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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매일 '공포' 체험하는 실내 체험동물원 동물들

방문객들 수시로 만지고 쓰다듬어…일부 동물들은 '정형행동' 심각

(서울=뉴스1) 천선휴 기자 | 2016-01-15 10:19 송고 | 2016-01-15 14:12 최종수정
경기도 고양에 위치한 한 실내체험동물원에 전시된 프레리독 한 마리가 방문객 손에 들려 있는 모습. © News1
경기도 고양에 위치한 한 실내체험동물원에 전시된 프레리독 한 마리가 방문객 손에 들려 있는 모습. © News1

"만져봐, 만져봐. 이렇게 들어봐!" 지난 12일 경기도 고양에 위치한 한 실내 체험동물원.

아이들과 부모들은 다소 들뜬 모습이었다. 부모들은 한 번이라도 더 동물을 만지게 하려고 연신 자녀들에게 "가서 만져봐~"라고 말했다. 아이들은 부모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한달음에 달려가 동물을 쓰다듬고 만지고 안았다. 부모들은 흡족한 표정으로 자녀들을 바라봤다.

국내 최초 실내형 동물체험 테마파크라는 이곳의 약 2000㎡의 공간엔 동물 1000여 마리가 전시돼 있다. 동물 수만 많은 게 아니다. 캥거루쥐, 프레리독, 사막여우, 붉은 코뿔새, 햄스터, 오소리 등 종류도 다양했다. 이 체험동물원은 부산, 경주, 하남 지점 외에 중국진출도 앞두고 있다.      

이 동물원 말고도 동물을 직접 만지고 체험하는 실내 동물원은 전국적으로 많다. 인천, 수원, 부천 등 수도권은 물론이고 지방 곳곳에서도 운영되고 있다. 이런 형태의 체험동물원이 전국적으로 얼마나 많은지는 알 수 없다. 동물원이 아니라 종합유원시설, 문화·집회시설, 수목원 등으로 등록돼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등록도 하지 않은 채 운영하는 곳도 수십여 곳이나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관리가 안 되다 보니 어떤 동물이 언제 어떻게 죽었는지, 사체는 어떻게 처리하는지도 알 수가 없다. 실제 한 폐업 실내 체험동물원에선 희귀동물 사체가 무더기로 발견되기도 했다.

동물자유연대(대표 조희경)에 따르면 지난해 8월 경남 창원 한 실내 체험동물원의 전시장과 쓰레기통 등에서 비닐봉투에 담긴 동물 26마리의 사체가 발견됐다. 죽은 동물 중 15마리는 국제적 멸종위기종이었다. 더 심각한 문제는 관계 기관이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는 데 있다. 해당 환경청은 폐업한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환경청은 업체 측이 양도하거나 폐사했을 때 담당 환경청에 신고해야 한다는 규정을 지키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체험동물원들은 '도심 속에서 살아 숨쉬는 동물들을 언제나 만날 수 있는 곳' '동식물과 사람이 공존하는 곳' '생명의 소중함을 체험하는 애니멀 테마파크' 등의 광고 문구로 손님을 끌어 모은다.

또 동물과 교감한다는 미명 아래 안내자가 수시로 손님들에게 동물을 만져보라고 권한다. '생명의 소중함'을 작은 공간에 갇힌 동물들을 구경하거나 장난감처럼 만지작거리는 비교육적인 방법으로 느끼라는 것이다.

좁디좁은 공간에 갇혀 있는 것도 모자라 사람들의 손길을 끊임없이 받아야 하는 동물들의 상태는 어떨까.

기자가 동물원 전문단체인 동물을 위한 행동(대표 전채은)과 함께 찾은 경기도 한 실내체험동물원 동물들의 상태는 심각해 보였다. 풀, 덤불로 덮인 물가 근처에 산다는 서벌캣은 풀 한 포기, 물 한 방울 없는 3평 남짓 공간에 전시돼 있다. 이 서벌캣은 왼쪽과 오른쪽을 끊임없이 왔다갔다하는 정형행동(생태와 맞지 않는 인위적 공간에 갇혀 겪는 신체·정신적 스트레스 때문에 앓는 정신 질환)을 보였다.    

경기도 고양에 위치한 한 체험동물원에 전시된 오소리의 몸 반쪽에 털이 거의 빠져 있다. © News1
경기도 고양에 위치한 한 체험동물원에 전시된 오소리의 몸 반쪽에 털이 거의 빠져 있다. © News1

오소리의 행동은 더 심각했다. 오소리는 두더지처럼 땅 속에 굴을 파 잠을 자기도 하는 동물이다. 평소에도 땅 파는 걸 좋아해 땅굴을 만들 수 있는 산림에 서식한다. 하지만 이곳에 전시된 오소리는 2평 남짓한 곳에서 두 마리가 함께 생활한다. 한 마리는 구석에 몸을 웅크려 잠을 자는 듯했고 다른 한 마리는 사육시설 안에서 정신없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따금 유리벽에 몸을 박는 행동도 보였다. 유리벽에 몸을 던지는 정형행동을 보인 오소리는 몸 반쪽의 털이 거의 다 빠져 보기에도 안쓰러울 정도였다.

해당 업체 관계자는 "예민한 오소리가 한 공간에서 싸우다 털이 빠지기도 하고 스트레스를 받아 털이 빠지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오소리뿐만 아니라 라쿤도 좌우를 끊임없이 왕복하는 전형적인 정형행동 증상을 보였다.    

누구나 쉽게 만질 수 있도록 덮개 없는 커다란 통에 넣어 전시하는 햄스터는 아이들에겐 최고의 장난감이었다. 햄스터를 손에 쥐었다 다시 던져 넣기도 하고 햄스터를 손으로 쫓으며 즐거워하기도 했다.

햄스터를 전시하는 이른바 '교감체험존'을 관리하는 한 직원은 "이렇게 괴롭힘을 당하면서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에 쉬는 시간을 준다"며 햄스터가 들어 있는 손바닥 크기의 사물함을 가리켰다. 이 직원의 명찰에는 교육중이라고 적혀있었다. 해당 동물원에는 그처럼 아르바이트생 직원들이 상당수였다.    

이처럼 문제점이 많은 체험동물원이 버젓이 영업을 하고 있는 이유가 있다. 체험동물원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전혀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체험동물원뿐만 아니다. 한국의 동물원은 현재 그 어떠한 법적 규제도 받지 않는다.     

2013년 장하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회의원 21명과 함께 '동물원법'을 발의한 바 있다. 이 법안은 '환경부 소속 동물원관리위원회를 통한 동물원 설립허가 심사·의결' '동물의 인위적 훈련 금지' '반기마다 동물의 개체 수, 폐사, 질병 현황보고'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이 법안은 여전히 국회에서 '낮잠'을 자고 있다.    

동물보호단체 카라의 전진경 상임이사는 사람들의 인식이 개선돼야 하고 동물원법이 신속히 통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 이사는 "동물을 만지며 소모하는 체험동물원이 많아질수록 동물들의 고통은 증가할 것"이라며 "동물원법이 하루 빨리 통과돼 동물들을 보호할 수 있는 기준이 시급히 제시돼야 한다"고 했다. 이어 "일회적으로 동물을 만지거나 구경하는 건 동물에 대한 폭력적이고 왜곡된 인식만 갖게 한다는 사실을 꼭 알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ssunh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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