 위태롭다]골병 든 운전기사…시민안전도 위협

"배차시간에 쫓겨 승객고려 여유 없어"
최대 운전시간 제한 등 제도 정비 필요

(서울=뉴스1) 정혜아 기자 | 2016-07-02 07:00 송고 | 2016-07-02 11:11 최종수정
서울 신촌 연세로에 마을버스가 지나고 있다(위 사진은 아래 기사와 관계없음). © News1
서울 신촌 연세로에 마을버스가 지나고 있다(위 사진은 아래 기사와 관계없음). © News1

서울 마을버스 운전사인 정모씨는 운전대를 잡으면 아직도 얼굴이 화끈거릴 때가 있다. 떠올리기도 싫은 그날의 낭패 때문이다. 정씨는 서둘러 배차시간에 맞춰 운행해야 했다. 평상시와 달리 속이 심하게 부글거린다 싶었지만 배차시간 압박에 차마 화장실을 가지 못한 것이 화근이었다. 마을버스를 운행 중 아차하는 순간 정씨는 앉은 자리에서 볼 일을 보고야 말았다. 
정씨는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을 정도로 너무 끔찍했다. 화장실 갈 시간만 있었어도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며 "마을버스 기사들 중 비뇨기 관련 질환이 다반사이고 배변을 참는 게 일상이 되다보니 전립선에 질환이 생겨 약을 먹는 이들이 많다"고 했다. 

20여년 동안 마을버스를 운행한 박모씨는 항상 두통약과 위궤양 약을 챙겨서 운전대를 잡는다. 신경성 질환이 박씨를 늘 쫓아다닌다. 박씨는 "두통이 심한 편"이라며 "배차시간 압박 때문에 신경을 많이 쓰다보니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기사들이 문제를 제기하면 투쟁 중인 한남상운의 배차시간표를 보면 숨쉴 틈도 없을 정도다. 오전 4시40분에 출근해 마을버스 운행준비를 마친 뒤 오전 근무에 들어간다. 오전 5시부터 오후 2시까지 총 9회 운행을 해야한다. 꼬불꼬불한 13.3km의 거리를 50~60분 배차시간에 맞춰 운행해야 하니 회차 운행 간 쉴 시간이 거의 없다는 게 기사들의 호소다.         

이처럼 빠듯한 배차시간에 쫓기는 마을버스 기사들이 골병들고 있다. 윤종희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 서울·경기·강원지역버스지부 사무국장은 "노조 측에 질환을 호소하는 마을버스 기사들이 많다"며 "일부는 약을 먹지 않고는 운전을 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승객 안전 고려할 여유가 없다"…시민안전까지 위협

문제는 마을버스 기사들의 골병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시민 안전까지 위협할 수 있다는 데 있다. 한 마을버스 기사는 "운전하다 갑자기 찾아오는 두통이나 위통으로 아찔한 순간이 가끔 있다"며 "이때 승객안전까지 고려할 여유가 없는 것이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건강상에 문제가 없는 마을버스 기사들도 "현 시스템에서의 배차시간으로 승객 안전을 고려할 여유가 없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입을 모은다. 

한 마을버스 기사는 "마을버스 기사를 압박하는 배차시간은 시민 안전도 담보할 수 없다"며 "배차시간의 압박으로 마을버스 승객의 안전을 고려할 여유가 없다"고 토로했다.

예컨대 마을버스 출입문을 닫으면서 차를 몰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조금만 공간이 있으면 무리하게 끼어들게 되고 기사에 따라 과속도 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마을버스의 경우 기사가 배차시간을 지키기 위해 무리해서 운전하다가 사고가 나는 경우가 많다.

황재인 공인노무사는 "지금과 같은 배차 시스템이 유지되면 사고가 갈수록 늘어날 것"이라며 "시민안전을 위해 적정한 배차 시스템 운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4월5일 새벽 경찰과 소방대원들이 전날 밤 서울 마포구 성산고가 아래로 추락한 마을버스를 견인하기 위해 작업을 하고 있다(위 사진은 아래 기사와 관계없음).© News1
4월5일 새벽 경찰과 소방대원들이 전날 밤 서울 마포구 성산고가 아래로 추락한 마을버스를 견인하기 위해 작업을 하고 있다(위 사진은 아래 기사와 관계없음).© News1

◇인력 증원 등 '적절한' 배차 시스템 확보해야

이영수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위원은 "시민들의 편의를 위해 배차시간을 지키는 것은 필요하다"면서도 현재 배차 시스템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연구위원은 "마을버스 운행 차량을 한 대 늘리거나 마을버스 기사를 한 명 더 투입하기만 해도 상황이 지금보다 훨씬 나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마을버스운송사업조합 측도 마을버스 차량이나 마을버스 기사를 늘리는 입장에는 동의했다. 다만 박재묵 대외업무실장은 "마을버스 운송사의 경영상황이 좋지는 않다"며 "이에 대한 서울시의 지원이 늘거나 대중교통요금이 인상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제도 정비를 주장하기도 했다. 김상철 노동당 서울시당 위원장은 "미국이나 유럽의 경우 버스 기사의 최대 운전시간을 정하는 등의 법규가 있다"면서서도 "마을버스 기사의 노동 특수성 등을 고려해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과 같은 관련 제도에 마을버스 기사 최대 운전시간, 휴게시간 등을 규정하고 적절한 배차 시스템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wit4@

이런 일&저런 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