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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자] 유승민, 공천 배제 딛고 4선에…거물 정치인으로 '우뚝'

(서울=뉴스1) 최종무 기자 | 2016-04-13 22:26 송고
유승민 당선자
유승민 당선자

공천 파동으로 새누리당을 탈당해 무소속으로 20대 총선에 임한 유승민 후보가 4선 고지에 올랐다.

유 의원은 1958년 대구에서 태어나 경북고, 서울대 경제학과, 미국 위스콘신대 경제학 박사를 거쳤다. 지난 2000년 2월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에 의해 여의도연구소장으로 영입되면서 정치권에 발을 들였다.  
그는 2004년 17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뒤 2005년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비서실장으로 발탁되면서 박근혜 대통령과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특히 그해 치러진 10·26 대구 동을 재보선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이강철 후보가 선전하자 비례대표 의원직을 버리고 출마해 당선되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에서는 박근혜 캠프 정책메시지 단장을 맡아 이명박 후보를 겨냥한 최전방 공격수 역할을 하면서 친박(친 박근혜)계 핵심으로 활약했다.  
하지만 2012년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으로 당명을 개정하고 당색을 빨간색으로 변경하는 데 반대하면서 박 대통령과의 관계가 틀어지기 시작했다. 

특히 2015년 2월 새누리당의 원내대표로 당선된 뒤,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면서 박 대통령의 노선과 엇박자를 냈다.   

또 행정입법에 대한 국회의 통제권을 강화하는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을 청와대의 반대 신호에도 불구하고 야당과 합의하면서 박 대통령과의 관계가 '루비콘 강'을 건넜다는 평가가 나왔다.

결국 박 대통령이 국회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며 '배신의 정치 심판론'을 내세우자 원내대표에 오른지 5개월 만에 원내대표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20대 총선 공천 과정에서 친박(친박근혜)계의 집중적인 견제와 당 공천관리위원회의 '고사(枯死)전술'에 의해 새누리당을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유 당선자의 탈당 후 당 공천관리위원회는 이재만 전 동구청장을 공천했으나, 김무성 대표의 옥새 파동 끝에 지역구가 무공천 지역으로 선정되면서 사실상 당선을 예약했다.

역설적으로 새누리당의 '유승민 죽이기'는 유 당선자를 전국구 대권주자로서의 입지를 다질 수 있게 만들었다.  

유 당선자의 최대 관심은 새누리당의 복당 여부다. 유 당선자는 선거 운동 기간 내내 당선 후 새누리당 복당 의지를 강하게 피력했다.

부인 오선혜씨와 사이에 1남 1녀  

△대구(58) △경북고 △서울대 경제학과 △미국 위스콘신대 경제학과 △한국개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장 △한나라당 대표 비서실장 △한나라당 최고위원 △국회 국방위원장 △새누리당 원내대표 △17·18·19대 국회의원


ykjm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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