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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홍 "다시, 길고 긴 레이스를 따라서"(인터뷰①)

(서울=뉴스1스타) 장아름 기자 | 2016-04-17 13:15 송고 | 2016-04-17 15:45 최종수정
배우 안재홍의 필모그래피는 영화 '족구왕'을 기점으로 더 흥미로워지기 시작했다. 지난 2015년만 해도 '스물', '차이나타운', '쎄시봉'에 잠깐씩 얼굴을 비쳤고 '여자, 남자'와 '도리화가'에는 주요 배역으로 출연했다. 브라운관으로 영역을 넓혀가더니 드라마 '응답하라 1988'로 이젠 모두가 알아 보는 배우가 됐다. 지난 3월 개봉했던 영화 '널 기다리며'에도 등장했고 이젠 영화 '위대한 소원'으로 작품의 얼굴이 됐다. '족구왕'으로 영화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지 2년도 채 되지 않은 오늘, 안재홍은 "속도가 빨라졌다고 하지만 마음은 조급하지 않다"고 한다. 
필모그래피가 배우의 '그 어떤 길'이라 한다면, "잘 걸어가고 싶은 마음"이라 말하는 그다. 지난해 직접 연출한 '열아홉, 연주'로 제8회 대단한 단편영화제에도 초청됐고, 연출·각본·주연까지 맡은 '검은 돼지'로 오는 28일 개막하는 제17회 전주국제영화제 코리아시네마스케이프 섹션에 초청받았지만 연출에 대한 거창한 뜻을 두고 있는 것은 아니라 했다. "한 공간에서 관객들의 반응을 살필 수 있는 건 영화스럽고 영화적인 일"이라 말하는 그에게, 또 "친구들과 영화를 만들던 추억이 남아 있다"는 그에게, 연출이든 연기든 그저 '잘 걸어가는' 그 자체가 중요한 일 같아 보였다.

배우 안재홍이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영화 '위대한 소원' 개봉 소감을 전했다. © News1star / 고아라 기자
배우 안재홍이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영화 '위대한 소원' 개봉 소감을 전했다. © News1star / 고아라 기자

'위대한 소원'은 그런 그의 길에서 아마 중요한 분기점이 될 작품이 될 것 같다. B급 정서가 충만한 이 작품에서 그가 연기한 갑덕은 평범한 고등학생이지만 비범하게 관객들을 쥐락펴락한다. 자칫 연기가 과장될 수 있는 코미디 장르 영화에서 어느 순간 갑덕이 현실적인 10대 고등학생으로 다가오기에, 관객들은 더 공감하고 포복절도한다. 19금 요소들이 버무려져 있는 영화에서 덩치와 달리 순수하면서도 엉뚱해 보이는 갑덕은 '응답하라 1988'의 열 두살 어린 아이 같았던 정봉과도 닮았고, 스펙 없지만 매사에 느긋한 갑덕의 또 다른 면모는 '족구왕' 만섭과도 중첩됐다.  

그렇게 안재홍은 대개의 캐릭터에 자신의 색깔을 투영하는 것으로 인물을 현실화하곤 했다. 자신의 개인성을 기반으로 필모그래피 내 각 인물들 간의 미묘한 차이를 둔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이 배우를, 다른 이와 대체하는 건 이젠 불가능하지 않을까. 배우로서의 역량을 어떻게 확대시킬지, 스펙트럼을 어떻게 넓혀갈지 궁금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어차피 레이스는 길다"며 자신이 출연하기도 했던 tvN '꽃보다 청춘 아프리카 편' 나영석 PD의 책 제목을 언급했다. 연기하는 매 순간이 여전히 긴장된다며, 달라진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기 보다 잘 걸어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 배우의 다음이 궁금하다.

배우 안재홍이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영화 '위대한 소원' 갑덕 캐릭터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 News1star / 고아라 기자
배우 안재홍이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영화 '위대한 소원' 갑덕 캐릭터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 News1star / 고아라 기자
Q. 드라마 '응답하라 1988' 이후 처음 내놓는 주연 영화에 대한 주위의 반응은 어떻던가. 지난 14일 VIP 시사회 때 반응이 궁금하다. 
A. 나도 VIP 시사회 때 긴장하면서 봤다. 지인 분들을 초대해서 영화를 보는 자리니까 어떻게 보실지 몰라 너무 긴장이 되더라. 그런데 반응이 좋아서 안심이 됐다. 주변 분들도 많이 연락을 주셔서 재미있다고 해주셔서 너무 기분이 좋았다. 어제 시사회에서 (박)보검이는 술을 마시지도 않는데 자리도 지켜줬다. 나머지 (응답하라 1988) 배우들은 차기작 촬영 일정이 있어서 아쉽게도 오지 못했다.

Q. '위대한 소원'에서 연기를 하면서도 이 지점에서 관객들이 웃어줄 것이라 예측했던 장면이 있었나. 또 그 예측이 맞아떨어졌는지.
A. 사실 그런 건 예측을 할 수 없는 부분인 것 같다. 관객들이 웃는 지점을 예측한다는 것 자체가 위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도 눈이 빨개지는 장면을 가장 재미있어 해주시더라. 영혼이 빠져나가는 장면도. (웃음) 영혼이 빠져나가는 장면을 촬영할 당시에는 어떻게 영혼이 빠져나가는 연기를 할까 고민을 했었다.  

Q. 그런 장면들이 갑덕이라 납득이 될 만큼 갑덕이는 엉뚱한 인물이기도 했다. 실제 안재홍과 비슷한 점이 있나.
A. 갑덕이처럼 까불 거리거나 문제를 만드는 사고뭉치는 아니었다. 까부는 것도 적당히 한 것 같다. 사실 내가 낯가림이 심한 편이고 재미있는 사람도 못 된다. 물론 갑덕이 같은 친구는 있었다. 일을 저지르는. (웃음)

Q. 극 중 갑덕이는 고등학생이다. 30대에 고등학생을 연기하기엔 어땠나.
A.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 교복을 입고 촬영한 것은 기분이 묘하기도 하고 좋았다. 교복이라는 걸 6년 정도 입었는데 배우가 돼서 입어보니 색다른 기분이 들더라. 이 촬영을 서른 살에 했었는데 또 한 번 더 입을 수 있을 것 같다. (웃음)

배우 안재홍이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영화 '위대한 소원' B급 정서에 대해 이야기했다. © News1star / 고아라 기자
배우 안재홍이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영화 '위대한 소원' B급 정서에 대해 이야기했다. © News1star / 고아라 기자


Q. '위대한 소원'은 B급 코미디를 지향하기도 한다. 병맛 코미디가 관객들에게 어떻게 보여질 것 같나. 
A. 영화 전체적으로 B급 코미디 정서가 가득 차 있는데 그동안 없었던 코미디 장르라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시지 않을까 싶다. 감독 만의 코미디 색깔이 잘 녹아 있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배우인 내게도 신선하게 다가왔다.

Q. 그런 정서를 표현해야 했지만 배우 입장에서는 나름 웃긴 상황도 진지하게 연기에 접근해야 했을 것이다. 실제로 함께 연기한 남준 역의 김동영 역시 안재홍과 정말 진지하게 연기했다고 이야기했다. 
A. 일단 상황 자체가 웃긴 상황이 많았다. 그렇지만 우린 상황을 웃기다고 받아들이기 보다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진지하게 연기를 했기 때문에 웃음을 드릴 수 있는 부분이 많지 않았나 싶다. 특히 이번 영화에서는 배우들이 개인기를 보여주는 연기를 한 게 아니라 웃기는 상황을 쌓아가야 하는 연기를 보여줘야 했다. 그게 점차 쌓여서 재미나 웃음이 유발될 수 있었다. 작정하고 웃긴다면 재미를 외려 반감시킬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진지하게 들어가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Q. 현장에서 김동영은 가장 막내였는데 호흡은 어땠나. 
A. 동영이와는 정말 잘 맞았다. 취향도 비슷했어서 서로 의견을 내면 감독님이 받아주시기도 했다. 그런데 나는 동영이가 개인적으로 정말 멋진 친구인 것 같다. 남자다운데 귀여운 면도 있다. 말수는 나보다 훨씬 적은 것 같다. 대체적으로 무뚝뚝한 편인 것 같더라.

Q. 류덕환이 입대를 해 두 배우만 홍보에 나서는 것이 아쉬울 법도 하다.
A. 덕환이가 사실 말을 제일 잘한다. 덕환이가 그래서 전면에서 홍보를 하면 참 좋았을 텐데. 사실 그래도 본인이 제일 아쉬울 거다. 아쉽다고 하면서도 의연하게 입대했다.

배우 안재홍이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코미디 장르 영화의 연기에 대해 이야기했다. © News1star / 고아라 기자
배우 안재홍이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코미디 장르 영화의 연기에 대해 이야기했다. © News1star / 고아라 기자


Q. 영화에 고경표가 잠깐 등장한다.
A. 경표도 정말 깜짝 놀라더라. 자신도 찍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있다가 영화에 나오니까 정말 놀랐다고 했다. 난 그게 제일 웃기다고 생각했다. (웃음)

Q. 코미디 장르에서는 나름의 순발력이나 대사의 리듬감 등 장르에서 요구되는 연기들이 있다. 김동영과 연기한 장면에서 안재홍 만의 디테일이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절묘한 애드리브들이 있었던 것인지 궁금하다.
A. 애드리브는 자신이 없어서 잘 안 한다. 그래서 대본에 더 충실하려 한다. 대본에 이유 없이 쓰인 대사는 없다고 보기 때문에 대본이 지도라고 생각을 하고 잘 따라가려 노력하는 편이다. 그런 류의 대사들은 감독님과도 많이 이야기를 했던 부분이다.

Q. 치밀한 계산에 따른 장면들이 많았던 것인지.
A. 예산이 크지 않은 영화이다 보니 촬영 회차가 여타 영화들에 비해 길진 않았다. 그러다 보니 미리 촬영을 들어가기 전에 리딩을 많이 했고 리허설에서 미리 약속을 하고 촬영하는 경우가 훨신 많았다. 원활하게 촬영을 진행해야 하니까. 빨간색 눈도 리허설 때 추가된 장면이다. 감독님께서 급히 특수렌즈를 주문받아서 촬영을 했다. 포대자루 장면도 원래는 박스였다가 사실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포대자루로 바뀐 거다. 그 외에는 즉흥적으로 바뀐 적은 없다. 영화 리듬에 해가 될 수도 있었으니까.

Q. 연기할 때 가장 묘미를 느꼈던 순간이 있었나.
A. 연기를 시작한 이후에도 정말 고민이 많았다. 대학교에 진학한 이후 학교 형들이 전부 입대를 해서 남자 배우가 나밖에 없었다. 그때 주어진 오디션에 발탁이 돼 첫 연극에 주연으로 운좋게 캐스팅이 됐고 그때 연기를 처음 해보게 됐다. 그런데 헛구역질이 날 정도로 긴장이 되더라. 그만큼 너무 힘들었는데 내가 맡은 배역을 객석에서 집중해서 바라봐준다는 걸 느꼈을 때, 내 연기에 웃고 놀라는 반응을 보였을 때 굉장히 짜릿한 느낌이 오더라.

배우 안재홍이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드라마 '응답하라 1988' 이후의 인기에 대해 털어놨다. © News1star / 고아라 기자
배우 안재홍이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드라마 '응답하라 1988' 이후의 인기에 대해 털어놨다. © News1star / 고아라 기자


Q. 연기에 자신감을 갖고 임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
A. 사실 지금도 전혀 편하지 않다. 힘들지만 적당한 긴장감을 갖고 있긴 해야 할 것 같다.

Q. 그렇다면 연기로 관객들에게 다가가는 것과 연출로 다가가는 것은 차이가 있던가.
A. 다를 것 같다. 연기와 마찬가지로 단편 영화 초청 됐을 때도 관객들이 같은 공간에서 내 작품을 바라봐 주실 때 그게 참 매력적이고 영화스럽고 영화적인 일이구나 싶었다. 이번에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작품이 초청돼 상영하게 됐는데 또 다른 긴장감이 드는 것 같다. GV도 긴장이 되고 떨리지만 기분 좋은 걱정이기도 하다. 특히 이번엔 시나리오도 직접 쓰고 출연에 연출까지 맡아서 더 긴장감이 남다르다.

Q. '족구왕'을 기점으로 안재홍의 필모그래피도 많이 달라졌다. '응답하라 1988' 이후에는 그 상승세가 더 가팔라졌다. 지금의 속도를 어떻게 체감하고 있나.
A. 정말로 '족구왕'이라는 작품 덕분에 많은 분들이 알아봐주시고 그 덕분에 '응답하라 1988'에도 출연해서 정봉이 캐릭터로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 속도가 빨라졌다고는 하지만 내 마음은 조급하고 싶진 않다. 그 속도를 타고 빨리 간다기 보다 잘 걸어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Q. 잘 걷는다는 것의 의미는.
A. 전에 '꽃보다 청춘' 나영석 PD님이 책을 하나 쓰셨더라. 제목이 '어차피 레이스는 길다'였다. 사실 책을 읽진 못했지만 (웃음) 제목이 굉장히 마음에 와닿아서 계속 기억하고 있었다. PD님과 연을 맺고 난 다음에 이것저것 검색해보다가 눈에 들어온 책 제목이었다. 책 제목이 주는 느낌처럼 길을 가고 싶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책을 읽지 못했는데 괜히 기억이 난다고 말을 해서 걱정이다. (웃음)

배우 안재홍이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자신이 바라는 소원에 대해 고백했다. © News1star / 고아라 기자
배우 안재홍이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자신이 바라는 소원에 대해 고백했다. © News1star / 고아라 기자


Q. 잘 걸어가는 그 길에 연출의 뜻도 있는 것인가.
A. 연출을 하고 싶다거나 연출에 대한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학교 다닐 때 친구들과 어울려서 워크숍 과제로 단편을 몇 번 찍어본 추억이 계속 차지하고 있어서, 그 시간들이 너무 재미있어서 가볍게 찍어본 것이다.

Q. 극 중 고환(류덕환 분)은 갑덕이와 남준이에게 '어른이 돼라'고 한다. 30대의 안재홍은 어른이 됐을까. 혹은 어른이 돼 가는 과정일까. 
A. 어른이 된 것인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어릴 때는 군인 아저씨들을 보고 어른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내가 군인이 돼 보니까 정말 어린 나이더라. 지금은 서른 한 살이지만 그때 그 마음 그대로인 것 같다. 20대 때는 막막하고 불안하니까 30대가 빨리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내가 단단해져 있을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그때와 똑같은 것 같다. 그때 빨리 30대가 됐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한 것들이 아쉽기도 하다.

Q. 안재홍의 위대한 소원은.
A. 이 질문을 정말 많이 받았는데 '위대한 소원'이 좋은 평가를 받았으면 좋겠다. 그것도 그렇지만 우리 가족이 정말 건강하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내 삶도 행복하고 즐거웠으면 좋겠다. 삶을 멀리 바라보고는 있지만 여전히 순간 순간이 소중하다.


aluem_chang@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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