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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등석 버스? '휠체어 탄 장애인' 버스 귀성 안되나요?

휠체어 탑승 가능한 고속·시외버스 전국에 '0'대…정부-업계 서로 눈치만
'장애인 시외버스예약제' 관련 예산 국회 통과 무산· "버스 구조적인 문제부터 해결해야"
장애인단체 "시외이동권 보장하려는 '의지'가 중요…이동권은 헌법 보장 권리"

(서울=뉴스1) 조재현 기자 | 2016-02-06 08:00 송고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탑승할 수 있는 고속·시외버스는 전국에 단 한대도 없다. © News1 최진모 디자이너

#. 10여 년 전 교통사고로 하반신 마비 판정을 받은 A씨. 휠체어가 있어야 이동이 가능한 그는 장애인 일자리지원센터의 소개로 서울의 한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A씨는 고향을 떠나온 이후 설날, 추석 연휴 때 편하게 고향을 찾은 적이 없다. 대신 부모님의 '역귀성'으로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장애인의 자유로운 '시외이동권'을 보장하라며 수차례 집회에 쫓아다녔지만,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고속·시외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것은 어쩌면 넘기 어려운 가장 힘든 문턱 중 하나로 보인다.  

이동권을 보장하라는 관련 단체의 꾸준한 요구에도 현재 휠체어를 탄 채로 탑승이 가능한 고속·시외버스는 단 한 대도 없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5월 국토교통부와 기획재정부에 휠체어 사용 장애인 등의 이동권 보장을 위해 고속·시외버스를 개선하거나 이를 위한 재정지원 방안을 마련하라고 권고했으나 해결책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정부는 장애인의 이동권 보장을 위한 예산 편성조차 하지 못했고, 버스 업계는 수익감소 등을 이유로 난색을 보이고 있다.

◇ "돈 내고 승차권 구입해봤자…고향에 갈 엄두가 안 나"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고속·시외버스에 탑승할 수 없는 이유는 단순하다. 전동휠체어는 물론 일반 휠체어의 폭이 커 고속버스 출입문과 복도를 지날 수 없기 때문이다.

접이식 휠체어를 화물칸에 넣고 동행인이 있는 경우 부축이나 도움을 통해 버스 탑승이 가능하지만,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KTX에는 휠체어를 놓을 공간이 마련돼있으나 그 수가 많지 않고 탑승 가능한 휠체어의 규격도 정해져 있다. 무엇보다 설, 추석 같은 명절에는 귀성전쟁으로 입석 승객에게 그 자리를 내어주기 일쑤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14년 말 기준으로 전국에서 운영 중인 고속·시외버스는 9600여대다. 하지만 휠체어 리프트와 휠체어 사용자를 위한 전용 공간이 마련된 버스는 0대다.

이에 명절을 앞둔 전국의 주요 버스터미널에는 장애인단체의 목소리가 수년째 반복되고 있다.

5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는 서울 동서울버스터미널에서 이동권 보장 촉구 기자회견을 열어 버스탑승 권리를 외쳤다. 부산장애인이동권연대도 4일 오후 부산종합버스터미널에서 장애인의 시외이동권 보장을 촉구했다.

지난해 9월 경기장애인차별철폐연대 회원들이 경기도 수원버스터미널에서 ‘고속버스 및 시외버스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뉴스1DB) /뉴스1 © News1 김영진 기자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는 "2006년 제정된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법'을 보면 장애인에게도 모든 교통수단 접근·탑승권을 보장해야 한다"며 "그러나 10년 가까이 이행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이어 "특히 우리가 버스터미널에서 집회를 여는 가장 큰 이유는 휠체어 석이 마련된 KTX가 안 가는 지역을 고속·시외버스는 운행하기 때문"이라며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고속·시외버스의 탑승"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 '휠체어 장애인 버스예약제' 예산 0원인데…'일등석 버스' 시범운영?

정부도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휠체어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한 사업을 계획했으나 예산이 반영되지 않았고, 버스업계를 설득하는 작업도 남았다.

국토부는 지난해 9월 명절처럼 수요가 증가하는 시기에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고속·시외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버스예약제 시범운용' 사업을 추진하려 했다.

국토부의 허가를 받아 운영 중인 8개 버스업체 소속 버스 5대씩을 개조, 한쪽 좌석을 접이식으로 만든 후 휠체어를 놓을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골자였다.

개조비용은 버스 1대당 4000만원으로 총예산은 16억원 정도로 책정했다. 그러나 이는 2016년도 국회 예산안 심의를 통과하지 못했다. 시내 저상버스와 장애인콜택시의 성과평가 등을 거쳐 결정할 필요성이 있다는 게 이유였다.

국토부 관계자는 "버스업계에 일방적인 손해를 강요할 수 없어 휠체어 승강설비와 전용공간을 만들기 위한 국비지원 성격의 예산이었다"며 "하지만 예산이 편성되지 않았고, 버스 업계를 설득하는 과정도 남아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당장 버스예약제를 운용할 수는 없으나 올해 '제3차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계획'(2017~2021년)을 수립, 휠체어 사용 장애인이 탑승할 수 있는 버스·장비 개발을 위한 연구 용역을 진행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휠체어 사용 장애인의 이동권 보장에 대한 실마리는 풀지 못한 채 '비행기 일등석'과 같은 고급형 버스를 이르면 올해부터 투입하겠다는 국토부 계획을 볼 때 여전한 차별이 존재한다는 지적이다.

운행 거리가 200㎞ 이상인 심야 노선에 우선 투입한다는 이 버스는 뒷자리 승객을 의식하지 않고 좌석을 뒤로 충분히 젖힐 수 있다. 좌석마다 칸막이와 영화를 볼 수 있는 모니터도 설치된다고 한다.  

좌석 수를 줄여 '침대칸'을 설치한다고 하면, 휠체어를 놓을 공간을 만드는 일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는 "일등석 버스 도입은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이다. 장애인에 대한 차별은 해결하지도 않은 채 비장애인에 대한 편의만을 늘리려고 하는 정책은 장애인의 존재 자체를 무시하는 것과 같다"고 비판했다.

◇ "고속·시외 버스 구조적인 문제 해결 우선"…"일반 승객 불편함도 없어야"

고속·시외버스 업계는 여러 운행노선을 공유하고 있는 업체들이 납득할 수 있는 공통적인 안을 도출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밝혔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전국 고속버스 운송사업조합에서 장애인의 이동권 보장을 위한 대책을 논의하고 있으나 구체적인 대안이 나오지는 않은 상태"라며 "버스제조업체가 전동휠체어, 휠체어를 태울 수 있는 전용버스를 만들기 전까지는 해결이 어려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실제 휠체어 1대를 놓게 되면 일반 좌석 2개가 사라지는 셈"이라며 "수익과 연결되는 문제기에 운영 횟수, 노선 등의 구체적인 논의가 우선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민족 최대의 명절 설을 앞둔 5일 오전 서울 반포동 고속버스터미널 호남선이 고향에 내려가는 시민들로 붐비고 있다. 2016.2.5/뉴스1 © News1 손형주 기자

일각에서는 휠체어 사용 장애인이 고속·시외버스에 올라탔을 경우에 문제점도 제기한다.

국토부 관계자는 "앞서 휠체어 사용 장애인과 일반 승객을 태우고 서울~공주 구간을 실제 운행한 결과 장애인분들의 안전을 위해 버스가 제 속도를 내지 못했다"라며 "이에 일반 승객들이 피로감을 호소했고, 휴게소에서 휴식을 취할 때도 운전기사가 장애인분들을 챙겨줘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고 했다.

버스 업계 한 관계자는 "시내버스와 달리 고속·시외버스는 출입문이 1개다. 휠체어를 싣게 되면 승·하차가 원활하지 않게 된다"며 "또한 버스에 휠체어를 올리면 안전을 위해 고정을 해야 하고, 안전띠도 착용해야 하나 구조상 어렵다. 만약 교통사고라도 나면 안전을 보장할 수가 없다"고 했다. 

장애인의 이동권도 보장해야 하지만, 대다수인 일반 승객의 편의성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게 버스 업계의 중론이다.

정부가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해 각 지자체에 운영하도록 한 '장애인콜택시'는 시내 운행은 가능하지만, 역시 시외이동은 불가능하다.

◇ 법원 "시외버스, 장애인 휠체어 승강설비 설치"…"장애인 이동은 헌법 보장 권리"

지난해 법원은 장애인과 노인 등 교통약자가 고속·시외버스에 저상버스 도입과 휠체어 승강설비를 제공해달라며 낸 소송에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저상버스를 도입하도록 해달라'는 주장은 기각했으나 장애인들이 비장애인들과 동등하게 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휠체어 승강설비 등 승하차 편의는 제공해야 한다는 판단을 내렸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등 시민단체는 2014년 4월 고속·시외버스에 저상버스 또는 휠체어 승강설비가 없어 교통약자의 시외이동권이 제한받고 있다며 대한민국, 국토교통부 장관, 금호고속 등을 상대로 시외이동권에 관한 공익소송을 냈다.

소송 대리를 맡은 법무법인 태평양 소속의 한 변호사는 "시내는 저상버스와 지하철로 인해 휠체어 사용 장애인의 이동권이 어느 정도 보장되고 있다"라며 "그러나 도시와 도시를 잇는 시외버스 구간에서는 여전한 차별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장애인의 시외 이동권은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법과 장애인차별금지법에서도 보장하는 권리"라고 강조했다.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는 "장애인의 시외이동권 보장은 '의지'의 문제다. 정부와 버스 업계의 고충도 이해는 하지만 우선 추진을 하면서 문제점을 개선하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비록 1심 판결이지만 여전히 해당 버스회사의 승강설비 설치는 이뤄지지 않았다"며 "이는 장애인의 기본적인 권리를 배제하는 행위"라고 덧붙였다.

한편, 국토부 관계자는 "장애인분들의 행복권 추구도 중요한 부분이기에 휠체어 사용 장애인분들이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복지 증진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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