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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보정리뷰]기립박수 부르는 소극장 연극 '당신의 손'

(서울=뉴스1) 박정환 문화전문기자 | 2016-05-15 16:52 송고 | 2018-05-13 13:30 최종수정
연극 '당신의 손' (사진제공 극단미인 ©장우제)

연우소극장 무대가 어두워지자 힘찬 박수가 쏟아졌다. 지난 12일 개막한 1인극 '당신의 손' 첫 공연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조명이 들어오자 남미정 배우가 새침하게 웃으며 2m 떨어진 객석을 둘러봤다.

건물 구조상 정확하게 둘로 나눈 객석의 한쪽이 텅 비어 있었다. 나머지 절반의 객석도 관객이 20여명에 불과했으나 이들은 꽉 찬 객석에 나올 박수소리에 버금갈 만큼 힘차게 손뼉을 쳤다. 어떤 관객은 환호를 지르기도 했다. 28년차 배우 남미정이 관객을 위로하는 열연을 펼쳤기 때문이다.

'당신의 손'은 배우 남미정의 연기 인생을 아우르면서 주인공 수현이 뒤늦게 짝사랑에 빠지는 얘기를 함께 다룬다. 공연 시작 전, 무대 한쪽 벽에는 분장실의 상황이 실시간 영상으로 보인다. 제작진 한 명이 초조해하는 남미정을 뒤에서 껴안으며 응원한다.

남미정은 등장인물 수현이 아닌 배우 남미정의 상태에서 무대에 나온다. 그가 언제부터 연기를 시작했다는 등을 얘기하는데 무대감독이 앞치마를 걸치라고 지시한다. 이 옷은 '수현24시'를 운영하던 어머니가 관광버스 전복 사고로 사망하자 수현이 물려 입는다고 설정된 앞치마였다.

아직 배우인 그는 앞치마를 입고 계산대에 놓인 대본을 펼쳐 수현의 독백을 읽는다. 처음엔 그의 목소리가 심드렁했다. 2m 떨어진 맨 앞자리 관객에게도 발음이 명확하게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차차 목소리에 에너지가 담기고 무대가 어두워진다.

"슈퍼 길 건너편에 노란 보호등이 있다. 눈을 보호등에 맞춰 깜박거리는 것보다 보호등이 없을 때도 깜박거리는 것이야말로 정말 나와의 싸움이거나 도전이다."(암전 속에서 수현의 첫 대사)

무대가 다시 밝아지면 남미정이 수현24시 여주인으로 완벽하게 빙의한다. 그는 가게 의자에 앉아 눈을 1초 간격으로 깜박거리고 있다. 자정부터 시계 알람이 울리는 아침 6시30분까지 눈을 2만3400번 깜박거리는 것이 그의 유일한 취미다. 부족한 잠을 낮에 보충하느라 그는 '멍 아줌마'라고 불리곤 한다.

수현이 조는 사이에 4100원을 계산대에 올려놓고 담배 '디스 플러스'를 매일 사가는 사람이 생긴다. 누구인지 궁금해진 수현이 졸음을 참아가며 그와 마주친다. '멍 아줌마'라고 불리는 수현을 그가 '누나'라고 부른다.

디자인 공모전을 준비하는 그의 흰 손에 수현이 반하면서 가게의 풍경이 조금씩 바뀐다. 수현은 유통기한이 다 됐다는 핑계로 두부, 과일 등을 담배와 함께 하나씩 챙겨준다. 다음날 그가 받은 음식을 어떻게 먹었다는 얘기를 들려주는 짧은 대화가 수현을 기쁘게 했다. 급기야 수현24시는 과자보다 반찬 재료인 채소가 더 많아진다.

수현이 그에게 깊게 빠질수록 결말은 해피엔딩에서 멀어진다. 그에겐 무용학원을 운영하는 아름다운 여자친구가 있었다. 짝사랑이 실패하지만 수현은 자존감이 생기고 마음을 터놓고 얘기할 좋은 친구도 생긴다.

노란 보조등에 맞춰 삶을 흘려보내던 수현이 아침에 떠오른 노란 태양에게 인사하는 장면은 이 연극의 백미다. 또 하나의 장면을 꼽자면 수현이 참았던 설움을 쏟아내는 순간이다. 당황한 담당 의사가 멍한 표정을 짓자 수현은 마음이 조금 풀렸다고 담담하게 고백한다.

연극 '당신의 손'은 공연시간 90분 동안 작위적인 내용이나 섣부른 위로의 대사가 단 하나도 없다. 오직 남미정 배우가 40대 미혼여성의 응어리진 상처를 담백하게 보여줄 뿐이다. 그의 연기는 어떤 위로도 없는 이 작품을 마주한 관객에게 감동을 넘어선 위로를 안긴다.

기립박수는 유명 예술인이 예술의전당이나 LG아트센터 등의 대극장에서 공연할 때나 나오곤 한다. 지난 12일 동행한 관객은 기립박수를 치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엉덩이가 들썩거렸으나 좁은 소극장을 둘러보고 자리에 앉아 박수만 힘차게 쳤다고 했다. 자신의 망설임을 후회하던 그는 기립박수를 치기 위해 재관람하겠다고 결정했다.

연극 '당신의 손'에서 굳이 아쉬운 점을 꼽자면 텅 빈 객석이다. 객석을 비워두기엔 남미정 배우와 수현24시의 여주인이 너무 아름답다. 5월 12~22일. 서울 대학로 연우소극장. 가격 2만5000원. 문의 (010)2069-7202. 다음은 연극 '당신의 손' 주요 장면이다.

연극 '당신의 손' (사진제공 극단미인 ©장우제)

연극 '당신의 손' (사진제공 극단미인 ©장우제)

연극 '당신의 손' (사진제공 극단미인 ©장우제)

연극 '당신의 손' (사진제공 극단미인 ©장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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