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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길의 영화읽기]캐롤-끌림, 한계를 넘어

(울산=뉴스1) 이상길 기자 | 2016-03-26 09:00 송고
 
 

<캐롤>에서 뉴욕 맨하튼 백화점의 점원인 테레즈(루니 마라)는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날 손님으로 찾아온 캐롤(케이트 블란쳇)에게 묘한 끌림을 느낀다.

이미 그녀에게는 아주 헌신적인 남자친구 리차드(제이크 레이시)가 있었지만 캐롤에 대한 끌림은 갈수록 커져만 간다.

중년의 부인인 캐롤은 지금 하나 뿐인 딸을 놓고 남편 하지(카일 챈들러)와 이혼 소송 중이다.

캐롤에게는 이미 동성의 연인이 있었지만 그녀 역시 테레즈에 대한 끌림은 거부할 수 없을 정도로 커져 간다.

결국 둘은 각자가 처한 상황을 잊을 만큼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서로에게 깊이 빠져들게 된다. 
    
 
 

끌림은 언제나 도덕을 초월한다. 그건 물리학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도덕은 인간이 만들었지만, 만유인력의 법칙은 신이 만들었다.

인간이 만든 도덕 따위가 어찌 신이 만든 법칙을 지배하리.

그렇게 <캐롤>은 아직은 대단히 보수적인 1950년대의 미국 사회 속에서 시스템을 초월하는 인간과 인간 간의 어쩔 수 없는 끌림에 대해 우선 화두를 던진다.

남자친구가 있는 줄 알면서도 테레즈에게 끌림을 느껴 그녀에게 접근했던 대니(존 마가로)가 말한다.

"너도 알겠지만 사람들한텐 친밀감이 느껴져. 어떤 사람들은 그냥 좋잖아. 너도 그렇지 않아? 어떤 사람들은 싫기도 하고. 근데 이유는 알 수 없지. 왜 다른 이들이 아닌 그 사람들에게 끌리는지 말야. 알 수 있는 건 오직 누군가에게 끌리는가 아닌가 하는 것 뿐야. 일종의 물리학이지. 서로 부딪히고 반응하는 핀볼들처럼. 때론 반응하지 않지만 완전히 살아 있을 수도 있지."
    
 
 

하지만 <캐롤>은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사랑이란 게 그렇다. 그것은 마치 크리스마스 같은 것.

하지만 크리스마스도 반복되면 설렘은 점점 사라져간다. 그런 때면 크리스마스가 다가와도 캐롤을 부를 일은 거의 없어진다.

설령 부르더라도 습관처럼 부를 뿐. 하지만 <캐롤>에서 테레즈는 진심으로 캐롤을 부른다. 그런 테레즈를 캐롤 역시 "어느 날 내게 날아든 새"라며 가슴 깊이 품는다.

비로소 그녀들에게도 잊고 지냈던 크리스마스의 설렘이 찾아든다.

둘의 삶이 너무도 무미건조했기에 한계를 넘어선 동성애라도 그 사랑은 찬란했다.

어떤 의미에서 사랑의 반대는 지루함. 또 그 어떤 사랑이든 뜨거울 땐 빛이 나기 마련이다. 설령 보랏빛이라도. 
    
 
 

이제 테레즈와 캐롤의 보랏빛 사랑은 시스템을 향한다. 그 지점에서 <캐롤>은 끌림과 사랑을 넘어 행복의 영역으로 파고든다.

사실 시스템의 목적은 질서에 있지 행복에 있지 않다. 그 속에서는 사랑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처음 같이 식사를 하면서 동거 중인 남자친구가 있다는 테레즈의 말에 캐롤이 “결혼까지 하고 싶냐”고 묻자 테레즈가 말한다.

“글쎄요. 전 점심메뉴도 결정을 못하는 걸요.”

이 때까지만 해도 캐롤이나 테레즈나 시스템에 질질 끌려 다니기만 했다. 그들의 행복은 시스템 안에 있지 않았던 것.

하지만 거부할 수 없는 둘만의 끌림은 그들을 시스템 밖으로 몰아내고 그곳에서 만난 행복은 흔히 접할 수 없는 것이기에 더욱 빛이 난다. 
    
 
 

일반적으로 끌림, 즉 인력(引力)은 플러스(+)와 마이너스(-) 사이에서 발생하는 걸로 알고 있다.

하지만 만유인력의 법칙에 따르면 세상 모든 물체들은 그냥 서로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고 한다. 심지어 연필과 지우개 사이에도 그 힘은 존재한다고 한다.

때문에 같은 여자인 캐롤과 테레즈의 끌림을 이해 못할 바도 없다. 남과 여라는 시스템적인 구분을 넘어서면 결국 그들도 그냥 ‘둘(two)’일 뿐.

외로운 우주는 그렇게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무작정 끌림을 강요한다. 어쩌면 만유인력의 법칙과 사랑은 같은 게 아닐까.

공교롭게도 테레즈는 캐롤을 만나 진정한 삶의 행복까지 찾게 된다. 행복도 가끔 용기가 필요한 법. 그건 캐롤도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엄밀히 따지면 <캐롤>은 멜로영화가 아니다. 시스템에 대한 저항영화다.

2월4일 개봉. 러닝타임 118분.


lucas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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