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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묶인 체류객 우리집으로 옵서예”…한파 녹인 제주 민심

(제주=뉴스1) 안서연 기자 | 2016-01-24 19:59 송고 | 2016-01-25 17:36 최종수정

제주지역에 많은 눈이 내려 제주공항이 전편 결항된 가운데 24일 제주국제공항 대합실에 승객들이 종이상자를 펴고 잠을 자고 있다.2016.1.24/뉴스1 © News1 이석형 기자
제주지역에 많은 눈이 내려 제주공항이 전편 결항된 가운데 24일 제주국제공항 대합실에 승객들이 종이상자를 펴고 잠을 자고 있다.2016.1.24/뉴스1 © News1 이석형 기자

32년 만에 내린 기록적인 폭설로 제주공항 항공기 운항이 전면 중단돼 6만여 명에 이르는 승객들이 제주에 발이 묶인 가운데, 일면식도 없는 체류객을 선뜻 집으로 초대하는 행렬이 이어지고 있어 한파를 녹이고 있다.

24일 오후 4시45분쯤 제주지역에서 7만여 명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는 한 인터넷 카페에 “공항에서 어린아이와 같이 계신 분 저희 집에 오세요. 무료로 방 빌려 드리고 식사도 해드릴게요”라는 내용의 글이 게시됐다.
제주시 애월읍 광령리에 거주하고 있다고 밝히며 본인의 연락처를 함께 남긴 이 주인공은 배근호(66)·박민정(66·여) 동갑내기 부부다.

부인 박씨는 뉴스1과의 통화에서 “수천명이 집에 가지 못해 공항에 체류하고 있다는 뉴스를 보고 안타까운 마음에 글을 올리게 됐다”며 “공항과 좀 멀긴 하지만 2층 주택이라 넉넉하니 꼭 아이가 없더라도 누구든지 오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들 부부는 2014년 11월 대구에서 제주로 내려온 이주민으로, 낯선 타지에서 힘들어하고 있을 체류객들의 마음이 누구보다 공감이 간다고 말했다.
박씨는 “남편과 둘이 살고 있어서 2층은 아예 비어있다”며 “평소 보일러를 틀지 않지만 오시겠다고 연락만 주시면 당장 보일러를 틀겠다”고 말했다.

박씨는 이어 “1층에는 우리 부부가 쓰지 않은 작은방도 있으니 이 방을 쓰셔도 좋다”며 “남편과 함께 카페 2곳에 글을 남겨도 아직까지 연락이 오지 않아 공항약국에 전화를 해서 약사에게 체류객이 오면 안내해달라고 부탁까지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 마음 같아서는 공항으로 직접 모시러 가고 싶지만 승용차량인데다 체인이 없어 움직일 수가 없는 상황”이라면서 “좀 멀더라도 공항에서 자지 말고 우리집에 와서 편히 주무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23일 제주지역에 내린 눈으로 항공기가 무더기 결항되면서 제주공항을 이용하는 관광객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 2016.1.23 /뉴스1 © News1 이석형 기자
23일 제주지역에 내린 눈으로 항공기가 무더기 결항되면서 제주공항을 이용하는 관광객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 2016.1.23 /뉴스1 © News1 이석형 기자
60대 부부의 선행 글에 이어 자신들의 집에 오라는 손길이 이어지고 있다.

한 회원이 나서서 “공항에서 노숙하실 분들께 하루 방을 내주실 분들은 댓글을 달아 달라”고 요구하자 해당 글에는 오후 7시 현재 40여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다.

“크지 않은 방이지만 애기 있는 한 가족은 가능해요”  “큰방에 5명까지 가능해요. 연락되는 팀은 데리러 갈 수도 있어요”  “외국인도 환영해요”  “저도 동참하고 싶어요”.

제주시 도남·이도·노형·용담·애월·외도·일도·화북·이호·연동 등 지역도 다양하다. 서귀포에 거주하는 회원은 너무 멀어 도움을 드릴 수가 없다며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제주 이주 6년차라고 밝힌 박선옥(46·여·노형동)씨는 뉴스1과의 통화에서 “이 추운 날씨에 공항에서 고생하시는 체류객들을 보면서 남일 같지가 않더라”며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글을 올리게 됐다”고 밝혔다.

박씨는 이어 “오늘 오후 3시쯤 체인을 감고 직접 공항으로 가려고 했는데 눈보라가 쳐서 도저히 갈 수가 없었다”며 “부담 없이 우리집에 와서 주무시라”고 말했다.

한 요양원의 사무국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권미옥(33·여)씨는 “우리 요양원이 서귀포이긴 하지만 3층 건물이라 공간이 넓어 50명도 넘게 주무실 수 있다”며 “공항에서 한 번에 오는 버스가 있으니 오셔서 쉬시고만 가도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제주지역 인터넷 카페이다보니 아무래도 카페 이용객들이 도민들 위주여서 이 같은 마음이 알려지지 않자 일부 회원들은 숙박업소를 알아보고 있는 제주도관광협회에 전화를 하기도 했다.

제주도관광협회 관계자는 “실제로 본인 집으로 오게 해달라고 하는 전화가 지금까지 3통 정도가 왔다”며 “그런데 숙박업소가 아닌 경우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 함부로 연결해드리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앞서 한국공항공사 제주지역본부는 23일 오후부터 기상 악화로 항공편 운항을 전면 중단한 데 이어 25일 오전 9시까지 활주로를 폐쇄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23~24일 이틀간 제주를 떠나려 했던 승객 중 6만4000명(23일 2만4000명, 24일 4만명)이 제주에 발이 묶였다.

하지만 25일까지 제주도 전역에 많은 눈이 내릴 것으로 예고되면서 다음날도 항공기 정상 운항 여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asy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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