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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그러진 코리안드림' 주한미군 성매매에 내몰린 필리핀 여성들

미군 접객원 빈 자리…"한국→러시아→필리핀女"
"사실상 피해자지만 보호 장치 미비…제도 마련돼야"

(동두천=뉴스1) 윤수희 기자, 김혜지 기자 | 2016-03-26 07:00 송고
©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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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3월 필리핀 여성 조이씨(29·가명)는 클럽의 가수로 일하기 위해 예술흥행비자를 받고 한국을 찾았다. 그녀는 동두천 미군기지 근처 클럽에 가수로 채용됐다.
필리핀에서는 클럽에서 여성들이 밴드와 함께 전문적으로 노래를 부르며, 이는 하나의 직업으로 인정된다. 조이 역시 이러한 가수가 되기 위해 현지 기획사의 정식 오디션을 거쳤기에 전문 가수로 일할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조이씨의 기대가 무너지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서명한 적 없지만 이미 서명이 된 계약서"로 클럽에 고용된 후 계약서에 적힌 월급 900달러 중 40만원만 받았다.

이 뿐만이 아니었다. 조이씨는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주스'라고 불리는 음료를 팔아야 했으며 나중에는 "산으로 보내버리겠다"는 협박에 못 이겨 성매매에 내몰리기도 했다.

클럽에서 도망치기 전까지 4개월 동안 조이씨는 "호텔 몇 호실로 가라"는 지시를 받았으며, 때로 손님에게 전화해 소위 '2차'를 유도하기도 했다. 성매매의 대가로 받은 돈에서 약 20%만이 조이씨의 몫으로 떨어졌다.
그녀의 숙소에는 항상 감시하는 사람이 있었다. 조이씨는 두 번의 시도 끝에 클럽을 도망쳐 나올 수 있었다. 지금은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식당에서 일하고 있다.

◇ "가수로 왔지만 공연보다 접객·성매매 내몰려"

조이씨와 같은 사례는 약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일어나고 있다.

조이씨 같이 예술흥행비자를 받고 들어온 필리핀 여성들이 주로 일하는 곳은 동두천 미군기지 근처 '외국인 관광특구' 안에 위치한 외국인전용 유흥주점이다. 현재 동두천시 보산동에 82개, 특구 안에는 약 70여개가 운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외에도 의정부, 평택 등 미군기지 주변에 살고 있는 예술흥행비자 소지 필리핀 이주 여성들이 외국인전용유흥주점에서 일하고 있다.

이 여성들은 대부분 가게 건물이나 그 주변에 살며 명목상 클럽 가수로 일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공연보다는 '주스 판매'와 '고객 접대', 심지어 '성매매'에까지 내몰리고 있다.

여성인권단체 두레방은 "여전히 많은 필리핀 여성 종업원들이 누가 더 술을 많이 파는지 업주로부터 평가를 받고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성매매에 내몰리기도 한다"고 밝혔다.

2014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예술흥행 비자로 한국에 들어와 살고 있는 이주민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 중 62.9%가 '고객말벗', '성매매' 등 계약서와 다른 업무를 강요받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두레방 측은 "필리핀에서도 한국에 가면 성매매를 강요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졌다"면서도 "하지만 여전히 많은 여성이 직업 가수를 생각하고 한국에 왔다가 업주의 감시를 당하고 고객 접대와 성매매를 강요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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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여성이 채우는 미군 접객원의 빈 자리

조이씨 같은 필리핀 여성이 본격적으로 유입된 것은 약 2011년으로 추정된다.

법무부의 출입국·외국인정책 통계연보에 따르면 2001년 2051명이던 예술흥행비자 소지 필리핀 외국인은 2011년 3135명, 2013년 3494명으로 늘었다. 이 중 여성은 2736명으로 84.9%를 차지했다.

경기도가족여성연구원 현안보고서에 따르면 2011년 당시 예술흥행비자로 등록된 외국인 여성의 42.4%가 경기도에 체류하고 있으며 특히 주한 미군기지가 있는 동두천시, 평택시, 의정부시에 집중 거주하고 있었다.

"미군기지가 생긴 이래 한국 여성들이 채웠던 접객원의 자리를 러시아 여성을 거쳐 이제는 필리핀 여성들이 채우고 있다는 것"이 단체의 설명이다.

지금은 필리핀 정부 차원에서 필리핀 여성들의 한국 출국을 막고 있는 실정이지만 여전히 많은 여성들이 예술흥행비자로 제3국을 통해 한국에 들어와 인권침해에 노출되고 있다.

일부 여성들은 자발적으로 도망쳐 나오기도 하지만 필리핀에는 일자리가 없기 때문에 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공장이나 식당에서 일하며 생활한다.

공익법센터 어필의 정신영 변호사는 "피해 여성들이 업소를 이탈해 단속이 되면 그때는 이미 체류 자격이 없는 상태라서 미등록 체류자 취급을 당한다"며 "피해 사실을 얘기해도 피해자가 아닌 성매매를 한 범법자로 취급하기 때문에 피의자처럼 조사한다"고 설명했다.

◇"사실상 피해자지만 보호 장치 미비…제도 마련돼야"

이렇게 필리핀 여성들이 클럽 안에서 원치 않는 접객과 성매매에 내몰리고 훗날 불법체류자가 되더라도 이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보호할 수 있는 장치는 여전히 미비하다.

비자발급도 클럽 운영도 모두 합법이며 필리핀 여성은 클럽 안에서 일어나는 불법 행위를 신고해봤자 자기만 손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소라미 변호사는 "필리핀 여성들이 성매매를 하지 않더라도 가수로 들어와 접객원으로 일하는 것 자체가 계약서 상 업무와 달라 불법"이라며 "차라리 이들이 접객원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이들의 인권을 철저히 관리하는 보완장치를 설치하면 좋은데 잘 안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동두천시 관계자는 "최근 필리핀 여성 성매매 사건이 발생한 뒤 관할 경찰, 문화체육관광부, 여성가족부와 함께 합동점검을 실시했지만 외국인 근로자의 어려운 여건을 개선할 근거가 딱히 없었다"고 밝혔다.

필리핀 여성 종업원의 문제가 복합적이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정부 부처 역할이 각각 나눠져 있는 것도 관리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할 수 없는 한 원인이다.

이들의 비자는 법무부가, 임금계약 등의 문제는 고용노동부가, 외국인전용유흥업소의 문제는 관광진흥법에 따라 문화체육관광부가 담당하고 있다.

그나마 여성가족부가 합동점검을 통해 피해 여성의 신고를 받고 상담소로 안내하는 등의 활동을 하고 있지만 이 역시 필리핀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신고를 해야 가능하다.

이에 대해 소라미 변호사는 "문제를 본질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접객원이나 성매매로 일한 이들 여성을 범법자가 아닌 피해자로 보고 이들을 보호할 환경 및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y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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