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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도 고양이도 장수하는 공동체 '장수마을'

[해피-케어 프로젝트] 골목마다 길고양이들…'독극물 사건'후 급식소 설치에 뜻 모아

(서울=뉴스1) 이병욱 기자, 천선휴 기자 | 2016-03-28 08:39 송고 | 2016-07-08 14:34 최종수정
편집자주 <뉴스1>의 반려동물 전문 플랫폼 '해피펫'과 동물보호단체 '케어'(공동대표 박소연·전채은)가 사람과 동물이 공생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해피-케어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프로젝트의 시작은 '길고양이 급식소 설치'사업이다. 도시 생태계 일원인 길고양이와 사람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공존의 마을을 만들기 위해서다. 길고양이 급식소 설치의 첫번째 사례인 서울 삼선동 '장수마을'은 한양도성 성곽과 낙산공원에 인접해 있는 작은 마을이다. 2004년 재개발예정구역으로 지정될 정도로 낙후됐던 이곳이 주거환경관리사업과 주택개량사업을 통해 '도시재생'이 한창이다. 이처럼 마을의 모습이 크게 바뀌고 있는 가운데 주민들은 또 다른 구성원인 길고양이와의 공생을 모색하기도 한다. 해피-케어 프로젝트는 앞으로 다양한 내용과 사례를 통해 사람과 동물이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안내한다.
장수마을에 살고 있는 길고양이. (최인기 사진작가 제공) © News1
장수마을에 살고 있는 길고양이. (최인기 사진작가 제공) © News1

배가 고팠다. 내가 살고 있던 곳에 아파트가 들어서고 새로운 사람들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하더니 언젠가부터 친구들이 하나둘씩 사라졌다.

사람들은 우리를 경계하기 시작했고,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점점 먹을 것도 찾기 어려웠다. 얼마전엔 가장 친한 친구 하나가 피를 토하며 죽었다. 너무 배가 고픈 나머지 먹지 말아야 할 것을 먹은 것 같다. 그전에는 날카로운 나뭇가지에 배가 찔려 죽은 애도 있었다.

분위기가 점점 으스스하게 변해갔다. 그래서 우리 가족들과 친구들은 걷고 또 걸었다. 몇 날 며칠을 성곽을 따라 걸었더니 작지만 따뜻한 느낌의 한 마을이 눈에 들어왔다.

성곽 아래 자리잡은 이 마을에는 오래된 집들과 곳곳에 화단, 수풀이 있어 너무 편안했다. 사람들도 예전 그곳과 달랐다. 집 앞에 우리가 먹을 사료와 물까지 놔주고 친절했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몇달 전 한꺼번에 많은 애들이 죽는 끔찍한 일이 있었다고 했다. 마을 사람들 때문에 일어난 게 아니라고는 하지만 왠지 불안하다. 우리가 과연 언제까지 이 행복한 생활을 이어갈 수 있을까.

서울 성북구 삼선동에 위치한 장수마을에는 4개월 전쯤 마을에 나타난 '대장' 길고양이가 있다. 대장은 마을 전체가 활동영역이고, 구석구석 위치한 골목마다 서열이 낮은 길고양이 수십마리가 함께 생활하고 있다.

장수마을은 한양도성 성곽과 낙산공원에 인접해 있는 작은 마을이다. 1만9834㎡(약 6000평) 정도 되는 곳에서 300여 가구(약 600명)가 살고 있다.

장수마을의 역사는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제강점기에 서울로 상경한 사람들이 낙산 자락에 움막집을 짓고 살면서 처음 마을이 형성됐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2004년 장수마을 일대가 재개발예정구역으로 지정됐다. 장수마을의 옛 이름 '삼선4구역'. 하지만 사업성 저하로 방치되다 재개발 방식을 대신할 사업이 추진돼 장수마을이란 이름이 붙었다. 그 후 2013년 재개발예정구역이 해지되고 주거환경 관리사업이 시작됐다. 마을 담벼락과 계단에 그림이 그려지고 흉물스럽게 남아 있던 빈집들엔 예술인들이 들어왔다.

낙산 자락에 옹기종기 모인 주택들. 장수마을은 도심에선 보기 힘든 따뜻함이 묻어나는 동네다. 골목엔 이웃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평상이 있고 허기진 길고양이들의 배를 채울 수 있는 사료 그릇들이 곳곳에 놓여 있다. 사람 간의 정은 물론 동물과 교감하고 공생할 줄 아는 따뜻한 이들이 살고 있는 곳이 장수마을이다. 그런데 얼마 전 이곳에 끔찍한 사건이 벌어졌다.

장수마을에 살고 있는 길고양이. (최인기 사진작가 제공) © News1
장수마을에 살고 있는 길고양이. (최인기 사진작가 제공) © News1

◇ 따뜻한 장수마을에 일어난 끔찍한 고양이 살해사건

지난해 11월 장수마을에 '고양이 집단 살해 사건'이 일어났다. 오래 전부터 고양이 사료 그릇이 놓여 있던 곳에서 발생했다. 누군가 사료 그릇에 쥐약을 넣었고, 그것을 먹은 길고양들이 처참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그런데 지난 18일 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학교를 가던 한 대학생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고양이 사체를 발견했다. 끔찍한 모습이었다. 피는 사료가 담겨 있는 그릇에서부터 골목을 가로질러 이어져 있었다. 누군가 사료에 쥐약을 섞은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장수마을에 살고 있는 오영주씨(43)는 이 사건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봤다. 그는 6년차 '집사'이자 3년차 '캣대디'다.

오씨는 "고양이들이 알약으로 된 쥐약을 먹은 것 같다"며 "이 쥐약은 어떤 냄새도 나지 않아 고양이가 맛있게 먹는다. 쥐약을 먹은 고양이는 내장이 녹는 고통을 느끼고 피를 흘리며 몸부림치다 죽는다"고 했다. 

마을의 캣맘들과 주민들은 끔찍한 사건에 많이 놀란 듯했다. 특히 길고양이와의 공생을 자부하던 마을에서 벌어진 일이라 더욱 충격이 컸다. 장수마을 주민은 쥐약을 놓은 이가 누구인지 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증거가 없었다.

장수마을 주민협의회 배정학 대표는 "오래된 동네엔 원래 길고양이 학대가 잘 일어나지 않는다. 특히 장수마을은 길고양이들과의 관계가 아주 좋은 마을이었다"며 "최근 들어서 이런 일이 생겨 안타까울 뿐"이라고 말했다.
장수마을의 한 골목에 놓여 있는 길고양이 밥그릇. (최인기 사진작가 제공)© News1
장수마을의 한 골목에 놓여 있는 길고양이 밥그릇. (최인기 사진작가 제공)© News1

◇ 장수마을에 사는 길고양이 60여마리… 급식소 만들기로

장수마을엔 크게 6개의 큰 골목이 있다. 큰 골목을 줄기로 해서 실핏줄 같은 작은골목들이 미로처럼 펼쳐져 있다. '캣대디' 오영주씨에 따르면 큰 골목마다 약 10마리의 길고양이가 있는 걸 감안할 때 장수마을엔 60여마리의 고양이가 살고 있다.

이 마을엔 길고양이를 위해 주민이 가져다 놓은 사료 그릇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벤치 아래, 손수레 아래, 외진 골목길, 집 대문 앞 등에 사료와 물이 담긴 그릇이 나란히 놓여 있다. 이렇게 장수마을 약 10여곳에 길고양이를 위한 작은 급식소가 있다. 모두 주민들에 의해 만들어진 공간이다.

장수마을의 고양이들은 돌아다닐 곳이 많다. 마을 위에 위치한 성곽과 마을 곳곳에 있는 화단, 수로, 미로처럼 펼쳐진 골목들이 고양이들의 쉼터이자 놀이터다. 또 차가 쌩쌩 달리는 다른 동네들과는 달리 장수마을의 골목엔 차가 올라오지 못해 차에 치일 위험도 없다. 

'길고양이 살해 사건'이후 장수마을 주민협의회와 캣맘들은 머리를 맞댔다. 논의 끝에 길고양이 급식소를 설치하기로 했다. 동시에 중성화 수술도 진행하기로 했다. 중성화 수술을 하면 발정으로 인한 울음과 싸움을 없앨 수 있다. 고양이에 대한 민원의 대부분이 이런 울음으로 인한 것이다.

오씨는 "몇 년 동안 장수마을 고양이들의 밥을 챙겨주고 있지만 중성화 수술은 개인이 하기엔 어려운 점이 많아 하지 못했다"며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얘기하는 고양이 울음소리는 중성화수술로 해결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몇몇 사람은 '사람도 먹고 살기 힘든데 왜 돈을 들여가며 길고양이 밥까지 챙겨줘야 하느냐'고 말하지만 고양이도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생명"이라며 "고양이는 평균 15년을 사는데 길고양이는 3년 이상을 못 산다. 장수마을 고양이는 주민과 함께 장수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장수마을 길고양이 급식소는 4월부터 설치된다. <뉴스1>과 동물단체 '케어', 애견신문, 고양이신문, 사료업체 내츄럴발란스, 펫스테이, 최인기 사진작가, 마을기업 동네목수를 비롯한 주민들이 길고양이 급식소 설치 사업에 함께 참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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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unh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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